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새소년의 프론트퍼슨, 젊은 감각을 대표하는 아티스트. 오늘의 황소윤을 설명하는 말은 많지만, 정작 궁금했던 건 정반대의 방향으로 달려 나가는 에너지였다. 한낮의 무대 위에서 기타 피크를 물고 신나게 공연을 하다가도, 밤이 되면 내밀한 마음을 글로 쓰는 사람.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 곡을 쓰면서도 ‘우리’를 위로하는 사람. 뭐든 즐거워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예술가의 책임을 강조하는 사람. 뭘 기대하든 번번이 어긋났다면 우리가 붙여온 수식어를 내려놓자. 황소윤은 어떤 규정도 가볍게 뛰어넘어 단순하고 유연하게 나아가고 있으니까. 오직 자신의 감각에 집중하며. 지금 여기를 자유롭게.
독서는 내가 살아가는 방식
오늘은 뮤지션이 아니라, 서울국제도서전의 홍보대사로 만났어요.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어 재밌겠는데?” 하면서 수락했어요. “왜 나를?” 하는 생각도 조금 했지만. 하하.
평소에 책을 좋아하는 이미지가 있나 봐요.(웃음)
책을 찾아 읽긴 하지만, 사실 “저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하고 말하지는 못하겠어요. 좋아해서라기 보다는 너무 필요해서 읽는 것에 가깝거든요. 제게 독서는 살아가는 방식이에요. 그냥 양치하는 것, 밥 먹는 것과 같은 거죠. 그렇지 않으면 살고 있다는 생각이 잘 안 들더라고요. 무언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그걸 충족해줄 만한 책을 찾아 읽어요.
서울국제도서전의 테마 ‘긋닛’(끊어지고 이어지다)과 어울리는 책으로 이오덕 선생님의 『거꾸로 사는 재미』를 골랐어요.
헌책방에서 우연히 만난 책인데요. 생태와 자유가 마침 제가 찾고 있던 주제였어요. 당시 제 안의 가치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돌아가야 할 곳은 어디인지, 앞으로 찾아나가야 할 것은 무엇인지 실마리가 됐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의 황소윤은 책을 많이 읽었나요?
아니요.(웃음) 밖에서 뛰어노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어요. 주위 친구들만큼 다독하는 스타일도 아니었고요. 책을 찾게 된 건 성인이 된 이후인데요. 스스로 납작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마다 충동적으로 서점에 가요.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책을 고르면 지금 어떤 상태인지,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어요. 책을 읽는 것 못지않게 책을 고르는 행위가 제게는 큰 기쁨이죠.
SNS에 지난해 읽은 책 목록을 공개했어요. 소설부터 사회 과학까지 분야가 다양하더라고요.
지난해는 유독 새로운 주제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시기였어요. 그걸 해소하기 위해서 공부하듯이 책을 찾았던 것 같아요. 그전까지 사회심리학이나 환경 책은 읽어본 적이 없었거든요.(웃음) 나와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라는 걸 알게 되면서 점점 관심을 갖게 됐죠.
음악을 시대와 장르 가리지 않고 폭넓게 듣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책 취향도 그런가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갖고 있다는 말에서 클래식한 취향이 엿보이기도 했는데.
제가 그런 이야기까지 했었나요? 하하. 기본적으로 옛것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학습은 되어 있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서양고전문학 수업을 들었는데요. 『군주론』, 『일리아스』 같은 어려운 고전을 매주 1권씩 읽고 서평을 썼어요. 당시엔 정말 고통스러웠는데 지나고 나니 너무 귀중한 거예요.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하진 못해도 근본적인 문제를 배울 수 있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관심 분야의 책을 그때그때 찾아 읽지만 고전에 대한 지향은 늘 있어요.
내 목소리와 감각에 집중해요
초, 중, 고교 모두 대안학교를 다닌 이력이 주목을 받았죠. 일반 학교를 다니지 않아서 더 특별하고 자유분방할 거라는 사람들의 환상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사실 제 경험이 엄청나게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학창 시절을 통해 저를 유추하는 것보다 지금의 황소윤을 보는 게 나을 거예요.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경험했는지 나열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건 저를 만들어온 타임라인일 뿐이니까요. 한 사람이 그 경험을 어떻게 소화해왔는지, 과거에서 배운 것들로 현재를 어떻게 더 행복하게 만들 것인지가 더 중요하죠.
학창 시절의 경험에서 무엇을 얻었나요?
폭풍우가 치는 날씨에도 즐겁게 여행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것? 아주 궂은 날씨에도 행복한 여행을 만들 수 있는 힘 같은 거요. 학창 시절의 이야기를 하는 건 살아왔던 것에 대한 경험과 기억을 잊고 싶지 않아서예요. 가끔은 그게 음악을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고요.
사회생활을 경험하면서 달라진 면도 있었을 것 같아요. 열아홉 살 때, 밴드 ‘새소년’을 결성하고 프론트 퍼슨으로서 노래를 부르고 기타를 쳤죠. 두 번째 앨범 <비적응> 발매 당시에는 사회적 자아에 대해 고민한 결과가 음악으로 나왔다고 했고요.
