김혜리의, 개와 인간의 시간
[김혜리 칼럼] 이웃
반려견과 동행하며 동네, 동네 소식, 동네 사람들이 비로소 실체를 갖춘 모습으로 일상의 일부가 됩니다.
글: 김혜리
2025.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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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립 가구의 세대주가 된 이후 총 일곱 차례 이사를 다녔다. 직장을 중심으로 서울 강북의 4개 구를 옮겨 다녔다. 현재 살고 있는 지역에는 2010년대 초에 전입해 동호수만 바뀌는 근거리 이사를 거듭했다. 그렇지만 타티와 같이 살기 이전의 내게 ‘동네’는 존재하지 않았다. 온라인으로 장을 보고, 주차장에서 주차장으로 이동하는 생활을 하다 보니 큰 도로 이면의 골목을 익힐 기회도 없었고 이웃과의 접촉은 엘리베이터에서 하는 목례가 고작이었다.

 

행정구역과 일치하지 않는, 동네라는 영역은 반려견과 더불어 내게 비로소 실체가 됐다. 타티와 하는 산책이 일과가 되면서 건널목을 쉼표 삼아 이어지는 골목과 공원의 문장(文章)을 읽을 수 있게 되었고, 내 집 근처에서 어떤 사람들이 살고 일하고 있는지 알아갔다. 특히 매일 개를 산책시키는 이웃사람들은 어느새 가족이나 직장 동료보다 자주 안부를 나누는 타인이 되어버렸다. 오로지 개 이름만 통성명한 사이라 출근길이나 외출 길에 개와 동행하지 않고 마주치면 서로 몰라본다는 맹점이 있긴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개인 정보도 모르면서 반려동물에 관련된 무거운 걱정을 나누고 간혹 손 붙잡고 같이 울어줄 수도 있는 관계라니! 멋진 신세계다. 

 

내가 동료 반려인 이웃들과 눈도장을 찍어가는 동안. 타티와 아로하는 마음에 드는 사람과 장소를 차곡차곡 선택해 ‘이웃 클럽’의 멤버를 정했다. 먼저 타티는 길에서 마주치는 다른 개의 반려인보다 우리 동네에서 일하고 장사하는 사람들을 좋아했다. 동물을 무척 사랑하는 내외분이 운영하는 동네 슈퍼마켓에 꼬박꼬박 들렀고 급기야 내가 극장에서 영화 한 편을 보고 오는 동안 카운터에 조용히 앉아 손님을 맞기도 했다. 타티가 유기되기 전 혹시 슈퍼집 강아지가 아니었을까 의심할 지경이었다. 덩달아 나도 포스 기계 쓰는 법을 배웠고, 문 닫을 무렵 타티와 가게에 들렀다가 내외분과 한잔하는 밤도 있었다. 경영난으로 스타수퍼가 결국 폐업한 후에도 몇 달이나 타티는 닫힌 가게로 나를 끌고 가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타티는 공동 주택의 환경미화와 보안을 담당하는 아저씨, 아주머니에게 유독 친밀함을 표해 사랑을 돌려받았다. 타티가 나쁜 병을 진단받았다는 사실을 알리면 매일 슬픈 표정으로 내 개를 대할 그분들을 볼 자신이 없었던 나는 타티가 숨지고 나서야 소식을 전할 수 있었는데 힘든 날이었다.  

 

현재 나랑 사는 개 아로하의 수많은 별명 중 하나는 ‘광개토개왕’이다. 오직 제 필요에 충실한 이 강아지는 호시탐탐 자신을 환대할 새로운 장소와 사람을 늘려간다. 오토바이 정비소부터 와인숍까지 업종을 망라하고 심지어 자기가 다니지도 않는 동물병원에 들어가 대기실에서 논다. (단골 방문처가 정기휴일일 경우 반려인이 문 앞에서 위로 간식을 한 알 증정해야 발길을 돌린다.) 인테리어가 밝고 예쁜 가게에 특히 호기심이 커서 오픈 전 공사를 할 때부터 장기간 주시한다. 반면에 정이 깊은 편은 아니라 재미가 덜해지면 스스로 발길을 끊기도 하고 개를 환영하지 않는 기운을 감지하면 “오케이!” 하고 돌아선다. 놀라운 점은 아무리 지점이 늘어나도 하나도 빠뜨리지 않는, 구글맵을 방불케 하는 아로하의 기억력이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 <애스터로이드 시티>를 보면 사막에 모인 과학 영재들이 둘러앉아 인물의 이름을 하나씩 덧붙여가며 누적 암기하는 게임을 하는데, 아로하는 거기 끼어도 승산이 있다. 

