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보라의 엄마가 된다
[이길보라 칼럼] 어째서 글쓰기가 어려운 거야
육아를 하며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고 비영리단체의 업무를 병행하는 출산 이후의 삶에 관해 나눕니다.
글: 이길보라 (영화감독, 작가)
2025.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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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후 일을 하고 싶은 마음에 아이를 데리고 가 지방에서 강연을 했다. 아기와 산모를 돌봐주었던 친구가 손목보호대를 하고 까무룩 잠이 든 나를 찍었다. ©박혜정


언젠가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워킹맘이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이라도 일하려고 어딜 가나 노트북을 들고 다닌다고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펴면 다시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 등 예상치 못한 일들의 반복이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하니 무거워도 이고지고 다닐 수밖에 없다고. 잠시라도 일할 수 있는 것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싱글맘인 시인은 일하고 아이를 키우는 자신의 일상을 정신없이 묘사했다. 시인이니까 이렇게 정돈되지 않는 모양으로 자신의 일상을 그리는 걸까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그렇지, 이 정도라고? 

 

아기를 낳기 전에는 몰랐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그 무엇이라는 걸. 하루 24시간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온전히 계획하여 사용하고 가끔은 다음 날의 일정과 체력을 포기하며 밤을 새기도 하는 결정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아이를 어린이집과 같은 보육시설에 보내기 전에는 일할 수 있는 시간이 기껏해야 한두 시간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그것도 잠을 자고 운동을 하고 요리를 하고 집안을 돌보거나 혹은 영화나 드라마를 보거나 책을 읽는 것을 포기해야만 주어지는 소중하고 귀한 시간이라는 걸. 그것과 맞바꾸어 겨우 써낸 것이 바로 내가 읽은, 일하는 엄마의 귀한 창작물이었다는 걸 말이다. 

 

논픽션 작가이자 대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레슬리 제이미슨은 『모든 아름다움은 이미 때 묻은 것』(2024)에서 엄마이자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산다는 것에 대해 쓴다. 아이를 너무나도 사랑하지만 동시에 나 자신으로 사는 것을 욕망하고, 육아와 작업을 병행하며 마주한 자신의 새로운 일상을 그린 에세이에서 그는 글을 쓰는 것이 어렵다고 호소하는 학생을 두고 속으로 생각한다. 

 

어째서 글쓰기가 어려운 거야? 아이가 없으면 남아도는 게 시간인데.’

 

너무나도 솔직하고 적확한 문장이었다. 아이를 낳고 나니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출산 후 나의 모든 신경과 감각과 시간을 아이에게 바쳐야 했다. 그 어떤 것도 혼자 할 수 없어서 자고 싶다, 배고프다, 기저귀를 갈아달라, 뭔지는 모르겠지만 불편하다, 졸리다, 덥다, 춥다를 울음소리로 표현하는 아이를 두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세상은 이전과 같은 속도로 돌아갔다. 누군가는 영화를 만들었고 누군가는 책을 냈고 누군가는 재밌는 행사에 참가했으며 누군가는 멋진 곳에서 커피를 마셨다. 모조리 부럽다 못해 샘이 났다. 심지어 지나가는 누군가가 청바지를 입고 있는 것을 시샘하기도 했다. 저런 걸 입을 수 있다니! 그럴 여유가 있다니! 아이와 함께 하는 일상이 달큰하고 충만했지만 동시에 불안했고 질투가 났다. 나도 하고 싶다, 나도 가고 싶다, 나도 먹고 싶다, 나도 자고 싶다, 단, 아이를 돌보면서. 

 

나는 다소 예민하고 까다로운 기질의 소유자다. 방이 충분히 어둡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고 조금이라도 시끄러우면 신경질이 난다. 특히 소리에 민감하여 듣지 않는 라디오나 TV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을 참을 수 없고, 사람이 많은 곳에 가거나 큰 소리에 장시간 노출되면 공황장애 초기 증상을 보인다. 언젠가는 냉장고에서 나는 소음이 신경 쓰여 어떻게 하면 조용한 환경을 만들 수 있을지 신경질적으로 고민했다. 커튼을 꼼꼼하게 치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모두 차단하고서야 비로소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러나 모유수유를 시작하자 빛이고 소음이고 뭐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곯아떨어지는 사람이 되었다. 주변을 정돈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 누군가가 아이를 봐주겠다고 방문하면 격식 차리지 않고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하고 그대로 방으로 직행해 눈을 붙여야만 밤새 이어지는 수유와 아이 재우기를 온전히 또는 안전히 해낼 수 있었다. 언젠가 아이를 낳을 계획이 없는 지인 커플이 조금이라도 빛이 들어오면 잠을 잘 수 없다고 호소하자 웃으며 화답했다. 

 

“나도 그랬거든? 그런데 아기 낳으면 해결돼. 어디서나 잘 자.”

