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의 학령을 보면 굉장히 엄격한 것을 알 수 있다. 주색을 이야기하거나 선대의 현인을 비방하는 자는 비열하다고 하여 엄정한 처벌을 받았다. 평생 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하는 무서운 벌도 있었는데, 절개를 소홀히 여겨 몸과 이름을 더럽힌 자들에게 내린 벌이었다. 예의를 저버린 행동과 소인배의 행위도 처벌 대상이었다. 지금 한국의 교실과 비교해보면 조선 시대에는 언뜻 별것 아닌 이유로 벌을 받고, 퇴학까지 당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반면 학업 성적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편이었다. 조선 시대의 교육이 지식의 축적보다는 인격 함양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교육은 정반대다. 모든 것을 허락할 테니 제발 공부만 잘해다오, 라는 식으로 비정상적인 교육을 하고 있다. 이러니 아이들이 제대로 된 인간으로 성장할 수가 없다.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요즘 취업 준비생들 중에는 자신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인식이 없는 이들이 많다.
“무슨 일이 하고 싶으냐?”라고 물으면,
“모르겠다” 혹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슬픈 일이다.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취직부터 하려고 하다니. 면접 때 그런 이들이 내뱉는 대답은 기껏해야
“무슨 일이든 맡겨만 주시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이다. 일단 취직은 하고 보자는 것이다.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 없이 주입식 교육을 통해 성장한 사람의 표본이다. 30~40대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그들 역시 하고 싶은 게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어쩌다 별생각 없이 시작한 일을 평생 계속하게 된다. 이 얼마나 허무한 인생인가.
사람의 인생을 자동차에 비유해보자. 뒷바퀴를 돌리는 것은 엔진이지만 앞바퀴를 돌려 가야 할 곳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내 두 눈으로 바라본 후 내린 나의 판단이다. 가야 할 곳을 정하지 않고 액셀을 밟는 사람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닌 방향이다. 뒷바퀴를 ‘공부로 얻은 지식’이라고 한다면 앞바퀴는 ‘인격’ 즉 ‘사람 됨됨이’라고 할 수 있다. 인격을 갖추지 않으면 아무리 방대한 지식이라도 무용지물이라는 뜻이다. 인격과 지식이 함께할 때 그 사람의 삶이 완벽해진다.
2500년을 이어온 공자의 가르침
2500년 전, 공부보다 사람을 만드는 교육을 강조했던 인물이 있다. 여전히 세계 각지에는 그의 뜻을 기리는 추종자들이 산재해 있다. 세계 각국의 CEO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직업인들이 그를 정신적인 지주로 꼽는다. 회사를 창업하고 10년을 버티면 장수했다고 생각하는 요즘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그의 2500년 경쟁력은 그저 엄청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의 이름은 공자(孔子)다.
공자의 교육관을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평소 공자의 해박한 지식에 의문을 품어왔던 제자 자공(子貢)이 어느 날 물었다.
“선생님은 어떻게 그 모든 것들을 다 알고 계십니까?”
“너는 내가 많이 배워서 그것을 모두 기억하는 줄로 아느냐? 아니다. 나는 모든 것을 한 가지로 꿰는 도(道)를 알고자 할 뿐이다.” |
자공은 스승에게 지식에 대해 물었으나, ‘사람이 되라’는 대답을 들은 것이다. 지식이 아니라 인격과 인격이 만나야 울림 있는 교육을 할 수 있고, 비로소 성장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자는 출신 성분, 사회적 지위를 상관하지 않고 제자들을 받아들였다. 공자의 제자 중에는 깡패도 있었고, 문인도 있었고, 농사를 짓는 사람도 있었다. 타고난 신분이 아니라 갈고닦은 능력과 덕성, 즉 사람 됨됨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공부보다 됨됨이를 높이 치는 공자의 교육관을 엿볼 수 있다.
