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사랑이 한 일 - 정혜윤 PD·작가
『내 이름은 데몬 코퍼헤드』
작가는 이야기를 전달할 힘과 재능을 진실을 알리고 변화를 일으키는 데 열정적으로 사용했다. 데몬 같은 아이들에게 다른 인생이 가능해짐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이 책을 낳았다. 사랑이 한 일이다. (2024.05.08)
최고의 창의성은 언제 나오는가? 말하지 못한 존재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하면서 나온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 데몬은 어떤 아이인가? 우선 데몬에게는 예정된 삶이 있다. “약쟁이한테서 태어난 아이는 약쟁이가 된다. 그는 절대 알고 싶지 않은 모든 존재로 자라난다. 썩은 치아, 생기를 잃은 눈, (…) 경치 좋은 고속도로에서 한참 물러난 곳에 쭈그려 있는 모텔을 주 단위로 빌려 전전하는 생활.” 이것이 데몬이 배당받은 삶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데몬은 실제로 이렇게 살게 될까? 데몬은 어떤 아이인가? 아빠 없이 낳은 아들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하던, 외롭고 약하고 예쁜 약쟁이 엄마가 결국은 약물중독으로 하필이면 데몬의 생일에 죽어버린 후 위탁 가정들을 전전하며 사는 아이. “우리가 굶지 않도록 주말마다 무료 급식을 하는 아이들의 집으로 교회 아줌마들이 보내주는 음식 자루를 받기 위해 매주 금요일 줄을 섰던” 아이. 크리스마스에는 무료 식품 구매권에 의존하던 아이. 세상의 여러 계급 중 고아 계급에 속한다고 생각하던 아이. 스스로 살아남는 방법을 배워야만 하는 아이. 살면서 너무 많은 시간을 이런저런 굶주림을 ― 음식에, 가족에, 애정에, 소속감에 굶주림을 ― 느끼던 아이. 누군가와 가까워지기를 너무나 원하던 아이. 추락하고 싶지 않았던 아이. 너는 꿈이 뭐냐는 질문을 받고 당황하던 아이. 엄마처럼 살지 않을 것이라고 수십 번 결심하는 아이, 스케치북에 마블의 히어로를 그리면서 슬픔을 삭이는 아이, 이것이 데몬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 아이는 아무에게나 쓸모없는 존재라는 말이나 듣고 쓰레기 취급을 당하는,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다는 건 심각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데몬은 글의 초반부터 희생자가 되기를 거부하지만, 평생 그것과 싸워야 하는 것을 의식하지만 서러움을 푸는 방법도, 상처받은 자존심을 달래는 방법도 가지고 있지만, 결국은 어른들이 하는 실수를 배운다. 데몬 또한 약물에 중독된다. 데몬 또한 약해질 대로 약해지고 무뎌지고 어리석은 어른들만큼이나 길을 잃는다. 이 책에는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관계들이 있고, 배신이 있고, 짧게 이야기되지만 충격적인 성 착취가 있고, 피할 수 없었던 것처럼 보이는 죽음이 있다. 특히 데몬의 여자 친구 도리와의 사랑은 가슴 아프다. 부서질 것같이 연약한 아이 도리는 약을 아껴 조금이라도 남겨서 나눠 맞는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도리와의 성애적이고 불안정한 사랑은 완전히 파괴적이었다. 데몬은 도리에게 우리 그만 헤어지자고 말해야겠지만 그것만큼 입이 떨어지지 않는 일도 없다. 함께 있음, 따뜻함, 사랑을 그렇게나 갈망하면서도 그러나 제대로 사랑하기는 얼마나 어렵던지. 이제 데몬에게는 생존뿐 아니라 구원도 중요해진다. 데몬이 이 현실을 탈출할 방법이 있을까? 데몬이 삭제된 자신을 복원할 수 있을까? 데몬이 개새끼, 약쟁이, 뻔한 놈이라는 결론으로부터 벗어나 해방이라고 부를 어떤 일을 경험하게 될까? 이 궁금증이 이 두꺼운 책을 계속 넘기게 하는 힘이다. 데몬은 마음을 쓰게 만드는 주인공이다. 데몬은 일단 약물중독 치료를 받아야겠지만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어린아이가 제대로 자라려면 당연히 도움이 필요하다. 다행히 데몬에게는 보고 배울 어른들과 꽤 괜찮은 친구들이 있었다. 어린나무 데몬에게 보호와 돌봄이라는 물을 천천히 뿌려준 사람들이 있었다. 일이 제대로 돌아가게 만드는 여자들이 이 책에도 나온다. 성장소설에서 아이와 어른과의 관계는 이렇다. 어른 탓을 하느냐, 어른이 되려고 하느냐? 데몬은 어른이 되려고 했다.
데몬은 정말 많은 것을 상실했고 정말 많은 것을 얻었다. 아드레날린 뿜어대는 허세 가득한 청소년 같은 말투를 쓰던 데몬은 삶과 진실을 쓰고 그리는 이야기꾼이 된다. 그가 만든 히어로 ‘레드넥’은 가난한 사람과 고아들을 돕는다.
