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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의 물건들] 솥밥주의자의 다이어트

<은희경의 물건들> 12화 - 솥밥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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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밥에 대해서는 근면한 편이라서요. 이렇게 해서 오늘도 다이어트의 진실에서는 멀어져가고... (2022.10.05)


<채널예스>에서 매주 수요일,
은희경 소설가의 사물에 얽힌 이야기 '은희경의 물건들'을 연재합니다.



나는 체구가 작아서인지 몸무게가 조금만 늘어도 둔함을 느낀다. 내가 살아온 결코 짧지 않았던 시간 중에, 스스로 내 몸을 가볍게 느낀 시기는 세 번 정도이다.

한번은 수영을 배웠을 때. 두 달 가까이 열심히 발차기를 했음에도 물에 뜨지 못해 결국 포기하고 말았는데, 그 대신 어느 새인가 옆구리 살이 빠져 있었다. 뜻밖의 이득. 그 무렵 장편 소설을 쓰려고 몸 만들기를 할 때라서 매일 '옥주현 요가'를 따라 한 덕분이기도 할 것이다.(무려 씨디를 넣어 재생하던 시절. 요즘은 아주 가끔이지만 유튜브로 <요가소년>을 본다)

또 한번은 한 달간의 유럽 배낭여행(실제로는 캐리어를 끌고 다녔지만) 때였다. 물가도 비싼 데다 성인 4인 가족의 경비를 감당해야 하니 여유로운 여행은 할 수 없었다. 소박한 식사에 지겨울 만큼 많이 걸었고, 며칠에 한 번씩은 조깅을 했다. '걷는 것은 느리고 차를 타는 것은 너무 빠르며 뛰는 것이야말로 뭔가를 보기에 가장 적당한 속도'라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제안대로 베르사이유 궁전, 구엘 공원, 에펠탑 같은 곳을 운동복을 입고 뛰면서 구경했다.(서운한 마음에 고자질을 해보자면, 관광지에서 조깅하는 사람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비웃는 건 한국 관광객뿐이었다) 그때에도 돌아왔더니 몸이 약간 길쭉해졌다는 소리를 들었다.

세번째는 작정하고 다이어트를 했을 때이다. 가족들과 미국에서 생활할 무렵인데 그곳 음식이 하루가 다르게 살을 찌우자 모두 다이어트에 동참하기로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황제 다이어트라고도 불리는 앳킨스 다이어트. 

1. 몸속에서 남아도는 탄수화물은 지방으로 바뀌어 저장된다. 

2. 지방은 탄수화물 없이는 저장되지 않는다. 

이 두가지 사실에서 다이어트 방법을 착안한 앳킨스 박사는 지방은 마음껏 먹되, 탄수화물을 함께 먹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즈음 마빈 해리스의 『작은 인간』을 읽고 있었다. 거기에 고대 인류가 혹독한 굶주림을 겪는 과정에서 지방을 저장하려는 시스템이 몸속에 프로그래밍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과장되게 뚱뚱한 모습으로 만들어진 이만년 전 '빌렌도르프 비너스' 석상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굶주림의 세상에서는 지방을 풍요롭게 저장한 몸이 아름다움의 상징이었다.

얼마 뒤 나는 앳킨스 다이어트와 『작은 인간』을 연결시켜 소설 한 편을 썼다. 자신이 아버지의 마음에 안 들어서 버려졌다고 생각하는 사생아 남자가 아버지의 입원 소식을 듣고 만남을 대비해 다이어트를 시작하는 이야기이다. 

'다이어트가 어려운 것은 몸속에 장착된 수백만 년이나 된 생존 본능 시스템과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자신을 버린 아버지의 DNA에 반발하고자 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이 소설이 번역돼 파리에서 독자와의 만남 행사를 할 때였다. 멋지게 차려 입은 프랑스 할머니 한 분이 손을 들고 질문했다. 왜 이 남자는 살을 빼려고 하죠? 뚱뚱한 게 얼마나 아름다운데. 나는 이 소설은 비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사생아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자신의 몸에 반발하는 한편, 사랑과 아름다움을 갈망하는 이야기라고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그분은 계속해서 내가 비만을 부정적으로 썼다고 주장했다. 주인공이 다이어트를 결심한 게 사회적 편견 때문이 아니라는 뜻에서 '나를 바꿀 수 있는 것은 일반적인 다수가 아니라 나에게 중요한 어떤 사람들이다'라는 문장까지 써놓았는데... 진땀이 났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그 소설은 주인공이 어린 시절 아버지와 함께 갔던 고급 식당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이태리 식당이었다. 이태리 식당이 고급이라니, 거긴 겨우 피자일 텐데요, 라고 반문하던 한 프랑스 학생의 웃음 섞인 표정. 그 학생은 프랑스 요리에 대한 자부심에서 그런 말을 했겠지만 그때만 해도 나는 한국에서 프렌치 식당에는 가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식은땀이 흘렀다.

