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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이 된 한국에 갇히다 : <터널>

재난영화를 단순히 즐길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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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은 괴수영화였지만 재난과 같은 한국사회를 담아낸 예언 같은 영화였다. 2013년 김성수 감독의 <감기>는 정확하게 2015년의 메르스 사태를 예언하는 영화가 되었다. 그리고 잊지 못할 몇 가지 일들을 겪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라는 것이 있다. 이 법은 각종 재난으로부터 국토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2016년 대한민국이 법치국가라는 가정 하에 모든 국민은 재난이 닥쳤을 때 법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국가가 국민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시리도록 자주, 그리고 오래 묵도해 왔다. 하여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는 재난영화를 단순히 즐길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김성훈 감독의 <터널>이 담고 있는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털어내려 해도 계속 맴맴 도는 기억과 상처를 떨쳐낼 수가 없다. 영화는 허구의 이야기를 직조해내지만 그 울림통으로 나오는 소리는 마치 지금, 오늘, 우리의 현실을 들여다보는 다큐멘터리 같다. 그래서 아리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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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의 시작은 우리가 흔히 봐온 재난 영화들과 많이 다르다. 인적이 없는 주유소에서 기름을 채우고, 가족과 통화를 마친 후 주인공이 지나가던 터널이 무너진다. 영화가 시작된 지 불과 5분 내에 벌어진 일이다.

 

게다가 터널이 매몰된 시점에 그 속에 갇힌 사람은 정수(하정우) 혼자라고 밝혀진다. 세상과 철저하게 단절된 것도 아니다. 차량에 배터리가 있고, 통화 가능한 휴대폰도 있다. 딸을 위해 산 케이크도 있고, 주유소에서 받은 물도 있다. 이쯤 되면 재난영화치고는 조금 시시한 시작 같아 보인다. 적어도 생존의 아비규환은 연출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고립에 빠진 개인의 생존이라는 점에서 <캐스트 어웨이> 같은 영화가 연상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곧 재난을 보여준다. 영화의 재난이 시작되는 시점은 터널이 무너진 순간이 아니라, 정수가 구조를 요청하는 그 순간이라는 것을 관객들이 알게 되는 것이다. 다급함도 성의도 없는 119 구조대원의 응대, 특종을 위해 어떤 짓도 마다하지 않는 언론, 사고가 나자 대책도 대안도 없이 달려와 정수의 아내(배두나)와 기념촬영 한 장 하고 돌아서는 정치인들 모두 우리가 매일 겪은 우리의 현실 그 자체다. 그러다 시간이 길어지자 ‘고작 한 사람’을 구하려고 수많은 사람이 희생해야 하냐는 비난에 이른다. 모두가 ‘이제 그만 하자’고 말한다. 구조대장(오달수)과 아내만이 희망을 놓치지 않는 것이 끝내 인간에 대한 존엄을 지키는 것이라고 외칠 뿐이다. 재난을 빗댄 풍자를 통해 김성훈 감독은 터무니없이 무너진 터널이 아니라 터널 바깥의 우리 사회 그 자체가 재난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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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되어 사투를 벌이는 여러 가지 영화를 떠올리게 하지만, <터널>의 가장 특이한 점은 장르영화의 어떤 습성과도 딱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2014년 <끝까지 간다>를 통해 김성훈 감독은 반전이나 숨겨둔 이야기 대신, 눈 돌릴 틈 없이 끝내 내달리는 속도감으로 긴장감을 더했다. 곁가지도 없고, 쓸데없는 인물도 없다.

 

그런 감독의 연출력은 <터널>에서도 생생하게 살아있다. 끝나지 않아야 할 순간에 이야기가 넘어가거나 끝나야 할 것 같은 순간이 이어지는 등 관객들은 아차 하는 순간에 색다른 속도를 즐기게 된다. 완급조절 없이 내 달리는 이야기가 힘들어질 때쯤이면 의외의 웃음으로 분위기를 환기시켜 다시 극 속으로 몰입시켜주는 등 완급 조절이 더욱 노련해졌다. <끝까지 간다>에서는 별다른 의미 없이 장르 영화의 시각적 쾌감 그 자체에 몰두했다면 <터널>은 계속해서 사회적 문제들을 환기시킨다. 
 
우리나라 최초의 재난 블록버스터라 불리는 <해운대>는 2009년에 만들어졌다. 2004년 사상 유례없는 사상자를 냈던 인도네시아 쓰나미가 해운대를 덮친다는 가정 하에, 철저하게 할리우드 재난 블록버스터의 공식을 따른다. 여기에 한국적 신파와 온건한 가족주의를 더해 천만 고지를 무난히 달성했다. 당시만 해도 재난영화가 즐길만한 오락영화의 기능을 충실히 해왔다.

 

하지만 앞선 2006년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부의 태도에 대한 사회적 목소리를 담았다. <괴물>은 괴수영화였지만 재난과 같은 한국사회를 담아낸 예언 같은 영화였다. 2013년 김성수 감독의 <감기>는 정확하게 2015년의 메르스 사태를 예언하는 영화가 되었다. 그리고 잊지 못할 몇 가지 일들을 겪었다. 그래서 지금 대한민국에서 재난은 즐길 거리가 아니라 우리가 극복해야하는 현실이 되었다.   
 
<터널>은 지금의 세태를 풍자하는 씁쓸한 블랙코미디의 기능을 한다. 방송을 통해 정수의 아내는 구조를 포기한다는 사실을 알린다. 오열하며 나오는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냉랭하다. 국가적 문제처럼 몰렸던 관심이 남 일처럼 변해갔던 여러 가지 재난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구조된 정수와 영상을 찍기 위해 달려든 국회의원과 언론들을 향해 내뱉는 욕지기 한마디는 시원하지만 해결책은 아니다. 그렇게 환기된 문제들이 지향하는 바가 단순한 환기인지, 각성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것 같다. 더불어 정수가 극적으로 구조되는 과정이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우연 같아 보이는 점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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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보여주는 후일담을 통해 쓱 훑어가는 중에 경위서를 쓰는 구조대장의 모습이 계속 눈에 밟힌다. 영화에서 가장 비현실적인 인물처럼 보였다. 구조를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이 판타지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우리는 구조대장 같은 인물들을 찾을 수 있다. 국가적 재난이 닥쳤을 때 그 재난 속에서 사람들을 구해낸 것이 국가가 아닌 개인의 어깨였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그는 남모르게 살신 성인해 온 이 땅의 구조대원들과 다이버들, 그리고 선량한 소수의 시민들을 상징하는 가장 현실에 가까운 인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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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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