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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서재

책의 재미를 느꼈던 때는 언제부터였나요?


 


책을 좋아한 아버지 덕분에 집에 책이 많았습니다. 거실 책장에 책이 가득했죠. 또 일요일이면 책방에 삼형제를 데려가 책을 사주셨어요. 자연히 어릴 적 책 읽기는 가장 즐거운 일 가운데 하나였죠. 그림 그리는 것도 무척 좋아해 책을 읽고 상상한 것을 도화지에 그리는 것이 어린 날의 일상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신비한 모험을 담은 책들을 마치 중독자처럼 끝도 없이 읽었죠. 『아라비안 나이트』 , 『서유기』 『해저 2만리』 , 『허클베리 핀의 모험』  같은 책을 읽고 멋진 장면을 떠올리며 그것을 도화지에 옮기곤 했습니다. 읽고 상상하고 그리는 일을 반복하며 책을 사랑하는 마음도 커졌죠. 그러다 내내 품었던 화가의 꿈을 16살 무렵 접으며 깊은 슬픔에 빠졌습니다. 우울증이었죠. 술, 담배에 손대며 방황했습니다. 잠깐이지만 책 읽기와도 멀어졌고요. 그러다 마음을 달래려고 다시 책의 손을 잡았을 때 큰 치유를 경험했다. 책이 내 마음을 고쳐주었다. 헤세의  『데미안』  ,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 톨스토이의 『부활』  을 읽으며 아픈 마음을 추슬렀고 문학가가 되겠다는 꿈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책은 어느새 내게 숭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책 읽는 시간은 선생님께 왜 소중한가요?


 


무엇보다 치유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가시밭길입니다. 게다가 현대적 일상은 상처 주는 일이 다반사죠. 여러분이나 나나 많은 상처를 피할 수 없는 운명입니다. 무엇이 이 많은 상처를 어루만져줄 것인가? 약이나 치료사의 도움을 받는 것은 쉽지 않고 현실과도 멉니다. 하지만 도서관에 갈 마음이 있다면, 몇 권의 책을 살 여유만 있다면 치유될 수 있습니다. 제게는 특별한 개심(改心)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서른 초반이었죠. 그 후로 일찍 일어나는 것이 버릇이 되었습니다. 늘 새벽 3시쯤 눈을 뜹니다. 그 후 몇 시간은 소중한 책 읽기 시간입니다. 낮에도 책을 읽긴 하나 그때만큼 깊은 몰입을 얻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시간만큼은 꼭 읽어야 할 책을 읽습니다. 치유서가 가장 먼저입니다. 우선 집 근처 도서관에서 치유서가 될 만한 책을 빌립니다. 그리고 그 책들을 읽으며, 좋은 치유서를 선별하죠. 대략 5권 가운데 한 권 정도가 치유서로 낙점됩니다. 그러는 사이 나 역시 깊은 안식을 체험하죠. 찾아낸 치유서는 다시 독서치료 임상에서 책 처방으로 활용합니다. 꽤 오래 이 일을 반복했는데요. 상처 입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이니 열정을 느끼고 소명감도 갖게 되었습니다.



요즘 선생님의 관심사는 무엇이며, 그 관심사와 관계하여 읽을 계획인 책이 있나요?


 


철학적 내용을 담은 치유서를 찾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치유를 돕는 문학작품이나 심리적 내용을 담은 치유서들을 찾아 독서치료에 적용해왔는데, 언제부턴가 진정한 치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무장할 철학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치유적인 문학작품이나 심리적 자기조력 도서(self-help book)도 꼭 필요하지만, 철학적 치유서가 마음의 뼈대를 세우는 데 더 적합합니다. 그런데 좋은 철학책과 철학적 치유서는 다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나치게 어려워서는 안 되죠. 참 어려운 일이지만 쉽지만 깊이 있어야 한다. 내담자마다 개성이 달라 연령이나 문해력 정도에 따른 분류와 체계화가 꼭 필요합니다.


 


가령 스피노자의 『에티카』  를 고등학생에게 처방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철학상담이 보편화된 서구에서는 레베카 라인하르트의 『방황의 기술』  같은 철학적 치유서를 찾기가 싶지만, 국내에서는 이런 책을 찾기도, 내담자에게 맞는 책을 고르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늘 부족함을 느끼며 철학적 치유서를 위한 출판 공간이 커지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가장 아끼는 철학적 치유서는 종교철학자 프레데릭 르누아르의 책들입니다. 조만간 르누아르의 국내 출간본을 다 읽을 심산입니다.



