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잊을 수 없는 마지막 장면은 무엇인가? 최근 나는 이 목록에 영화 한 편을 보탰다. 자파르 파나히의 〈그저 사고였을 뿐〉은 고문 피해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가 만든 영화로 인한) 자파르 파나히 감독 자신의 수감 경험이 기반이 된 이 작품은, 인상적인 사운드 활용으로 영화를 맺는다. 고문을 자행한 정보관이 걸을 때마다 들렸던, 정보관이 신은 의족이 삐걱이는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던 주인공은 여러 일을 겪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관객에게 등을 보인 채 우뚝 멈춰선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 사이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 사이로, 우리는 작게 삐걱이는 의족 소리를 듣는다. 그가 듣는 것을 듣고, 그의 공포를 예민하게 느낀다. 작지만 천둥처럼 울리는 소리.
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대해 생각할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파이트 클럽〉이었다. 반전에 해당하는 마지막 전개가 이어진 뒤, 픽시스Pixies의 ‘Where is My Mind?’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폭죽놀이하듯 꽝꽝 터지며 무너지는 창밖의 고층건물들, 깜빡이는 화면, 갑자기 스치고 지나가는 반쯤 발기한 남성기. 대체 뭘 본거야. 머리가 얼얼한 기분. 세기말인 1999년에 개봉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2년이 지나 9.11 테러가 뉴스에 생중계되는 광경을 지켜보는 내 머릿속에서 다시 재생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만들어질 수 없을 장면이군’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이런 생각을 한 사람이 나 하나는 아니었던 모양으로, 레딧에는 “9.11 테러 이후의 세상에서도 〈파이트 클럽〉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1라는 질문이 있다. 〈파이트 클럽〉 속 프로젝트 메이헴의 테러 행위를 9.11 테러의 맥락에서 분석하는 글도 있다. 하지만 1999년에도 세상은 그리 살기 좋은 곳은 아니었다. 원래 7월 예정이던 개봉일이 가을로 밀린 이유에 대해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사건2 때문이라는 추측이 나돌았다. 애초에 소설의 영화화를 결정하던 순간부터 개봉에 이르기까지, 〈파이트 클럽〉은 스튜디오 내부에서도 숱한 반대의견과 우려를 낳았다. 스탠리 큐브릭의 〈시계태엽 오렌지〉가 그랬듯 모방범죄를 낳을지 모른다는 우려는 실현되었다. 〈블레이드 러너〉가 처음에 실패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파이트 클럽〉은 첫 실패를 맛보았다. 개봉 2주 만에 간판을 내렸고 실패작으로 평가받았다. 영화와 관련된 거의 모든 사람이 일자리를 잃었다. 정성 들여 만든 DVD가 나와서 영화가 다시 수익을 내기까지 시간이 더 걸렸다.

〈파이트 클럽〉에 대해 걱정하고 혹평한 사람들은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같은 이유를 우려의 근거로 들었다. 영화의 만듦새가 혹할 정도로 빼어나다는 것이었다. 홀릴 정도의 매끈함, 격렬함, 폭력. 이 영화에 대한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말은 늘 흥미로운 울림을 갖는다. 첫째로는, 〈파이트 클럽〉이 〈졸업〉(1967)과 유사한, 1990년대를 살아가는 30대를 위한 성장영화라는 말. 영화의 장르나 주인공이 맞이하는 결말이라는 면에서 두 영화는 달라도 너무 다르지만, 삶을 바꿀 방법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앞에 놓인 가능성을 불신하는 청년의 이야기라는 면에서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다. 둘째로는, 2014년 코믹콘에서 데이비드 핀처가 원작자 척 팔라닉과 나눈 이야기에서 인용된 말이다. DVD가 1,300만 장이나 팔리며 컬트적 인기를 얻었다는 이야기, “남자들은 상의를 벗은 브래드 피트를 보고 싶어 하지 않고, 여자들은 그가 피 튀기며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말과 더불어 그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오독하고 있음을 언급했다. 영화가 풍자하는 것을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버리는 관객들이 있다고 말이다. “제 딸에게 맥스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딸이 맥스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파이트 클럽〉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딸에게 다시는 맥스와 말 섞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럴 만하다.