첫번째 앨범 <여름깃>을 낼 때만 해도 오로지 내 세상에 관심이 집중돼 있었어요. 정말 새싹 같은 마음이었는데.(웃음) 그 새싹이 자라나면서 사람들과 함께 살게 됐고, 세상을 바라보는 제 감정을 날 것 그대로 담아낸 게 2집 <비적응>이었어요. 당시에는 그 위에서 헤엄치듯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지만, 시간이 흐른 후에 보니까 충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해온 세계와, 사회에서 타인과 공존하는 세계가 충돌하면서 균열을 일으켰던 거죠.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그래서 귀중하고 아름다운 것 같기도 해요.
스스로 적응하지 않음을 선택하는 <비적응> 다음에, 이번 싱글 ‘자유’가 나오는 게 감동적이었어요. 해방감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비적응> 앨범에서 제 불안을 다 쏟아냈다면, 이게 도대체 무엇인지, 어떻게 해소할지가 다음 과제였어요. 필사적으로 그것을 알아가는 과정도 쉽지 않았어요. 마침 코로나19로 저를 살아있게 했던 활동을 못 하게 됐고 집에서 성찰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어요. 그러다 ‘자유’라는 단어가 나온 거예요.
떠오르는 생각을 글로 기록하기도 하나요?
가끔 SNS에 올리는 글은 대부분 그날 써서 그날 올리는 거예요. 오래된 기록이 아니라, 그때그때 했던 생각을 적은 거죠. 처음 글쓰기를 시작한 이유는 너무 답답해서였어요. 가사를 쓸 때는 효소를 담그듯이 오래 숙성하고 응축해서 내놓는 느낌이거든요. 근데 가사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많은 감정이 있어서 글로 써보기 시작했어요. 글을 쓸 때만큼은 어떤 부담도 느끼지 않아요. 누군가 글을 읽고 재밌다고 해주면 그게 신기하고 특별하고요.
처음에는 음악이 그런 행위 아니었나요?
맞아요. 근데 직업이 되니까 더는 가볍게 생각할 수 없잖아요. 제 음악이 더 가치 있었으면 좋겠고, ‘새소년’도 있고 지켜야 할 게 많고.(웃음) 글쓰기로 뭔가를 해보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어요. 다만 바라는 게 있다면, 황소윤 개인을 담은 작품을 만들고 싶기는 하죠. 그러나 그게 글을 쓰는 이유가 되지는 않아요. 글쓰기는 제게 매우 자연스러운 행위니까요.
황소윤의 가사를 보면 문학적이기도 하고, 동시에 일상적이기도 해요. 그런데 참조하는 구체적인 무언가가 있는 것 같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가사를 쓰는 비결이 더 궁금해요.
저는 고집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고집을 아집처럼 느끼지 않게 하려면 제 생각을 잘 정리해서 상대에게 전달해야 해요. 그래서 말솜씨를 잘 가다듬으려고 하죠. 내 안의 목소리와 욕망, 감각에 집중해서 단어를 찾고요. 그건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그 노력이 가사를 잘 쓰기 위한 건 아니에요.
목표가 멋진 가사를 쓰는 게 아닌 거네요.
어떻게 보면 저는 그냥 한량인 거죠. 하하. 물론 야망은 있어요. 사람은 욕심이 있어야 건강하고 잘 살아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목적이 뭐냐고 물으면 없어요. 그게 제가 가진 큰 마음인 것 같아요.
뚜렷한 목적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게 신기해요.
결국 ‘선행되어야 하는 게 무엇인가’ 하는 문제인데요. 저는 확실히 스스로에게 초집중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든 저 자신이어야 해요. 늘 그 생각이 먼저 오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다른 건 의식하지 않게 돼요.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기쁨
황소윤은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주 소환되잖아요. 그런데 정작 ‘시대’나 ‘세대’라는 말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쓴 적이 있어요.
사실 저는 ‘세대’나 ‘시대’라는 말을 의식하지 않아요. 대표할 수도 없고요. 네가 속한 세대를 설명해보라는 질문을 받으면, 어떻게 답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물론 저는 현재를 살아가는 구성원이니까 시대의 영향을 받겠죠. 하지만 저는 시대에 맞춰서 따라가는 것도 아니고, 아예 벗어나서 새로운 걸 만드는 것도 아닌, 그저 현재를 바라보면서 나만의 것을 해나가는 거예요.
‘젊은 세대’, ‘여성 프론트퍼슨’이라는 규정만으로 황소윤을 다 설명할 수는 없죠. 황소윤 안에는 여러 가지 지향이 있는데 굳이 규정하려다 보니 모순으로 보였던 것 같아요. ‘새소년’이 처음 등장했을 때, 빈티지한 사운드인데 세련됐다는 평을 듣기도 했고요.
