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한국에선 조용필 다음으로 김건모 위대”

윤일상 인터뷰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멜로디의 도약이 크지 않은 대중적 선율라인, 쉬운 코드진행에서 뽑아내는 리듬, 거기에 세련된 감각의 편곡까지, 만약 히트송의 조건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멜로디의 도약이 크지 않은 대중적 선율라인, 쉬운 코드진행에서 뽑아내는 리듬, 거기에 세련된 감각의 편곡까지, 만약 히트송의 조건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한 가수의 앨범이 나오기까지 오랫동안 남을 멜로디를 그려내고 코드워크를 형성하며 여기에 또 여러 차례 수정을 가해 탄생된 곡은 대중의 엄격한 잣대를 통해 사랑을 받기도, 또 흔적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20년 넘게 변함없이 대중의 사랑을 받은 멜로디를 주조해낸 작곡가는 이 이유 하나만으로도 존경받아야한다.

1992년 박준희의 곡을 시작으로 작곡가로 데뷔한 윤일상은 올해가 데뷔 20주년 되는 해이다. 그는 미스터 투의 「난 단지 나일뿐」, ,1996년 디제이 디오씨(DJ D.O.C)의 「겨울 이야기」와 「미녀와 야수(Ok? Ok!)」, 그리고 영턱스 클럽의 「정」이 소위 대박을 기록하며 ‘일급 작곡가’, ‘메가 히터’로 , 또 ‘트로트 댄스’의 창시자로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후 자신이 쓴 두 곡이 가요프로에서 1위 경합을 벌이는 해프닝이 있었을 만큼 윤일상에게 히트곡 제조기란 타이틀은 전혀 낯설지 않다.

이후 ‘터보’, ‘애즈 원(As One)’, ‘김건모’, ‘이승철’, ‘쿨’, ‘김범수’ 등의 가수와의 작업을 통해 세운 믿기 어려울 만큼의 기록들, 3-4년의 공백기 후에도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를 히트시키며 다시 자신의 위치를 찾은 건 ‘감각’만을 중요시하는 신진 작곡가와는 다른 윤일상만의 저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서울 강남 청담동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나 데뷔 20년의 축하 인사를 건네며 그간의 음악작업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목소리 톤은 낮았지만 그는 조금도 막힘없이 여유롭게 질문에 답했다.


20년 동안의 작곡가 생활, 어떻게 보면 일반 대중도 낯익은 작곡가가 됐는데, 20년을 스케치 한다면, 본인의 소감은 어떤지.

“데뷔 이후로 보자면 스무 살이 된 거잖아요. 그냥, 지금 스타트 시점인 거 같아요. 제 2의 스타트 시점 같은 느낌이요. 그리고 작년에 처음으로 뮤지컬을 했었고, 새로운 걸 계속 해야 할 시기인 것 같고. 그래서 최근엔 기타 레슨도 받고 그래요.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니까요. 계속 열심히 해나가는 중간 지점인 거 같아요.”

데뷔가 19세였다. 작곡자로 입문한 계기는.

“곡은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써왔던 터라, “음악을 해야겠다.”라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음악에 들어서게 됐고요. 게다가 외삼촌이 음악계에 계셨던 것도 그렇게 될 수 있었던 이유 같아요.”
(그의 외삼촌은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의 음악을 맡은 최경식 음악 감독이다.)

외삼촌이 가이드를 해줬나.

“그러진 않으셨어요. 오히려 외삼촌은 공부를 더 해야 할 시기고, 데뷔시키지 말라고 했었어요. 아마 삼촌과 계속 있었다면 엔지니어가 됐을 수도 있겠죠. 그러다 2~3개월 있다가 그동안 써놓은 곡을 김지환 작곡가님이 같이 하자고 해서 거기 사무실로 출퇴근 비슷하게 하게 됐죠. 그러면서 음악계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랬던 시기가 1992년도였습니다.”

20년 간, 그렇게 많은 히트곡을 낸 것을 한 두 마디로 압축해 소회한다면.

“행복과 아쉬움이 공존하는 것 같아요. 솔직히 이전에 너무 많은 작품들을 발표했을 때는, 내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도 열심히 하긴 했지만, “왜 많이 발표했을까?” 후회도 되고,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작품을 발표한 적도 있었고… 지금 되짚어보면 히트곡이라도 후회되는 작품들이 있거든요. 그때 더 열심히 할 걸, 집중할 걸 그런 작품들이 사실 있죠.”

1996년, ‘디제이 디오씨(DJ.DOC)’의 성공 이후에 제작자와 관계자 작업 요청이 어느 정도였나.

