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산행>의 한 장면
영화 <부산행>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세계다. 각자 살 길을 도모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이다. 열차 안에서 물밀 듯 달려드는 좀비들에 사람들이 좀비로 변해가는 모습은 마치 거대한 도미노 게임을 보는 듯하다.
그 아수라장에서 내가 주목한 인물은 ‘천리마고속 상무’ 용석(김의성)이다. 그는 좀비들과 맞서 각각 어린 딸, 임신한 아내를 지키려는 석우(공유), 상화(마동석)와 반대편에 서 있다. 장면들이 이어지면서 영화관 객석에선 용석을 향해 욕설이 터져 나온다. 그러나 용석을 악역으로만 치부하고 넘어갈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그는 숱한 한국 중년 아저씨들을 상징하고 있다. 그 특징은 세 가지다.
하나. 오지랖 넓게 행동하면서 편견을 감추지 않는다.
영화에 처음 등장하는 용석의 모습은 번듯한 정장에 머리도 깔끔하게 가르마를 타고 있다. 그는 KTX에 무임승차한 노숙자를 함께 바라보던 석우의 딸 수안(김수안)에게 말한다.
“공부 안 하면 이 사람처럼 된다.”
수안이 “우리 엄마는 그런 말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래요.”라고 하자 용석은 다시 “니네 엄마도 공부 못했다 보다”라고 응수한다. 남의 일에 끼어들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오지랖 넓게 간섭하려든다. 소통하는 자세처럼 비치지만 그 내용에선 뿌리 깊은 편견이 드러난다. 그는 평소 아들딸에게 그런 말을 습관적으로 내뱉었을 것이다. “너희들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인생 막장 되는 거 순간이다.” TV 뉴스에 파업이나 집회를 하는 장면이 나오면 “공부도 못한 것들이…”라고 인상을 찌푸렸을지도 모른다.
둘. 자신이 손해 볼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
용석은 좀비들로 가득 찬 열차 안에서 유일한 안전지대인 13호 칸에 석우 일행이 들어오려고 하자 막으라고 소리 지른다. 지극히 합리적인 행동이다. 석우 일행이 이미 좀비에 감염됐을지 누가 알겠는가. 13호 칸에 가까스로 들어온 석우가 “왜 문을 열지 않았느냐”며 자신을 넘어뜨리자 그는 말한다.
“이 새끼 감염됐어. 좀 있다 변할 거야.”
우리 사회의 합리적 중년들은 공포 앞에서만 이기적으로 행동할까. 용석은 회사 생활에서도 자신의 승진에 도움이 되지 않는 동료, 선후배와 구조조정 대상인 노동자들을 향해 “문 닫으라”고 고함질렀을 것이다. 저녁 술자리에서 “어쩔 수 없었다”고 악어의 눈물을 흘리고는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살아야 할 거 아냐!”
셋. 정신은 자신과 가족에 갇힌 어린 아이다.
용석은 동대구역에서 결정적으로 민폐 캐릭터로 변한다. 좀비들에게 쫓기면서 열차 문을 열어놓아 좀비들이 열차 밖으로 쏟아져 나오게 한다. 마지막 순간 그는 하얗게 변한 눈동자로 말한다.
“무서워요. 집에서 엄마가 기다려요. 주소는 부산시 수영구 광안동….”
중년의 몸 안에 작은 소년이 살고 있었다. 용석은 좋은 아들, 착한 사위, 괜찮은 남편, 자상한 아버지였을지 모른다. 하지만 직장과 사회에선 자신 밖에 모르고, 자기 앞가림만 할 줄 아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우등생으로 살던 고등학생 언저리에서 그의 정신적 성장은 멈췄을 것이다. 이것이 가족애를 넘어 다른 사람들을 위한 희생으로 나아간 상화나 석우와 다른 점이다.
영화 <부산행>의 한 장면
용석 같은 이들은 한국 사회 곳곳에 있다. 개인적 자아만 과잉 발달해 사회적 자아는 증발된 사람들이다. 분명한 건 용석이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소시오 패스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한국의 중년 아저씨들이 가진, 그릇된 속성들이 응축된 인물이다.
지금 한국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건 ‘아저씨들의 세상’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감히 생각한다. 평소엔 점잖아 보이지만 절대 손해 볼 짓은 하지 않고, 마음속엔 작은 아이가 살고 있는 아저씨들의 세상. 다른 이들을 자신의 엄폐물쯤으로 여기고, 피해자를 패배자라 비웃고, 이기심의 바이러스를 퍼뜨리며,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나만은 살아남아야 한다고 믿는 아저씨들의 세상.
이 아저씨들의 세상에서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 세월호 사건이 사회 갈등의 먹잇감이 된 것도,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5년간 거리를 헤매야 했던 것도 그런 아저씨들 때문 아닐까. 그들이 반성을 한다면 희망이 보이겠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나 역시 그들 중 한 명이 아닐까. 용석이 “문 닫으라”고 소리 지를 때 동조하는 승객들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띵똥-. 그날, “괴물”로 불리는 좀비들만 나타나지 않았다면 부산 수영구 광안동의 어머니 집 초인종을 누르는 용석의 손엔 선물 꾸러미가 들려있었을 것이다. 그는 스피커폰에 대고 해맑은 목소리로 말했을 것이다. “엄마! 나야. 용석이. 빨리 문 열어줘. 배고파.”
권석천(중앙일보 논설위원)
1990년부터 경향신문 기자로 일하다가 2007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법조팀장, 논설위원 등을 지냈다. 앞에 놓인 길을 쉬지 않고 걷다 보니 25년을 기자로 살았다. 2015년에 <정의를 부탁해>를 출간했다. 이번 생에는 글 쓰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고 싶다.
whitedan88
2016.08.30
안간힘을 써왔을텐데..
왜 이렇게 자기밖에 모르는 아저씨가 되었는지
왜 그렇게 살수밖에 없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연기가 너무 뛰어나서 한없이 미워보였지만
한편으로 짠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ksy94628
2016.08.23
rabit008
2016.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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