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당신이 ‘교정의 요정’을 만난 적 있다면 반드시 이 책을 기다렸을 것이다. 지옥에서 온 시뻘건 블랙코미디 노동문학은 한번 보면 잊을 수 없으므로. 『교정의 요정』이 교정공의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사명을 찾아서』는 문자 그대로 출판사의 사명을 찾는 이야기다. 가상의 출판사 62곳의 사명에 얽힌 사연을 읽는 동안 종종 책 표지 생각이 났다. 표지에는 강렬한 빨간 폰트로 화면 가득 문장이 새겨져 있는데, 그 문장은 “책으로 세상을”에서 뚝 끊긴다. 책으로 세상을...책으로 세상을...그다음 말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이 책은 책으로 세상을 어떻게 할지에 관해 말하지 않는다. 잠깐, 혹시 사명을 찾아서는 사명(使命)을 찾아서였을까? 라는 말장난을 하게 될 때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책의 독자는 “○○으로 세상을”에서 ○○의 자리에 한 번쯤 책을 가져다 놓았던, 놓은, 놓을 사람들이 아닐까. “책으로 세상을”이라는 깃발 아래 모인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늘 그렇듯 깃발 아래에는 구호에 동의하는 누구든 함께 할 수 있다.

『사명을 찾아서』 작업을 마친 후기를 들려주세요.
『사명을 찾아서』는 21년부터 23년까지 짬짬이 썼습니다. 출간을 앞두고 교정본다고 오랜만에 다시 읽는데 첫 번째는 그럭저럭 재밌었고 두 번째는 꼴도 보기 싫었어요. 두 번 읽히기는 힘든 책인가 싶어 약간 의기소침해졌습니다. 하지만 또 2년 정도 지나면 읽을 만할지 모른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책을 만들게 둬서 배드베드북스에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어떻게든 1쇄라도 소진시키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 인쇄 감리를 따라가 구경한 다음 블로그에 후기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나 스스로 리뷰단이 되는 수밖에는 없다’입니다.
『사명을 찾아서』에는 각개 분투하는 수많은 출판사의 사명과 거기에 얽힌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각자의 사정이 깃든 출판사 이름들을 보며…문득 유리관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짓게 되셨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전자책도 책이라면 모든 인터넷 화자들의 이름은 하나씩의 출판사명임을 서문에서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실명도 쓰고 별명도 쓰고 익명도 쓰지만 어쨌든 그 이름들은 저자명을 넘어서 출판사명으로 봐야 합니다.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출판사와 저자가 공적 사명을 함께 자아내듯, 인터넷 환경이 우리 모든 화자들에게 자동으로 공적 사명을 지우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에 ‘인터넷 문제’ 전부는 그 사실과 관련이 있습니다. 공적 사명은 반드시 인간을 쪼개어놓고, 그 점은 외면될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다뤄져야 하는데, 지금과 같은 형태의 인터넷 환경에서는 좋지 않은 방향으로 착시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제가 지금 이렇게 함부로 쓰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사명을 찾아서』의 「유리관」 편을 쓰자면... 이 이름은 블로그를 쓰는 화자의 사명으로 지었습니다. 너무 고유명사이면 안 되고 너무 일반명사여도 안 되고 뭔가 여러 뜻이 담긴 주머니여야 했습니다. 그리고 어쨌거나 화자이기 때문에 인명처럼도 읽혀야 하고요. 간단하게는 세 글자를 목표로 일반명사 두 개를 붙여볼 수 있습니다. 유리는 흔하지만 필요하고, 만들어지지 않으면 있기 어렵고, 빛은 통과시키되 대기는 막고, 보호하는 것이면서 위험하고, 왜곡하고 전달하고, 액정을 들여다보는 일이 종족의 주요 취미가 된 이 시기에는 의미심장한 물질입니다. 관은 속이 빈 대롱, 머리에 쓰는 쓰개, 시체를 담는 궤입니다. 특히 마지막 것이 유리로 되어 있어 있다면 백설공주의 것과 공산권 지도자들의 것으로 나뉩니다. 그런 게 다 무엇이 좋은가 하면, 없는 것이면서 있는 것이 좋습니다. 붙은 적 없지만 쪼개지지도 않는 것이 좋습니다. 열어야 하지만 부서져야 하는 것이 좋습니다. 같을 수 없지만 다를 수 없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어쩌고저쩌고...
