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우메 카브레 저/권가람 역 | 민음사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음악, 그중에서도 클래식을 즐겨 듣는 사람이 아니다. 내게 음악이란 대중음악을 의미하고, 유쾌한 즐길 거리의 영역이다. 오직 기분 전환을 위해 귀 기울일 뿐, 음악이라는 심오한 세계에 대해 딱히 생각해 보지 않았다. 혹자는 내게, 그렇게 고전 작품을 열심히 읽는 사람이 클래식엔 전혀 관심이 없다고요, 라고 묻기도 한다. 음, 아예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제대로 안다고는 말 못 하겠습니다, 라고 답하며 쭈뼛거리기 일쑤다. 누구나 그러하듯이, 나 역시 반강제적으로 피아노를 배우러 다닌 적이 있다. 나는 끝내 양손으로 피아노를 치지 못했고, 급기야 학원에서 도망쳐 다락(한옥에 살았으므로)에 숨기도 했다. 음감이 없는 까닭에 노래 실력도 처참하고, 여하튼 음악을 제대로 파고들기엔 수고로운 점이 한둘 아니었다. 아무리 ‘막귀’라 해도 본능적으로 마음을 울린 클래식이 있긴 했다. 바흐와 라흐마니노프, 이 두 대가의 음악은 확실히 좋아한다. 그리고 나의 클래식에 관한 지식은 여기서 끝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의 질서를 탐구하는 수학과 쌍둥이라 할 수 있는 음악을 몹시 존경한다. 음악이 예술 중에서도 첫 번째 자리에 위치한다는 의견 또한 납득할 수 있다. 인류가 동굴 벽에 손바닥을 찍고, 글을 짓기 훨씬 전부터 음악이 존재했으리라고 생각한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듯이, 인류의 조상은 목청을 울리며 어떤 방식으로든 음악의 형태를 좇았을 터다. 요컨대, 우리 몸속에는 이러한 원초적 떨림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음악을 글로 그려 낸 작품을 읽을 때면, 늘 저항할 수 없는 힘에 휘둘리게 된다. 그것을 뭐라 딱 꼬집어 표현할 수는 없지만, 다른 책 읽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어떤 숭고함이 밀려든다. 귀와 피부를 타고 흐르는 음악을 들을 때보다, 소리 없는 문장으로 완성된 음악을 읽을 적에 더 큰 감동을 받는다고 말하면 그 자체로 아이러니겠지만, 그럼에도 우리 정신은 그 고요한 떨림에 감응할 만큼 충분히 예민하다.
아마 작가들은 이 놀라운 신비를 일찍이 깨달았을 터다. 문학 자체가 운문에서 산문으로 이어지는 긴긴 달음질이었음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지난 글에서 언급했던 클라이스트의 「성 체칠리아 또는 음악의 힘」을 떠올려 보라. 기세등등하게 성상을 파괴하려고 모여든 형제들을 바닥에 넙죽 엎드리게 하는 그 상서로운 화음, 뫼리케의 『프라하로 여행하는 모차르트』에서 아직 미완성인 ‘돈 조반니’를 듣자마자 모차르트의 비극적 최후를 예감하고 눈물을 흘리는 오이게니, 오페라광(狂)이었던 슈테판 츠바이크나 위대한 괴테, 『세상의 모든 아침』을 쓴 파스칼 키냐르에 대해선 더 언급할 필요조차 없으리라. 우리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작품들은 차마 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많지만, 문장이란 언제까지나 침묵을 지킬 뿐 아무것도 노래해 주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이내 우주적 떨림을 느끼게 되고, 급기야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감상적인 순간에 빠져들기도 한다. 최근에 나는 그러한 작품을 하나 더 찾아냈다.