 

내가 상대방이라면 정말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겠지만 잠이 부족한 그때는 그렇게 말하고 말았다. 

 

출산 후 서너 달쯤 지나서였을까.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하며 새롭게 경험하는 삶의 모습을 글로 쓰고 싶었다. 이전에 칼럼을 연재했던 신문사에 연락해 다시 연재를 하고 싶다고 했다. 출판사에도 메일을 보내 미뤄왔던 단행본 계약을 하자고 했다. 임신했을 때는 일이고 뭐고 전혀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지만 육아로 경력이 단절될 것만 같아 불안하고 나만 뒤처지고 있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기록하고 싶었다. 뭐라도 쓰지 않으면 나 자신을 잃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제 막 뒤집기를 하는 아이를 안고 혼자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가서 아이를 카시트에 태우고 운전해서 미팅을 나갔다. 홀로 아이를 데리고 나왔느냐며 눈을 동그랗게 뜬 편집자를 앞에 두고 “모유수유를 하니 어쩔 수 없다”며 애써 웃었다. 멀쩡한 척했지만 사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명색이 회의인데 가지고 간 가방에 아기 용품만 잔뜩이고 수첩도 없고 펜도 없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았다. 건초염이 심하게 와서 양쪽 손목에 보호대를 한 채였다. 출산 후에는 관절이 약해져 손목과 무릎이 쉽게 나가니 최대한 몸 쓰는 것을 아끼라는 말을 귓등으로 듣고 무리해서 그런지 조금만 힘을 줘도 손목이 시리고 알큰했다. 펜을 잡기도 어려웠다.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인데 내 이름 석 자를 쓸 수 없다니. 헛웃음이 나왔다. 칭얼이다 겨우 잠에 든 아이를 아기띠로 안고 앞에 놓인 음료를 벌컥벌컥 마시며 최대한 정신을 집중하여 말했다.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쓰고 싶다고 그래야만 한다고 말이다. 바로 원고를 넘길 수는 없겠지만 제 속도대로 꾸준히 쓰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아기가 뒤집기를 하고 되집기에 성공하고 스스로 앉고 나를 향해 웃어 보이고 때로는 중심잡기에 실패해 머리를 꽈당 박고 그러다가도 무언가를 잡고 일어서고 옆으로 걷는 아이의 성장과 함께 일하기란 말처럼 쉽지 않았다. 아이가 잠들면 이어서 써야지 하고 종료하지 않고 절전 모드로 돌려놓은 노트북과 데스크탑은 하루 혹은 이틀을 꼬박 넘기고서야 다시 켜지곤 했다.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이 지워지지 않은 채로 다음 날, 그다음 날로 미뤄지는 것을 보며 한숨이 나왔다. 잘 생각이 없는 아이를 겨우 안아 재우고는 이제는 할 일을 하자며 자리에 앉아 키보드 자판을 치는 순간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신기하게도 혹은 슬프게도 아이는 내가 키보드를 칠 때마다 깼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싫은 것이 엄마가 일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책상 위에는 미처 치우지 못한 책들과 노트가 늘어져 있었다. 아기 자면 읽겠다며 올려둔 책들에는 책갈피가 무성하게 꽂혀 있었다. 모든 것을 다 덮고 침실로 향해야 했다. 내가 아니면 자지 못하는 아이를 품에 안았다. 도대체 왜 안자? 이제 그만 좀 자줄래, 제발, 하고 말하고 또 말하면서.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드는 일 외에도 대표로 일하는 비영리단체의 업무도 해야 했다. 일을 하면서 근무일지를 써야 했는데 어느 날 파일을 열었더니 내가 일한 시간이 전부 새벽이거나 아이를 재운 후 밤 열시가 넘은 시간들뿐이었다. 자괴감이 들었다. 모두 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지만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나는 행복하고 즐거운 육아를 하고 있는 걸까, 글을 쓰는 시간은 왜 확보될 수 없는 걸까, 빨랫감은 파트너의 책상이 아니라 왜 내 책상 옆에만 놓여 있는 걸까. 영화는 언제 만들 수 있을까, 해야 할 일의 목록은 언제 다 지워질까, 나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 아이와 함께 놀다가도 할 일이 떠올라 노트북을 열고 다른 것에 집중하면 아이는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혀 울었다. 파트너는 제발 육아에 집중할 수 없겠냐고 신경질을 냈다. 나는 아이를 끌어안고 변명을 늘어놓다 울었다. 

 

“엄마가 미안해, 그래도 이건 꼭 지금 해야 해. 그래서 정말 미안해.”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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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아름다움은 이미 때 묻은 것

<레슬리 제이미슨> 저/<송섬별> 역

출판사 | 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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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보라 (영화감독, 작가)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고요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를 오가며 자랐다.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며 서로 다른 세계들을 연결하면서 살고 있다. 지은 책으로 책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등이 있고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 〈기억의 전쟁〉 등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