“잽제로 작업실 앞에 줄을 서는 광경이 펼쳐졌고, 제가 쉴 수 있었던 시간이 신호등에 빨간불 켜지는 순간 밖에 없었어요. 하루에 몇 프로씩 녹음이 있었고, 그래서 쓰러진 적도 있었고요. 녹음이 끝나면 작업을 해야 하는 데, 잠을 잘 수가 없었죠.”

일각에선 곡을 너무 쉽게 쓰는 것 아니냐, 진지하지 않은 것 같다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곡? 안 써봐서 그런 얘길 한다고 생각해요. 곡을 써본 사람이 그런 얘길 했다면 미친 얘기고요. 곡을 써봤다면 그게 얼마나 힘든지 알죠. 드럼의 킥(베이스 드럼) 소리 하나 잡는 것도 3시간이 걸릴 수 있어요. 글로 보자면 킥 하나는 글자 하나에 지나지 않거든요. 그런 노고를 누가 알 수 있겠어요.

가공할만한 히트곡을 쏟아내는 것 말고도 ‘트롯 댄스곡의 창시자’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그런 타이틀을 가지게 되었나. 제가 처음에 ‘트롯 댄스의 창시자’라는 말을 들은 계기가 된 곡이 영턱스클럽의 「정」이란 곡이었거든요. 사실 그 곡은 4군데에서 거절당한 곡이었어요. 사실은 저의 가장 큰 어렸을 때 꿈은 야무지게도 “빌보드를 정복하겠다.”는 것이었어요. 근데 아무리 싸워봤자 그들이 태어나면서부터 느낄 수밖에 없던 감정을 이길 순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우리 것을 섞어서 만든 걸 해보자!’ 해서 나온 게 그런 곡이었죠.”


‘디제이 디오씨(DJ.DOC)’ 이후에, 대박 히트 작곡가로서는 역시 ‘쿨’을 빼놓을 수 없다. 이승호-윤일상은 대박 콤비가 됐는데, 당시 작사가 이승호와의 작업은 어떻게 진행됐나.

“지금 그렇게 커뮤니케이션 하면서 작업할 수 있는 작사가는 많지 않아요. 아이디어가 있으면 미리 말씀드리고, 그럼 미리 그 느낌을 가지고 계시니 작업할 때 매우 빠를 수밖에 없었어요.”


윤일상은 자신의 곡의 핵심을 ‘쉽게 가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만약 포인트를 주거나 조금 독특한 코드진행이 코러스에 진입하기 전에 나왔다면 코러스는 ‘물 흘러가듯’ 자연스레 풀어내는 것. 김범수의 ‘보고 싶다’가 그러하듯 긴장된 코드워크에서 점점 익숙한 진행으로 펼쳐내는 기승전결 구조는 ‘히트 댄스곡’으로 굳어진 그의 이미지를 타파하기에 충분했다.

작곡가 윤일상의 얘기를 하면서 빌보드 차트에 진출한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에선 「하루」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김범수’의 곡이 「Hello goodbye hello」 로 빌보드 차트에 올랐던 것. 이에 대한 얘기 그리고 현재 대중음악에 관한 그의 생각도 들어봤다.

윤일상 곡의 핵심은

“기본적으로 쉬운 코드 진행이 거의 대부분이요. 그렇지만 그 중에서 남들이 덜 쓰는 코드를 앞에 쓴다면 주제부분은 좀 쉽게 가자는 거죠. 예전의 클래식 곡들을 보더라도 주제부분은 상당히 쉽거든요. 어떻게 보면 그게 곡의 핵심인 것 같아요. 클라이맥스를 부각시키기 위해서 그 전은 좀 어렵게 할 필요가 있고, 그게 어떻게 보면 형식상으로 맞는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작업할 때 안타까운 건 코드와 멜로디로 표현될 수 있는 ‘모드’라는 것이 있는데, 이 모드 류의 음악이 떠오를 때는, 베이스의 텐션을 비롯해 여러 가지를 한 번에 생각해야하는데 그걸 당장 피아노로 표현하기 힘드니까 그럴 때 고심하죠.”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하는 본인의 곡은

“글쎄요. 여러 가지 사운드 적으로 만족했던 작품은 애즈원 「너만은 모르길」이었어요. 그게 대중적으로 크게 히트한 곡은 아니지만, 편곡할 때부터 여러 나름의 시도를 했었죠. 예를 들면 터보 노래 할 때도, 어떤 음악을 할 때나 남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독특한 소리를 집어넣고 있어요. 그럴 때 만족하죠.