“어릴 땐 포르노를, 이젠 가구 목록을 본다”
영화의 첫 장면. “타일러를 아냐고 다들 내게 묻는다.” 눈을 부릅뜬 에드워드 노튼의 얼굴. 옆모습을 비추는 다음 순간이 되면 우리는 그의 입에 총구가 쑤셔 넣어져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에드워드 노튼이 연기하는 이름이 말해지지 않은 주인공(이 영화 내내 등장하는 내레이션은 그의 목소리다)은 ‘초토화 작전’에 대해 설명한다. 그들은 12개 건물을 폭약으로 도배했다. 이제 2분 후면 연쇄폭발로 쑥대밭이 될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타일러도 알고 있으니까.” ‘나’와 ‘타일러 더든’의 인식이 연결되어 있음을 말하는 ‘왜냐하면’으로 이어진 이 의미심장한 문장의 생김새가 대체 어떤 뜻인지 이제 2시간 동안 보게 될 예정이다. 데이비드 핀처는 주인공의 피로를 보여주기 위해 퀭한 얼굴을 보여주지만, 그보다도 소비 중독에 가까운 모습으로 이케아 가구의 노예가 된 삶을 보여준다. 화장실에 앉아 이케아 가구 카탈로그를 보며 빈 공간을 채우는 가구들을 상상한다. 그리고 그 가구들에는 이름과 설명, 품번과 가격표가 붙어있으며, ‘신제품’이라는 강조 표시까지 붙어있다. “어릴 땐 포르노를, 이젠 가구 목록을 본다.” 불면증에 대해 식생활 개선과 운동을 권하는 의사에게 오직 약 처방만을 원하는(이것도 일종의 쇼핑 목록을 수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의사가 잠깐 흘린 말을 듣고는 고환암부터 알코올 중독까지 자신이 앓지 않는 질병의 환자 모임들에 참석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고통을 말하고, 눈물짓고, 마침내 ‘포옹 타임’이 돌아온다. 이제 그는 모임 중독자가 된다. 그런데 말라 싱어가 모임에 등장한다. 건강한 여자. 빈혈환자 모임에도, 결핵환자 모임에도 등장한 가짜. 말라가 여기저기 모임에서 등장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불면증은 다시 시작된다.
무언가에 중독되지 않고는 삶을 지탱할 수가 없다. 소설에서는 불면증이 이어지는 데 대해 “세상 모든 게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라고 썼다. 주변의 모든 것이 사본의 사본의 사본처럼 느껴져, 아무것도 만질 수 없다고. 계속 이어지는 출장, 비행기에서의 쪽잠, 시차. 여행짐의 일회용 물건으로 축소된 삶을 저글링하던 그는 비행기를 탈 때면 충돌을 꿈꾸는 지경에 이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타일러 더든을 만난다.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 남자. 타일러 더든은 비누 판매원이다. 타일러 더든은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이 기반한 신뢰를 부수는 사람이다. 영사기사로 일할 땐 가족이 함께 보는 영화에 포르노를 살짝 끼우고, 웨이터로 일하면서는 서빙하는 음식에 소변을 보는 식으로. 주인공은 타일러 더든과 함께 지내기 시작하며 ‘파이트 클럽’을 결성한다. 자조모임의 ‘포옹 타임’으로 잠을 청하던 남자는 얼굴이 엉망이 되도록 치고박는 ‘파이트 클럽’으로 안식을 청한다. 이제 두 사람은 커플처럼 같이 산다. 파이트 클럽의 그 유명한 기본 규칙. 같은 문장3이 1조와 2조에서 반복된다. “파이트 클럽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영화 〈파이트 클럽〉은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소설 『파이트 클럽』은 척 팔라닉의 데뷔작이다. 먼저 완성한 소설의 내용이 너무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퇴짜를 맞은 뒤 출판업자들에게 복수하는 마음으로 쓴 작품이 『파이트 클럽』이었다. “내가 충분히 험악해 보이면, 아무도 내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지 않는다4”는 깨달음이 소설의 탄생 배경이라는 말까지 더해서 생각해보면, 『파이트 클럽』이 분노와 좌절이 뗄레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척 팔라닉은 서점에 『조이 럭 클럽』 『아메리칸 퀼트』 같은 여성 공동체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들이 인기를 얻는 가운데, 남성들이 삶을 공유할 수 있는 사회적 모델을 제시하는 작품이 없었다고 회고했다(다시 한번, 분노와 좌절). 그는 또한 『파이트 클럽』이 『위대한 개츠비』의 업데이트 버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개츠비의 현대적 은유로 타일러 더든을 헤아려보는 일은 나름 흥미롭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해봐도 2025년의 타일러 더든이 현실을 살고 있다면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모자를 쓰고 총기난사사건을 일으키는 모습만 떠오른다. 척 팔라닉은 젊은 시절 느꼈던 공포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지위와 인정이 영원히 내 손에 닿지 않을 것이라는 공포.” 그리하여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 그 시작은 모범생으로서의 자아였다. 척 팔라닉은 학위를 따고, 학자금 대출을 갚고,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으리라는 사회가 제시한 청사진을 착실히 따라 살았다. 하지만 서른 살 즈음이 되어 그 청사진은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깨달음은 환멸로 이어졌다.
한국에는 출간되지 않았지만 소설 『파이트 클럽』에는 그래픽 노블로 나온 총 10권의 속편이 있다. 주인공의 이름은 세바스찬이었다는 사실을 이제 우리는 알게 되는데, 그는 타일러 더든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것처럼 보인다. 세바스찬은 말라와 결혼했고, 아들의 아버지다. 제법 안정적으로 보이는 교외 생활이 이어지던 어느 날, 타일러가 다시 깨어나고, 세바스찬의 삶을 점령한다. 『파이트 클럽』이 원하는 것들과 원하는지도 몰랐던 것들을 박탈당했다는 인식으로부터 시작한다면, 『파이트 클럽』의 속편은 원하는 것을 얻은 뒤에도 충족되지 않는 삶 혹은 공허감으로부터 발전해 나가는 셈이다. 영화 〈파이트 클럽〉의 팬들은 가상의 영화 〈파이트 클럽 2〉의 트레일러를 만들었다.5 ‘그 남자’는 이대로 사라질 수 없다는 듯이. 그래서는 안 된다는 듯이.