세계은행 총재 김용을 키워낸 교육의 힘
이번엔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을 소개한다. 그는 미국 국가경제위원회 의장을 역임한 로런스 서머스 전 하버드 대학 총장,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존 케리 상원의원, 수전 라이스 유엔 주재 미국대사와 함께 최근 세계은행의 총재 후보로 거론된 사람이다. 세계은행의 총재 자리가 워낙 중책이다보니 후보들의 면모 또한 쟁쟁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앞서 거론한 후보들은 전부 제외되었다. 세계은행 총재 자리는 사상 최초로 동양인에게 돌아갔다. 이 기적같은 결과를 만들어낸 사람의 이름은 김용이다. 그는 과거에도 4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아이비리그의 다트머스 대학 총장 자리에 오르며 커다란 이슈가 되었다. 이민 1.5세대인 그가 미국사회에서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다트머스 대학 총장 시절 김용 총재
답은 부모의 가치관 교육에 있었다. 그의 부모는 어린 김용에게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연설을 읽어주며 ‘우리는 이 사회와 세계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가르쳤다. 우등생을 길러내기 위한 교육이 아니라, 사회를 책임지는 사람을 길러내기 위한 교육을 했다. 그리고 부모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통해 길을 보여줬다. 가장 좋은 교육은 부모의 삶이 교과서가 되는 교육이다. 열일곱 나이에 고향을 떠나 성실과 지식을 무기로 세상을 헤쳐나간 아버지. 아들에게 늘 ‘너는 누구인가’ ‘네가 세상에 무엇을 줄 수 있는가’ 질문을 던지면서 ‘위대한 것에 도전하라’고 가르친 어머니. 그는 부모를 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교육을 받은 셈이었다.
결국 김용은 그 가르침대로 살고 있다. 수재로 태어나 엘리트의 길을 무난하게 걸을 수 있었지만 스스로 그 길을 박차고 나왔다. ‘세상의 불평등을 없애고 사회 정의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자고 결심했다. 그렇게 의사이자 인류학 박사의 길을 선택했다. 많은 직업인이 그렇듯 의사 또한 자신의 일을 그저 돈벌이로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는 일의 본질에 충실했다. 의학을 공부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가진 의료기술로 어디에 도움을 줄 것인가를 생각했다.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이 많은 나라를 다니며, 치열하게 봉사했다. 그가 세계은행 총재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실력 이상으로 인격이 훌륭했기 때문이다.
뛰어난 교육가 신사임당
한국의 수재들이 고등학교까지 각종 상을 휩쓸고 온갖 기대를 받으며 성장하지만, 대학에 들어가 평범해지는 이유는 자신만의 가치관이 없기 때문이다. 부모와 학교가 사람을 만들기에 앞서 무턱대고 공부부터 시켰기 때문이다.
공부란, 인간 다음의 일이다. 조선 시대에도 이를 실천한 사람이 있었다.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를 한 명 꼽으라고 하면 쉽지 않지만, 현모양처를 꼽으라고 하면 답은 간단해진다. 그 주인공은 신사임당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교육가로서 그녀의 능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알려진 것처럼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학자 율곡 이이는 어머니 신사임당에게 교육을 받았다.
율곡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면 아이를 완벽한 인재로 기르는 신사임당의 교육가로서의 능력을 알 수 있다. 율곡은 세 살 때 글을 알았다. 하지만 그 당시 양반은 글을 읽는 것 말고는 별다른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세 살에 글을 알았다는 것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공부만 시키려고 작정하면 어떤 부모나 충분히 글을 깨치게 할 수 있다. 우리가 주목하는 부분은 다른 것이다. 이를테면 율곡은 다섯 살 때 어머니 신사임당의 병이 위중해지자 외조부 사당에 들어가 식사도 거른 채 밤낮을 잊고 기도했다. 갑자기 큰 비가 내려 사람이 물에 빠진 것을 보고 크게 걱정하며 어린 몸임에도 필사적으로 구할 방도를 찾았다. 열한 살 때는 병세가 위급한 아버지를 살리고자 스스로 팔뚝을 물어서 피를 내어 아버지의 입에 넣어드렸다. 그가 부모와 동네 어른에게 보여준 행실은 놀라움 그 자체다. 더구나 당시 그는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생이었다. 초등학생이 아니라 성인도 하기 힘든 일을 한 것이다.
율곡이 세 살 때 글을 깨친 것은 그의 인생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인격을 갖춘 사람으로 성장한 후 그는 본격적으로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열세 살 때 진사 초시에, 스물한 살 때 한성시(漢城試)에, 스물세 살 때 겨울 별시에, 스물아홉 살 때 문과에, 같은 해 8월 명경과에 모두 장원급제하며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다. 그의 학식과 인격은 세상을 감동시켰다. 율곡의 죽음에 통곡한 선조는 조례를 사흘간 보지 않았으며, 제자들은 그에게 ‘동방의 성인’이라는 칭호를 바쳤다. 죽음 이후에 더욱 존경받는 삶, 더이상 값진 인생이 어디에 있겠는가.
