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되어도 나오지 않아, 문을 두드리니 아무 기척이 없다. 문은 안으로 굳게 잠겨 있다. 누군가와 함께 문을 부수고 들어가니 사람이 죽어 있다. 창문은 굳게 잠겨 있거나 창살이 쳐 있다. 사람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은 오로지 닫힌 문밖에 없다. 하지만 분명히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다. 밖에서 문을 잠그고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 정도 상황이면 ‘밀실 살인’이라 부르는 사건이 될 수 있다.
범인은 대체 어떻게 침입한 것일까? 희생자가 아는 사이라서 문을 열어 주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를 죽인 후 어떻게 빠져나간 것일까? 문은 안에서만 잠글 수 있는데. 이런 수수께끼 상황을 만들어놓고 독자와 게임을 시작한다. 밀실 살인은 대체로 본격 미스터리에서 애용되고 철저하게 단서를 공유한다. 본격 미스터리에 등장하는 밀실 살인은 누가 보아도 ‘살인’인 상황이 많다. 자살로 위장할 수도 있겠지만, 자살로 판정이 난다면 굳이 탐정이 등장할 이유가 없으니까. 자살로 보기에는 너무나도 이상하거나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 있을 때 ‘명탐정’이 등장한다.
명탐정은 보통 사람들, 평범한 경찰들은 절대로 찾아낼 수 없는 단서들을 통해서 밀실의 수수께끼를 풀어낸다. 딕슨 카의 『세 개의 관』 『유다의 창』, 가스통 르루의 『노란 방의 비밀』 등이 밀실 살인을 소재로 한 고전 미스터리다. 일본의 신본격 미스터리 작품에서도 밀실 살인은 많이 등장한다. 『유리망치』 『자물쇠가 잠긴 방』 등 기시 유스케의 ‘에노모토 시리즈’는 방범 전문가를 등장시켜 ‘밀실 살인’을 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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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실의 밀실 살인은 쉽지가 않다. 『소년탐정 김전일』과 『명탐정 코난』에서는 밀실 살인이 흔하게 등장하지만, 현실에서는 여러 난점이 있다. 범인이 누군가를 살해하고 밀실을 만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을 용의자에서 배제하기 위해서다. 특히 희생자의 죽음을 통해 큰 이득을 얻을 수 있거나 원한 관계가 있다면 더욱 중요하다. 만약에 밀실로 만들어야 한다면, 그것은 보통 자살로 몰아가기 위해서다. 밖에서 침입한 흔적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목을 매거나 손목을 베어 죽었다면 대부분은 자살로 처리되기 때문에. 그러면 수사도 진행되지 않고 사건이 종결될 수 있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다. 타살이 분명한데도 밀실이라면, 수수께끼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신비함이나 두려움을 주기 위한 밀실이다. 만약 초자연적인 이유가 개입된 죽음이라면 특정한 선전효과를 누릴 수 있으니까.
밀실 살인은 독자와의 두뇌 게임이라는 미스터리의 고전적인 명제에 잘 맞는 소재였다. 밀실 살인의 보다 확장된 개념이라 할 수 있는 클로즈드 서클(Closed Circle)이 일본의 신본격 미스터리에서 치밀하게 연구되고 이야기로 만들어진 것도 같은 이유다. 서양에서 ‘Closed circle of suspects’라고 말할 때는 동기와 기회를 가진 용의자가 한정되어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옥문도』 『이누가미 일족』 등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은 태반이 클로즈드 서클을 기반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한정된 공간이나 집단의 누구에게나 동기가 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이유와 방법으로 누가 살인을 저지른 것일까. 넓은 의미의 클로즈드 서클에서는 집단이나 공간의 사회, 역사적인 의미를 폭로하는 것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사회파에 반발하며 미스터리 본래의 ‘두뇌 게임’을 파고들자며 시작된 ‘신본격’의 선두 주자였던 아야츠지 유키토는 데뷔작 『십각관의 살인』에서 무인도의 별장에 소수의 사람들을 격리시킨 설정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밖에서 침입이 불가능하기에, 그들 중에 반드시 범인이 있는 것이다. 신본격에 의해 추구된 클로즈드 서클은 단지 용의자만이 아니라 물리적인 공간의 제한까지 강력하게 지켜는 작품들이 많았다. 외부인이 들어오기 힘든 무인도, 폭설로 고립된 산장, 도로나 다리가 끊긴 마을이나 별장 등등. 『십각관의 살인』도 철저하게 고립된 무인도이고, 요네자와 호노부의 『인사이트 밀』은 출입이 통제된 건물 안에서 살인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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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드 서클이 본격에서 많이 쓰이는 이유는 모든 것을 공개한 상태에서 작가와 독자의 게임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인물의 과거 등을 숨길 수는 있지만 적어도 현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모든 것이 알려지고 공유되기 때문에 경우의 수가 한정되는 것이다. 누군가 밖에서 찾아와 범행을 한다든가, 특정한 범행 도구를 이용하는 것 등이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연쇄살인이 벌어지는 경우에는 긴장감이 점점 고조되는 것도 중요한 이유다. 세 명으로 사람의 숫자가 줄어든다면, 서로간의 의심 그리고 누가 누구와 연합하는가 등의 절박한 상황이 긴장감 넘치게 펼쳐지게 된다. 미스터리에서 밀실 살인과 클로즈드 서클은 가장 순수한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데우스 마키나 같은 초월적인 존재의 개입을 애초에 불가능하게 만들고, 제한된 조건 안에서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사건을 설명하는 것.
아야츠지 유키토는 『암흑관의 살인』 『미로관의 살인』 등 ‘관 시리즈’에서 본격 미스터리의 게임성을 끈질기게 파고든다. 대학 미스터리 동호회 회원 출신이 주도한 신본격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시마다 소지는 데뷔작인 『점성술 살인사건』을 통해 미스터리에서 ‘논리’의 중요함을 깨닫게 했다. 기이하고 환상적인 수수께끼를 제시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을 치밀하게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과정이 있어야만 미스터리로서 성립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시마다 소지의 선구적인 시도는 『우부메 살인사건』으로 데뷔한 쿄고쿠 나츠히코의 요괴 본격으로 연결된다. 너무나 괴상한 사건이고 이해하기 불가능한 이야기이지만,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풀어가며 결국 인간의 눈으로 파악할 수 있는 미스터리.
고전 미스터리인 아가사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쥐덫』 『오리엔트 특급 살인』, 엘러리 퀸의 『X의 비극』 『샴 쌍둥이 미스터리』 등과 신본격인 아야쓰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절규성 살인사건』 『46번째 밀실』, 우타노 쇼고의 『밀실살인게임』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 등 많은 작품에서 밀실 살인과 클로즈드 서클의 매력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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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yundleie
2014.08.29
메롱
2014.08.25
아무도없는 공간, 도저히 빠져나갈수없는 것 같은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 과연 범인은 어떤 방법으로 밀실을 구성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