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R 신화의 시작점 - < Bayou Country >
돌이켜보면 밴드의 역사는 참 짧았다. 5년 남짓한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었으나 CCR은 그 어떤 그룹들보다도 화려한 역사서를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신화라 일컬어도 무방할 전성기의 첫 페이지, 그곳에는 < Bayou Country >가 있었다.
글ㆍ사진 이즘
2013.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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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R은 국내에서도 올드팝 팬들의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는 록 밴드입니다. 그들의 성공신화는 바로 이 앨범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오늘 소개해드릴 음반은 「Suzie Q」의 아성을 밴드 스스로 잠재우게 한 < Bayou Country >입니다.


씨씨알(Creedence Clearwater Revival) < Bayou Country > (1968)

시작이 좋았다. 골리웍스(The Golliwogs)에서 크리덴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Creedence Clearwater Revival; 이하 CCR)로 그룹 이름을 바꾸고 낸 1968년의 데뷔 앨범 < Creedence Clearwater Revival >이 적잖은 성과를 냈으니 말이다. 데일 호킨스(Dale Hawkins) 원곡의 첫 싱글 「Suzie Q」는 빌보드 차트 11위에 올랐으며 이어지는 두 번째 싱글 「I put a spell on you」와 앨범 역시 각각 차트 50위권에 랭크되었다. 그러나 곧 다가올 대박행진에 비한다면 이는 성공 수준도 아니었다.

1969년의 < Bayou Country >는 CCR 신화의 시작점이었다. 52위가 최고 기록이었던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밴드는 7위라는 첫 탑 10의 영예를 누렸고 이웃동네 캐나다와 바다 건너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조금씩 인기를 맛보았다. 반응이 더 크게 일었던 곳은 싱글 차트에서였다. 음반의 여섯 번째 트랙 「Proud Mary」가 그해 1월 빌보드 싱글 2위로 오른 것이다. B 사이드에 「Born on the bayou」가 실렸던 이 싱글은 판매고에서도 백만 장이라는 성적을 기록하며 기염을 토해냈다.

당연한 수순으로 부와 명예가 뒤따라왔다. (비록 멤버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30달러 남짓했던 개런티가 엄청난 액수로 뛰어올랐으며 그저 그런 공연장에서 연주했던 그룹의 지위도 애틀랜타 팝 페스티벌(Atlanta Pop Festival)이나 우드스탁(Woodstock)에 출연하는 스타 밴드의 위치까지 격상되었다. 뒤이어 같은 해에 선보였던 두 개의 히트 싱글 「Bad moon rising」과 「Green river」, 그리고 동명의 앨범 < Green River >와 함께 < Bayou Country >는 CCR의 성공가도를 알리는 본격적인 신호탄이었다.

투박한 진흙 향이 음반 전반에 배어있다. 밴드의 리더 존 포거티(John Fogerty)를 비롯해 멤버 전원이 좋아했던 블루스 음악의 코드 진행에 컨트리 록이 가진 교외적인 성향, 미시시피 강이나 늪지대(bayou)와 같은 미국 남부의 이미지들이 결합된 CCR의 음악은 다른 밴드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차별화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사이키델리아가 한창이었던 1960년대 말에 캘리포니아 태생의 네 젊은이들이 구사하는 서던(Southern) 스타일의 루츠 록은 더할 나위 없이 독특했다. 늪지대라는 단어를 붙인 스왐프 록(Swamp rock)이라는 장르로 이들의 노래를 갈무리했던 것 또한 비슷한 연유에서였다.


시골 강가에서 살았던 옛 시절을 이야기하는 「Born on the bayou」와 미시시피 강 위에서 운행했던 증기선 프라우드 메리(Proud Mary)로부터 영감을 받은 「Proud Mary」와 같은 곡들이 바로 그러한 증거다. 가사를 통해 이들이 풀어냈던 스토리들은 실로 무구했고 또 순박했다. 더 중요한 점은 이러한 순수함이 곧바로 사운드에도 영향을 끼치며 CCR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Bootleg」과 리틀 리처드(Little Richard)의 넘버를 커버한 「Good golly Miss Molly」에서는 로큰롤의 직선성이 다분히 드러나는가 하면 7분이 넘는 두 곡 「Graveyard train」과 「Keep on chooglin'」에서는 블루스의 냄새가 강하게 풍겨났다.

CCR의 첫 성공작을 이끌어 낸 데에는 밴드를 이끄는 존 포거티의 비중이 남달랐다. 리드 기타리스트로서 「Penthouse pauper」나 「Keep on chooglin'」에서 보여준 기타 사운드는 그룹의 사운드를 좌우했으며, 거칠면서도 담백했던 특유의 보컬은 투박했던 밴드의 색채를 더욱 짙게 만들었다. 그런가하면 「Good golly Miss Molly」를 제외한 전곡을 홀로 작곡하며 탁월한 실력을 과시하기도 하고 앨범 프로듀싱까지 직접 맡아 작업 전반을 지휘했으니 < Bayou Country >는 곧 존 포거티의 독단(獨斷)이나 다름없었다.

앨범을 시작으로 CCR은 수많은 골든 넘버들을 쏟아내는 스타 밴드의 위치에 올라선다. 이어지는 앨범 < Green River >< Willy And The Poor Boys >는 차례대로 앨범 차트 1위와 3위를 기록했고 두 앨범 사이에서 탑 10 싱글이 세 곡이나 나왔다. < Bayou Country >와 더불어 계산한다면 1969년 한 해에만 무려 세 장의 히트 앨범과 네 곡의 히트 넘버를 배출한 것으로 대중음악 역사에서 손꼽힐 정도로 흔치 않은 진풍경이 이들의 손에서 펼쳐진 셈이다. 돌이켜보면 밴드의 역사는 참 짧았다. 5년 남짓한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었으나 CCR은 그 어떤 그룹들보다도 화려한 역사서를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신화라 일컬어도 무방할 전성기의 첫 페이지, 그곳에는 < Bayou Country >가 있었다.

글/ 이수호 (howard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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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R #Bayou Country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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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stw

2013.04.30

영 처음 듣고 처음 보는 밴드인데 호감이 가는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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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