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는 정약용, 박지원, 이덕무, 김정희 등 조선의 대표적인 선비들이 사랑하는 이를 잃은 뒤 남긴 애도문 44편을 가려 뽑아 엮은 인문서이다. 절제와 체면을 중시하던 시대에도 끝내 숨길 수 없었던 슬픔의 언어를 한문 원문과 현대어 번역으로 함께 실어, 조선 선비들의 가장 인간적인 순간과 애도의 방식을 오늘의 독자에게 전한다.
조선 선비들의 ‘애도문’만을 모아 책을 만든 특별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조선 시대의 기록을 오래 읽어오면서, 가장 마음에 깊이 남았던 글들이 바로 애도문이었습니다. 절제의 문화 속에서도 끝내 숨기지 못한 슬픔의 떨림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죠. 저는 이 글들을 단순한 고문헌이 아니라 한 시대의 ‘감정의 역사’로 보았습니다. 사랑을 잃고 흔들린 선비들의 기록을 오늘 다시 읽는 것은, 우리가 잊고 지내던 인간의 본모습을 되찾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애도문은 매우 사적인 기록인데, 그것을 독자들이 읽는 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는 누구나 이별을 겪고, 상실을 경험합니다. 시대가 달라도 마음의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선비들이 남긴 글은 ‘과거의 슬픔’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감정과 닿아 있는 거울 같은 존재예요. 그들의 울음과 고백을 읽다 보면, 자기 자신의 상처와 마주할 용기가 생기고, 슬픔이 결코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정약용, 김정희, 박지원, 이덕무 등 여러 인물의 글을 선택하셨습니다. 선별 기준이 있었나요?
단순히 유명한 선비라는 이유로 텍스트를 고르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선택한 기준은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슬픔의 감정이 문장 속에서 온전히 드러나는가.
둘째, 그 고통이 오늘의 독자에게도 울림을 주는가.
이 기준을 충족한 글들만 44편 골라 실었습니다. 어떤 글은 절제된 문장이 오히려 강한 울림을 주었고, 어떤 글은 너무도 솔직해서 기록자 자신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원문과 현대어 번역을 함께 실은 ‘이중 텍스트’ 구성이 인상적입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애도문은 문장의 리듬과 호흡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 떨림을 온전히 느끼려면 원문을 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동시에 현대 독자들에게는 읽기의 장벽이 될 수 있죠. 그래서 원문의 숨결과 현대어의 전달력, 두 가지를 모두 포기하지 않기 위해 이중 텍스트 방식을 택했습니다. 독자는 두 언어의 사이에서 조선 선비의 감정을 더욱 깊이 체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출간 과정에서 가장 마음이 흔들린 글이나 순간이 있었다면요?
정약용이 막내아들 ‘농아’를 잃고 쓴 글을 읽을 때였습니다. 여러 자식을 떠나보낸 경험이 있었음에도 농아의 죽음만큼은 감당하지 못한 듯했습니다. 그는 “네 얼굴이 잊히지 않아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썼습니다. 절제의 상징인 다산이 이렇게까지 마음을 쏟아낸 순간은 매우 드물죠. 그 문장을 읽으며 저 역시 오래도록 숨을 고르지 못했습니다.
조선의 애도 문화에서 오늘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은 무엇일까요?
선비들은 슬픔을 지우려 하지 않았습니다. 슬픔을 기록함으로써 견디려 했습니다. 이것은 현대의 애도 방식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빨리 괜찮아져야 한다는 압박을 받지만, 사실 애도는 시간을 들여 기억과 함께 살아가는 과정입니다. 선비들은 글을 쓰며 자신을 붙잡았고, 그 과정 자체가 마음의 복원이었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좋은 지침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책이 독자에게 어떤 책으로 읽히기를 바라시나요?
이 책이 ‘슬픔을 해결해 주는 책’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대신, 슬픔을 함께 걸어주는 책,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조선 선비들의 기록을 읽으며 독자들이 “나만 그렇지 않구나” 하고 느낀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이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구나
출판사 | 에이콘온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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