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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노벨상을 함께 받은 부부

피에르 퀴리의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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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과 마찬가지로, 사실 잘 믿어지진 않지만, 서로 가까이에서 함께 꿈을 꾸며 살아가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당신이 나라를 사랑하는 꿈, 우리가 인류를 위하는 꿈, 그리고 우리가 과학을 사랑하는 꿈에 취해 말입니다.


마리에게

1894년 8월 10일
파리에서

당신의 소식을 듣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
남은 두 달 동안 당신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한다는 건 정말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지요. 그래서 당신의 짧은 편지는 무엇보다 반가웠습니다. 당신이 좋은 공기 속에서 쉰 다음 10월에 우리에게 돌아오길 바라요. 내 경우는,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그냥 시골에 머물 예정이에요. 열린 창 앞이나 정원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낼 수도 있겠지요.

우리는 서로에게 최소한, 근사한 친구가 되자고 약속했지요. (그러지 않았나요?) 당신이 마음을 바꾸지 않았기를! 약속이란 것이 꼭 지켜야 한다는 법은 없기에, 마음대로 정해질 수는 없는 것이겠지요.

예전과 마찬가지로, 사실 잘 믿어지진 않지만, 서로 가까이에서 함께 꿈을 꾸며 살아가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당신이 나라를 사랑하는 꿈, 우리가 인류를 위하는 꿈, 그리고 우리가 과학을 사랑하는 꿈에 취해 말입니다.
그 모든 꿈 중에 마지막 꿈만이, 내가 믿기에는, 유일하게 그럴듯한 꿈입니다. 우리는 사회적 질서를 바꿀 힘이 없고, 만약 우리가 그런 힘이 있다고 해도, 뭘 해야 할지 모를 거라는 말입니다. 행동을 취할 때, 그게 어떤 방향이든 간에, 우리가 득보다 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함부로 확신해서는 안 됩니다. 불가피한 발전을 늦추는 한이 있더라도 말입니다. 반대로 과학적 관점에서 봤을 때에는, 우리는 어쩌면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기대해볼 수도 있습니다. 여기의 기반은 더 탄탄해요.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 해도 습득된 지식으로 남겠지요.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봅시다. 우리가 근사한 친구가 될 거라고 동의 했지만 당신이 1년 동안 프랑스를 떠난다면 그건 너무 플라토닉한 우정이 되어 버릴 겁니다. 이 가여운 두 생명은 다시 보는 일이 절대로 없겠지요.
나와 함께 있는 것이 더 좋지 않나요? 이 질문이 당신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이에 관해 더 이상 말하고 싶어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아요. 나는 모든 면에서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나는 프리버그에서 당신을 우연히 만나게 해달라고 허락을 구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곳에 머물고 있고(내가 틀리지 않았다면), 오로지 하루를 머물고 있을 테고, 그날 당신은 우리의 친구 코발스키스와 함께 있을 테지요.

나를 믿어요, 당신의 매우 헌신적인
피에르 퀴리


♧ 함께 읽어보면 좋은 책



피에르 퀴리(1859-1906)는 프랑스 물리학자로 전자기학과 방사선연구의 선구자이다. 그는 1903년 노벨 물리학상을 폴란드인 마리 퀴리와 공동수상했다. 이후 마리 퀴리는 노벨 화학상을 받아 유일하게 두 번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되었다. 그들의 딸 아이린 퀴리도 노벨상 수상자가 되었다.

퀴리가 파리 기술원의 강사로 일을 했을 때, 피에르는 소르본 대학에서 졸업한 젊은 박사과정 학생 마리를 만났다. 그들의 공통된 관심사였단 자기학은 그들을 서로 끌어당기기에 충분했다. 피에르는 마리에게 매혹당했고 함께 지내기를 애걸했지만 마리는 여름 동안 바르샤바로 돌아가 쿠라쿠프 대학의 직장을 지원했다. 하지만 그녀가 여자라는 이유로 거절당한 뒤, 파리에 있는 피에르에게로 돌아왔다. 그들은 다음해에 결혼해서 함께 살고, 일하고 여행을 다녔다.

피에르는 10년 뒤, 길에서 사고로 비극적으로 죽었다. 이에 충격을 받은 마리는 뒤에 결혼을 한 동료와 몽캔들을 만들기도 했다. 그녀는 퀴리 연구소, 온콜로지의 마리 스클로도브스키 퀴리 연구소를 세우기도 했고, 파리 대학의 첫 번째 여자 교수이기도 했지만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서는 그녀의 성별을 이유로 그늘 회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번역후기

역사상 노벨상을 함께 받은 부부, 두 번 받은 여성, 이에 모녀까지 함께 노벨상을 받은 가족이 있을까요? 사랑을 전자기학으로 풀어내서, 서로 끌어당기는 사랑의 힘을 수식으로 풀어 낼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우리가 엑스레이를 찍을 수 있는 것도, 원자력 발전을 할 수 있는 것도 이 두 부부의 공로 때문입니다. 두 사람이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그것도 불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사랑이라는 것이 이해 불가능한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 이 부부를 통해서 증명되었습니다. 러시아의 압제 속에서 조국 폴란드를 늘 생각하던 마리 퀴리가 프랑스에서 연구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서로의 믿음과 사랑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퀴리 부인은 그가 연구하던 방사능에 노출되어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부부가 남긴 기술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지는 우리 손에 달려 있는 것 같네요.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여성이고, 이 싸움은 거의 늘 불공평하다…천재성을 가진 여자는 극히 드물다.’ 피에르는 서른 중반까지 부모님 집에서 살고 있었고, 여자를 만나는 것을 늘 불편해 했습니다. 하지만 마리 퀴리를 알게 되면서 “나는 요즘 10년 전부터 지켜오던 내 삶의 원칙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천재성을 가진 여자, 과학자로서 자신을 이해해 주고 함께 연구할 수 있는 여자를 만나게 된 것이죠. 폴란드 태생인 마리는 고국으로 돌아가 학교에서 직장을 잡으려고 했을 때 피에르는 얼마나 초조 했을까요? 편지에서 그의 심정이 뚝뚝,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 참고문헌

<『열정적인 천재 마리 퀴리』바바라 골드스미스 저/김희원 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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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서진

소설가, 한페이지 단편소설 운영자. 장편소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로 12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 2010년 에세이와 소설을 결합한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 출간. 세상의 가장 큰 의문을 풀 책을 찾아 헤매는 북원더러.(Book Wanderer) 개인 홈페이지 3nightson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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