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게 뭔가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 때문에 그랬나?’
잘 놀던 어린 아이가 다치면 아이를 맡기고 일하는 맞벌이 부모는 찾아오는 자책감으로 한동안 마음이 좋지 않다. 키우던 강아지나 고양이가 까닭 모르게 앓거나 말없는 화분이 시들시들해도 ‘내가 잘 돌보지 못해서’, ‘내가 물을 잘 안 줘서’라는 생각이 드는데 사람에게 큰 일이 생기면 어디선가 탓을 찾게 되어버린다. 상대적으로 약한 입장일수록, 갑자기 닥친 어려운 상황에 공연히 주눅이 들면서 무조건 내 탓을 먼저 하게 된다. 회사에서는 우물쭈물한 말단 사원이 혹독하게 자책을 느낀다면 집안에서는 그런 생각을 가장 먼저 하는 사람이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엄마아빠가 큰 소리로 싸우면 ‘나 때문인가?’, 엄마가 말없이 힘들어하면 ‘나 때문인가?’, 어린이집 선생님 목소리가 거칠고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나 때문인가?’라고 생각한다. 목소리가 크지 않거나 마음의 결이 섬세한 아이들일수록 이런 생각에 쉽게 빠져든다.
박현주 작가의 그림책 『나 때문에』는 자신을 탓하면서 먼저 ‘미안해요’, ‘내가 잘못했나봐요’라고 말하던 약한 사람들의 마음을 그려낸 작품이다. 그림책의 겉표지를 보면 눈이 해맑은 다갈색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겉표지 안쪽의 면지에는 자동차 두 대가 주차되어 있고 그 틈새에 놓인 고양이집에 바로 그 표지의 고양이가 잔뜩 상심한 표정으로 웅크리고 있다. 이 귀여운 고양이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림책을 넘기면 이야기는 고양이의 짧고 가슴 아픈 한 마디로부터 시작한다. ‘나 때문에 아이들이 울어요.’ 클로즈업 한 고양이의 눈망울에는 어린 남매가 엉엉 울고 있는 모습이 비친다. 이 남매는 고양이와 함께 방금 엄마에게 쫓겨난 참이다.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 아이들이 집 앞 주차장으로 쫓겨나게 되었는지 그림책은 필름을 되감듯이 앞선 정황을 추적한다.
책장을 넘겨보면 고양이가 쫓겨난 건 아빠가 발을 다쳤기 때문이고 아빠가 발을 다친 건 고양이가 펄쩍 뛰어올라 화분이 깨졌기 때문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고양이가 놀라서 뛰어오른 이유는 엄마 아빠가 큰 소리로 싸웠기 때문이다. 고양이와 아이들은 이 모든 것이 ‘나 때문에’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엄마 아빠가 싸운 것은 그들이 너무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완전히 지쳤을 때 ‘저놈의 고양이’가 다툼의 핑계가 되기 쉽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신들이 엄마, 아빠를 자꾸 큰 소리로 불러서 귀찮게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주말인데 엄마의 밀린 집안 일이 너무 많은 것도, 아빠가 온갖 [달려! 성공비전] 같은 자기계발 서적에 파묻혀 고단하게 졸고 있는 것도 아이들에게는 ‘다 우리 탓’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슬프고 걱정된다. 아빠가 정리 해고를 앞두고 얼마나 마음을 졸일지, 엄마가 물에 젖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끌고 설거지를 하는 기분은 어떨지 거기까지는 전혀 알지 못한다.
이 책에서 ‘모든 것이 나 때문’이라고 말하는 화자는 고양이다. 그러나 고양이의 마음은 아이들의 마음이다. 자신들이 조금만 더 잘 했더라면 엄마와 아빠도 싸우지 않고 아무도 다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착한 아이들. 그러나 목소리 높은 두 어른은 아무도 이 아이들에게 ‘너희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주지 않는다.
