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나면, 다 좋아질 거야 - 달콤한 모카시럽 브레드
2009.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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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과점 안은 무척 따듯했다. 호워드는 테이블에서 일어나 코트를 벗었다. 그리고 앤이 자기 코트를 벗는 것도 도와주었다 제과점 주인은 한동안 그들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어섰다. 그는 오븐으로 다가가 스위치 몇 개를 돌린다. 크림통과 설탕통도 가져와 테이블 위에 놓았다.
“당신들 뭘 좀 먹는 게 좋을 것 같소.” 제과점 주인이 부드럽게 말했다. “내가 만든 핫롤을 좀 들어보지 않겠소? 일단은 든든히 먹어둬야 견뎌낼 수 있는 법이오. 뭔가를 먹는다는 건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이런 때는 그보다 더 좋은 일도 없을 거요.”
그는 막 오븐에서 꺼낸 따뜻한 계피 빵을 가져왔다. 겉에 입힌 설탕물이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상태였다. 제과점 주인은 버터와, 버터를 바를 나이프도 테이블 위에 꺼내놓았다. 그런 다음 그는 테이블에 앉아서 그들이 먹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호워드와 앤은 쟁반에서 빵 한 조각을 집어들고 먹기 시작했다. “뭔가를 먹는다는 건 좋은 일이오.” 제과점 주인이 그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빵은 얼마든지 있소. 먹고 싶은 만큼 얼마든지 먹어도 좋아요. 여긴 이 세상의 모든 빵이 다 있으니까.”
호워드와 앤은 빵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앤은 갑자기 배가 고파졌고, 빵은 따뜻하고 달콤했다. 앤이 쉬지 않고 세 조각을 먹어 치우자 제과점 주인은 흐뭇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빵 냄새보다 좋은 꽃향기는 어디에도 없는 법이다. 호워드와 앤은 그가 내미는 빵의 냄새를 맡아보았다. 그러자 제과점 주인은 맛도 한번 보라고 권했다. 당밀 맛과 굵은 밀가루 알갱이 맛을 느낄 수 있었다. 호워드와 앤은 제과점 주인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더 이상 먹지 못할 때까지 빵을 먹었다. 그 검은 빵도 맛있게 씹어 넘겼다. 그 빵은 삼키는 기분은 마치 현란한 형광등 불빛 속에서 가슴까지 시원한 햇빛 아래로 나온 것 같은 맛이었다.
- 레이먼드 카버Raymond Carver, 「사사롭지만 도움이 되는 일」
아들이 깨어났다는 전화가 아닌, 받으면 끊어버리는 전화에 부부는 신경쇠약 직전까지 가는데 맞춘 케이크를 찾아가지 않은 제과점 주인의 보복성 장난전화임을 짐작만 하고 있을 뿐이다. 기다린 보람도 없이 아들이 죽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끊는 전화벨 소리에 앤은 드디어 폭발한다. 제과점에 가서 아들이 죽은 것을 알리고 화를 내는 앤 부부에게 제과점 주인은, 자신은 정말 아들이 죽은 줄 몰랐다며 용서를 빌고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 방금 구운 빵을 부부에게 대접한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견디기 힘든 슬픔을 겪게 된다. 십 대를 보내며 겪는, 자라나는 과정의 혼돈을 바탕으로 한 뜻 모를 외로움과 고독함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힘든 일들과 부딪힌다. 그중에서도 가장 괴로운 것은 지독한 실연 또는 사랑하는 사람과 죽음으로, 예고 없는 이별을 하는 것 아닐까? 사랑하거나 의지하는 사람을 잃은 채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그 상실의 크기와 깊이를, 과연 누가 이해해 줄 수 있을까?
그 슬픔을 모두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상갓집에 문상을 가서 우리는 슬픔에 겨워서 몸도 못 가누고 핼쑥해진 지인을 보면서 무심한 듯한, 하지만 그 상황에서 가장 최선일 수밖에 없는 흔한 위로의 말을 건넨다.
“밥은 먹었니?”
“잠은 좀 잤니?”
“산 사람은 살아야지…….”
“또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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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쉬운 일상처럼 보이는 이 일, 요리를 만들어 누군가에게 말을 건넨다는 것은 간단명료하면서도 복잡한 일이다. 한 접시 안에, 위로하고 싶은 심정만 들어가는 법은 드물다. 여러 가지 재료가 들어가는 것처럼,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한다는 것은 수없이 많은 감정을 뒤섞는 일이기 때문이다.
“유이치, 사실은 돌아가고 싶지 않은 거지? 지금까지의 인생과 깨끗이 결별하고 다시 시작할 생각이지. 거짓말 하면 안돼. 난, 알아.”
언어는 절망을 말하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침착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튼 이거 먹어. 자 먹어.”
