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대중화시켜라
우리 남매는 와인 만화의 원작자이면서 와인 마니아이기도 하다. 물론 직접 와인을 판매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단지 마니아의 한 사람으로서 “와인은 별로 마시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사람과 마주치면 이 매혹적인 세계로 꼭 끌어들이고 싶어진다.
우리 남매는 와인 만화의 원작자이면서 와인 마니아이기도 하다. 물론 직접 와인을 판매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단지 마니아의 한 사람으로서 “와인은 별로 마시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사람과 마주치면 이 매혹적인 세계로 꼭 끌어들이고 싶어진다. 『신의 물방울』에서 주인공 시즈쿠가 와인을 싫어하는 동료를 와인의 세계에 끌어들이는 에피소드를 등장시킨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와인과 친하지 않은 사람을 와인의 세계에 강제로(!) 끌어들이기 위해선 역시 ‘근사한 와인’을 마시고 감동하게 만드는 방법이 최고다. 우리 남매는 일과 관련된 회식 자리에도 와인을 들고 가서 와인 초보자에게 감동적인 와인을 권한다. 그러면 체질적으로 술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대개 우리의 컬렉션에 감동한다.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그는 와인 팬이 된다. 이런 변화를 보는 것이 즐거워 ‘와인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 나타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최고 와인 한 병을 저장고에서 꺼내 대접하게 되는 것이다.
『신의 물방울』을 연재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이었다. 웹 관련 회사 사람들이 일 문제로 우리 작업실에 찾아왔다. 그 직원들 가운데 ‘와인을 별로 마신 적 없다’는 초보자가 한 명 있는 것이 아닌가.
때가 왔다!
우리 남매는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샹볼 뮤지니 마을의 근사한 특급 밭에서 나오는 ‘본 마르Bonnes Mares 1997년산’을 내놓기로 했다. 생산자는 도르앙 라로즈라는 그 일대에 특급 밭을 여러 개 소유하고 있는 부르고뉴의 대부호다. 병마개를 열자 근사한 냄새가 향긋하게 피어올랐다. 아무래도 마실 때가 된 듯했다. 붉은 꽃과 검은 흙, 구운 캐슈넛, 잣, 희미한 커피 향기. 과일 맛이 가득 넘쳐흘러 황홀경에 빠져들게 했다. 그 초보자는 이 와인을 마시자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 뒤 그는 와인에 흠뻑 빠져 결국 집에 자신의 셀러(개인 저장고)를 두게 됐다고 한다. 정말 기쁜 일이다.
우리 남매에겐 와인 초보자용으로 내미는 비장의 카드가 있다. ‘지로라트’Girolate라는 와인이다. 이 포도주는 『신의 물방울』에서 대히트를 친 ‘몽페라’의 샤토가 만드는 명품으로, 한 그루의 포도나무에서 두세 송이로 수확량을 제한한다. 그래서 잘 익은 자두를 꼭꼭 채워 넣은 듯한 응축감이 느껴지는데 이상하게도 그 맛은 너무 진하지도, 떫지도 않다. 와인의 품질이 참으로 우아하다. 특징은 입안에서 무겁게 느껴지는 풀보디 스타일이지만, 마개를 따서 바로 맛있게 마실 수 있다는 점이다.
북이탈리아의 괴물 와인으로 알려진 ‘미아니’Miani도 포도나무 한 그루당 포도의 수확량을 세 송이로 제한한 프리미엄 와인이지만, 가격은 병당 3만엔 이상(메를로 품종 기준)으로 고가다. 그에 비해 ‘지로라트’는 약 1만 엔으로 훨씬 싼 편이다. 우리는 이 와인을 대량 확보해 놓고 와인 초보자를 만나면 ‘자, 놀라시라!’ 하는 마음으로 권한다. 물론 ‘지로라트’는 상당히 높은 확률로 초보자를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어 와인 마니아로 바꿔 놓는다.
그동안 경험에 비춰 볼 때 초보자를 마니아의 길로 인도하려면 다음과 같은 요소를 충족시키는 와인을 권할 필요가 있다.