내 아이를 율곡처럼 키우고 싶은 부모를 위한 지침
내 아이를 율곡처럼 키우고 싶은 부모들에게 꼭 추천해주고 싶은 지침이 있다. 신사임당은 일곱 아이들의 인성 교육을 위해 새벽녘에 읽은 글 중에서 좋은 글귀를 모아 아이들이 항상 보고 마음에 새기면서 행할 수 있도록 집안의 이곳저곳에 붙여두었다. 그리고 자신도 그 글귀대로 행했다. 시간이 지나서는 아이들에게 글귀를 보았는지, 글의 뜻은 이해했는지 자신에게 알려달라고 했다. 아이들이 제대로 이해했다는 생각이 들면 또다른 글귀를 붙여두고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볼 수 있도록 했다.
조선의 대교육가인 율곡은 대제학으로 있을 때에 여덟 살 전후 아동의 교육 지침으로 『소아수지小兒須知』라는 17조의 소학 학규(學規)를 제정하여 반포했다. 어머니 신사임당에게 받은 ‘사람을 만드는 교육’이 그의 철학과 교육관을 형성했고, 최종적으로 ‘삼가야 할 일’을 나열한 다음의 17조 학규를 만들어 공포하는 데 이르렀다. 조선의 대교육가인 율곡을 길러낸 신사임당의 교육 비밀이 여기에 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중해서 읽고,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꼈으면 한다.
| | |
|
1. 교훈을 좇지 않고 다른 일에 마음을 쏟거나
2. 부모가 명령한 바를 곧 시행하지 않거나
3. 손윗사람에게 불경하여 발언을 거칠게 하거나
4. 형제가 우애하지 않아 서로 다투거나
5. 음식을 서로 다투어 양보하지 않거나
6. 다른 아이를 해치고 업신여겨 서로 싸우거나
7. 서로 경계를 받지 아니하고 화를 갑자기 내거나
8. 손놀림이 단정치 못하여 소매를 흩트리고 한쪽 발로 기대서거나
9. 걸음걸이가 경솔하여 도약하며 건너뛰거나
10. 실없는 농담을 좋아하고 웃고 잡담하거나
11. 무익하고 관계없는 일을 지어내기 좋아하거나
12.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고 나태하여 독서를 아니하거나
13. 독서를 할 때에 서로 돌아보며 잡담하거나
14. 방심하고 정신이 없고 낮에도 앉아 졸거나
15. 한가한 사람을 대하여 잡담으로 시간 버리기를 좋아하거나
16. 단점을 숨기고 허물을 감추고 언어가 부실하거나
17. 초서를 좋아하고 어지러운 글씨로 종이를 더럽히거나
| |
| | |
조선 시대에는 이 17조의 학규를 지킴에 있어 세 번 그릇됨이 있으면 벌을 주고 한 번이라도 중하면 또한 벌을 주었다. 공부에 앞서 ‘사람’을 만들고 싶다면, 위의 학규를 아이들 교육에 적극 응용하기를 바란다. 예를 들어, ‘교훈을 좇지 않고 다른 일에 마음을 쏟거나’라는 부분은 ‘교훈을 따르지 않고 다른 일에 마음을 쏟는 것을 삼간다’라고 약간 변형해서 아이들이 보기 쉽게 냉장고에 붙여놓으면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에이, 신사임당은 원래 뛰어난 인물이잖아요. 제가 할 수 있을까요?”라는 말은 핑계일 뿐이다. 좋은 글귀를 골라 냉장고에 붙여두는 게 뛰어난 사람만 할 수 있는 엄청난 일인가? 아닐 것이다. 물론 그녀가 뛰어난 까닭은 그 글귀를 붙여두는 데 그치지 않고 동시에 자신도 삶 속에서 실천에 옮겼기 때문이다. 부모가 사람이 덜되었는데, 아이들만 사람이 되는 경우는 없다. 한 가지만 명심하자.
‘가르치려 하면 실패할 것이고, 함께 실천하고자 하면 성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