눈물이 날 정도로 파란 침묵이 밀려왔다. 눈꺼풀을 내리깐 유이치가 돈까스 덮밥을 받아든다. 생명을 벌레처럼 파먹는 그 공기 속, 예기치 못한 무언가가 우리의 뒤를 밀었다.
“미카케, 그 손 어떻게 된 거야?” 내 상처를 본 유이치가 물었다.
“괜찮으니까 조금이라도 따듯할 때 먹어봐.” 나는 미소 지으며 손바닥을 보였다.
여전히 석연치 않다는 표정으로 “응, 맛있겠는데.”라고 말하고 유이치는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아까 아저씨가 정성스럽게 담아 준 돈까스 덮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 내 기분은 한결 가벼워졌다. 할 수 있는 일은 했다, 싶었다.
에리코 씨가 없는데도 두 사람 사이에 그 시절의 명랑한 분위기가 되살아났다. 유이치는 돈까스 덮밥을 먹고, 나는 차를 마시고, 어둠은 이미 죽음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그것으로 족했다.
- 요시모토 바나나よしもと ばなな, 『키친』
그리고 직접 만들지 않았어도, 맛있는 음식을 만났을 때 나눠먹고 싶은 그 들뜬 기분. 슬픔에 젖어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면서 숨어버리려고 하는 친구에게 그녀는 고된 하루 일과를 한 젓가락에 잊어버리게 해준 맛있는 돈가스 덮밥을, 마치 스스로에게 벌을 주듯 혼자 여관에 박혀 두부 요리만 먹었다는 유이치에게 선물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미카케 자신이 덮밥을 첫술 뜨며 감탄하고 피로를 잊었듯이 그도 그러길 바랐기에 밤에 장거리를 택시로 망설임 없이 내달릴 수 있었다.
위로를 넘어선 사랑이라는 감정, 친구를 넘어선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나의 마음만큼 남의 마음도 걱정되고 아파지는 순간, 일상의 위로를 가장해 내미는 한 접시는 참으로 많은 의미를 지니게 된다. 바로 그것 때문에, 숨어있는 염려와 걱정, 사랑 때문에 그 음식을 먹은 사람이 더 빨리 회복되는 것이라고 나는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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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때 한남동의 한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나 또한 첫 요리책의 작업을 막 시작하며 진로 고민과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로 하루하루 힘들어했었고, 동생은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문자만 남기고 연락이 두절된 상태. 그로부터 이주일 정도 뒤에 여름 태풍으로 인해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비가 많이 오던 날, 일하는 카페에 그 친구가 갑자기 들어섰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멍청히 서 있는 내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배고파. 언니가 할 수 있는 거, 아무거나 맛있는 걸로 만들어 줘.”
뭘 만들어줬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아마 오믈렛이었던 것 같은데 달걀을 젓고 버섯을 썰면서 이걸 먹고 녀석이 좋아하기를, 먹는 동안은 잊어버리기를, 간절히 빌었다. 달걀을 입에 넣으면서 눈물을 또 쏟더니 별말 없이 싹싹 다 먹고 커피 잔을 내려놓은 다음 다시 빗길로 나서는 그 애의 뒷모습을 보면서 왠지 모를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나의 불안감도 사라져 버릴 만한, 그런 안도감이었다. 괜찮을 거야. 산 사람은 살아야 하니까. 그녀는 지금 아주아주 잘 살고 있다.
요즈음 음식으로 위안을 얻으면서도 동시에 절망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너무 음식에 위안받는 것에 익숙하다 보면 음식만이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갈수록 위안받는다고 생각한 시간이 줄어들고, 입에서 느낀 행복과 그 다음에 다시 느끼게 되는 우울한 감정의 간격이 더 벌어지게 된다. 많은 중독자들이 그렇듯이 반복적으로 먹고 후회하는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나 또한 사람들과 말을 섞고 나의 괴로움을 드러내는 것보다 술 한잔으로 스스로를 마취시키는 것에 익숙했던 시간이 있었다. 음식은 위안이 되지만 스스로가 균형을 잃으면 위로의 수단이 아니라 현실도피를 위한 수단으로 갇혀버리게 된다. 뭐든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균형 못 잡고 비틀거리는 삶이야말로, 우울 그 자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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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잃은 부부가 빵을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해하며 바라보던 제과점 주인이나 돈가스 덮밥을 따듯할 때 어서 한술 뜨라고 권유하며 가벼워진 기분을 느끼는 미카케처럼. 그 위로의 공간으로서의 키친이 요즈음은 무척 그립다.
다시 작게라도 나의 부엌이 생기면 마음을 다치거나 누군가를 잃어버린 사람에게 밥을 지어 줄 수 있는 시간이 다시 오겠지.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도록, 요란 떨지 않고 최대한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지만 나를 찾아온 이와 나 자신이 모두 행복해지길 바라면서 썰고 볶고, 빵을 굽고 수프를 끓일 듯하다. 그리고 음식을 권하면서 말해줘야지. 먹고 나면, 다 좋아질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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