현실의 일부를 조금씩 뜯어내 각각의 출판사를 빚어냈고 워낙 묘사가 구체적이다 보니, 마치 소설 속 공간처럼 출판사들이 어딘가에 존재할 것만 같았습니다. 책을 완성한 이후에도 머릿속에 달라붙어 자꾸만 생각나는 출판사가 있을까요?
「국립출판사」입니다. 국립출판사는 제가 처음으로 다녔던, 사장님과 저 단 둘뿐이었던 출판사를 모티브로 하고 있습니다. 등장하는 ‘젊은 직원’도 저 자신입니다. 출판에도 빛의 출판이 있고 어둠의 출판이 있다는 생각인데요, 저는 그곳에서 어둠의 출판으로 시작했습니다. 무엇이 사장의 일이고 무엇이 사업의 일인지 전혀 구분할 수 없는, 사적인 것과 아닌 것이 전혀 구분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저는 그를 1대 사장님이라고 부릅니다.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일까요? 그 후로 지금까지 사장님들의 통치는 어디에서건 잊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사장님들은 거기서 일하는 저를 대표해주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출판사를 대표하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그 자신조차 대표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사장님들은 뭔가 다른 것을 대표했습니다. 만약 사장님이 왕이라면 왕립출판사일 겁니다. 폭정을 일삼는 사장님을 참수(비유입니다)할 수 있다면? 사장님을 투표로 뽑는다면? 내가 사장님으로 선출된다면? 저도 생각이란 걸 해봤습니다. 사장님이라는 존재는 다른 뭔가가 아니라 돈으로 돈 벌기를 대표합니다. 어떤 사장님이건 그 운명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즉 사장님들은 사장님이라는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어야 합니다. 국립출판사라는 사명에는 그런 문제에 대한 희망과 절망이 담겨 있습니다.
책을 읽으며 출판업이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톱니에 짓눌리고, 짓눌렸지만 틈새 사이로 튀어나오고, 튀어나온 책의 체액이 끈질기게 흘러 누군가에게 닿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이런 만남이 있다면, 어떤 종류의 책을 만나고 싶으신가요?
재밌는 상상입니다. 저는 재밌는 책이 좋습니다. 하지만 재미가 무엇인지는 제가 정해야 합니다. 이런 오늘날과 조화하지 않는 책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재밌게 읽을 수는 없는 책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이와 적은 이, 가진 이와 아닌 이에 대한 이중의 긴장감이 있는 책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대답만 요구받고 질문은 허락되지 않는 사람들의 책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질문만 할 수 있고 대답은 허락되지 않는 사람들의 책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도 쓰라고 명령한 적 없는 책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나름의 사명을 띤 책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을 통해 자신을 넘는 책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분명했으면 좋겠고 의심했으면 좋겠고 등등... 아무튼 그러면서 재밌어야 합니다.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하지도 않습니다. 상상을 조금 다르게 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인류 역사의 머리 위에 출판이라는 거인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고요. 지금 거인은 자본주의라는 오물을 조몰락거리고 있습니다만, 결국 그것도 어린 시절의 재밌었던 코쓱 추억이 되는 때가 올 것입니다.
책은 곧 언어의 교환이기 때문에 정치적이기도 합니다. 가령 ‘말이 통하지 않는 완전한 바깥으로 나아가고 다시 돌아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문장이 나오기도 하죠.(「탐침」) 두 권의 책을 쓰면서 어떤 이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고 싶으셨나요?
너무 짧은 대화를 하고 싶지 않은데 대개의 대화는 너무 짧습니다. 하지만 충분할 정도로 긴 대화는 짧은 대화들을 억압합니다. 이런 폭력적이고 항구적인 상황을 돌파하려는 시도가 모든 책들의 정체라고 해봅니다. 탐침은 찔러 넣는 종류의 것입니다. 싸우는 사람들, 싸우다 지친 사람들, 싸우고 싶은 사람들과 싸움의 끝에 대한 텔레파시를 나누고 싶네요. 이걸 읽고 계신 여러분도 초보적인 수준의 텔레파시에 참여한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싸움이 끝난다는 건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책에 유일하게 실존하는 출판사 한 곳이 등장합니다. 『사명을 찾아서』를 출간한 배드베드북스죠. 작가님이 진행한 배드베드북스 인터뷰가 실려 있는데, 작가님의 마지막 질문을 돌려드려 봅니다. “자신만의 출판사를 차리고 싶은 많은 분들께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우리의 사업이란 노동의 창출입니다. 출판사를 차린 다음 저를 고용하십시오!

