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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서재

“열두 살 때까지만 해도 독서에는 취미가 전혀 없었습니다. 부모님들은 저에게 책 좀 읽으라고 닦달을 하곤 했죠. 그러다 어느 날 스티븐 킹 소설을 한 권 읽게 됐는데, 완전히 빠져든 거예요. 거기 나오는 괴물 이야기와 신비한 세계, 그리고 살아 있는 욕까지, 그 모든 것들이 저를 사로잡았던 거죠. 그래서 스티븐 킹이 쓴 책이란 책은 다 읽어버렸습니다. 학교에서는 에밀리 브론테, 셰익스피어, 디킨슨의 작품 같은 것들을 읽었죠. 물론 대단한 작품들이지만 십대가 읽기엔 그리 재미있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애독한 책이 공포소설이었단 게 그리 자랑스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 책들은 제게 독서로 향한 길을 열어주었죠. “

“시간이 흘러 성숙해지면서는 좀더 ‘진지한’ 문학작품을 읽는 걸 좋아하게 됐습니다. 에밀 졸라, 조지 오웰, 조지프 헬러의 『캐치-22』 같은 것들 말이죠. 영국 작가 그레이엄 그린도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렸을 때는 저술가가 되겠다는 꿈은 없었어요. 제 꿈은 밴드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거였죠. 그러다 아주 최근에야, 기자로 일하면서 비로소 제가 글 쓰는 걸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고 이 일이라면 아마 잘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잭 케루악의 『길 위에서』는 제가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들지는 않았지만 여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불어넣어준 책입니다. 『롤리타』를 읽고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나보코프의 경이로운 예술적 세계가 저를 전율에 떨게 했습니다. 나심 니콜라스 탈렙의 글을 읽고서는 제 자신에 대해 좀더 자부심을 갖게 됐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글을 읽음으로써 대다수 사람들이 사는 것과는 정반대 방식으로 살아도 괜찮다는 일종의 ‘승인’을 받은 느낌이었거든요. 이렇게 살아도 되겠구나, 아니, 어쩌면 이렇게 사는 게 아주 멋질 수도 있겠다? 하는 느낌이랄까요.”




꽤나 과격한 주장을 하는 논픽션도 즐겨 읽어요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의 저자 다니엘 튜더는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을 찾았다가 사랑에 빠졌다.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서 MBA를 취득한 후,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헤지펀드 회사에서 일했고, 2010년부터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으로 일했다. 특파원으로 일하는 동안 북한 문제와 2012년 대통령 선거, 그 외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현안을 다루는 기사를 썼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한국 맥주 맛없다”는 기사를 쓴 기자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그는 약간의 ‘악명’을 얻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소규모 자가 양조 맥주 창업에 자신감을 얻어 2013년 친구들과 함께 맥주집 ‘더 부쓰(THE BOOTH)’를 차렸다. 하지만 그가 가장 사랑하는 것은 음악과 글쓰기다.

“소설은 우리에게 뭔가 가르침을 줄 수도 있고 세상을 보는 시각을 바꿔놓을 수도 있습니다. 썩 잘 쓰인 소설이 아니라 해도 소설이라면 그 어떤 소설이든 읽을 가치가 있습니다. 동시에, 저는 순전히 기법의 측면에서도 소설을 정말 좋아합니다. 예컨대 『롤리타』가 그래요. 저는 잊을 만하면 『롤리타』를 다시 읽곤 하는데 그건 바로 작품의 문장마다 스며 있는 명징한 아름다움을 감상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보코프 앞에서 저는 늘 무릎을 꿇게 됩니다.”

논픽션에 있어서라면, 꽤나 과격한 주장을 하는 책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최근 읽은 영국 책으로는 좌파 언론인 오웬 존스의 『Chavs』가 있다. 다니엘 튜더는 그의 생각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지만, 오웬 존스가 책에서 표출한 분노를 인상 깊게 읽었다. 한국에도 이런 ‘반골’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것은 논픽션 분야의 책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서점을 찾을 때마다 느끼는 건 ‘힐링’을 앞세운 자기계발서, 그리고 다소 거들먹거리는 듯한 토머스 프리드먼 류의 거대담론 책이 너무 많이 범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힐링을 얘기하기보다는 대체 왜 우리는 힐링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지, 그 근본적인 원인을 좀더 진단해보는 게 어떨까요? 그리고 사실 세계는 전혀 ‘평평하지’ 않아요. 세계는 당신이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고 헬싱키 하얏트 호텔에서 멕시코 시티에 있는 메리어트 호텔로 이동해서 기껏해야 하루 종일 eo나 정치인들만을 만나고 다닐 때나 평평한 거죠. 지구는 둥그니까요. 그리고 때로는 울퉁불퉁하기까지 하니까요.”


