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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서재
“유년기의 기억은 아주 단편적으로만 남아 있어요. 냇가로 가는 길목 미루나무 아래서 마른 잎을 될 수 있는 한 아주 길게 꿰어 집으로 가져오면 엄마가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나뭇잎을 태웠죠. 그 마른 나뭇잎 냄새와 불 속에 타는 나뭇잎을 보던 기억, 마루에 걸터앉아 미루나무 위 하얀 구름을 보며 ‘나뭇잎 배’ 노래를 몇 번이고 부르던 일, 아버지 자전거 뒷자리에 방석 깔고 앉아 아침에 동네를 돌며 초록색 볏잎에 빨간 고추잠자리를 보던 일이 생각나요. 어린 시절 기억하고 싶은 단상들로 걸러져 있는 풍경은 모두 자연 속에서 느꼈던 기쁨과 그리움이에요.”

“어릴 때 주로 읽은 책은 만화책이에요. 60년대 만화작가 엄희자를 무척 좋아했죠. 만화책 속에 그림들을 보고 그리고 인형 만들기를 하고 놀았어요. 글이 많은 책은 대학교에 들어가서 읽기 시작했는데,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을 읽고 가위에 짓눌리던 생각이 나요. 사회과학 서적들도 이때 읽기 시작했고요.”

최근 그림책 『피카이아』를 펴낸 권윤덕 작가는 스티븐 제이 굴드의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를 읽고 영감을 받았다. 이 책의 끝에 등장하는 ‘인간의 가장 먼 조상, 몸에 척삭을 갖고 있었던 캄브리아기의 화석에 있던 동물’ 피카이아를 처음 만났을 때의 느낌이 단초가 되어 『피카이아』를 만들게 됐다.

“고생대 캄브리아기에 버제스 동물군이 폭발적으로 생겨났다가 그 후에 한꺼번에 멸종되었다고 합니다. 피카이아는 그 힘든 시기를 견디고 살아남았어요. 우월해서 살아남은 건 아니었어요. 중요한 건 피카이아는 그저 ‘살아남았다는 것’입니다. 그 작은 동물이 진화해서 척추동물과 인간이 생겨날 수 있었지요. 누구에게나 살아가면서 힘든 시기가 있을 거예요. 그걸 견뎌 내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보다 우월해야만 견디고 살아남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인간의 몸은 그 자체로 치유하고 성장하는 힘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누구나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소중한 거예요. 그것만으로도 이후의 삶에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으니까요. 앞으로 세상을 새롭게 바꿀 힘이 생길 수도 있지요. 『피카이아』는 독자가 작가의 이야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뜨개질하듯 엮어 낼 때 완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작가의 서재란, 생각을 키우는 곳. 바로 ‘씨앗 창고’다. 권윤덕 작가는 신문의 서평을 보고, 자신의 관심사에 질문을 하거나 답을 찾아가는 책을 고르곤 한다. 또 창작을 하는 데 바탕이 되는 사회 현상들을 깊이 있게 다룬 책을 즐겨 읽으며, 소설가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긴 호흡으로 읽는다. 근래에 물리학, 양자역학, 우주론에 관심이 많아진 권윤덕 작가는 『우주의 구조』 『빅뱅』 『엘러건트 유니버스』 『불확정성의 원리』 『E=mc2』 등 과거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공부할 계획이다.


사진/한정구

명사 소개

권윤덕 (196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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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작가 : 문학가

최신작 : ねこはわたしのまねばかり

20년 전 그림책 『시리동동 거미동동』 작업을 위해 제주를 처음 찾았다. 제주의 바다, 돌담, 자연, 아이와 해녀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았다. 제주와의 인연은 그 이후로도 계속 이어져 전시와 강연을 하기도 하고, 제주 4·3사건을 담은 책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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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의 추천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빈센트 반 고흐 저/신성림 편

반 고흐가 쓴 작가노트에요.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 설렘으로 가득 차 있어요. 어느 날은 잘 그려져서 또 어느 날은 표현이 잘 안되어 애쓰며 노력하는 과정이 깊이 공감이 가요.

서양미술사

E.H.곰브리치 저

미술사 공부한다고 밑줄 치며 열심히 읽었어요. 읽을 때는 많은 것을 알고 이해한 것 같은데 돌아서면 신기하게도 모두 잊어버리죠. 그래서 가끔 꺼내 보는 책이에요.

외다리 병정의 모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원작/요르크 뮐러 그림

글이 없는 그림책이에요. 자본주의로 얽혀져 있는 강대국과 약소국, 빈부 차이, 문화와 예술을 잘 엮어서 보여주죠. 멋진 책이에요.

죄와 벌

도스토예프스키 저/유성인 역

고리대금업자 노인을 살해하는 것, 주인공의 살인 계획과 신경증적인 생각들이 대학교 때 아주 예민하게 나의 감성 어딘가를 끊임없이 건드렸던 것 같아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공지영 저

소설 끝부분에 주인공이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며 완성해 가는 것을 닮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감로탱

강우방,김승희 공저

그림마다 화면 중앙의 아귀 모습과 하단에 그려진 당시 사람들의 삶이 볼만해요. 하나하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불화 형식이 그림을 하나하나 읽게 합니다.

아무르

미카엘 하네케,장-루이 트랭티냥,엠마누엘 리바

죽는다는 일을 가까이서 느끼게 해줬어요. 아마도 내가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어요.

지슬 - 끝나지 않은 세월2

오멸

마지막에 신주를 모신 지방을 태우는 장면,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극락으로 보내드리는 것 같아 고마웠어요. 요즘 4.3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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