 

출장 기간 동안 아로하를 맡아 돌봐준 친구는 위탁 이틀 만에 프랑스 칸의 내게 당혹감에 가득 찬 문자를 보냈다. “얘는 도대체 왜 모든 가게에 자기가 들어가 봐야하고 환영받을 거라고 믿는 거야?” 어쩌면 순서가 반대일지도 모른다. 인간들이 자기를 반길 거라는 천방지축 강아지의 근거 없는 확신이 인간의 방비를 허물어뜨리는 것처럼 보인다. 몇몇 가게에는 내가 출력해 드린 아로하의 사진이 카운터에 붙어있기도 하다. 루틴의 동물인 아로하는 각각의 가게에서 해야 하는 일도 깔끔하게 정해 놓았다. 호프집에서는 소금기 뺀 먹태를 얻어먹고, 중간 지점 커피 로스터리에서는 물로 목을 축이고, 건어물 상점에선 간식 쥔 손 알아맞히기 게임을 수행한다. 그러는 동안 들러리인 나는 날씨와 뉴스, 건강과 불경기 이야기를 주인장과 나눈다. 대부분 안 해도 그만인 대화들이다. 하지만 모래성처럼 조금씩 쌓였다 허물어지고 다시 퇴적되는 그 시간을 통해 나는 무용한 사실들을 잔뜩 알게 됐다. 시장 입구 반려동물 용품점이 동물 좋아하는 교회 아주머니들의 사랑방이라는 것, 철물점 남자사장님이 술을 마시고 기분 좋아할 때면 여자 사장님이 엷게 슬픈 표정을 짓는다는 것, 족발집 청년은 예쁜 반다나를 모은다는 것, 반찬가게 할머니가 자부하는 빈대떡을 위해 지난 추석에 국산 녹두를 일찍 장만했다가 쉬어버려 크게 상심하셨다는 것. 내가 아로하를 따라다니다가 무심코 알게 된, 정보도 지식도 아닌 이야기 조각들은 무용하다는 점 때문에 귀중하다. 

  

그런가 하면 아로하와 나는 장사를 하느라 점포를 좀처럼 떠나지 못하는 사장님들의 소식통이 되기도 한다. 버스 정류장 앞 맛있는 빵집이 몇 주째 문닫은 이유가 수술 때문이라더라 전하기도 하고, 이 카페의 쿠키를 저 빵집에, 길 건너 떡집의 시루떡을 분식집에 선사해 평소에 받기만 한 보답을 한다. 어린 시절 읽던 『빨강머리 앤』 같은 서양 소설 속에서 자전거 타고 마을 소식을 실어 나르는 우체부가 된 기분이다. 마실이라는 행위에는 마감도 평가도 없고 조횟수도 ‘좋아요’도 없다. 개들은 내게 이웃과 함께 생활을 주었다.

 

우리에겐 진짜 옆집 사는 이웃도 있었다. 아로하와 내가 정식으로 가족이 되기 전 3박4일 아로하가 손님으로 내 집에 머무르는 동안, 옆집 대문에는 브라이덜 샤워 파티를 위한 분홍 풍선들이 나풀거렸다. 오래지 않아 신혼집에서 아기 울음 소리가 들려왔고 어린 희아는 유모차 위에서 아로하와 첫 만남을 가졌다. 택배와 배달의 기척에는 낮게 짖는 아로하가 신기하게도 희아의 울음과 삑삑이 신발 소리에는 평온했다. 엄마, 아빠를 발음할 수 있게 될 무렵 희아는 엄마가 가르쳐준대로 “아라아!” 라고 외치며 우리 개에게 뒤뚱뒤뚱 다가왔다. 감동적이었다. 대동소이하게 흘러가는 우리집의 시간과 판이하게 옆집의 세월은 드라마틱했다. 나는 엄마를 닮았다 아빠를 닮았다 매일 자라나는 아이를 경이롭게 지켜보았다. 울기 직전의 피로로 그늘졌다가 아이 웃음에 다시 거짓말처럼 환해지는 젊은 부모의 얼굴도. 희아가 제법 잘 달리고 고집도 피울 줄 알게 되었을 때 넓은 공간이 필요해진 희아네는 길 건너로 이사했다. 얼마 전 산책길에 우리는 몰라보게 자란 희아와 아빠를 다시 만났다. 아빠가 상기시켜 주는데도 희아는 아로하를 기억하지 못했다. 내 망각 속에도 희아의 아로하 같은 강아지가 있을까? 그날 나는 큼직한 느낌표를 안고 귀가했다. 앞서 언급한 ‘아로하 지도’에 등재된 가게 중 일부도 폐업하거나 다른 동네로 이전했다. 이웃이 한꺼번에 사라지지 않아 다행이고 아로하가 회자정리의 섭리를 통달한 듯 의연해서 든든하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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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hdud0429

2026.01.14

저희 집엔 흥선개원군이 계시는데.. 광개토대왕님 보고 빵터졌어요 너무 귀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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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

테리어 믹스 아로하 샨티 킴과 서울에서 살고 있다. 팟캐스트 <김혜리의 필름클럽>, <조용한 생활> 운영. 『묘사하는 마음』,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 『그림과 그림자』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