“이 녀석은 산 위에 있는 작은 집에서 울고 있는 늙은 여자를 발견한다. 그 여자가 우는 건 돈을 내지 못해 전기가 끊겼기 때문이다. 어둡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이다. 두 번째 칸에서 히어로가 하늘에서 번개를 꺼내 쥐고 전선에 밀어 넣는다. 그 번개가 여자의 트레일러 집까지 멀리멀리 흘러가는 게 보인다. 전등과 가스레인지가 모두 다시 켜진다. 마지막 칸에서 여자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표와 창밖 어둠 속에서 빛나는 빛을 그렸다. 여자와 늙은 남편은 현관에서 춤을 추고 있다. (…) 지금은 담배꽃을 따고 담배를 자르는 시간, 가을이었으므로 담배에 관한 시리즈를 그린다. 그 높다란 식물의 꽃을 따려고 일하는 꼬마들을 그린다. 머릿수건을 두르고 짧은 양말을 신은 여자아이들, 야구 모자를 쓴 남자아이들. 그들 모두가 별을 보기 시작한다. 담뱃잎농부병으로 어지러워서 빙빙 돈다. 레드넥이 휙 날아 들어와 들판을 가른다. 그는 한 손에 하나씩, 모든 담배꽃을 단번에 딸 수 있는 칼을 쥐고 있다. 그런 다음 아이들을 픽업트럭 뒤에 태우고 핫도그를 사주러 간다.”
도리와의 경험도 글이 된다.
“집을 유지하려 애쓰는 약쟁이 커플이 나오는 만화 〈무능력자들〉 말이다. (…) 두 십대는 자신들을 직접 키우려 애쓰고 있었다. 그들은 마약 판매자를 만나러 차를 몰고 가면서 자동차 엔진에 핫도그를 구우려 했고, 물담뱃대나 대마초 클립으로 집을 수리했다. 나는 내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 마약에 중독된 젊은이들이 저지르는 웃길 만한 난장판을 슬프고도 참되게 그렸다. 씁쓸하기도 했다.”
나는 어른들이 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한다. 아이들이 얼마나 쉽게 어른들이 휘두르는 권력과 탐욕과 무책임의 희생양이 되는지 알 수 있다. 어른들이 그걸 알아야 아이들이 더 잘 자랄 수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약물중독으로 죽어버린 도리의 죽음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프다. 영원히 도리를 잊지 못할 것 같다. 대체 그 소녀는 왜 죽어야 했단 말인가? 누구 때문에? 누가 아이들에게 약을 팔았나? 어느 제약사가 어떤 의사와 손을 잡고 공격적 마케팅을 했는가? 나는 작가가 이런 슬픔 때문에 글을 썼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말을 빌리면 “어린애들과 고아들이 신세를 망쳤는데 아무도 쥐똥만큼도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에 분노해서. 이런 분노와 연민이 이 작품을 낳았다. 작가는 위탁 가정의 아이들은 어떤 벌을 받는지, 잠자는 방은 어떤 곳인지, 속옷의 상태는 어떤지, 필요한 칼로리와 영양분은 누구에게 의존하는지, 무료 급식 학생의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기분은 어떤 건지, 부모와 함께 있는 아이를 보는 기분이 어떤 건지, 언제 살아 있는 것이 좋다고 느끼는지, 어떻게 자존감을 찾는지, 자존감 때문에 어떤 무리를 하는지, 남자가 되어가는 소년에게 학교는 중요한 곳인지, 여자가 되어가는 소녀에게 학교는 중요한 곳인지, 우리가 다 느끼도록 하고 싶어 했다. 작가는 이야기를 전달할 힘과 재능을 진실을 알리고 변화를 일으키는 데 열정적으로 사용했다. 데몬 같은 아이들에게 다른 인생이 가능해짐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 이 책을 낳았다. 사랑이 한 일이다.
데몬은 좋은 사람을 만나고 어른으로서 사랑을 나눌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사람을 제대로 바꿔놓을 수 있는 사랑이다. 이야기의 끝에는 행복감이 더해진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책 속에서 데몬의 선생님은 이런 말을 들려준다. “지금 네가 답해야 할 질문은, 너 자신을 위해서 기꺼이 할 수 있는 게 뭐냐는 거야. 거짓말은 하지 않을게. 네가 전에 했던 그 어떤 일보다 어려울 거야.” 데몬은 그것을 했다.
영리한 현실 관찰자이기도 한 데몬의 말들은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훌륭한 이야기란 삶을 베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마주 밀어낸다는 것이었다. (…)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도 그것이다.” 하긴 삶은 상황과 현실과 조건의 거울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은 나름대로 각자의 정신, 혹은 생명력, 혹은 이름 붙이기 어려운 무엇인가를 안에 가지고 있다. 우리 안에 있는 그 무엇인가에 따라 우리는 삶을 만들고 우리가 만든 삶에, 우리가 만들어낸 많은 것들에 빛을 비출 수 있다.
*필자 | 정혜윤 마술적 저널리즘을 꿈꾸는 라디오 피디. 세월호 유족의 목소리를 담은 팟캐스트 <416의 목소리> 시즌 1, 재난참사 가족들과 함께 만든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 유족이 묻고 유족이 답하다> 등을 제작했다. 다큐멘터리 <자살률의 비밀>로 한국피디대상을 받았고, 다큐멘터리 <불안>, 세월호 참사 2주기 특집 다큐멘터리 <새벽 4시의 궁전>, <남겨진 이들의 선물>, <조선인 전범 75년 동안의 고독> 등의 작품들이 한국방송대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사생활의 천재들』, 쌍용차 노동자의 삶을 담은 르포르타주 『그의 슬픔과 기쁨』, 『인생의 일요일들』, 『뜻밖의 좋은 일』, 『아무튼, 메모』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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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디킨스의 《데이비드 코퍼필드》를 훌륭하게 재구성한 작품. 한 소년의 지혜롭고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가난, 중독, 제도적 실패, 도덕적 붕괴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들려준다.” _2023 퓰리처상 수상 이유에서 현대 미국 생태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바버라 킹솔버의 2023 퓰리처상 수상작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