맞아요. 당시에도 “나는 빈티지로 규정되고 싶지 않은데 이게 왜 빈티지야?”하고 생각하기도 했죠. 하하. 제가 좋아하는 소리를 찾다 보니 그런 결과물이 나온 거예요. 왜 했냐고 물으면, “그냥 한 건데?”라고 답할 수밖에 없는 것이 많아요.
록 페스티벌, 예능 프로그램, 사회적 의미를 지닌 행사까지 황소윤이 있는 자리는 다양해요. 기타 피크를 입에 물고 열정적으로 공연하는 사람, 멋지게 차려입고 카메라 앞에 서는 사람, 진지한 글을 쓰는 사람 모두 황소윤이죠. 정반대의 활동도 자기만의 색깔로 소화하는 균형감각이 있어요.
저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무대에서 정신을 놓고 노래 부르고, 새끈하게 화보도 찍고 내 나이에 맞게 술도 막 마실 수 있는 사람이거든요.(웃음) 오늘 하루만 해도 낮 동안에는 시끄러운 촬영장에 있다가, 지금은 차분하게 책 이야기를 하고 있잖아요. 다양한 일을 하고 제 세계를 확장하는 게 재밌어요. 언제든 나를 잃지 않는 균형감각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 같아요. 저도 가끔은 엉망진창이 되고 싶기도 하지만, 그런 균형감각이 저를 건강하게 만들거든요.
솔로 데뷔를 해서 ‘새소년’과 전혀 다른 음악을 내놓았을 때 ‘분열’이라는 키워드가 중요했죠.
다양한 면을 가진 건 좋지만, 분열처럼 느껴져서 힘든 시기도 있었어요. 그럼 난 뭐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다면 아예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해보자 하고 낸 것이 솔로 1집
솔로 1집은 선우정아, 샘킴 등 다양한 아티스트와 작업해서, 매 곡이 다르게 들리는 앨범이었어요. 개성이 강한 사람과 충돌하고 맞추면서 새로운 황소윤을 만들어나가더라고요.
나와 다른 사람과 어떻게 시너지를 낼 수 있는지 실험하는 과정이 재밌어요. 사람마다 황소윤을 해석하고 표현하려는 욕망이 다 다르거든요. 나를 이렇게도 볼 수 있구나, 이런 표현도 가능하구나 알아가는 거죠. 타인의 시선을 통해 나를 발견하는 순간이 늘 있어요.
주로 SNS 메시지를 보내서 협업 제안을 한다고요. 설득 과정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일단 만나서 제 기운을 전해줘요. 보통 제가 원하는 사람이 저를 원하기도 하더라고요. 하하.
스태프들과 친구처럼 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는 게 중요해요. 돈이나 경력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서로 얻을 수 있었으면 하거든요. 보통 그런 마음을 갖고 있으면,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되고요.
예술가의 책임을 강조해왔어요. “마이크를 쥔 사람은 더 똑똑해야 돼요”라고 말하기도 했죠. “음악은 내게 가장 감정적인 것”이라고 했기에 새롭게 들렸는데요.
제 안에는 여러 가지 모드가 있는 것 같아요. 곡을 쓰거나 무대에 오를 때는 스스로의 감각에 온전히 몰입해요. 그리고 그 감각은 제가 일상에서 겪는 모든 것에서 오죠. ‘예술가는 똑똑해야 한다’는 말은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 거였어요. 저는 세상에 제 음악을 들려주는 것에 책임감이 있어요. 오늘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영향을 받는데, 노래가 가진 힘은 얼마나 크겠어요. 노래는 제 소중한 기록인 만큼 고이 담아서 드리고 싶어요. 허투루 하고 싶지 않아요.
SNS에 올린 글 ‘몸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이성과 언어 같은 무형의 것이 아닌, 몸의 감각에 주목하기 시작했다고요.
정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몸을 바르게 하자는 결론이 나더라고요. 또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 제일 힘들었던 기억도 몸에 대한 것이고, 제일 좋았던 기억도 몸에 관한 거더라고요. 그런데 왜 우리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싶었어요. 몸의 감각에 집중하는 게 어려운 일이니까요. 내 몸과 안 친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작정 썼어요.
관심사가 꾸준히 달라지더라고요. 가장 최근의 관심사를 말해준다면요?
스트레스를 잘 해소하는 방법이요. 사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 부분이 다 다르잖아요. 근데 선택지는 물건을 사거나 게임을 하는 것처럼 본능적인 것밖에 없는 거예요.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한데 말이죠. 저도 알고 보면 예민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성격이더라고요. 올해부터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는데요. 어딘가로 잠시 떠나면 해소가 돼요. 올해 5월에는 낙산사 템플스테이를 다녀왔는데, 주변 사람들이 얼굴이 바뀌어서 왔대요.(웃음) 평화롭고 고요한 곳에 있는 게 저의 행복인 거죠. 그걸 알아가는 게 굉장히 큰 기쁨이에요. 알려고 하는 제 모습도 너무 좋고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방법을 알면 얼마나 좋을까, 각자가 추구하는 인생의 모습대로. 요즘엔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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