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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미의 식물로 맺어진 세계] 애지중지하다가

식물로 맺어진 세계 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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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것은 식물을 통해 내가 새롭게 맺게 된 세계가 있고, 반대로 새로 획득한 어떤 렌즈를 통해 식물을 다르게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2023.03.15)


발 없는 식물이 인간의 손에 들려 들어와 집안에서 살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실내에서 식물을 기르는 모습은 기원 전 500년경의 중국 벽화에서도 볼 수 있다고 하니, 일명 '식집사'의 역사는 생각보다 훨씬 오래된 것 같다.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감염병이 창궐하여 홀로 있게 될수록, 기계에 둘러싸여 자신도 기계처럼 여겨질수록 식물이 우리 생활에 더 깊이 들어오는 걸 보니, 자연과 연결되고자하는 인간의 절박함을 알겠다. 그러나 그 절박함이 무색하게도 식물은 우리 곁에 쉽게 온다. 그리고 정원에서 베란다로, 베란다에서 창가로, 창가에서 거실과 방으로 깊숙이 들어와 우리 생활의 한 공간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다.

식물은 분명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때는 꼼짝 않고 정지의 상태이면서, 한눈을 팔고 돌아오면 어딘가 변해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 여전히 놀랍다. 우리는 좀처럼 식물이 변하는 그 순간을 목격하기 어렵다. 한눈을 팔다 문득 돌아보면 어느새 뿌리가 자라 있고, 어느새 새순이 나 있고, 어느새 꽃을 피우고, 어느새 죽어 있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우리에게 '성장'과 '생명'이라는 진부한 주제를 상기시킨다. 식물의 온몸으로 발산하는 색은 또 어떤가? 어떤 뛰어난 인공 안료로도 흉내 내기 힘든 빛깔들. 거기다 식물은 예측 가능함으로 돌보기의 즐거움 주었다가도 예측 불가능함으로 인간의 통제에 완전히 들어오지 않음을 똑똑히 알려준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 또한 식물을 애호하던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베란다(정확히는 실내화된 발코니)에 늘어선 많은 화분들, 그것들을 돌보던 부모님의 뒷모습이 익숙한 세대다. 내 방과 작업실 곳곳에 배치된 화분들을 보고 있자면, 이 또한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것 중 하나가 아닌가 한다.



당황스럽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이 연재를 시작한 나로서도 민망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식물을 사랑하세요?"라고 묻는다면, "네, 끔찍이요!"라고 대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지만, 식물을 사랑한다고는... 아무래도 이 대답은 보류해야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식물을 통해 내가 새롭게 맺게 된 세계가 있고, 반대로 새로 획득한 어떤 렌즈를 통해 식물을 다르게 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을 처음 가르쳐준 건 성규 씨였다. 큐레이터이자 원예가인 성규 씨는 2018년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에서 처음 만났다. 그는 한국관의 어시턴트 큐레이터로 전시를 진행 중이었고, 건축 전문 잡지사 기자였던 나는 전시를 취재 중이었는데, 둘 다 혼이 쏙 빠져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한국관 스텝들과 숙소를 같이 쓰며 가끔 식사를 같이 하기도 했는데, 한번은 성규 씨와 둘이 이야기하게 되었다. 숙소 앞 가게에서 스플리츠 한잔 씩 앞에 두고, 우리는 마땅히 일 얘기를, 하지 않았다. 대신 성규 씨는 자신이 돌보는 식물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식물 이야기가 아니기도 했다. 식물 자체 보다는 사선의 지붕을 가진 자신의 방, 햇빛이 들어오는 방향과 그림자의 형태, 모빌의 움직임과 같은 것들을 훨씬 더 길고 자세하게 묘사했다. 아마 식물을 통해 알아차리게 되는 것들인 것 같았다. 식물 가지를 가위로 잘라내며 수형을 만든다고 했을 때, "수형이 뭐예요?"라고 물을 만큼 나는 식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지만, 자신이 머무르는 공간을 관찰하거나 묘사하는 데에는 더욱 몽매함을 그때 알아차렸다. 내 생 4할이 건축으로 점철되던 때였는데 말이다.

한국으로 돌아오고, 바쁜 업무와 일상이 몇 번이나 휘몰아쳐 지나가고, 가끔 성규 씨와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문득 성규 씨로부터 유칼립투스 폴리안 묘목 하나를 선물 받았고, 나는 입이 네 장 달린 묘목을 회사 책상에 두고 애지중지 키웠다. 하루에도 몇 번씩 흙에 손가락을 찔러보고, 일하다 종종 잎사귀도 만지작거려보고, 퇴근할 때는 옥상에 내놓았다가 출근할 때 데리고 들어오곤 했다. 내 방정맞음에 회사 동료들은 화분에 '애지중지'라는 이름을 붙이고는 가끔 놀렸다. 뭐 어때. 내 키만큼 자란 애지중지가 동전 같은 잎을 흔들어대는 소리를 내 방에서 듣게 될 날이 온다면! 방바닥에 그림자가 포도송이처럼 열릴 수 있다면! 유칼립투스 향기에 취해 잠에 들 수 있다면! 하지만 잎이 스무 장쯤 달리게 되었을 때, 내 입장에선 어떤 기색도 없이 죽어버렸다. 아마 과한 애정에 질식해버린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어릴 적 학교 숙제였던 강낭콩 기르기도 해 본적 없는 내게 그 죽음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죽음에 대한 슬픔이라기보다는 나의 공간을 사랑할 기회를 잃어버린 기분이었달까. 어찌되었건 애지중지로 보기 좋게 실패했다. 비유나 은유를 벗어던진 식물이 뻗어나가는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세계로의 진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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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박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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