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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기시감의 비극_화차

글쓴이: 태이태후아빠 블로그 | 201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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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두꺼운 소설인데도 쉽게 읽힌다. 읽는 내내 긴장감이 늦춰지지 않아서 점심을 먹으러 갈때도 책을 들고 나갔다. 혼자서 회사 근처 조그만 점심 부페에 앉아 떠온 밥을 먹는둥 마는둥 숟가락을 놀리며 책을 읽었다. 희한하게도 왠 아저씨 하나가 맞은편에 앉으며 말을 걸길래 자리도 많은데 왜 합석을 하는걸까?? 넉살도 좋구나..하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눈을 비로소 마주친 아저씨가 겸연쩍게 웃으며 자리를 옮긴다.


 


밥을 먹으면서도 책장에 꽂힌 눈을 돌리기가 힘들다. 마침내 신조 교코가 왜 그런 선택을 했고 얼마나 기구한 인생을 살아왔는가가 밝혀지는 대목에서는 먹던 밥이 곤두서는 느낌이 들정도로 비참한 느낌이 들었다. 속이 더부룩하다. 쓰리기도 하는 것 같다. 티없이 아름다운 청소년기를 살아왔을 아름다운 여고생의 일상이 고작 집 장만을 위해 무리하게 감행한 대출 하나로 망가지는 과정도 그렇거니와 그 귀결로 선택하는 이후의 노정이 막막하기만 하다.


 


읽던 책에서 현실의 모습을 겹쳐보는 것이야 문학이 인생과 현실을 반영하니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왜 하필 나는 화차라는 소설과 마주치게 된 것일까? 화차에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들이 등장한다.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는 것은 역시 혼마 슌스케라는 형사지만 진정한 주연이라고 할 신조 교코의 모습은 그의 추리와 주변 탐문을 통해 마치 모자이크 퍼즐처럼 하나씩 맞춰지면서 처연함을 더한다. 사회파 미스테리 작가라는 미야베 미유키의 평판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알겠다.


 


혼마 슌스케와 미조구치 변호사가 파산자, 구체적으로 세키네 쇼코에 대해 나누는 대화는 마치 지금의 한국 사회가 안고있는 문제를 들여다 보고 쓴 것 같은 현실감과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우리나라에도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신용대란을 먼저 겪은 일본에서 단지 행복해지기 위해 선택한 작은 행동들이 어떻게 개인을 지옥으로 몰고 가는지 그것이 과연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어 버리고 떠넘겨져야 하는지에 대한 대화는 우리가 마주치는 불행이 결국 이 사회와 국가, 제도가 강요한 것은 아닌가 하는 깊은 성찰로 이어지게 만든다.


 


언제나 양복에 따라 붙어 오는 예비 단추를 떼어주던 사려깊은 아내 지즈코를 혼마 슌스케로부터 빼앗아 간것은 졸음 운전으로 중앙선을 넘어 지즈코의 차를 정면으로 박아버린 트럭 운전기사였다. 그 지점에서 과연 그 트럭 운전사만을 살인의 주체로 보는 것은 정당한가 하는 물음은 사고나 사건을 단순히 1차원적으로 파악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생각까지 확장시키는데 이 물음은 여지가 있는 질문이다.


 


만약 중앙 분리대가 있었더라면, 만약 트럭 운전사가 강요된 긴 시간의 노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충분히 앞을 바라보고 피할 수 있는 도로 설계나 회피 구간이 있었다면.. 그 시간에 그 장소에서 사고가 난 것은 과연 운전자들만의 과실로 단정 지을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우리는 이 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거대한 시스템을 들여다 볼 생각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세월호 사건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이제 일주일이 넘어가는 이 비극은 조만간 우리의 뇌리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성수대교나 삼풍 백화점이나 마우나오션리조트의 비극처럼.. 늘 재발 방지가 언급되고 빠른 대처와 적절한 조치가 언급되고 정부의 안이한 대응과 업주의 탐욕이 안줏감처럼 입에 오르내리지만 결국 책임을 져야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죄책감을 갖고 있을지 미지수다.


 


지옥은 이미 세상에 열려있다. 사람들은 동족을 잡아먹는 악귀로 변할 수도 있다. 단지 행복해지기 위한 선택을 한 것 뿐인데도 인생은 파국으로 치닫기 너무나도 쉬운 것이 되었다. 1992년 미야베 미유키가 이 사회를 향해 던진 질문은 오늘의 한국 사회에도 유효하다. 우리는 돈의 노예, 자본주의의 노예, 국가와 사회가 강요한 시스템의 노예로 오늘을 살아간다.


 


사회적인 비극으로 불리울만한 재난에서 우리는 시스템을 탓하기 보다 개인의 무능을 문제 삼는 나라와 시대에 살고 있다. 언론은 세월호 사건을 선장의 과실로 묻어버리려 애쓰고 정부는 그런 움직임을 부추긴다. 애써 책임지지 않고 자신만 조심하며 사건을 덮어 버리려고 한다. 그리고 제2, 제3의 사고는 이미 이 시점부터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화차에서 미조구치 변호사의 입을 빌려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 사고는 당사자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아직 우리 사회는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주위 사람들을 잡아 먹고 살아가야 하는 시대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이미 받아들인 악귀들이 이미 우리 주위를 배회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지나친 억측이라 할 수 없을것이다.


 


오늘도 화차는 망자를 지옥으로 실어나른다. 아니 화차는 이미 열려버린 이땅의 지옥문을 맴돌며 지금도 희생자를 늘려가고 있을도 모른다. 그리고 스스로가 그 희생자가 아니라고 외면하는 한 내 가족이, 친구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 희생물이 되지 않는다 장담할 확신이 없다. 세키네 쇼코, 신조 교코.. 그들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그 비극은 2014년 지금 이땅에도 진행되고 있는 현재형이고 그래서 나는 아직도 아까 먹은 점심밥이 더부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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