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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어주는 남자들

글쓴이: 5for10님의 블로그 | 2015.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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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일곱 권의 소설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다. 우리가 곱씹은 작품들이고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이다. 이 책은 그 책들이 지닌 너른 뜰로 들어설 수 있는 소박한 가교架橋와 같다. <빨간책방>의 방송 내용을 옮겨 다듬고 보충한 이 책이 말과 글의 경계선 위에서 말의 역동성과 글의 사변思辨성을 함께 갖출 수 있기를 헛되이 바란다. - '이동진의 서문' 중에서


 


 


소설 읽어주는 남자들


 


책은 현대 영국 문단을 대표하는 이언 매큐언<속죄>로 시작한다. 영화 <어톤먼트>의 원작으로도 유명한데 이동진 작가는 영화도 좋지만 원작 소설이 훨씬 더 좋다고 말문을 연다. "520쪽이 넘는 이 소설은 아름다우면서도 가슴 아프고, 섬세하면서도 장중해서 많은 분들께 권해드리고 싶습니다"라는 말에 김중혁 작가도 "이언 매큐언 소설 세계의 압축이자 정수"라고 맞대응한다.


 


 



 


 


 



두 사람은 모두 한결같이 영화를 보기 전에 책부터 먼저 읽으라고 한다. 왜 일까? 이 소설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4부는 에필로그 성격이 강하다. 소설은 1935년 영국의 한 저택에서 출발한다. 잭과 에밀리는 부부이고, 슬하에 아들 레온, 큰딸 세실리아, 막내 브리오니 등 1남 2녀를 자식으로 두었다.


 


또 가정부의 아들 로비는 매우 총명해 잭의 지원을 받아 대학을 다니고 있다. 선남선녀, 로비와 세실리아는 어려서부터 매우 친하게 지낸 사이였지만 성인이 되어선 이성으로 여기게 되어 오히려 서먹서먹해 한다. 작가가 꿈인 13살의 소녀 브리오니는 더운 여름날 창밖으로 묘한 광경을 목격한다. 사실 별 일도 아닌데, 소녀의 눈에는 마치 언니가 벌받는 것처럼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갑자기 옷을 벗어던지고 분수대로 뛰어드는 것 같았다.


 


언니 세실리아는 집안 대대로 전해진 귀한 화병에 물을 담으려다 실수로 깨뜨리고 깨진 조각이 물 속에 빠지자 이를 찾으려고 분수대로 들어갔던 것이다. 이런 사정을 알리 없는 동생 브리오니는 이상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아무튼 그날 저녁에 세실리아와 로비는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몰래 서재에서 만나다. 에로틱한 장면이다. 둘의 운명을 결정해버린 순간이다. 하필 브리오니가 이 장면을 우연히 보고, 언니 세실리아가 로비에게 당한다고 오해한다.


 


마침 이날 집에는 브리오니의 이종사촌인 롤라, 쌍둥이 형제들이 와 있었는데 오빠 레온과 오빠 친구 폴 마셜도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쌍둥이 형제들이 롤라 언니와 싸운 후 편지를 써놓고 집을 나가버려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 모두 쌍둥이들을 찾으러 나간다. 이 과정에서 롤라가 누군가에게 강간을 당하고 브리오니가 이 현장을 지나가다 강간범의 뒷모습을 어렴풋이 보고선 그를 로비라고 지목한다.


 


아이의 증언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 로비는 억울한 징역살이를 거쳐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다. 막 사랑을 시작하려던 세실리아와 로비는 이젠 만나지도 못하고, 한편 시간이 흐르면서 브리오니는 자신이 목격한 것에 대해 확신을 잃으면서 죄책감을 느끼고 그 일을 되돌리려 한다. 여기까지가 스토리의 절반에 해당한다. 이후 반전이 두 차례있는데, 영화에서 하나만 나온다.


 



영화 <어톤먼트> 중에서


 


김중혁 작가는 2부를 가장 흥미롭다고 말한다. 앞서 살펴 본 것처럼, 1부는 저택에서 일어난 일로 고전적인 느낌으로 보여지겠지만 2부에선 로비가 세계대전에 참전한 경험 중심이며, 또 전쟁의 참상과 세실리아의 섬세한 러브레터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 전체로 보면 60년에 걸친 이야기인데 초반은 단 하루를 다루고 있다. 2부는 시간을 어느 정도 건너뛰어 어던 기간의 일은 다룬다. 작가 이언 매큐언은 세실리아와 로비의 분수대 장면부터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굉장히 잘 짜인 구조를 가졌기에 대단한 테크닉으로 보여진다.


