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보다 약한, 핵폭탄보다 강한
이 소설도 『식당사장 장만호』처럼 자전적인 요소가 많아요. 생계를 위해 일본으로 떠났던 할아버지와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원폭 피해자인 아버지의 삶이 작품의 소재가 되었으니까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17.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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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터의꽃_김옥숙작가사진_1.jpg

 

고통 속에서 희망을 퍼 올리고, 비극 속에서 새 의지를 불태우는 것은 역설이 아니라 모든 시대, 모든 사람의 일상이다. 진흙 밭을 뚫고 나오는 연꽃의 얘기는 비유가 아니라, 처절한 사실 묘사다. 그러나 우리는 ‘꽃잎보다 약하지만, 핵폭탄보다 강한’ 우리 자신을 너무나 쉽게 잊는다.

 

김옥숙 작가의 신작 『흉터의 꽃』은 자명하지만 쉽게 발견되지 않는 우리 모두의 잠재력을 큰 울림으로 복원한다. ‘한국의 히로시마’ 합천 사람들의 얘기다. 원폭 피해자들의 고통이 아직도 절절한 그곳에서, 작가는 폐허와 허무를 삶의 터전으로 바꾸어내는 사랑과 사람들을 포착한다.

 

『흉터의 꽃』이란 제목에선 아름다움과 비애가 함께 묻어납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애초 이 소설의 제목은 ‘검은 강’이었어요. 한국의 히로시마 합천의 황강과 히로시마를 관통하는 일곱 개의 강, 원폭 피해자들의 가슴에 흐르는 눈물과 상처를 상징하는 제목이었죠. ‘검은 강’이라는 제목이 원폭의 비극과 고통만을 강조하는 듯해 ‘흉터의 꽃’으로 제목을 바꾸게 되었어요. 원폭의 흉터 위에서도 평화의 꽃을 피워낸 원폭 피해자들의 삶에 대한 끈질긴 의지를 나타내는 제목입니다. ‘흉터’는 강분희의 상처 가득한 삶과 원폭 피해자들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겪었던 가난, 병고, 사회적 차별을 상징합니다. 꽃은 생명의 의미예요. 흉터 위에서도 꽃을 피워낸 원폭 피해자들의 삶에 대한 치열한 의지와 용기를 뜻합니다. 분희의 딸 인옥은 흉터를 꽃으로 만든 인물이에요. ‘흉터의 꽃’은 원폭의 흉터 위에서도 아름다운 평화의 꽃을 피워낸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원폭 피해자 가족의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인생을 담고 있습니다. 어떤 부분이 가장 쓰기 힘들었는지, 혹시 집필하면서 작가님도 눈물 흘린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일제 강점과 원폭 피해라는 실제 역사를 다루었기 때문에 소설의 재미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역사적 내용을 적절하게 안배하는 일이 힘들었습니다. 가장 쓰기 힘들었던 부분은 원폭 투하 당시의 상황을 그려내는 것이었죠. 『맨발의 겐』이나, 『카운트다운 히로시마』 등 관련 서적을 참고하며 처참한 상황을 묘사했는데 그 무렵엔 악몽을 자주 꾸기도 했어요. 한 마리 늙은 소처럼 흙투성이가 되어 산밭을 개간하는 강순구, 태수가 아이를 묻으러 가는 장면이나, 분희를 벼랑 위에 세웠을 때, 아이를 잃은 동철이 밭에 소와 쟁기를 버려두고 훌쩍 떠날 때, 그리고 인옥이 퉁퉁 불은 라면 냄비 앞에 앉아 아이들과 통곡하는 장면을 묘사할 때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곤 했어요.

 

전작 『식당사장 장만호』는 식당을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쓰셨습니다. 『흉터의 꽃』은 원폭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취재를 통해 쓰셨습니다. 체험과 취재…, 집필 방식도 달랐을 것 같은데요.

 

이 소설도 『식당사장 장만호』처럼 자전적인 요소가 많아요. 생계를 위해 일본으로 떠났던 할아버지와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원폭 피해자인 아버지의 삶이 작품의 소재가 되었으니까요. 두 분 다 오래전에 돌아가셔서 일본 히로시마 생활, 원폭 당시의 상황에 대해 들은 적은 없었어요. 때문에 다양한 방식으로 취재도 하고 자료 연구도 해야 했어요. 어머니께 이야기 들은 것을 바탕으로 퍼즐을 이어 붙이듯 썼고, 역사적 배경에 대해 쓰기 위해 책들과 자료를 바탕으로 공부하면서 작업했어요. 합천 원폭복지회관에서 생활하시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구술 증언도 듣고 합천 원폭지부 지부장님께 자료 지원도 받았어요. 원폭2세환우회 회장님을 만나 취재한 내용을 소설에 많이 반영했고, 김형률 추모제와 합천비핵평화대회에 참석했어요. 관부연락선의 여정을 밟아 일부러 카페리호을 타고 시모노세키에서 신칸센을 타고 히로시마에 도착해 평화공원을 둘러보기도 했어요. 취재를 하면서 원폭 피해자 운동을 하는 분들의 신념과 열정에 깊이 감명을 받고 배운 점도 많습니다. 많은 취재가 바탕이 된 소설을 쓰면서 자료의 취사선택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어요.