자우메 카브레. 그는 아직 우리에게 낯선 카탈루냐어로 글을 쓰는 작가인데, 『나는 고백한다』라는 경이로운 작품을 통해 이미 전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나는 고백한다』에서 카브레는 사실상 ‘바이올린’을 주인공으로 삼았을 만큼 범상하지 않은 음악 애호가다. 하긴 유년 시절부터 가족들과 모여 바흐를 노래하고 연주했을 정도이니, 그의 삶에서 음악이 차지하는 자리는 당연히 거대할 수밖에 없다. 최근 (한국어판으로) 출간된 『겨울 여행』에서도 그러한 흔적을 뚜렷이 찾아볼 수 있다. 시작부터 「사후 작품」이라는 제목의 글이 우리를 반긴다. 이 단편에서 카브레는, 슈베르트의 작품을 연주해야 하는 무대에서 슈베르트의 유령을 맞닥뜨리고 혼비백산한 어느 유명한 피아니스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마땅히 음악이 울려 퍼져야 하는 콘서트홀의 무시무시한 정적이 문장을 넘어 독자의 숨통을 조여 오지만, 정작 피아니스트는 친구가 보내온 책 한 권, 작품이 실전되어 역사의 분진 속에 파묻힌 한 음악가의 평전을 읽고 돌연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고 이때 평전을 보내온 친구의 이야기는, 마지막으로 수록된 표제작 「겨울 여행」에서 다시금 이어진다. 그런데 이 책에서 가장 ‘음악적’인 작품은 이것들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얕게나마 바흐를 좋아한다. 그래서 그에게 수많은 자식이 있었음을 알고, 부성애가 남달랐다는 점 역시 알고 있다. (그야말로 음악의 아버지이자 아버지 중의 아버지였다.) 하지만 그에게 유달리 아픈 손가락이 있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그렇다면 이제, 이 책에 들어 있는 「고트프리트 하인리히의 꿈」을 읽어 보도록 하자. 고트프리트는 바흐의 두 번째 아내, 안나 막달레나 사이에서 처음 태어난 아들이다.(그보다 먼저 태어난 딸, 크리스티아나 조피아 헨리에타는 세 살 무렵에 숨을 거두고 만다.) 이 아이 또한 핏줄을 타고 흐르는 신성한 음악적 재능을 물려받은 까닭에,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음악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어느 날인지 모르게 서서히, 고트프리트는 ‘다른 의미’로 남다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당시에는 ‘둔한 머리’라고 칭해지던 장애를 얻게 되었고(아마도 ‘지적 장애’가 아닐까 추측한다.), 그리하여 마치 아버지의 완벽히 조화로운 음악을 파괴하려는 듯이, 고트프리트는 악마적 무질서에 빠져든다. 결국, 그의 가족들마저 신이 조율한 세계를 지옥의 업화로 불태우려 하는 고트프리트를 혐오하게 되었고, 바흐의 추종자들은 그 불경한 ‘소음’에 몸을 떨며 아예 귀를 닫아 버린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만은 고트프리트의 ‘음악’에서 진심을, 그의 아름다운 꿈을 엿본다. 바로 모든 질서의 황제, 아버지 바흐가 말이다. 그는 죽음이 턱밑까지 다다른 와중에도, 충직한 제자에게 명을 내려 고트프리트의 음악을 악보에 빠짐없이 표기하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사랑스러운 아들이 자신에게 오래도록 속삭여 온 열렬한 응답이자, 사실상 무질서조차 포용하는 신의 무한한 자애가 들려주는 복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흐가 숨을 거두자, 그의 (너무나 충직한) 제자는 혹시 위대한 스승의 업적에 흠이 될까 봐, 그 지옥의 메아리(천상의 음성)를 모조리 태워 버린다. 고트프리트의 음악은 카프카의 원고만큼 운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실제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고트프리트의 존재를 제외하면, 이 모든 이야기는 명백히 ‘픽션’일 것이다. 그러나 기록되지 않은 여백이 남아 있는 만큼, 고트프리트의 불타 버린 음악을, 그 혼돈과 무질서의 향연을 아버지 바흐는 전부 이해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과연 누가 알겠는가, 충실한 제자나 아버지의 악보를 정리하던 아들들이 고트프리트의 꿈을 정말 불쏘시개로 써 버렸을지. 이 작품을 읽으면서, 오에 겐자부로와 그의 아들 히카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선천적으로 발달 장애와 자폐증을 가지고 태어난 히카리는 아무런 대화도 나눌 수 없었지만 아예 소통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오에는 히카리에게서 음악적 재능을 발견했고, 일찍이 음악으로 소통할 수 있음을 알아차렸다. (물론, 히카리에게 음악을 가르친 다무라 구미코 선생님의 노력이 지대했지만) 그렇게 오에는 아들에게 음악이라고 하는, 세상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 주었던 것이다. 지금도 오에 히카리는 작곡에 전념하고 있으며, 수많은 악보를 다리(橋) 삼아 우리들에게 아름다움을 전해 주고 있다. 그의 악보는 살아남은 것이다.
음악을 다룬 작품을 읽을 때마다, 나는 폐허 같은 아름다움을 느끼곤 한다. 문장은 말이 없으므로 책 속의 음악은, 외침은, 모든 소리는 이미 떠나가고 없다. 그런데 바로 그 ‘없음’을 일깨워 주기 때문에 음악을 이야기하는 작품들이 그토록 사무치는 것이다. 무너진 왕궁과 신전, 언젠가 영웅이 호령했을 드넓은 벌판, 그야말로 “인걸은 간 데 없는” 그 고적하고 또한 끊임없이 빛바랜 영광을 다시금 총천연색으로 상상하게 하는 폐허의 풍경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 영원과 찰나를 동시에 명상하게 하는 것은 오직 그것뿐이다. 음악이 떠난 자리에 남은 문장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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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여행
출판사 | 민음사
나는 고백한다 1
출판사 | 민음사
미하엘 콜하스
출판사 | 창비
프라하로 여행하는 모차르트
출판사 | 민음사
세상의 모든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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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훈 (편집자)
책을 읽고, 책을 만들고, 좋은 책을 찾아다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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