박현주 작가는 이 책이 어른과 아이의 대화를 이어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어린이들이 어른들의 팍팍한 모습 사이에서 얼마나 힘겹게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지 생각하게 하는 그림책이다. 하지만 달리 보면 이 그림책은 어디선가 약자의 자리에서 ‘나 때문이 아닐까’ 마음 졸이고 있는 사람 모두를 위한 책이기도 하다. 작가는 오직 이야기 구조와 장면의 구성만으로 억울한 심리를 정확하게 전달한다. 결과를 먼저, 원인을 뒤에 배치함으로써 결과(어른, 강자)-목적(어린이, 약자)으로 대비되는 절묘한 대비 구도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구도 덕분에 독자는 약자의 마음이 사건 앞에서 어떤 식으로 왜곡되고 무시되는지 생생히 느끼게 된다.
‘아빠의 책장’, ‘엄마의 주방’, ‘깨진 화분’ 같은 결과적 요소와 명료하게 대비되는 ‘분홍 꽃’, ‘고양이의 기분 좋은 야옹소리’, ‘아이들의 웃음’ 같은 목적적인 요소들의 배치를 살피다보면 독자들은 책 속 아이들과 똑같은 서러움을 느낀다. 이것을 ‘어린이의 시선’으로 그려내지 않고 ‘고양이의 시선’으로 그린 것 또한 흥미롭다. 작가는 ‘동물’이라는 더 약한 자를 통하여 세상의 많은 ‘내 탓일까요?’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무력감과 억울함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고양이와 아이들이 엄마 아빠를 큰 소리로, 그렇게나 자주 불렀던 건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건 바로 화분에 연분홍 난초꽃이 활짝 피었기 때문이었다. 고양이와 아이들은 그 꽃을 함께 보자고, 정말 예쁘다고 지친 엄마 아빠를 불렀던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고양이와 아이들이 한 판 잘 놀고 주차장 바닥에서 늘어지게 잠들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그들처럼 우리도 헛된 자책을 털어버리고 힘을 낼 수 있을 거라는 가뿐한 마음이 든다.
‘왜 때문에’라는 유행어가 있다. 이 말은 ‘이유’에 해당하는 낱말 두 개를 겹쳐서 쓴다. 평소에 우리가 가진 ‘맹목적인 삶’에 대한 답답함으로 이런 말을 자조적으로 사용하게 되는 것 같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달리고 있는 걸까. 이 모든 아픔과 슬픔은 누구 때문이었던 것일까. 당신 때문이 아닐 것이다. 진짜 원인 제공자는 우리들의 자책을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인과의 고리가 희미해지기를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무조건 나 때문이라고 자책하지 말고 서로 서로 다독이며 기운을 차려야 하는 이유가 거기 있다.
함께 선물하면 좋은 책
타라 브랙 저/김선주,김정호 공역 | 불광출판사
“나는 정말 쓸모없는 인간이야!” “나는 정말 사랑받고 있을까?” 일이 실패로 돌아갔거나 외로움이 밀려들 때 우리는 흔히 이런 생각에 빠져든다. 이런 자책과 의심을 붓다는 “두 번째 화살”이라 부르며, 이 화살을 맞지 않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 했다. 임상심리와 명상 두 분야의 전문가인 저자는, 두 번째 화살을 맞지 않는 방법으로 ‘근본적 수용(radical acceptance)’ 훈련을 제시한다. 이 책은 근본적 수용이 우리 삶에서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구체적인 상담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우리가 진정한 ‘나’를 찾아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추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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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동화작가)
김지은. 동화작가, 아동문학 평론가. 어린이 철학 교육을 공부했다. 『달려라, 그림책 버스』,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을 함께 썼고 EBS '라디오멘토 부모'에서 '꿈꾸는 도서관'을 진행했으며, 서울시립대, 한신대, 서울예대에서 아동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레몬맛소나기
2014.08.26
모두들 남탓, 내탓하면서 싸우기만 하는 요즘에 한번쯤 꼭 읽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빛나는보석
2014.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