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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헌 “사법의 민낯, 제대로 알리고 싶었다”

『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 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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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사람들이 많이 보겠지만, 그 외에도 역사나 정치, 인문사회 분야에서 연구를 하는 분들이 많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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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2일, 서울 광화문 한 식당에서 한승헌 전 감사원장의 『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는 50년 동안 시국사건, 양심수를 변호한 인권변호사이자 전 감사원장 한승헌이 한국현대사의 맥락에서 정치재판 17건을 기록한 책이다. 한때 시국사범으로 몰려 수감생활을 해야 했던 한승헌은 “사법의 민낯을 제대로 알리고, 우리 국민들의 ‘망각 방지’에 일조하고자 펜을 들었다”고 밝혔다.

 

『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에 기록된 17건의 정치재판은 여운형 암살 사건, 반민특위 사건, 국회 프락치 사건, <경향신문> 폐간 사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사건 등이다. 한승헌 저자는 기자간담회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사건으로 ‘대통령긴급조치 4호 사건’을 꼽았다. 한승헌은 “민청학련 사건으로 알려졌는데, 당시 나는 민청학련과 인혁당의 연관성을 조작하기 위해 피고인으로 몰린 고(故) 여정남을 변호했다. 여정남은 내가 변호한 사람 중에 유일하게 사형 선고를 받았다. 나 역시 당시에 반공법으로 구속되었던 터라 구치소에 함께 있기도 했는데, 그는 결국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사법 살인이 이런 거구나’를 절감한 사건이다. 항상 가슴에 맺힌다”라고 말했다.

 

한승헌 저자는 현재 전북대학교, 가천대학교의 석좌교수로 서울특별시 시정고문단 대표로 있다. 역대 독재정권 아래서 탄압받는 양심수, 시국사범의 변호와 민주화운동, 인권운동에 참여했으며, 「어떤 조사(弔辭)」 필화 사건(1975년),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1980년)으로 두 번에 걸쳐 옥고를 치렀다. 1983년 변호사 자격 박탈 8년 만에 복권, 변호사 활동을 재개해 시국사건의 변호를 계속했다. 저서로는 『정치재판의 현장』 『한승헌 변호사 변론 사건 실록』(전7권) 『분단시대의 법정』 『한 변호사의 고백과 증언』 『한국의 법치주의를 검증한다』 『권력과 필화』 『한ㆍ일현대사와 평화ㆍ민주주의를 생각한다』 등 40여 권이 있다.

 

역사 속의 재판, 재판 속의 역사

 

『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를 펴낸 소감이 궁금하다.

 

책을 내기 전, 내가 읽을 만한 책을 쓰고 있는가?를 떠올려 보았다. 짧게 쓰려고 애를 썼지만 길게 써졌다.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서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한 가지 자부심이 생기는 건, 남이 겪었던 일, 남이 썼던 글을 토대로 쓴 책이 아니라, 내가 상당 부분 직접 관여했던 사건들에 대해 썼다는 점이다. 내 체험이 많이 배어있는 책이기에 역사를 기술하는 데 있어서 정통의 방법은 아닐지 몰라도 현장감은 많이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법조인으로서 여러 분야에 경험이 있다는 것이 역사를 보고 사건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는 장점이 아닐까 싶다.

 

‘기록인의 책무’를 강조했다.

 

법조인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변호인으로서만 소임을 다할 수 없었다. 변호인의 쓸모가 과연 무엇인가를 떠올려봤을 때, 잘못된 재판을 법정 바깥으로 끌어내 동시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필요를 느꼈다. 책의 서문 제목이 ‘역사 속의 재판, 재판 속의 역사’다. 재판과 역사는 서로 맞물려서 작용과 반작용을 되풀이해왔고, 그 중 정치적 사건의 재판은 역사의 연역과 귀납에 이용되는 중요한 사실(史實)로 꼽힌다. 역사는 실증에 의해 서술되기 마련인데, 실증의 근거는 재판에서 말하면 판결문이다. 재판의 의미가 판결로만 끝날 때, 오히려 역사가 왜곡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때문에 재판 자체를 다시 뜯어보고 재검토하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970년대 후반에 반공법 필화 사건으로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하고 출판사에서 일하기도 했다.

 

‘삼민사’라는 출판사에서 주간으로 일했다. 하루 아침에 백수가 됐는데, 그 때 한 언론인이 쓴 ‘재판야화’를 묶어 책으로 내면서 ‘끝나지 않은 심판’이라는 제호를 붙였다. 기관원이 부르더니, 이 제호를 가지고 추궁을 하더라. 지금 대한민국에는 재판은 끝났지만 심판이 끝나지 않은 사건들이 무척 많다. 우리나라 사법이 역사 발전에 제 몫을 다하려면 재판의 잘잘못을 따져 올바른 역사를 탐구해야 한다.

 

지금의 사법부를 어떻게 보고 있나?

 

어떤 법관이 쓴 글이 기억에 남는다. “국민은 자신의 기본권을 법원에 의탁했지만, 정작 기본권 보장은 법원이 아닌 국민 스스로가 희생을 통해 이뤄냈다.” 사법권의 독립 역시 마찬가지다. 스스로 쟁취한 게 아니라, 많은 이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실현됐다. 다행히도 김대중 정부 이후의 ‘역사 바로잡기’의 성과로, ‘과거사’ 사건의 상당수가 법원의 재심에서 뒤늦게나마 연달아 무죄 판결이 나왔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형수가 되기도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사형수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나라다. 이런 역동을 지나면서 나라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좋은 의미의 반전도 펼쳐지는 세상이다.

 

특별히 어떤 독자가 『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를 읽으면 좋을까.

 

법조계 사람들이 많이 보겠지만, 그 외에도 역사나 정치, 인문사회 분야에서 연구를 하는 분들이 많이 보면 좋겠다. 법조인들이 책을 많이 쓰지만 사건 자체를 제대로 알리는, 사건을 비판하는 책은 많이 쓰지 않는다. 그 점이 늘 아쉬웠다. 나는 이 졸저가 해방 후 우리 역사를 바르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또 정치적 음모에 의해 왜곡되거나 조작된 사건이 판결의 이름으로 역사와 국민을 기만하는 것을 간파하고 대처하는 데도 쓸모가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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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한승헌 저 | 창비
50여 년 동안 시국사건?양심수를 변호한 대표적인 인권변호사이자 전 감사원장 한승헌이 한국현대사의 맥락에서 17건의 정치재판을 실황중계한다. 독재정권에 맞서 흔들림 없는 변론을 펼치고, 때론 시국사범으로 몰려 수감생활을 해야 했던 한 변호사는 ‘사법의 민낯’을 제대로 알리고, 우리 국민의 ‘망각 방지’에 일조하고자 펜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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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엄지혜


eumji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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