마지막 장면에 관하여
소설과 영화가 가장 두드러지게 달라지는 대목은 바로 엔딩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입안에 총을 쏘아 타일러를 사라지게 한다. (자신을 새롭게 태어나게 한) 타일러에 맞선다. (타일러로 인해 불화한) 말라와 화해한다. 두 사람은 계획대로 건물들이 무너지는 파괴의 장관을 함께 지켜본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자신을 쏜다. 그는 정신병원에서 깨어난다. 그곳을 천국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소설과 영화의 근본적인 차이는 글로 된 폭력이 영상으로 옮겨졌을 때 우리가 느끼는 연루되는 감각에 있다. 정신적 액션의 연장에서 신체적 액션이 그려진다. 치고 받는 순간 느껴지는 흥분과 공포, 고통의 감각.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 주먹이 적중하는 음향효과는 또 어떤가6. 영화가 비판하려고 한 것이 과장된 남성성에 대한 비판이라는 감독의 인터뷰에도 불구하고 영화 〈파이트 클럽〉은 폭력에 대한 애착에 가까운 집착임을 어떻게 무시할 수 있겠는가. 주인공이 말라와 나란히 서서 창밖에 폭파되어 무너지는 건물들을 보는 순간 느껴지는 오싹한 즐거움은 말할 것도 없다. 〈파이트 클럽〉의 열혈 팬을 자처하는 이들에 대해 감독이 근심한다지만, 그 사람들을 만든 사람이 그 자신인 것이다. 유튜브에는 팬들이 만든 후속작 트레일러도 있다7.
영화 <파이트 클럽> 스틸컷
소설을 쓴 척 팔라닉의 아버지는 애인의 전남편에게 살해당했다. 그런데 척 팔라닉의 아버지는 사실 어린 시절 살해당할 뻔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의 아버지가 아내를 죽이고 자살했는데, 사실은 아들까지 죽이려고 했던 것이다. 아들을 찾지 못해 포기했을 뿐이었다. 척 팔라닉의 아버지는 매트리스 아래 숨어서 살아남았는데, 이후 애인의 전남편에게 살해당한 뒤 시체가 매트리스 아래 깔려 있어서 화제에도 불구하고 시신이 보존될 수 있었고, 그렇게 신원확인이 이루어졌다. 무시하기엔 끔찍한 우연. 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척 팔라닉은 운명론보다는 허무주의에 가까운 삶의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 “나는 스토리텔링을 소화 기능처럼 다룬다. 되새김질하는 동물처럼 씹는다. 어떤 감정적 반응도 남지 않을 때까지, 그 사건에 대한 감정적 반응이 해결될 때까지 이야기를 씹고 또 씹는다.” 사건이 정체성에 동화되고 감정적 반응이 고갈될 때까지 이야기를 반복하기. 이야기에 휘둘리지 않고 이야기를 사용할 수 있는 주도권을 가질 때까지.
이다혜의 어떤 이야기는 두 번 태어난다
소설로 만화로 영화로 드라마로 무대로. 텍스트가 영상이 되고 영상이 텍스트로 다시 태어나는 불멸의 이야기들, 이야기를 즐기는 다양한 방식에 주목합니다.
1 https://www.reddit.com/r/movies/comments/224uor/could_fight_club_have_been_made_in_a_post_911/
2 학교에서 벌어진 대규모 총기난사사건이라는 충격은 미국 사회에서 큰 논란이 되었다. (비극적이게도 이후 유사한 사건들은 계속 이어졌다.)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영화 <볼링 포 콜럼바인>(2002), 거스 반 산트 감독의 <엘리펀트>(2003)가 모두 이 사건에 대한 것이었다.
3 영어로는 대문자 표시된 부분이 있어, 엄밀히 말해 같은 문장은 아니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The first rule of Fight Club is: you do not talk about Fight Club. The second rule of Fight Club is: you DO NOT talk about Fight Club!
4 척 팔라닉은 싸움에 휘말려 멍이 든 채 출근한 일이 있다. 동료들은 아무도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고 한다.
5 https://youtu.be/sRn-7Q3_7Lw?si=3ibqAq1-kMhMUHbN
6 〈파이트 클럽〉은 2000년 아카데미 시상식 음향편집상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이렇게 얻어터지는 느낌을 물씬 풍긴 〈파이트 클럽〉을 대신해 상을 받은 영화는 〈매트릭스〉였다.
7 https://youtu.be/S1hMwKLMwc4?si=ulVngikTzSlaOFa2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이다혜
작가, <씨네21> 기자, 팟캐스트 <리딩 케미스트리> 진행.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몇몇 영화들이 얼마나 소설인지 얼마나 영화인지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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