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라고 할 것 없이 늘 읽을 책을 가지고 다니고, 또 읽고 싶은 책들은 늘어나고 그렇습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목적’을 위해 책을 읽는다기보다는 책을 읽고 있는 시간 자체를 즐기게 됩니다. 한 달쯤 전에 지인들과 소설리뷰사이트 ‘소설리스트(www.sosullist.com)을 시작했습니다. 덕분에 일주일에 한 권씩 숙제처럼 소설을 읽고 있는데, 빠듯한 일정이기는 하지만 매주 적어도 하나씩 새로운 ‘이야기’를 접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요즘 관심이 가는 것은 좀 막연하기는 하지만 ‘기록’이라는 화두입니다. 책을 포함하여 인간의 기록이 어떻게 개인과 사회의 흐름과 변화에 영향을 미치고 또 그 흐름과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가, 하는 꽤 큰 질문을 생각합니다. 관련하여 많은 자료들을 찾아보고 있는데, 당장 읽을 계획인 책은 『고문서, 조선의 역사를 말하다』 『책의 미래』 『페이퍼 엘레지』입니다.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관심도 생겼습니다. 이노우에 야스시의 『둔황』, 후지와라 신야의 『티벳 기행』을 읽고 나서부터인데, 이것과 관련해서는 『티베트 원정기』,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등을 읽을 계획입니다.
제 서재에 이름을 붙인다면,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공간’ 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모든 다큐멘터리 작업이 그렇지만 『멸종』의 기초가 된 다큐 <생명, 40억 년의 비밀>을 찍는 동안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특히 ‘멸종’과 관련하여서는, ‘겸손’해져야 하는 이유를 배운 것 같습니다. 자연은 혹은 진화는 개체의 생존에는 관심이 없다는 ‘멸종’의 가르침 덕분에 오히려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역설적인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 깨달음으로 『멸종』이란 책을 쓰게 되었고요.
이인성 저
글쓰기/글읽기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 끝까지 파고든 소설. 낯설고 난해해 보이는 문장이지만, 편견 없이 따라가다 보면 ‘글을 통한 소통’을 향한 가장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 가능성을 긍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존 버거,장 모르 저/차미례 역
존 버거의 책 중 가장 먼저 읽은 책. 결국 이 책을 시작으로 시작된 존 버거와의 인연 덕분에 그의 책을 번역하는 번역자가 되었습니다. ‘유럽이민노동자들의 경험’이라는 부재 아래 세심하게 배치된 존 버거의 글과 장 모르의 사진을 읽다 보면, ‘노동자’라는 막연한 대상이 구체적인 개인으로 독자의 안으로 들어오고, 그가 (우리와 함께) 사는 세상에 대해서도 조금 더 잘 알 수 있게 됩니다.
리처드 포티 저/이한음 역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다큐멘터리 <생명, 40억 년의 비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책. 기획 단계에서 출판사에 제목 저작권을 문의했던 기억이 납니다.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단어 ‘생명’이 사실은 대단히 격렬했던 투쟁과 모험과 비극들을 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책. 포티는 대중과학서 저자 중에 학문적 진지함과 메시지를 잃지 않으면서 읽는 재미까지 제공하는 드문 작가입니다.
토머스 하디 저/정종화 역
산업혁명 이후의 세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성장소설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가능성과 그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게 하는, 혹은 그 가능성을 가로막는 사회의 대립을 그린 많은 소설들의 원형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후지와라 신야 저,사진/김욱 역
많은 작가/사진가들이 사진과 글이 함께 들어간 글을 쓰지만, 그렇게 함께 들어간 사진과 글의 수준이 고르게 높은 작가라면 단연 후지와라 신야라고 생각합니다.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파고들어 앎에 이름’이라는 뜻의 사자성어 ‘격물치지(格物致知’)의 사자성어에서 ‘格’자는 ‘치다, 때리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후지와라의 신야의 글은 그렇게 머리가 아니라 온몸으로, 온몸의 감각으로 대상에게 부딪히며 나온 기록들이라는 점에서, 그는 매우 독보적이고 귀한 작가입니다.
지아장커 감독의 촬영은 언제나 놀랍습니다. 어떤 대상이든 그의 카메라에 걸리면 시적인 대상으로 바뀌는 것만 같은, 비범한 재주를 가진 감독. 늘 정적이고 느리기만 하던 그의 영상들은 그대로지만 이 영화에서는 빠르고, 화려한, 말 그대로 ‘폭발’하는 것 같은 장면들도 더해졌습니다. 그런 변화 덕분에 그의 다음 영화가 더욱 기대됩니다.
감독:고레에다 히로카즈 출연:후쿠야마 마사하루, 오노 마치코, 마키 요코, 릴리 프랭키, 니노미야 케이타
<걸어도 걸어도> 이후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계속 ‘가족’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 영화들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아무런 환상도 없이 삶의 한계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또 그 한계들을 야단스럽지 않게 받아들이는 점잖은 인물들을 보여줍니다. 단정한 촬영 및 편집을 통해 전해지는 그의 이야기는 한번도 실망시키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