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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돈 “결말을 모르고 소설을 쓰는 일”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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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문학의 유머나 농담 하면, 풍자나 해학처럼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잖아요. 그건 농담의 영역을 너무 한정하는 것 아닐까요? (2020.05.26)


“도대체 의도가 뭐예요?” 일상에서 ‘농담을 다큐로 받지 말라’고 하지만, 유독 소설 앞에서는 늘 이렇게 묻고 싶어진다. 그러나 우리는 소설에 기대하는 재미를 한정해온 건 아닐까? 정지돈의 짧은 소설집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독자를 예상치 못한 결말에 던져넣는 책이다. 베니스의 거리를 누비다 정신을 차리면 기괴한 클럽 안이고, 실화라 믿고 따라가면 결국 허구인가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그간 사람들은 정지돈에게 무거운 질문들을 해왔다. “무슨 실험을 하려고 했죠? 이것도 소설인가요?” 당신이 농담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잠시 그런 질문은 멈추자. 그저 책을 펴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즐길 때다.

소설가 정지돈은 2013년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에 단편소설 「눈먼 부엉이」가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건축이냐 혁명이냐」로 2015년 젊은작가상 대상과 「창백한 말」로 2016년 문지문학상을 수상했다. 『문학과 사회』에서 장편소설 ‘모든 것은 영원했다’와 웹진 <주간 문학동네>에서 서울과 파리 산책기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을 연재하고 있다. 


 

빠르고, 경쾌한 리듬으로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일부는 <월간 채널예스> 짧은 소설 코너에 연재되었던 작품들이에요. 매달 돌아오는 마감이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분량이 짧은 소설이다 보니, 힘들지는 않았어요. 쓰는 내내 즐거웠죠.

최근 초단편소설, 경장편소설 등 짧은 소설이 많아지고 있어요. 다양한 형식의 글 청탁도 늘어났고요.

글의 분량이 다양해지는 건 환영할 만한 일이에요. 작가는 쓸 때마다 자기만의 분량을 새롭게 창조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까지 보통 80~100매 정도의 단편소설이 주류를 이뤘기 때문에, 쓰는 방식도 그 분량에 한정될 수밖에 없었죠. 요즘은 다양한 형식과 분량의 글을 청탁받고 있어요.

분량이 짧다고 해서, 쉽게 쓰시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작업 시간은 얼마나 걸렸나요?

원래는 느리게 쓰는 편인데, 짧은 소설만은 빠르고 경쾌하게 써보려고 했어요. 하나의 아이디어를 직관적으로 포착해서 순식간에 완성하는 식으로요. 흔히 독자들이 읽는 속도는 작가가 쓴 시간에 비례한다고 하더라고요. 빠르게 쓴 글은 그만큼 속도감 있게 읽히니까요.

쓰는 동안, 결말이 여러 번 바뀌기도 했나요?

아예 결말을 생각을 안 하고 썼으니 바뀔 수도 없는 거죠. 물론 실패한 소설도 나왔지만, 쓰다 보니 단련되었는지 나중에는 한 번에 쓸 수 있게 됐어요.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소설이 나오는 걸 보는 게 흥미롭더라고요. 



독자 반응에 민감하지 않은 이미지인데, 독자 후기를 찾아보셨나요? 

독자 반응에 민감하지 않은 작가는 없습니다. 다 찾아보죠. 

상처받으실 때도 있나요?

분노, 체념… (웃음) 농담입니다.

순수하게 재미있다는 평이 많았어요. 

독자들의 반응을 지켜보는 게 즐거워요. 처음 발표하는 글 형식이라 어떻게 읽어주실지 궁금했거든요. 독자마다 좋아하는 부분이 다른 것 같아요. 1부는 외국 배경에 역사적인 인물을 다루는 내용이 많아서 어려운데, 2부는 동시대 한국의 이야기라 쉽게 읽힌다는 평도 있고요. 제 어머니도 왜 소설에 외국 이름이 자꾸 나오냐고 하시기도 해요. (웃음) 그런 다양한 반응들이 재미있죠.

윤예지 작가의 일러스트가 눈길을 끌어요.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게 아니라, 작가님만의 참신한 해석이 돋보였어요.

소설을 한 컷 안에 어떻게 표현할지 고심한 흔적이 보여 좋았어요. 사실 책에 일러스트를 넣는 것이 성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거든요. 특별한 의도 없이 그림이 그저 글을 해설하기 위해 들어가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그런데 윤예지 작가님은 자신의 방식으로 소설을 해석하시더라고요. 소설을 읽고 그림을 보시면, 분명히 느끼실 거예요.

제목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으셨을 것 같아요. 농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읽을 법한 책인데, 왜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이냐고요.

문득 떠오른 문장이었어요. 그런데 소설집 제목으로 어울리겠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등장인물을 가리키는 말이에요. 당사자는 진지한데 보는 사람은 웃긴 거죠. 블랙 코미디처럼,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이어지는 걸 좋아해요. 

‘작가의 말’에 언급하신 다닐 하름스도 그런 소설을 쓰는 작가인가요?

모든 작품이 그렇지는 않지만, 분명히 그런 요소가 있죠. 다닐 하름스는 제가 좋아하는 농담을 하는 작가예요. 보통 문학의 유머나 농담 하면, 풍자나 해학처럼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잖아요. 그건 농담의 영역을 너무 한정하는 것 아닐까요? 다닐 하름스의 작품은 의도를 알 수 없는 상황을 던져 줘요. 독자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기이한 상황에 놓이게 되고 도대체 뭐지, 하면 끝나버려요. 뭔지 알 수 없지만, 상황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되고요.