어쨌든 그 소설을 쓴 이후 나는 탄수화물, 특히 밥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반찬들과는 더욱 가까워졌지만) 글이란 그렇게 힘을 갖고 있다. 다이어트만 한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글로 남겼더니 어떤 정언처럼 내용이 머릿속에 자리잡았던 것이다. 밥을 적게 먹다보면 함께 먹는 사람들에게 잔소리를 듣는 일도 많다. 곡물은 가장 오래된 양식인만큼 우리 몸에 가장 이상적인 식품이다, 신토불이를 잊지 마라,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 이런 말들은 내가 밥숟가락을 놓는 데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하지만 참을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바로 솥밥의 유혹이다.

뚜껑을 열었을 때 얼굴에 끼쳐오는 그 따뜻한 김과 갓 지은 밥의 고소한 냄새. 주걱에 닿는 차지고 부드러운 양감. 그리고 자작하게 부은 물 속에서 솥의 남은 열로 부드럽게 풀어지는 누룽지. 전복이나 장어를 얹은 솥밥도 좋지만 나는 버섯과 나물, 은행, 대추채가 들어간 솥밥에 더욱 마음이 끌린다. 더운 여름에도 내 선택은 덮밥보다는 솥밥 쪽이다.

그걸 꼭 나이가 들어서라고 특정해주는 친구가 있지만, 아니거든요. 저는 어릴 때부터 따뜻한 음식을 좋아했어요. 더운 날에도 막 끓인 보리차가 담긴 따뜻한 컵을 쥐는 게 좋았고. 땡볕 아래에서 걷는 걸 좋아해 여름 방학이 끝날 때마다 새까만 꼬마가 되어 있었다구요. 그러고보니 그 친구는 카페에서 늘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나를 취향이 없다며 놀렸다. 우유도 싫고, 얼음도 싫고, 향도 싫고, 단 음료도 싫은 게 내 취향인데 어쩔... 이하 유행어 생략.

얼마 전부터는 집에서 솥밥을 지어먹기 시작했다. 주로 건나물을 불려 넣고 밥을 지어서, 쯔유를 섞고 양파를 많이 다져 넣은 양념장과 들기름에 비벼 먹는다. 뽕잎나물, 곤드레나물, 취나물, 쑥부쟁이 나물밥 재료를 주문해 선반에 쟁여놓으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따금 사진을 찍어 단톡방에 올리는데 거기에는 친구들에게 솥을 영업하려는 속셈도 있다.

나는 마트나 백화점에 가는 대신 주로 인터넷으로 물건을 산다. 대개는 아침의 침대에서 쇼핑을 한다. 타이머 탁상시계, 무알콜 맥주, 청소 건(gun), 드립백 거치대, 생분해 종이 물티슈, 페스츄리 오징어, 벨크로 헤어밴드, 리필용 염화칼슘, 긴급구출 햇양파, 농사 겸용 레인부츠, 코튼 알콜 스왑, 냉장고 데오트란트, 분갈이용 마사토, 꽃집 향기 디퓨저, 전기 계란 찜기, 고양이 온열 방석... 이 모든 품목의 쇼핑 정보를 얻는 곳은 SNS이다. 내가 아침에 쇼핑을 하는 이유. 눈 뜨자마자 폰을 더듬어 찾는 아주 나쁜 버릇 때문이다.(경고: 어린이는 따라하지 마세요) 그리고 그 쇼핑 정보를 나만 알기가 아까워 친구들에게 영업을 시작한다.

그동안 나는 내가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 판매나 영업이라고 생각했다. 남을 설득하는 데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한 친구가 뒤늦게 나의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게 해주었다. 나는 그녀에게 거즈로 사용하는 폼 클렌저, 치즈 할인점, 직구 버진 올리브유, 일본 버선처럼 엄지 발가락이 갈라지는 운동화, 유기농 콩물, 묵칼 등의 영업에 성공했다. 내가 실패한 품목은 누워서 책을 보는 '눕서대'와, 그리고 솥밥 솥이다. 영업 꿈나무인 내가 '쿠쿠'에게 여지없이 깨진 것이다. 

상관없다. 하루키는 『회전목마의 데드 히트』에서 '빵 가게의 리얼리티는 빵 속에 존재하는 것이지 밀가루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썼다. 하지만 솥밥의 리얼리티는 밥이 아니라 솥에 있다. 왜냐하면 내가 솥밥에 대해서 근면한 편이기 때문이다. 이 표현 또한 하루키 식으로 말해본 것이다. 한 출판사의 SNS에서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이 기대되는 소설가 중 하나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꼽으며 인용한 그의 문장은 '전 소설에 대해서는 근면한 편이라서요.'이다. 바로 내일이 발표 일이다. 두근두근.

다음 이야기는 '돌과 쇠를 좋아하는 일'이다.



작은 인간 : 인류에 관한 102가지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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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은희경(소설가)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이중주」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상속』, 장편소설 『새의 선물』, 『마이너리그』, 『그것은 꿈이었을까』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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