홍차와 함께하는 나의 서재는 ‘티 룸’

다니엘 튜더는 요즘, 신자유주의와 소위 ‘앵글로 아메리칸’ 스타일이라고 말하는 것들에 회의를 느끼고 있다. 때문에 찰스 퍼거슨의 『Inside Job』을 흥미롭게 읽고 있다. 또 장하준 교수의 저서들을 탐독하고 있다. 다니엘 튜더는 “장하준 교수를 캠브리지에서 몇 번 만나기도 했다. 그의 이념적 지향이나 다른 것들은 모두 차치하고서라도, 정말 따뜻한 마음을 지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음악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기타를 연주하던 예전 그날들이 그립기 때문입니다. 아, 정말 진지하게 기타 연주에 몰두하던 그날들은 이제 얼마나 그렇게 훌쩍 지나가 버렸는지요. 그걸 생각하면 좀 슬퍼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장 최근에 읽은 책 중 하나가 마일스 데이비스의 자서전입니다. 세상에서 최고로 대단한 책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 책을 보면서 데이비스 같은 천재가 살았던 인생과 그의 작업 방식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텔레비전을 보고 인터넷 서핑을 하고 매일매일 똑같이 흘러 지나가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자칫 방향을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의식적으로라도 우리 안에 여전히 존재하는 비범함을 스스로 일깨우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니엘 튜더의 서재는 ‘티 룸(Tea Room)'이다. 많은 영국인이 그렇듯, 그 역시 홍차에 중독되다시피 해서 홍차가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할 지경이다. 그는 “만일 뭔가에 중독되려거든 차에 중독되는 것도 꽤 괜찮은 선택”이라고 말한다. 가격도 저렴하고 건강도 해치지 않는 꽤 적당한 중독이기 때문이다.

최근 출간된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는 다니엘 튜더가 한국에 머물며 일하며 만난 한국 사람들의 맨 얼굴을 들여다 본 책이다. 한국에서 느낀 경이와 경탄, 때로는 경악의 순간까지, ‘오늘의 한국’을 한 권의 책에 오롯이 담아냈다. 경제성장의 과정부터 심도 있는 정치 비평, 민주주의, 남아선호사상을 비롯한 전통 문화, 그리고 당면한 한국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도약할 수 있는 대안까지도 제시한다.

“한국의 경쟁이나 교육 풍토처럼 어떤 것들을 비판한다고 해서 제가 한국에 부정적이거나 한국을 싫어한다고 여기지 말아주시면 좋겠어요. 제가 그런 것들을 비판하는 이유는 그런 요소들이 한국의 잠재력을 억누르고 있거나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모든 것을 알고 있지는 못하다는 점도 이해해주시면 좋겠어요. 또, 저는 서양사람들이 흔히 그렇게 하듯, ‘우리나라처럼 하세요’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란 점도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부끄럽지만, 가끔 제가 크게 쓸모 있지 않은 말을 할 때조차 ‘옥스퍼드 대학교 출신’ ‘전직 이코노미스트 기자’ ‘영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어떤 분들은 저를 지나치게 신뢰하기도 한다는 것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부탁하고 싶어요. 제 책을 읽을 땐 그런 저런 것들은 다 생각지 마시고 그냥 독자 여러분이 제 의견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서 판단해주십사 부탁 드리고 싶습니다. 제 책에도 나오지만 제가 책을 쓰기 위해 무당을 인터뷰했을 때 그녀는 ‘무속을 너무 많이 믿지는 마세요’라고 말했죠. 저도 비슷한 방식으로 말하고 싶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하는 말을 너무 많이 듣지는 마시라’고요(웃음).”

명사 소개

다니엘 튜더 (198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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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작가 : 인문/사회 저자

최신작 :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1982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태어났다. 스스로는 대체로 단조롭고 평탄한 유년기를 보냈다고 생각하지만, 주변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범생이’와 ‘사차원’ 중간 어디쯤에 속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정치학·경제학·철학을 공부했다. 2002년 월드컵 때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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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추천

몽테크리스토 백작 1

알렉상드르 뒤마 저

순수하게 이야기로 밀고 나가는 힘에 있어서라면, 뒤마를 따를 사람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긴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재미있어서 숨돌릴 틈조차 주지 않죠. 권위에 짓눌린 아카데미에서는 그의 소설이 지나치게 ‘대중적’이라고 취급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정작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요?

만델라 자서전

넬슨 만델라 저/김대중 역

만델라는 제 영웅입니다. 학창시절에 그의 자서전을 읽으며 자랐고, 그의 말들은 제게 큰 영감을 불어넣어주었죠. 이 책의 마지막 몇 페이지는 주옥 같은 글로 그의 사고관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그의 생애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좀더 용감하고 담대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곤 합니다. 제가 정말 그렇게 살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는 않지만 어쨌든 그는 제게 더 없는 영감을 불어넣어줍니다.