2000년도에 슬럼프가 왔던 요인 중에 하나도, 내가 만든 장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대중적인 장르로 일반화되면서, 그걸 바꾸고 싶었거든요. 오히려 제가 멜로디를 쉽게 써내려갈 수 없더라고요. 그 부담감으로 만든 게 「너만은 모르길」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김범수 「Hello goodbye hello」로 빌보드 진출했을 때 어땠나.

“그 때 공식적으로는 51위에 랭크됐었는데, 그게 시발점으로 쭉쭉 갔어야 했는데, 저는 이벤트적인 건 상당히 싫어해서요. 영국에서도 녹음 제의가 있었지만, 제가 아예 그곳을 가지 않는 이상은 힘든 부분이 너무 많아서 많이 놓친 거 같아요. 언제일지 모르지만 지금도 유학 생각이 있고 부딪혀볼 생각이 있습니다.”

「하루」, 「보고 싶다」를 보면 작곡가에게는 내 곡을 불러줄 수 있는 싱어가 절대적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하루」를 말씀드리면, 사실 그게 노래 녹음을 6개월 동안 했어요. 그 전에 <약속> 음반 할 때 벌써 오디션을 봤고 섭외를 했었죠. 제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보컬이 아닌 거 같았어요. 그래서 자신이 없어서 안 하게 됐고, 2집 때 매니저 형이 부탁해서 다시 작업이 이뤄졌죠. “그러면 범수가 가진 톤 중에 서로 잘 표현할 수 있는 걸 찾아내보겠다!”라고 해서. 그래서 6개월 걸렸어요.

사연이 많아 보이는 톤을 어떻게 만들까 하다가 잘 부르는 노래 불러라 하라고 했는데, CCM을 부르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굉장히 임팩트가 크게 왔었어요. 그래서 그 톤을 가지고 만들어보자 했던 거죠. 범수가 사실 연애경험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많이 없었어요. 그래서 연기를 해야 했고, 많은 경험들을 겪게끔 해주기도 했고요. ‘하루’는 연기가 아주 완벽하지는 못하다는 걸 알 수 있지만, 그걸 완성한 다음에 ‘보고 싶다’는 좀 쉽게 만들어졌어요. 「하루」란 작품 없이는 「보고 싶다」가 없었죠.”


그런 측면에서, 이 가수는 정말 대단하다, 곡 소화력이나 전체적으로 내 작품을 파악하는 면에서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싱어는 누군가.

“일단, (김)건모 형 같은 경우는 대한민국에서 음악적인 어빌리티를 가진 몇 안 되는 가수인 거 같아요. 악기도 다루고 곡도 만들고. (조)용필 형님 다음으로 대단하지 않나 라는 생각이 많이 들고요. 그런 부분이 대중적으로 많이 비추어지진 않았어요. 건모 형을 만나면서 곡에 대한 이해력, 받아들이려는 노력, 프로라면 가져야 할 프로듀서로서의 예의, 그런 것들이 아주 타고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고요.

(이)승철 형 경우는 지금은 왕래가 많지 않지만, 「오늘도 난」 하기 전에, 승철 형 전국 투어 콘서트 디렉팅을 봤었어요. 몇 달간 같이. 광주 공연이었나? 반응이 시원찮았어요. 형 더 열정적으로 노래 좀 해달라고, 안되면 무대에서 무릎이라도 꿇어야 하지 않느냐고 추궁하니까. “야, 이 나이에 무릎을 어떻게 꿇느냐?” 했는데, 2부 시작하자마자 무릎을 꿇더라고요. 아 그걸 보고 정말 “프로는 다르다.”라는 생각을 했죠. 보컬 녹음 진행 할 때도 어떠한 얘기를 하던지 다 받아들여요. 성격은 와일드 한데, 녹음에 들어가서는 대충 가는 부분이 없어요.”


그럼 신인 중에는

“요아리라는 신인이 있어요. 그 친구는 사실 ‘스프링쿨러(Sprinkler)’라는 밴드의 보컬로 우연찮게 브라운 아이드 걸스(Brown Eyed Girls) 오프닝에 섰었는데, 관객을 아주 휘어잡더라고요. 무대에서 끼가 정말 대단해서 같이 작업하고 싶어서 그 친구를 위해서 곡도 만들고 해서 녹음에 들어갔죠. 목소리 톤 자체에 그냥, 보통 하는 얘기, 그냥 노래 부르는 것들에 대해서 스토리가 있는 친구예요.”

최근 4-5년간 윤일상이란 이름이 더디게 보였죠. 약간 부진했다고 할까. 그런데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로 다시 자주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 느낌이 어때요.

