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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팬심에서 시작한 달리기 예찬

김연수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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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여름부터 2년간 주 3~4회는 꾸준히 뛴 결과, 나는 몇 가지 결과들을 얻었다. 첫 번째, 달리기 못지 않게 술도 꾸준히 먹었던 내가 웬만한 주량에는 쉽게 죽지 않게 되었다. 거기에 마시고 난 뒤, 회복속도도 빨라졌다.

“달리기는 내가 속한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 김연수의 <지지 않는다는 말> p.272

 

내가 저 구절 때문에 뛰기 시작했다면 믿을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그러나 나와 몇 번쯤 책 이야기를 나눠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내가 그러고도 남을 오래된 김연수 작가의 스토커라는 것을. 진즉 많은 작가들이 달리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내 마음을 함께 달리게 하는’ 문장은 없었다. 무감한 나에게 위 문장은 읽는 순간, 내가 평생 할 운동이 달리기임을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게 했다. “무슨 운동 좋아하세요?”라는 질문에 부끄러워하며 “숨쉬기 정도?”라는 웃기지도 않는 대답을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마침 6개월간의 취업준비생 생활로 몸과 마음 모두 힘들어져 있기도 한 터라 더욱 더 ‘너는 내 운명’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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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하는 작가의 책을 살 땐, 사인본은 기본이다.

 

달리기를 시작하려니 이래나 저래나 돈이 필요했다. 하이힐을 즐겨 신는 나에게 변변한 운동화조차도 없었다. 백수에게 돈이 있을 리가 없을 터. 몸이 안 좋아 그만 두었던 회사 핑계를 대며 나는 부모님 카드를 받았다. 내가 건강해야 부모님도 그동안 나에게 투자한 걸 거둬들이기 쉬울 거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아주 예쁜 러닝화를 한국에서 품절이란 이유로 해외구매대행을 통해서 기어코 사는 등의 행동을 몇 번 더 하자 달리기 선수를 해도 좋을 정도로 패션은 완벽했다. 부모님은 ‘돈을 쓰려면 어떤 이유라도 들면서 다 쓴다’고 혀를 차셨다. 누가 뭐래도 나에게 그 당시 달리기는 중요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긴 만큼,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 그 날은 날씨조차 완벽했다. 아침 10시, 출퇴근 하는 사람도 없는 한강에서 나는 처음으로 약 8km를 1시간 정도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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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뛰는 코스 중 두 가지의 얼굴


2012년 여름부터 2년간 주 3~4회는 꾸준히 뛴 결과, 나는 몇 가지 결과들을 얻었다. 첫 번째, 달리기 못지 않게 술도 꾸준히 먹었던 내가 웬만한 주량에는 쉽게 죽지 않게 되었다. 거기에 마시고 난 뒤, 회복속도도 빨라졌다. 거기에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체질로 변했다. 친한 동년배 남자애들보다 고기를 더 많이 먹는데도 안 찐다. 


두 번째, 스트레스가 사라진다. 왜냐? 빠르게 뛰다 보면 무념무상 상태에 돌입하게 된다. 상황이 부정적이거나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에 젖을 때, 달리기 속도를 높인다. 다리도 후들거리고 숨도 가팔라오고, 가슴팍 한 켠이 쑤셔오면 잠시 멈추어 선다. 내가 뛰기 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내 숨소리와 멈춘 내 주위를 스쳐가는 사람들, 자전거들만 시야에 보일 뿐이다. 뛰다 보면 내게 쏟아진 엄마의 잔소리도, 내 신용카드 결제일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거나 만사에 투덜댈 시간이 부족했던 내가 뛰면서 조금 바뀌었다.


세 번째, 계절의 변화를 내 몸이 직접 가장 느낀다.(그래서인지 운동복장이 계절별로 계속 늘어나기만 한다.) 집 가까이 있는 올림픽공원에서 한강 잠실대교, 청담대교까지 늘 동일한 코스를 뛰면서 사계절을 겪는다. 같이 뛰거나 걷고 있는 사람들의 복장, 자전거 라이딩 복장뿐만 아니라 한강의 나뭇잎, 잔디 색, 혹은 한강 높낮이까지 미세하지만 조금씩 누군가가 덧칠하거나 지우개로 지우는 것처럼 야금야금 변화하는 과정과 마주한다. 뛸 때, 불어오는 혹은 맞닥뜨리는 바람의 결과 온도가 묘하게 바뀌면 계절의 어느 골목에 들어섰음을 문득 깨닫는다.

가끔은 달리기 자체가 좋은 건지, 아니면 달리기를 위해 사는 옷과 운동화(계절이 바뀔 때마다 산다. 옷과 운동화가 예뻐야 뛰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투자한 값은 뽑아야지!)가 좋은 건지 헷갈린다. 그러나 무엇이 원동력이 되든 “뛴다”는 것. 내 삶의 어떤 부분이 내 의지로, 내 맨몸으로 ‘나아간다’라는 의미가 되었다. 두 발로 뛰는 기쁨, 많은 사람들이 맘껏 느꼈으면 좋겠다.


덧1. 달리기를 오래 하기 위해선 코스가 중요하다. 매일 같은 코스를 뛰어도 그 코스의 매력도에 따라서 언제나 뛰어도 즐거울 수도 있고, 생각만 해도 업무처럼 빤할 수도 있다. 나는 공원과 한강을 적절하게 섞어서 뛴다. 공원이 지겨울 때 즈음, 한강 바람이 시원하게 분다.


덧2. 바야흐로 ‘스마트폰 시대’. 친절하게 여러분이 얼마나 뛰었는지, 칼로리는 얼마나 소비되었는지 말해주는 앱이 많다. 그 중에서도 ‘착한’ 앱이 있으니. 바로 bigwalk(빅워크)다. 10m에 1원씩 기부금이 적립되고, 그 기부금은 기업의 CSR 비용으로 지급된다. 전달된 기부금은 걸을 수 없는 아이들에게 여러 가지 형태로 후원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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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않는다는 말김연수 저 | 마음의숲
이 책은 김연수가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 중년이 될 때까지 체험한 사랑, 구름, 바람, 나무 빗방울, 쓴 소설과 읽은 책, 예술과 사람 등에 관한 이야기의 집합체이기도 하다. 궁극에는 삶의 기쁨과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문학적으로 더 깊고 넓어진 사유의 문장들, 그의 소설 속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새로워진 문장을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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