첫째, ‘마시기 적당한 때가 된 와인’. ‘본 마르 1997년산’은 제대로 말하자면 마시기 적당한 시기는 좀 더 기다려야 하지만, 마실 시기에 접어든 것은 확실했다. 금방 발매된 와인의 경우, 초보자는 그 숨은 가능성을 간파하기 어려워 맛없는 와인으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둘째, ‘마개를 따서 바로 마실 수 있는 맛있는 와인’. 장기 숙성형 와인은 마개를 딴 지 한 시간 이상이 지나지 않으면 와인이 채 열리지 않아 떫기만 할 뿐이다. 이러면 초보자는 맛없는 와인으로 여기게 된다.
『신의 물방울』 애독자 중에는 마니아 수준에 도달한 분도 많을 것이다. 그런 분들은 꼭 와인 초보자인 친구들을 마니아의 길로 이끌어 줬으면 한다. 와인을 한없이 사랑하는 우리 남매는 전 세계에서 와인 마니아가 늘어나는 것을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초보자 입장에서도 룰은 있다. 사람들은 보통 와인므 처음 마시는 초보자들에게 비싼 와인을 마시기보다는 저렴한 와인을 마셔 보라고 권한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반대한다. 초보자일수록 비싼 와인을 마셔 봐야 한다는 게 나의 입장이다.
나와 남동생이 DRC ‘에세조’를 마시고 와인의 세계에 입문하고, 무슈 스도가 ‘샤토 몽로즈’를 마시고 프랑스에 정착하게 된 것처럼 좋은 와인을 접하면 와인의 매력에 빠지고, 심지어 인생의 항로까지 수정될 수 있다.
초보자가 꼭 경험해 봐야 할 좋은 와인은 피니시(잔향)가 오랫동안 남는 와인이다. 피니시는 마시고 난 후 입과 코에 남아 있는 향을 뜻한다. 비싸다고 무작정 좋은 와인은 아니지만 피니시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와인들은 대부분 비싼 편으로 부르고뉴 와인들이 많다. 피니시를 느낄 수 있는 와인 가운데 그나마 저렴한 것들은 일본에서 4,000~5,000엔 정도 한다. 물론 한국은 이보다 훨씬 비쌀 것이다. 특히 “이거 상당히 괜찮다.”라고 느낀 것이 ‘도멘 드 르루아’Domaine de Leroy, ‘비제 르루아’Bize Leroy 같은 와인들로 일본에선 1만 엔 정도에 팔린다.
하지만 초보자들로서는 아무리 와인에 빠져도 이런 와인을 선뜻 구입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초보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방법은 같이 마실 친구를 찾아보라는 것이다. 난 처음부터 남동생이 있었기 때문에 좋은 와인을 2분의 1 가격으로 마실 수 있었다.
실제로 와인 한 병은 혼자 마시기에 많은 편이다. 보통 와인 한 병은 8~12잔이 나온다. 하지만 실제 한 병의 와인을 마시며 적당하게 음미하면서, 평가할 수 있는 데 이상적인 인원은 네 명이다. 그리고 한 병의 와인을 4분의 1 가격에 마실 수 있으니 부담이 한결 덜할 것이다. 특히 와인을 같이 마시면 서로 와인의 맛과 향에 대해 공유할 수 있고 와인에 한층 더 깊게 들어갈 수 있다.
※ 운영자가 알립니다
<와인의 기쁨>은 ‘중앙books’와의 제휴에 의해 연재되는 것이며, 매주 수요일 2개월간(총 8편) 연재될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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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다다시> 글/<오키모토 슈> 그림9,000원(10% + 5%)
'신의 물방울'의 저자 아기 다다시가 전하는 와인이야기. 와인 테이스팅법, 디캔팅 노하우, 한국에서 인기 있는 와인 등 실용적인 팁과 취재를 위해 보르도와 부르고류를 여행하며 만난 유명 와인생산자들 이야기, 한국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 등 살아있는 와인 이야기를 담았다. 좋은 와인을 만나면, 인생의 항로까지 수정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