“오래된 곡이고, 글쎄 뭐, 어떻게 평가 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최선을 다해 쓴 곡이고. 당시 은미 누나 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 땐 몰입해서 작업했던 곡이고요. 제 생각엔 진정성 있는 곡은 언제든지 되지 않겠느냐. 당장 히트하지 않아도요. 사실은 이 곡은 두 곡이 합쳐진 곡이에요. 그래서 원래 송 파트, 브릿지 파트, 사비가 다 따르게 있었고. 코러? 파트가 따로 있었는데, 두 곡을 합친 거죠.”

윤일상이 생각하는 좋은 대중음악이란

“진정성이 포함되어 있는 음악. 진정성이라면,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제가 슬픈 발라드를 만들었다면 내 스스로 이미 슬퍼야 하고 눈물을 흘려야지 대중에게 조금의 감동이 있을 것이다 라고요. 그게 영화를 보고 느꼈던 감동일지라도, 너무 슬픈 영화를 보고 거기에 영감 받아 곡을 썼다 해도 내 감성에 오리지널리티 감성이 있어야지, 내 스스로 즐겁게 춤을 추고해야지 대중이 조금이라도 반응할 수 있을 거라고요.”


표절 시비에 대한 얘기도 빼놓을 수 없는데 이에 대한 얘기도 듣고 싶다.

“표절을 한다는 건 중대한 범죄거든요. 예전에 조지 해리슨 만해도 너무 긴 시간 고통을 받았잖아요. 개인적으로 조지 해리슨을 믿고 싶은데, 어찌됐든 남의 작품을 의도적으로 베낀다면, 그건 음악가로 자질이 없죠. 저는 지금까지 하면서 얘기치 않게 비슷하게 간 경우는 있어요. 그러나 의도적으로 한 적은 없어요. 그리고 제곡을 제가 베낀다는 것에 대해 항변 하자면, 베이비페이스(Babyface), 데이비드 포스터(David Foster)의 음악을 들어보면 이들의 곡도 각각 비슷한 색깔을 가지고 있거든요.

예전에 승철 형 곡 중에 「비련」이라는 곡이 스팅의 「Fragile」과 비슷하다고 얘기가 나온 적이 있어요. 비슷한 부분이 어떻게 보면 있는 거 같아요. 그런데 다 다르거든요. 제가 곡을 베낀 것도 아니고… 그런데 제가 그 곡을 좋아했나 봐요. 그 감성을 받아서 쓰다보니까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가요를 잘 안 들어요. 팝도 전곡으로는 잘 안 듣고요. 혹시나 영향을 받을까봐… 코드가 자꾸 연상이 되는 경우가 있을 것 같아서요.”


만든 곡을 누군가에게 들려줬을 때 어디서 들은 것 같다고 하면 어떡하는가.

“바로 지워버려요. 요즘엔 음악을 갖다 대면 곡을 찾아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곡 쓰고 나서 그걸 해보기도 하고 그래요. (웃음) 전무에서 유를 창조하기는 어렵다고 봐요. 그래서 관심을 가진 게 하나가, 판소리와 대중음악의 결합 같은, 그런 것들을 시도하고 있죠.”

본인에게 음악가로 들어서게 한 뮤지션은

“비틀스입니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도 피아노를 하셨고, 항상 클래식 환경에서 자랐는데, 초등학교 3학년 때 동생 탄생 기념으로 첫 곡을 썼었어요. 그 당시 동요 비슷한 곡이었죠. 그러다가 비틀스와 함께 팝의 관심이 쏠리게 되었어요. 첫 앨범은 베스트였고 그 곡 중에 「Black bird」란 곡이 굉장히 크게 다가왔었죠. 그 당시 라이선스가 안 됐기 때문에 백판으로 구입하기도 했고요. 고등학교 때는 거의 록의 미쳐 살았죠. ‘레드 제플린’, ‘딥퍼플’같은 그룹이요.”

‘윤도현 밴드’와 작업했을 때, 록 마니아들은 YB가 타락했다, 왜 하필 록밴드가 인기 작곡가 윤일상에게 곡(「잊을게」)을 맡겼냐 하는 비판이 있었던 게 사실이죠.

“글쎄요. 제가 가진 생각은 그래요. 그럼 YB는 대중가수가 아니냐. 그렇게 가다 보면 록이 발붙일 자리는 계속 적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개인적으로는 록 장르를 많이 쓰지 못한 게 상당히 아쉬워요. 그리고 록이라는 장르가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정말 어렵죠. 록은 주류에 속하는 형식인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니까. 그래도 계속 작업하고 있어요.”


