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민 : 뉴욕에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지금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그림을 그리며 일러스트레이터 살고 있다. 식물 기르기도 좋아해 최근엔 『식물 그리고 사람』 이라는 책을 펴냈다.
나를 취미의 세계로 이끈 것은?
아무리 좋은 회사에서 일 해도 그 작업물은 온전한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브랜드를 위한 디자인일 뿐이었죠. 내가 하고 싶은, 나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 일에 점점 흥미를 잃게 만드는 요소였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그림 그리는 손은 놓지 않았는데, 집 근처의 작은 공원에 다니면서 그리는 걸 즐겼어요. 주말에는 당연히, 주중에도 종종 산책을 나갔어요. 동네 할머니들이 가드닝을 너무 예쁘게 해 놓아 갈 때마다 처음 보는 식물이 보이니 자연히 그리고 싶어지더라고요. 이름 모를 풀꽃들을 그리기도 하고 낮잠도 자고 그랬는데, 정신적으로 힘들거나 지칠 때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 큰 위안이 되었어요.
다시 취미가 직업이 되었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삶은 어떤가요?
사실,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그 일이 싫어질까 두려운 마음이 있긴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자유롭고 좋을 줄 진작에 알았더라면’이란 생각을 많이 해요. 일에 대한 의뢰가 들어와도 일단 '아, 어떻게 하면 예쁘게 그릴 수 있을까'라고 고민 하는 것이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요. '아, 어떻게 하면 많이 팔리는 디자인을 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할 수 밖에 없었던 디자이너의 삶과 다른 점이겠지요.
식물 일러스트를 많이 그립니다. 가장 즐겨 그리는 소재로 식물이 등장한 이유는?
아파트를 싫어하시는 아빠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줄곧 주택에서 자랐어요. 마당에 여러 나무들을 키웠는데, 언니들과 동생, 친구들이랑 꽃잎을 물에 띄워 소꿉장난을 하고, 향 좋은 풀잎을 가지고 놀았어요. 자연스럽게 식물과 함께 생활한 거죠. 시골에 놀러 가거나 산에 가면 엄마가 저 꽃은 무슨 꽃이고, 저 풀은 이름이 뭐다 얘기 해주셨는데 그게 참 좋았어요. 자연이잖아요. 사람이 만들지 않고, 만들 수 없는 자연이라 때때로 아무리 표현하고 싶어도 표현이 안되는 색이나 아름다움이 있어요.
식물 기르기 취미는 어떤 즐거움이 있나요?
식물은 아주 조금씩 천천히 자라요. 매일 보면 모르다가 예전 사진을 보면 깜짝 놀라요. 언제 이렇게 얘가 자랐나 싶죠. 나와 같이 살면서 이렇게 매일매일 자라고 있구나 생각하면 흐뭇하고 기뻐요. 사실 이사할 때마다 식물을 조금씩 줄여요. 여행갈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죽는 식물을 보는게 싫기도 하고요. 지금은 제가 만든 포터리에 선인장들을 키우고 있고, 선이 예쁜 올리브나무, 수형이 아름다운 무늬 구기자, 첫눈에 반한 대왕송, 봄에 향이 은은한 흰색 꽃을 피우는 미선나무, 잔잔하고 우아한 붉은 꽃을 엄청 많이 피우는 루셀리아가 함께 살고 있어요.
식물을 키우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요?
너무 과도한 애정으로 저도 초반에는 많이 실패했어요. 물을 너무 많이 자주 줘서 죽은 적도 많고요. 통풍을 잘 안 해줘서 벌레가 생겨 시들시들해진 적도 많아요. 식물이란 참 예민하고, 정답이 없는 것이라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면서 알아가야 하는 것 같아요. 종류마다 키우는 방법이 다르고요. 어디서 읽었는데, 집에서 키우는 식물은 주인 발소리에 산다고 하더라고요.
『식물 그리고 사람』 은 어떤 책인가요?
제목 그대로 사람과 식물을 함께 표현한 책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저와 길던 짧던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들이라 그들만의 이미지가 있어요. 마찬가지로 제가 좋아하고 아끼는 식물들에게도 제가 생각하는 이미지가 있고요. 사람과 식물들을 주로 그리다 보니 자연스레 이 둘을 함께 연결해보면 어떨까를 생각하게 됐고요. 자세한 이야기는 책을 보시면 알 수 있답니다.
내가 계속 하는 이유.
요즘 들어 자주 생각하는 것이 좋아하는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에 대한 것이에요. 좋아하는 일과 잘 하는 일은 다를 수 있잖아요. 너무 좋아하는 일인데 잘 하지 못할 수도 있고, 내가 잘 하는 일이지만 즐기기 힘들 수도 있고요. 저는 좋아하는 그림을 즐기며 할 수 있고, 또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니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낙경
프리랜스 에디터. 결혼과 함께 귀농 했다가 다시 서울로 상경해 빡세게 적응 중이다. 지은 책으로 <서른, 우리가 앉았던 의자들>, <시골은 좀 다를 것 같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