 



"앞으로 삼십 분 안에 브리오니는 평생 잊지 못할 범죄를 저지르게 될 것이다"라고 시작하는 장도 있죠. 이렇게 사건 자체나 원인이 아닌 사건의 파장이나 결과를 먼저 던져주는 방식도 자주 활용하는데 이런 것이 소설을 굉장히 탄력 있게 만드는 게 아닌가 싶어요. - 이동진


 


김중혁 작가에 따르면 1부 초반은 정말 쉽게 읽히지 않는데 이는 묘사가 워낙 세밀하고, 장중하게 흘러가기에 부담스럽고, 인물도 많이 나오는 편이라 혼란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댄다. 하지만 내용상 꼭 필요한 부분이니까 조금만 참고 가시면 곧 페이지가 잘 넘어간다고 첨언한다. 고전소설의 미덕과 현대소설의 매력까지 다 갖추고 있는 훌륭한 작품이라고 추천한다.

이 소설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버린 결정적인 순간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하면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으므로 이런 경우는 소설로 쓰여질 일이 없다. 이 작품을 통해 결국 어느 하루에 있었던 순간의 선택이 일생의 기쁨이 되기도 또는 짐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모든 이가 브리오니의 증언에 따라 연인 로비를 강간범으로 믿을 때 세실리아는 서재에서 있었던 짧고 강렬한 로비와의 육체적 경험 때문에 이를 부정할 확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강하게 부정하고 이후 가족들과 의절까지 한다. 육체적 접촉이 스파크를 일으키는 것은 한순간인데 그 마력은 실로 대단하다. 소설이 그렇게 만들고 있다.


 


반전 이야기를 해보자. 롤라의 강간범은 과연 누굴까? 소설의 독자라면 모두 저택 사람들의 일을 도와주던 남자 대니를 지목한다. 하지만 범인은 오빠의 친구 폴 마셜로 밝혀진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다. 그런데, 3부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브리오니가 누군가의 결혼식에 가는 장면이 나온다. 롤라와 폴 마셜의 결혼식이다. 헉, 반전이다. 강간의 피해자와 가해자의 결혼이다.


 


3부의 내용은 브리오니가 언니 세실리아의 집으로 찾아가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된 과거 증언을 바로잡겠다고 선언한다. 마침 이때 로비가 그 집에 있었다. 로비는 브리오니를 보고 처음엔 엄청 화를 낸다. 그리고는 증언 번복의 절차를 차근차근 얘기해 준다. 하지만 마지막에 드러나는 진실은 잘못을 속죄한 일 자체가 픽션이었다는 것이다.


 


사실 로비와 세실리아는 이미 저 세상 사람이었다. 로비는 1940년 프랑스에서 감염으로 사망해 영국으로 돌아오지도 못했고, 비슷한 시기에 세실리아는 기차역에서 폭격으로 죽었던 것이다. 결국 두 연인은 전쟁으로 헤어진 상태에서 한번도 재회하지 못했다. 이에 죄책감을 느긴 브리오니가 자신의 소설 속에서나마 두 사람이 함께 보냈고, 자신이 그들을 만났다고 묘사했던 것이다. 또 증언 번복을 협의하고 두 사람이 브리오니를 기차역까지 배웅해주고 헤어진 것으로 나오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세실리아가 바로 그 역에서 폭격 때문에 사망한 것이었다. 반전 중의 반전이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서 악인은 과연 누구일까? 어느 인터뷰에서 작가 이언 매큐언은 폴 마셜과 롤라라고 말했다. 롤라는 자신이 강간 피해자임엔 분명하지만 로비가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침묵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롤라가 마셜을 좋아했기 때문이고 당시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버려진 상황이라 사업가인 마셜을 의식하지 않았을까 싶다.


 


당신은 누구를 악인으로 지목하나요?


 


 



이동진의 빨간 책방 


 


 



이밖에도 이 책에는 <그리스인 조르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등 모두 7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과 소설가 김중혁이 진행하는 팟 캐스트 <이동진의 빨간 책방>에서 다루었던 작품들이다. 다시 읽을수록, 곱씹을수록, 함께 대화를 나눌수록 의미와 내용이 다양해지는 작품들이기 때문에 두 사람의 대화를 따라가는 동안 독서의 즐거움과 문학의 아름다움에 푹 빠지게 된다. 긴 긴 겨울밤, 책 읽는 재미에 빠져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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