최근작과 관련하여, 독자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치유의 독서』  는 10년 넘게 연구해온 독서치료에 대한 나의 생각들을 정리한 책입니다. 독서치료에 관한 책 가운데 대중적인 책이 부족하다고 느껴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독서치료 자체를 알고 싶은 것이 아니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할 만한 책과 그 방법을 알고 싶은 사람이라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심리서적은 많지만, 자신에게 어울리는 치유서는 찾기 어렵습니다. 자칫 잘못된 생각에 이르게 할 위험한 책을 만날 수도 있죠. 책은 또 얼마든지 인생의 함정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치유를 소망한다면 자기만의 치유서를 찾는 데 공을 들여야 합니다. 함부로 책을 읽으면 책을 하찮게 느끼는 무의식이 생깁니다. 책이 우스운데 책에서 치유를 얻기는 어렵죠. 조금 벅차더라도 좋은 치유서를 읽을 때 비로소 평정심으로 다가설 수 있습니다.


 


『마음의 일기』  는 글쓰기 치료, 저널치료는 독서치료의 한 분야이기도 하고, 독자적인 치유의 대안이라고 생각하기에 쓴 책입니다. 치유적 독서만큼 치유적 글쓰기는 중요합니다. 식욕이나 성욕처럼 글쓰기 욕망 역시 본능적인 것입니다. 어쩌면 글쓰기와 멀어진 현대적 일상이 상처를 키우는지도 모른죠. 글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정리할 때 누구라도 치유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글쓰기 초심자들은 늘 막막함을 느낍니다. 특히 치유를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써야 하는 것이지 모를 때가 많죠. 이 책은 치유적 글쓰기를 잘 모르는 분을 위한 안내서입니다. 책에는 자기를 이해하고, 현실을 수용하고, 앞날의 삶을 설계하도록 돕는 치유적 글쓰기 방법 50가지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치유적 글쓰기 방법에 익숙해진다면 나날의 상처에 맞서는 일이 조금은 쉬워질 겁니다.  


 


살아낸 시간이 살아갈 희망이다』 에는 고(故) 마광수의 고통스러웠던 생애와 나의 상처, 치유의 여정이 담겨 있습니다. 마광수는 도무지 이해 받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성을 억압해 얻은 막대한 에너지로 물질문명을 급속도로 키웠다고 했죠. 그리고 성 억압에 시달린 사회에는 필연적으로 성폭력이 만연한다고 했어요. 지금 우리가 겪는 현실이 정확히 그렇습니다. 마광수는 오래 전 이를 예언했습니다. 마광수는 진리를 사장시켜온 우리 사회의 희생양이었고 동시에 선구자였습니다. 이 책을 통해 그의 작품과 사상이 다시 조명 받길 바랍니다. 그가 젠틀한 사람이었고, 비폭력주의자였으며, 인간의 감정에 늘 귀 기울이는 이 시대의 치유자였다는 사실도 알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아울러 그와의 인연으로 몹시 아팠던 내 상처의 경험이 여러분에게 치유의 단서가 되길 바랍니다. 원한을 풀지 못한 마광수와 달리 나는 원수들을 어렵게나마 용서했습니다. 그리고 치유를 얻었고, 지금 그 경험을 상처 받은 이들과 나누고 있습니다. 마광수와 나의 아픈 이야기가 여러분에게 자기 상처를 추스를 수 있는 자기적용의 본보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이 책으로 자기실현의 방법을 찾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명사 소개

박민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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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작가 : 가정/건강/취미 저자

최신작 : 관계도 반품이 됩니다

20년 넘게 현장에서 학업 상담과 학습치료를 하며, 진로·학습·심리·뇌과학이 통합된 입체적인 멘토링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EBS 다큐프라임 〈공부 못하는 아이〉의 학습 멘토로 출연해 ‘공부 상처’로 학습의욕이 떨어진 학생들을 상담, 놀라운 변화를 이끌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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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추천

에티카

스피노자 저/황태연 역

서른 무렵, 인생의 격변을 견디게 해준 뿌리 같은 책이다. 내 이름의 마지막 한자는 뿌리를 뜻하는데, 이 책이 그 ‘근’자를 꽉 채워주었다. 스피노자는 고독을 지배한 철인이었다. 그의 식견을 안 라인 주의 제후가 대학교수 자리를 제안했지만, 스피노자는 이를 거절하며 말한다. “저를 움직이는 것은 지위에 대한 희망이 아니라, 평안에 대한 사랑입니다.” 말년에 그는 유리 세공을 통해 밥벌이를 했는데, 유리가루를 너무 마셔서 이른 죽음을 맞았다. 『에티카』 로 하여 나 역시 평안을 사랑하게 되었다. 내게 이 책은 여전히 감정의 격정을 다스리고 운명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영성의 책이다.

데미안

헤르만 헤세 저/전영애 역

화가의 꿈을 포기하며 열여섯 살의 나는 인생을 끝내고픈 마음까지 들었다. 헤세는 그런 나에게 구원자였고, 『데미안』 은 구원의 책이었다. 부산 국제시장 옆 보수동 헌책방거리에서 나는 이 책을 가슴에 안았고, 『데미안』 이 나를 지옥에서 건져 올렸다. 주인공 싱클레어의 인도자 데미안의 어머니인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에게 말한다. “싱클레어, 어린아이로군요! 당신의 운명은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데요. 언젠가 그것은 완전히 당신 것이 될 겁니다. 당신이 꿈꾼 대로요. 당신이 변함없이 충실하면요.” 이 책으로 나는 내 운명을 사랑하게 되었다.

