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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저/임희근 역 | 돌베개 |
이 책은 프랑스 젊은이들에게 ‘분노’ 라는 화두를 던진 책이다. 저자는 전후 프랑스 민주주의의 토대가 된 레지스탕스 정신이 반세기만에 무너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프랑스가 처한 작금의 현실에 ‘분노하라!’고 일갈한다. 특히 젊은이들에게 사회 양극화, 외국 이민자에 대한 차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금권 등에 저항할 것을 주문한다. 무관심이야말로 최악의 태도이며, 인권을 위협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찾아가 기꺼이 힘을 보태라는 뜨거운 호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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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얇디 얇은 책속에 무언가 심오하거나 독창적인 내용이 들어있긴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아우라만은 심상치 않다. 어쩌면 이것은 책이 아닐지도 모른다. 예상해 보건대 페이지 안에 내려앉은 활자를 읽는 것 보다 이 책의 운명을 읽는 것이 더 중요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럴 때 우리는 이 물건을 ‘책’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레지스탕스의 분노, 아름다운 사회를 꿈꾸다이 책의 저자는 스테판 에셀. 2차 세계대전에서 항독 레지스탕스 활동을 벌였던 투사이다. 우리 역사로 따지자면 만주에서 항일무장투쟁을 벌인 독립군이라 할 수 있다. 올해 93세, 한국 나이론 95세가 된 그는 바로 지금, 레지스탕스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호소한다. 레지스탕스 정신, 그것이 바로 분노다.
독일에 빼앗긴 조국을 독립시키고자 했던 투사들. 그들은 독일에 대한, 파시즘에 대한 분노의 에너지로 싸웠다. 그리고 간신히 되찾은 조국을 아름다운 땅으로 만들고 싶었다. 분노(저항)의 에너지를 희망(사회개혁)의 에너지로 승화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프랑스 전국 레지스탕스 평의회는 하나의 개혁안을 짜서 독립된 조국의 원칙으로 제시한다.
“모든 시민에게, 그들이 노동을 통해 스스로 살길을 확보할 수 없는 어떤 경우에도 생존방도를 보장해주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회보장제도의 완벽한 구축”, “경제계와 금융계의 대재벌들이 경제 전체를 주도하지 못하게 하는 일까지 포함한 경제적-사회적 민주주의 정립” 등이 바로 그 원칙이다. 특정 계급-계층에 힘을 실어주지 않고, 누구나 일생을 안정되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고 선언한 셈이다.
93세 노투사의 호소에 분노의 시민운동이 확산되다그런데 그 아름다운 프랑스를 세우는 일에 일조했던 노투사가 지금 다시 분노를 말하고 있다. 오늘날 극빈층과 부유층 사이의 거대한 격차, 자본과 권력에 의한 언론 흔들기, 자유와 인권에 대한 국가의 규제 등으로 레지스탕스가 몸 바쳐 일구었던 프랑스의 근간이 부정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옛날 나치에 맞서듯, 젊은 세대에게 다시 분노를 호소하는 저자의 육성은 절박하다.
“이제 총대를 넘겨 받으라! 분노하라!”이 노투사의 육성이 남긴 반향은 크다. 프랑스에서 출간 7개월 만에 200만 부가 넘게 판매되었고, 세계 20여개 국에서 번역이 되었다. 그리고 단지 책이 아니라 하나의 ‘분노 신드롬’으로 번지고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시작된 ‘분노의 시민운동’은 70%가 넘는 국민적 지지를 받으며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고, 그리스에서도 ‘분노한 시민운동’이라는 단체가 마드리드를 모델로 시위를 시작했다. 대표적인 쟁점은 막대한 구제금융으로 대기업을 살리고, 서민들의 일자리는 감축하는 것이다. 스테판 에셀이 분노한 ‘양극화’와 맞물리는 지점이다.
‘분노’라는 이름을 걸고 있지는 않지만 지금의 대한민국도 유사한 상황에 있다. 엄청난 적립금을 축적하고 있는 사학재단, 서민들의 교육비에는 재정을 쓰지 않고 거대 토건사업에 열 올리는 정부에 대해 대학생들이 반값 등록금을 요구하고 있다. 남쪽 부산에서는 수주가 없다면서 노동자들을 해고하고도, 주주들에게는 170억 배당을 해 논란 중인 한진 중공업 사태가 있다. 돈의 흐름이 서민들과는 거리가 먼 곳으로만 흘러가는 것이 많은 이들의 분노를 낳는 것은 대한민국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 외 자본과 정권에 의한 언론 흔들기. 인권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규제 등 저자가 분노한 대부분의 쟁점은 대한민국에서도 논란 상태인 것들이다.
예상대로 이것은 책이 아니다. 하나의 상징이다!어떻게 본다면 이것은 우리에겐 낯선 상황이다. 2차 대전 후 대부분의 식민지가 독립국가가 되었을 때 우리는 분단이 되었다. 선진국들의 성장은 주춤하고 개발도상국들은 지지부진할 때,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일으켰다. 냉전이 종식된 지금 우리는 여전히 냉전을 겪고 있다. 전반적인 세계 추세와는 살짝 어긋난 행보를 보여온 것이 거시적으로 본 우리 역사인 셈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이고 세계적으로도 논란이 되고 있다. 그간 지속되어 온 세계화가 드디어 세계를 하나로 만든 것일까. 그리하여 ‘분노’역시 하나가 된 것일까. 때마침 이 책이 우리에게도 상륙한 것은 우연이 아닐 지도 모른다.
이 책의 내용보다 이 책의 운명에 더 호기심이 가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이다. 세계화 시대에 세계 각 지에서 실시간으로 동조화된 문제들과 그에 따른 분노를 이 책이 상징할 지도 모른다는 것. 아마 ‘분노의 시민운동’이 확산된다면 그만큼 세계는 변모하고 이 책 또한 하나의 ‘상징’이 될 것이다. 혹은 지금의 분노가 찻잔 속의 태풍으로 사그라든다면 이 책 역시 ‘상징’에 미치지 못하고 한 권? ‘얇은 책’에 머물 것이다. 아니 분노의 침체 조차도 하나의 상징일 것이다. 어느 쪽이 되든 이 책의 운명은 세상의 운명과 맞물릴 확률이 높다. 예상대로, 이것은 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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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에셀
1917년 독일에서 태어나 유대계 독일인 작가인 아버지, 화가이자 예술애호가인 어머니는 트뤼포의 영화 [쥘과 짐](Jule et Jim)의 실제 모델이기도 하다. 7세에 부모를 따라 프랑스로 이주하여 20세에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다. 1939년 파리 고등사범학교에 입학, 선배 사르트르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으나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입대한다. 드골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에 합류해 레지스탕스의 일원으로 활약하다가 1944년 파리에 밀입국해 연합군의 상륙 작전을 돕던 중 체포된다.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사형선고까지 받으나 극적으로 탈출한다. 전쟁이 끝난 후 외교관의 길을 걷는다. 1948년 유엔 세계 인권 선언문 초안 작성에 참여하고, 유엔 주재 프랑스 대사, 유엔 인권위원회 프랑스 대표 등을 역임한다. 퇴직 후에도 인권과 환경 문제 등에 끊임없는 관심을 갖고 사회?동가로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세기와의 춤』(1997), 『국경 없는 시민 - 장 미셸 엘비그와의 대화』(2008), 『참여하라 - 질 반데르푸텐과의 대담』(2011) 등이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