사실과 허구의 경계는 연약하다

서평은 원래 사적인 정보를 드러내면 안 된다는 관습이 있잖아요. 「서평가의 최후」에서 주인공은 그걸 뒤집고, 자기 이야기를 써버려요.

정해진 형식이 주는 편안함이 있죠. 그렇지만, 진짜 재미는 주류적인 형식이 엎어지고 어긋날 때 생겨나는 것 같아요. 소위 ‘관습’이 되면, 매너리즘에 빠지고 같은 것을 반복하게 되니까요. 새로운 형식이 굳어지기 직전의 과정을 보는 게 좋아요. 무엇 보다 웃기잖아요.

형식을 전복하는 것에 끌리는 거군요.

그렇죠. 그런데 ‘예술이라면 그래야 해!’ 하고 의도성을 내세우는 것과는 달라요. 그저 지금까지 속한 세계를 못 견뎌서 즐거운 것을 찾다 보니, 형식을 벗어나게 되는 거죠. 「서평가의 최후」에서도 주인공은 더 이상 쓸 말도 없어서 에라 모르겠다, 하다가 새로운 서평을 쓰게 된 거잖아요. 특이한 실험을 하겠다고 의도한 것이 아니라, 더 이상 삶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니까 벗어나려고 하다가요. 소위 ‘관습의 탈피’는 그런 자연스러운 시도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영화감독 ‘장 팽르베’처럼 우리가 공식처럼 외우는 사조로 해석되지 않는 인물들이 나와요. 이런 인물들에 매력을 느끼시나요?

특정 사조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들, 평가를 제대로 못 받는 사람들에 눈길이 가요. ‘불능’과 ‘무능’을 나눠서 말해 볼게요. 사회적으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사람을 ‘무능’하다고 하지만, 여러 가지 규정들에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높이 평가받는 것일 수 있죠. 그걸 고쳐서 ‘불능’이라 표현하고 싶어요. 오히려 사회에서 주류인 사람들보다, 빛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어떤 시대나 인간성을 잘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 

프로필에서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여행지가 나오는 소설이 많아요. 전부 상상인가요?

도쿄, 베니스 두 곳 다 실제로 갔어요. 소설 배경인 베니스의 클럽 ‘피콜로 몬도’는 실재하지는 않지만, 같은 이름의 장소가 있죠. 베니스에 가시게 된다면, 그 클럽을 추천합니다. 소설처럼 끔찍한 일이 벌어질 거예요. 내가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시간 낭비를 하다니…(웃음)

소설이 허구라고 하지만, 사람들은 “이거 진짜야, 거짓말이야” 묻고는 하잖아요. 이런 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의미는 없죠. 소설이 허구적 창작물이라 해도, 전부 거짓말일 수는 없거든요. 작가가 경험했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참조한 것 등이 들어가게 되니까요. 어디까지 사실이고 거짓말인지 나누는 건 불가능해요. 우리는 진실 여부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죠. 실존 인물이나 지명이 나오면 전부 사실로 믿고 명예훼손까지 생각하는데, 가명이나 가상의 공간을 쓰면 안심하고요. 그런데 사실을 다 가져와 놓고 이름만 바꾸면 괜찮아지는 걸까요? 진실 여부를 판단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기준이 생각보다 연약하다는 걸 말하고 싶어요.

「보이지 않는」은 유명 작가 폴 오스터, 에드워드 사이드, 장 주네의 만남을 다룬 소설입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한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기억들만 존재할 뿐 무엇이 정확한 진실인지 알 수 없죠. 결국, 절대적인 진실은 없는 걸까요?

절대적인 진실은 있죠. 다만, 거기에 접근할 수 없을 뿐. 과거사를 규명하는 건 필요하지만, 일상에서는 ‘진실’을 안다고 해도 의미가 없는 상황이 많은 것 같아요. 「보이지 않는」처럼 개인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가 더 중요하기도 하고요. 때로는 ‘감정적 진실’이 사실보다 강한 힘을 발휘하죠.



차기작은 『아이스크림과 세계문학』이 될 거라고 하셨어요. 작가님이 좋아하시는 ‘벤엔제리 아이스크림’과 어울리는 작품을 추천해주신다면요?

벤엔제리는 모든 문학작품과 어울려요. 단점은 있습니다. 배가 나와요. (웃음) 중요한 건 소설의 내용 보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세계문학을 보는 상황 자체가 아닐까요. 영화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결국 영화관에서 콜라를 마시며 감상하는 행위가 만족감을 주는 것처럼요. 영화는 아무거나 봐도 상관없는 거죠. 우리는 내용을 좋아하는 게 진심이라 이야기하고 나머지는 허례허식이라 말하곤 하지만, 오히려 그 나머지가 감상을 풍족하게 해요. 뭔가를 좋아하는 건 대상이 좋다기보다 그 의식 자체가 즐거운 것일 수 있죠. 『아이스크림과 세계문학』도 작품의 내용보다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하는 독서가 좋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왔어요.

최근 소설 외의 관심사가 있나요?

소설 말고는 관심사가 없습니다. (웃음) 과학책을 많이 읽기는 해요. 그렇지만 소설 때문에 읽는 것이기는 하죠. 제 삶의 관심사가 결국 소설로 이어지니까요.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
정지돈 저 | 윤예지 그림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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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윤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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