테레즈 라캥

에밀 졸라 저/박이문 역

제 생각에 에밀 졸라는 그 어떤 작가보다도 인간의 심리와 인간 존재의 약점을 치밀하게 이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암울하면서도 아름다운 소설이에요.

행운에 속지 마라

나심 니콜라스 탈렙 저/이건 역

저는 탈렙과 아주 비슷한 방식으로 사고하고 살아가는 것 같은데, 차이점이 있다면 그는 그런 것들을 아주 명징하게 체계적으로 표현해낼 줄 안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그는 그런 사고방식대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데서도 나보다 한 수 위인 것 같아요. 아무튼 저는 그의 책을 읽고 충격을 받다시피 했는데, 탈렙이 제가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아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 그런데 저는 왜 그처럼 표현하지 못하는 걸까요?’

선악을 넘어서

프리드리히 니체 저/김훈 역

대학에서 철학을 배울 때, 제게 철학이란 빈틈없는 논리로 가득 차 있으며, 의미론과 정의 같은 것을 붙들고 씨름해야 하는 그 무엇이었습니다. 하지만 니체는 그것들을 너머 제게 철학의 새로운 문을 열어준 철학자였습니다(게다가 글은 또 어찌나 잘 쓰는지!). 그는 당당히 일어나서 뭔가 행동할 수 있게 인도해준 철학자와도 같았죠. 그는 촌철살인의 한마디만으로도 오늘날 철학자들이 책 한 권을 다 써도 표현할 수 없을 법한 의미를 모두 담아냈습니다. 그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철학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니체 스스로는 그가 책에서 제시하며 극찬했던 초월적인 인간의 삶을 살지 못했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간혹 그의 책을 읽다 보면 그가 현실에서 마주한 실패와 절망감을 감지할 수 있어요. 예컨대 그의 정신세계를 분석해보면, 그가 여성에 대해 줄곧 부정적으로 묘사했던 부분은 단순히 그가 현실 속에서 여자들을 매혹하는 데 실패했던 개인적인 불우의 결과로 읽힙니다.

롤리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저/김진준 역

나보코프보다 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는 사람이 없네요. 영어가 그의 모국어가 아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의 성취는 더욱 놀랍습니다. 조지프 콘래드(『암흑의 핵심Heart of Darkness』)도 그만큼 훌륭하지 않냐는 의견이 있을 수 있겠군요. 하지만 저는 나보코프가 그보다 아주 조금 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친구들 SE (2Disc)

저는 조금도 마초는 아닌데요, 하지만 <좋은 친구들>은 정말 좋아합니다. 이 영화는 모든 게 딱 맞아떨어질 만큼 완벽해요. 캐스팅, 각본, 절묘한 카메라 촬영, 사운드 트랙, 그 모든 게 말입니다.

샤이닝 SE (2disc)

호러 영화는 대부분 별로라고 생각하지만 <샤이닝> 만은 예외입니다. 저를 진짜로 겁에 질리게 한 유일한 영화는 이것뿐입니다.

오아시스 SE (2Disc)

제가 처음 한국에 들어와 살았던 때인 2004년, 저는 좋은 영화가 너무 많이 쏟아져 나오는 걸 보고 정말 감탄했습니다. <오아시스>와 <파이란>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예요. 이창동 감독과 배우 문소리 씨는 정말 대단한 분들이에요.

파이란 (2Disc-dts)

또 저는 제 책에서 한국 영화에 관해서도 썼죠. 진심으로 저는 영화 분야에서 한국 현대 문화는 대단한 성취를 이룩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감독들이 어떻게 하면 좋은 영화를 만드는지 알고 있다는 점은 아주 행운이에요. 왜냐하면 미국 할리우드 감독들은 어떻게 하면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지 다 잊어버린 것 같거든요.

몬티 파이튼의 성배 : 블루레이

저는 코미디 영화라면 또 사족을 못 써요. 독자 여러분들께서는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몬티 파이튼>이란 시리즈가 있는데요. 이 시리즈의 영화판으로 <몬티 파이튼의 성배>라는 영화가 있어요. 영화에서는 종교든 영국 역사에 대해서든 시종일관 블랙 코미디를 펼치는데요, 정말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80년대 초 굉장한 미국 코미디로는 <Trading Places>를 꼽을 수 있겠네요.

Submarine (서브마린) (한글무자막)(Blu-ray) (2010)

Noah Taylor,Paddy Considine

최근 영국 영화 중에서도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영화를 봤는데 <Submarine> 과 <This is England>를 꼽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영국 사람이 아니라면 이들 영화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을 거라 짐작되네요. 두 영화 모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영국 사회의 새로운 면을 드러내 보여준 영화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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