퇴계집

이황 저/장기근 역해

나의 삶이 갈 길을 잃고 흔들릴 때, 오염된 마음을 정화시켜준 책이다. 대유 퇴계 이황 또한 젊은 시절 우울증으로 방황했다. 그는 제자에게 자신이 과거시험에 여러 번 낙방하며 마음의 병을 얻었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친다. 퇴계 선생 역시 독서치료로 심병(心病)을 이겨낼 수 있었다. 고전 <심경心經>이 그에게는 천금 같은 치유서였다. 퇴계의 이런 삶과 사상이 내게도 귀감이 되었고, 자연스레 그를 따르려는 열망을 품게 되었다. 지금도 퇴계의 글은 마음이 어지러울 때 가장 먼저 펼치는 소중한 치유의 언어이다.

비블리오테라피 Bibliotheraphy

조셉 골드 저/이종인 역

2004년 이 책을 손에 쥐고 ‘유레카’를 외쳤다. 막연했던 독서치료사의 꿈을 선명하게 만들어준 책이다. 이 책을 만나기 전에도 독서치료에 관심을 갖고 그 길을 모색하고 있었는데, 늘 결핍과 갈증을 느꼈다. 이 책은 만나며 독서치료, 독서치료사란 무엇이며,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은 확신을 갖게 되었다. 지난 15년간 내가 독서치료사로 성장하는 데 늘 등불이 되고, 길잡이가 돼준 책이다. 독서치료에 관한 책이 많이 출간되었지만, 여전히 이 책만큼 내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책은 없다. 책의 치유력에 대해 알고 싶은 분이라면 꼭 읽어보아야 할 책 가운데 하나다.

행복의 완성

조지 베일런트 저/김한영 역

심리학과 심리치료가 어떤 것이어야 할 지 원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책이다. 심리학은 오랫동안 어둠을 통제하고자 했던 학문이다. 또 내면을 짓밟는 야생코끼리 같은 성난 자아를 분석하는 학문이었다. 조지 베일런트는 조용히 고개를 젖는다. 그리고 자기 안의 밝은 마음을 보라고 말한다. 조지 베일런트,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마틴 셀리그만은 어둠을 방황하던 심리학을 태양 앞에 세웠다. 이 책은 우리 안에 영성이 있으며, 그것이 대단히 확실한 것임을 문학적이면서 과학적 언어로, 또한 영적인 서술로 증언한다. 나는 좋은 책 한 권을 여러 번 반복해 읽는 편인데, 이 책은 가장 짧은 기간, 가장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그만큼 깊은 애착과 존경을 느끼는 책이다. 늘 손이 닿는 곳에 두고 문장들을 헤아리는, 내게는 경전 같은 책이다.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는 책들

레진 드탕벨 저/문혜영 역

스마트폰은 끝내 당신의 고통을 이해하지 않을 것이다. 또 책의 치유력을 이해하게 된다면 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치유의 독서>를 쓴 후로 독서, 또 독서치료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 특히 한국에서 독서치료는 어떻게 존립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무척 많아졌다. 가령 폭증하는 노인 자살자를 위한 독서프로그램 같은 것을 구체적으로 구상해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많은 의문에 사로잡혔다. 이 책은 내가 고민하고 묻는 지점들에 대해 선배 독서치료사로서 매우 엄정한 대안들을 제시해주었다. 처음 이 책을 발견하고 5번 가까이 반복해서 읽었다. 프랑스에서 드탕벨이 행한 방법이 내가 하고 있는 독서치료에서 어떻게 변용되어야 할 지 궁리하며 많은 상상과 계획, 포부를 가질 수 있었다. 독서, 문학이 가진 근원적인 치유력을 이해하게 해주는, 책을 위한 책이라고 할 것이다.

낙관성 학습

마틴 셀리그만 저/우문식,최호영 공역

나는 십대 후반부터 프로이트를 늘 경외했다. 나의 내면 심층을 가장 잘 설명하는 사상가였기 때문이다. 스무 살에 마광수를 만나며 그런 생각은 더 깊어졌다. 하지만 이 책을 만나며 프로이트와 미련 없이 결별할 수 있었다. 트라우마는 영원하지 않다. 셀리그만은 우울증의 원인을 해부하며 심리학이 어둠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선언했다. 그는 인간에게는 누구나 영성이 있으며 이를 계발할 때 각자의 잠재성을 꽃피울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그래야 하는 당위와 그럴 수 있는 방법을 아주 정확하게 표현한 책이다. 여전히 내가 독서치료 임상에서 가장 우위에 두고 권하는 치유서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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