작업을 하는 동안 가장 의지한 반려 [ _______ ]
24년도 기후정의행진(*2022년부터 매해 9월, 기후위기에 대한 정의로운 사회적 대응을 요구하며 펼쳐지고 있는 집회입니다) 때부터 ‘피크민 블룸’이라는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식물과 벌레와 노동자를 한데 섞어놓은 것 같은 색색 캐릭터들과 함께 걷는 만보기 게임입니다. 기왕 행진하는 김에 재미도 챙겨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아직까지 하고 있지만 재밌는 게임은 전혀 아닙니다. 그 게임에 나오는 빨강 피크민의 인형을 저의 배우자님이 선물로 주었습니다. 점잖게 옷도 입히고 이런저런 액세서리도 달았습니다.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24년 12월부터는 집회에 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매번 그 인형을 가방에 매달고 갔습니다. 집회는 언제나 씁쓸한 애증의 시공입니다. 출판과도, 노동과도, 쓰기와도 비슷합니다. 진짜 맘에 안 듭니다. 제발 끝났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이 인형이 나를 선동하고 조종하여 데려간다고 생각하면 모쪼록 의지가 됩니다. 지금까지도요. 그게 ‘작업’이랑은 대체 무슨 관계일지? 하여튼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작업실을 소개해 주세요.
작업실은 따로 없습니다. 책의 대부분은 회사에서 점심시간에, 아니면 중간에 뜨는 업무시간에 몰래 썼습니다. ‘일하기 싫어 모음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퇴근하고서는 있는 힘을 다해 가사를 하고 쉬고 놀아야 합니다. 이 경우 작업은 실외배변 같은 것입니다. 회사에서 「사장몰래」 출판사를 쓸 때 가장 짜릿했던 것 같네요. 도의상 문제적이라고 여기실지도 모르겠지만 저도 저에 대한 사측의 도의적 잘못들을 많이 눈감아줬으니 비겼습니다. 어쨌건 그 회사에서 권고사직을 당한 지도 반년이 지났습니다. 도의의 총체적 파탄이었던 의료대란으로 인한 경영악화 때문이었지, 딴짓하다 걸려서 잘린 건 아닙니다. 저의 몰래 작업실 추억은 서서히 희미해지고 있고 떠올리고 싶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기억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다 쓴 펜 무덤입니다. 교정공으로 일하면서 다 쓴 펜들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모아둔 통입니다. 내가 일한 흔적이나 증거가 어디에도 없다는 게 영 분해서요. 딴짓(=’작업’)만 하지는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마감 후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저에게는 마감이 ‘하고 싶은 일을 막는 뭔가’가 아닙니다. 어떤 다른 일이 저의 하고 싶은 마감을 막는 편입니다. 그야말로 일들이요. 그리고 그런 일들이 없으면 쓰고 싶은 것도 써야 할 것도 없겠습니다. 이건 제가 실제로 작가가 아니고, 스스로 작가라고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 마감 후에는 ‘배드베드북스 화이팅’을 외쳐주고 싶었네요. 단톡방에서도 뭐만 얘기만 했다 하면 계속 외친 것 같습니다. 배드베드북스 화이팅!
할 일이 있을 땐 그것 빼고 모두 재밌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작업 중 특히 재밌게 본 타인의 작품은 무엇인가요?
가라타니 고진의 『힘과 교환양식』이 재밌었습니다. 늙은 철학자가 일생의 연구를 정리하며 인간의 영혼과 힘이 어디서 기원하는지를 두고 혼신의 뇌피셜을 펼치는 흥미진진한 책입니다. 제가 읽은 바에 따르면, 힘과 영혼은 교환으로부터, 더 구체적으로는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고 주는 데서부터 조성됩니다. 따라서 영혼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입니다. 책에서는 그 사회적 빚의 양상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누는데요, 구체적인 것은 직접 확인해 보시길... 어쩌면 그에게 있어 갚을 수 없는 빚이란 독서가 아니었을까 짐작합니다.

책은 종족이라고 했다. 우리의 책에는 책들의 목록만 적혀 있을 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할 것이다. (「팸플릿」, 205쪽)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사명을 찾아서
출판사 | 배드베드북스
박소미
뒷모습이 담긴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 쉽게 눈을 떼지 못하고 저장해 둡니다. 그 사람들...어떤 얼굴 하고 있을까요? 그래서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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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