 

소설 속에서 동철은 원폭 피해를 입고 흉터투성이가 된 분희를 한결같이 사랑하고 아껴줍니다. 선생님은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얼마 전 부산역에서 쓰러진 한 노인을 본 적이 있었어요. 정신을 못 차리던 노인에게 누군가 물을 마시게 했어요. 의식이 가물가물해지던 노인이 물을 마시더니 잠시 뒤 정신을 차렸죠. 사랑은 어쩌면 생명을 살리는 물 한 모금이 아닐까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란 톨스토이의 소설처럼 인간은 사랑으로 사는 게 아닐까요. 물은 모든 것을 감싸안고 죽어가는 생명도 살리고 어떤 더러움도 씻겨내고 조건 없이 주기만 하죠. 물은 그 어떤 형태의 그릇에 담겨도 제 모습을 고집하지 않고 그릇에 맞춰 제 몸을 바꿀 줄 압니다. 사랑은 연약한 꽃송이처럼 훼손당하기 쉬운 것 같아도 핵폭탄보다도 힘이 세다고 생각합니다. 타는 갈증으로 숨이 막힐 때 시원한 물 한 모금만 마셔도 온 세상을 얻은 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이 다 외면한다 하여도 한 사람만 나를 끝까지 믿어준다면, 인생에서 단 한 순간이라도 치열하게 사랑하고 사랑을 받았던 순간이 있다면 그 힘으로 이 모질고 신산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선생님 소설을 보면서 ‘밥’과 ‘엄마’라는 두 글자를 떠올립니다. 『식당사장 장만호』에선 식당으로 내몰린 여성들의 삶을 통해 따스한 밥 한 끼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려주셨습니다. 『흉터의 꽃』에선 지독한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온갖 일을 하는 주인공이 “더럽긴 뭐가 더러워. 돈이 없어 새끼 굶기는 게 제일 더럽지.” 말합니다. 밥과 엄마에 대한 말씀을 더 듣고 싶습니다.


사랑은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 속의 아름답게 포장된 관념이 아니잖아요. 사랑이 구체적인 몸을 얻는다면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하나가 밥이 아닐까 싶어요. 밥은 당당하고 건강한 노동, 내 새끼나, 내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책임이 아닐까요. 『흉터의 꽃』에서 엄마뿐 아니라 아버지 강순구 또한 제 목숨을 깎아내며 밭을 개간해 자식들이 먹고살 양식을 마련합니다. 새끼들을 먹이기 위한 부모의 모든 노동은 숭고합니다. ‘엄마’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왜 ‘전사’가 떠오르는지 모르겠어요. 예전에는 엄마에 대해 연민의 감정으로 보았죠. 그 대책 없는 무지막지한 희생에 대해 화도 났어요. 그런데 이 소설을 쓰면서 엄마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어요. 사랑을 지키는 사람, 사랑에 대한 구체적인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그 어떤 두려움도 이겨낸 사람이 바로 엄마가 아닐까요. 하지만 엄마라면 엄마 자신부터 아끼고 더 사랑해주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엄마도 한 인간으로서 행복할 권리가 있으니까요.

 

여성에게 주어진 엄마, 딸, 아내, 며느리, 친구의 역할 중에 쉬운 게 하나도 없는 사회입니다. 선생님은 ‘소설가’라는 또 하나의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한국사회에서 한 여성이 소설가로 살아간다는 것, 어떤 의미일까요?
 
한국사회에서 여성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 그 의미는 어쩌면 투사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유명 작가도 아니고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여성 작가는 눈치를 봐가며 가족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글을 써야 하죠. 소설은 소유욕이 아주 강한 애인과도 같아서 장편소설을 집필하는 동안은 에너지를 그곳에만 집중해야 하는데, 모든 역할을 완벽하게 해내기란 쉽지 않죠. 인생의 어느 한 순간은 타인들이 강요한 역할들을 내려놓고 자신만의 시간을 확보할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한국사회에서 한 여성이 작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조금 더 이기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타협하고 포기하려는 자신, 그리고 치렁치렁한 역할의 사슬로 묶는 타인들과, 좀더 치열하게, 그리고 지혜롭게 싸울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원폭 피해와 관련 없는 독자들에게도 이 소설이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요?


핵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이 땅에 핵으로 인해 고통 받는 이들이 없기를 바라며 이 작품을 썼어요. 소설 속의 정현재는 자신의 아버지가 원폭 피해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두려워합니다. 그런 정현재에게 친구 K는 대한민국은 핵의 나라라고, 모든 사람은 잠재적인 피해자라고 말합니다. 북한의 잦은 핵 위협으로 인해 우리는 핵의 불감증을 앓고 있어요. 언제 어느 때 우리 머리 위에서 핵이 터져 우리의 소중한 일상을, 사랑하는 이들을 먼지로 만들어버릴지 모르는데도 우리는 핵의 위험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죠. 히로시마 원폭 투하의 참상은 72년 전 과거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현재 그리고 미래가 될 수 있어요. 피폭 피해는 부모 세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몇 대에 걸쳐 후손들의 삶까지 파괴해버립니다. 북핵 위협, 사드, 원전 밀집도가 세계 최고인 대한민국에서의 삶은 핵의 지뢰밭 위에서 살아가는 일이에요. 이 책을 통해 온 국민이 한반도의 비핵화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다면 좋겠습니다. 핵의 공포가 사라지고 평화가 꽃피는 그런 세상을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하니까요.


 

 

흉터의 꽃김옥숙 저 | 새움
소설 『흉터의 꽃』은 일반화된 외면과 회피를 헤치고 ‘한국의 히로시마’와 일본의 히로시마를 오간다. 원폭 비극을 송곳처럼 파헤친다. 세대를 거쳐 대물림되는 고통을 겪고 있는 원폭 피해자와 그 후손의 삶을 때론 절절하게, 때론 담담하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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