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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권력과 욕망을 말하다

글쓴이: 블뤼런너의 서재 | 2015.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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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글에는 향기가 있다. 섬섬옥수 살아 있는 오감이 있다. 오감으로 읽는 건축 좀 비약하자면, 타니자끼 준이찌로가 쓴 음예공간예찬을 읽은 이후로 이렇게 건축관련서적을 읽으면서 향기로왔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작가는 수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특이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내 편견이지만 그녀는 건축이라는 학문 밖에서 서성인다. 분명 이 부분은 그녀가 본질안으로 들어오기 싫어서 그런 것도 몰라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이는 필시 스스로 타자(他者)화 하면서 건축이라는 학문안에서 건축의 본질이라고 말하는 그 현학적인 문체들에 거부감이 있었을 것이다. 또는 사조나 대가에 휘둘리며 미학의 합리화에도 동의하지 않고 있다. 그녀는 어떤 건물이 예쁘고 촌스러운지 나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라고 일갈한다. 이 부분은 그녀의 감성과 그녀의 시각으로만 그려 낼 수 있는 그녀만의 궤적이다.


 


실상 디자이너의 견지에서 건축을 대하면서부터 자신의 미학적 관점과 응용 및 표현방식 등을 만들어 가면서 왜 아름다운지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게 된다. 그러면서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건물이나 건축가에 대해서 합리화를 스스로 해나간다. 그렇지 않으면 아름다움에 대해서 쫓을 수 있는(흉내낼 수 있는) 기력마저 소진될까봐 두려워서 일수도 있다. 아무튼 그녀는 그동안 건축미학이나 건축학에서 원론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분들보다 조금 바깥에 있는 내용들에 천착한다. 모든 건축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비밀스러운 메시지를 내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것에는 당연히 메시지가 담기게 마련이다. 사찰, 성당, 교회와 같은 건축은 신은 위대하다는 메시지를, 교도소는 범죄자가 교도에 의해 교화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병원은 치료에 의해 인간이 치유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학교는 교육에 의해 인간이 육성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각각 담고 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야기다.-이것을 우리는 기능이라고 배운다- 각각의 건물은 그에 합당한 목적에 따라 이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속에 그녀의 시각이 있다. 기능 충족 이외에 그곳의 동선에 양식에 빛과 소리에 권력과 욕망의 손길이 스며있다는 그녀의 이야기는 귀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예의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쇼핑몰과 백화점에서 소비자의 소비욕구를 이끌어내는 상술의 기민함을 백화점 소식지에서 이끌어내는 이야기꺼리의 아기자기함은 백화점의 역사와 백화점 건축을 이야기하는데 충분히 유쾌한 글감의 시작이며 감성의 접근이다. 프랑스 백화점의 기원에 대한 설명을 시작으로 화신백화점으로 끝을 맺으면서 종로타워를 살짝 꼬집고 마치는 그녀의 앙탈은 향기로운 소스처럼 풍미를 더한다.


 


그녀는 미셸 푸코, 베블렌, 장 보드리야르 등의 이론을 빌어 1인간의 욕망이 꿈틀거리는 건축이라는 제목 하에 학교와 병원, 감옥을 감시와 훈육의 건축으로, 백화점을 욕망의 노예를 길러내는 건축으로, 뮤지엄을 약탈과 전시의 건축으로,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욕망과 모방소비의 건축으로 이야기하고, 2공간과 건축이 발신하는 다양한 메시지이라는 제목 하에 마음, 오감, 권력, , 불과 건축의 상호관계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건물은 단순히 바라보는 대상물이 아니라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온몸으로 느끼는 체험의 공간으로 설명한다. 특히 눈을 가리고 건물 내부를 헤메며 그녀가 깨닫게 되는 오감체험은 영화를 보는 것처럼 읽고 있는 나에게까지 서양화과의 트레빈 냄새가 나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게 한다.


 


인문학 책은 팔리지 않는다고 이미 출판계는 슬퍼하고 있을지라도 지금 그녀가 쓴 이 책과 같은 노력이 고맙지 않을 수 없다. 제목만 보았을 때엔 무척 전투적이며, 기념비적 건축에 대해서 과감한 메스를 들이대며 악다구니라도 써댈 줄 알았다. 권력과 욕망의 건축에 대해 어떻게 이해와 배려로 글을 쓸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녀는 달랐다. 후반부의 빛의 건축에서 몽골 브리야트 족의 시조 이야기에서는 그녀만의 재미는 극에 달한다. 게르의 빛과 판테온의 빛, 그리고 선녀와 나무꾼으로 전이된 몽골의 시조 설화는 정말 누가 읽어도 쉽고 재미있게 이해되는 그녀만의 시각이다. 신의 신성함을 아무리 강조하고 돔 구조의 어려움을 극복한 판테온을 아무리 재미있게 설명해도 이처럼 그림이 그려지는 설명은 쉽지 않은 접근이다. 실로 건축을 즐기며 구경하는 그녀만의 독특한 시각이 이런 구성진 스토리 구조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건축을 하면서 tectonic(구축,축조)을 알게 된 후 무언가를 쌓아 올리는데 나도 모르는 편집증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글을 읽고 난 후 특별한 피로감이 밀려오지 않는다. 특별히 줄치며 음미할 문장은 없어도 다시 책장을 펼치니 구석구석 실려 있는 에피소드와 느낌들이 스르륵 지나간다. 꼭 하나의 대 공간에 마련된 컨벤션 전시부스를 편안하게 돌아다니며 실컷 재미거리들을 찾아다니다 빠져나온 기분이랄까? 아무리 걸어도 힘이 별로 들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계단을 하나도 오르내리지 않은 것 같은 기분! 우리는 그동안 모든 것에서 위로 쌓는데 익숙해져 있었던건 아닌지 되돌아 볼 일이다. 이 책은 건축을 전공하고 싶어 하는 고등학생들에게 꼭 읽게 하고픈 책이다.


즐길 준비가 됐으면 건축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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