현재의 작곡법을 어떻게 보는가, 윤일상의 작곡은 댄스지만, 기승전결이 확실했던 것에 비해, 요즘의 후크송은 그렇지 않다.

“후크송이라는 게 주제 부분을 극대화 시키고 반복시키는 건데 저는 그런 건 약간 지양했던 편이였거든요. 제가 나이가 지금은 젊었고 그 감성을 받아들일 감각이 있었으면 받아들이겠는데, 지금 제 나이의 감성은 ?것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것이죠.

냉정하게 표현하자면, 음악 자체가 인스턴트화가 되고 있잖아요. 음악계 현실이 인스턴트화 될지 할지라도 음악 하는 사람은 그러지 말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후크송 작곡가를 비판하는 건 아니고, 후크송을 쓰더라도 거기에 진정성이 있고 가치가 있다면 오래 갈 수 있죠. 그렇지 않고 인스턴트화 된 마음으로 쓴다면 그건 쓰레기나 다름없거든요. 만약 그걸 제가 쓴다고 해도 그건 쓰레기나 마찬가지죠.

덧붙여서 음악 후배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MP3에 대한 경각심을 많이 얘기하잖아요. 그러면서도 음악 후배들 본인들은 불법 소프트웨어를 사용해요. 그거는 사실 말할 자격이 없는 거죠. 내가 도둑질 하면서 음악 만드는 건 자격이 없는 거예요. 기본적으로, 아마추어라면 얘기가 다르겠지만, 프로 작곡가라면 그러지 말아야죠. 현재 프로 작곡가들에서도 많아요. 특히 PC로 작업하는 작곡가들이요. 그 친구들은 돈이 없다고 하는데, 저 같은 경우는 악기 하나로도 만들었거든요. 그 때로 돌아가자는 건 아니고, 그 친구들이 그 많은 걸 다운받으면서 그 소리를 다 아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거든요. 그거보다는 단 하나의 소리일지라도 내가 조정해서 그게 좋든 나쁘든 내 소리니까 그거에 집중하는 게 더 옳지 않냐라는 거죠. 심지어 시퀀서까지도 불법으로 쓰는 친구들이 많아요.”


마지막으로 내 인생의 작곡가는 누구인가.

“류이치 사카모토(Ryuichi Sakamoto)입니다. 그 분을 닮고 싶은 부분은,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음악을 계속 갈구하고, 나이가 들면 감각이 죽는다고 얘기들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 나이에 맞는 감각이 생기는 거죠. 우리 작곡가 중에서는 고 이영훈 선생님과 오태호 선배님을 존경합니다.”

인터뷰 : 임진모, 조이슬, 이종민
사진 : 김민호
정리 : 조이슬

글 / 조이슬(esbow@hanmail.net)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3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ㆍ사진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오늘의 책

사람을 남기는 독서와 인생 이야기

손웅정 감독이 15년간 써온 독서 노트를 바탕으로 김민정 시인과 진행한 인터뷰를 묶은 책이다. 독서를 통해 습득한 저자의 통찰을 기본, 가정, 노후, 품격 등 열세 가지 키워드로 담아냈다. 강인하지만 유연하게 평생을 치열하게 살아온 손웅정 감독의 인생 수업을 만나보자.

쉿, 우리만 아는 한능검 합격의 비밀

한국사 하면 누구? 700만 수강생이 선택한 큰별쌤 최태성의 첫 학습만화 시리즈. 재미있게 만화만 읽었을 뿐인데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가 저절로 풀리는 마법! 지금 최태성 쌤과 함께 전설의 검 ‘한능검’도 찾고, 한능검 시험도 합격하자! 초판 한정 한능검 합격 마스터팩도 놓치지 마시길.

버핏의 투자 철학을 엿보다

망해가던 섬유공장 버크셔 해서웨이가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거듭난 과정을 보여준다. 버크셔의 탄생부터 버핏의 투자와 인수 및 확장 과정을 '숫자'에 집중한 자본 배분의 역사로 전한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의 진면목을 생생하게 담아 가치 투자자라면 꼭 봐야 할 필독서다.

뇌를 알면 삶이 편해진다

스트레스로 업무와 관계가 힘들다. 불안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다. 그냥 술이나 마시고 싶다. 이런 현대인을 위한 필독서. 뇌과학에 기반해 스트레스 관리, 우울과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기, 수면과 식습관에 관해 알려준다. 처음부터 안 읽어도 된다. 어떤 장을 펼치든, 삶이 편해진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