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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획] 2022년 바르셀로나 도서전을 가다 (5)

김정하의 스페인 문학 여행 (마지막 화) - 플라멩코(Flamen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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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멩코는 인간의 원초적인 고독과 아픔을 가장 깊이 있게 표현하고 있는 음악이다. (2023.01.16)


<채널예스>에서 '김정하 번역가의 스페인 문학 여행'을 연재합니다.



내가 지내고 있는 말라가는 안달루시아의 항구 도시다. 안달루시아는 스페인 이베리아 반도의 남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행정 자치 면적은 남한보다 조금 작은 8만5천 평방미터이며, 인구 850 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

스페인의 자치 행정 단위는 각각 고유한 문화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안달루시아는 스페인 내에서도 민속 음악과 이슬람 문화의 영향이 강한 지역으로,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타인에 대해, 외지인에 대해 개방적이고 친절한 성향이다. 

스페인은 711년부터 1492년까지 이슬람 세력과 공존했고, 마지막으로 1492년에 이슬람의 그라나다 왕국이 항복하고 스페인은 가톨릭 왕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렇듯 안달루시아는 이슬람 문화의 전통이 내면에 흐르고, 특히 건축의 경우 무데하르 양식이 안달루시아 건축 양식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안달루시아의 가장 대표적인 문화로는 역시 플라멩코를 꼽을 수 있다.

이곳 말라가 역시 플라멩코가 문화와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플라멩코는 흔히 집시의 음악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는 말이다.

우선 집시라는 민족에 대해 간단하게 살펴보려고 한다.





집시의 기원은 인도 북부 파키스탄 지역이다. 아리안 족이 들어오기 전에 거주했던 종족으로 집시 족이 자신의 터전을 떠나게 된 사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아마도 침략족과의 갈등 속에 고향을 떠나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학자들은 이러한 그들의 디아스포라의 기원이야말로 그들이 순수하고 누구와 다투기를 싫어하는 종족임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전사의 미덕을 버린 것은 아니다. 

집시들이 자신의 터전을 버리고 이주를 시작한 것은 9세기다. 

그들의 이주 경로는 대체로, 파키스칸-아프가니스탄-이란-아르메니아-흑해-터키-남부 유럽-중부 유럽-영국, 스페인으로 본다. 

이들은 경유 지역에 남아 정주하는 한편, 일부는 계속 이동하여 서쪽의 끝에 정주한 곳이 영국이고, 남쪽 끝에 정주한 곳이 스페인 안달루시아다.

집시가 스페인에 들어온 것은 1425년이다. 당시 아라곤 왕국의 알폰소 5세가 집시 환데 에힙토에게 통행증을 발급해 왕국 영토로 들어와 산티아고길 순례를 할 수 있도록 허가한 것이다. 피네네 산맥을 넘어온 그들은 계속 남쪽으로 이동하여 안달루시아에 도착한다. 외지에서 오는 이를 차별하지 않고 극진히 대접하던 당시 안달루시아 민중은 그들에게도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하여 스페인에서 집시족은 안달루시아에 주로 거주하게 되었다. 스페인에 거주하는 70 만 명 정도의 집시 중 안달루시아에 35 만 명이 거주하며 전체 안달루시아 인구의 4.5% 정도를 차지한다.

그렇다면 전 세계적으로는 어떨까?

전 세계적으로 1,200 만 명의 집시들이 흩어져 살고 있다고 추정된다. 물론, 이 통계에는 집시족 이라는 정체성을 숨기고 사는 이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유럽에서는 루마니아와 불가리아, 슬로바키아에 많이 거주하며 — 그 나라의 전체 인구 중 집시 비율이 9-11% 정도이다 — 프랑스에 40만, 영국에도 25 만 명 정도 거주한다.

다시 플랑멩코로 돌아오자. 플라멩코는 과연 집시의 음악인가. 위에서 언급한 집시 인구 통계만 보아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집시는 유럽 전역에 흩어져 있지만 스페인, 그것도 안달루시아에서만 플랑멩코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플라멩코는 안달루시아가 지니고 있던 음악과 집시의 목소리가 결합한 예술 양식이다. 앞서 말했지만, 안달루시아는 짧게는 500년, 길게는 800년간 이슬람이 지배하던 지역이었다. 고유의 안달루시아 민중 음악에 이슬람과 유대인의 음악이 더해졌고, 15세기말 이후 집시의 음악이 그 층을 더한 것이다.

안달루시아의 민속 음악과 집시의 음악(특히 목소리)이 녹아서 플랑멩코가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말이다. 통행증을 얻어 들어왔지만, 집시들은 그라나다 왕국의 알람브라 궁전 정복 이후 갑자기 멸절되어야 하는 종족이 되어버렸다. 스페인을 순수 가톨릭 왕국으로 만들려는 흐름 때문에 그들은 박해를 받게 되었고, 이후 오랜 세월 집시들은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그랬듯 쫓겨 다니며 박해받는 생활을 이어오게 된다. 집시에 대한 부정은 플랑멩코에 대한 노골적인 멸시와 더 나아가 안달루시아 문화에 대해 은연중 무시하는 경향으로 이어졌다. 지체 높은 사람들이나 사회적인 명망이 있는 사람들이 플라멩코를 좋아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 플랑멩코는 편견과 무시를 극복하고 안달루시아를 넘어 스페인은 물론 유럽과 세계 음악으로 나아가고 있다.

지금부터 100년 전인 1922년에 20세기 스페인의 대 작곡가인 마누엘 데 파야(Manuel de Falla, 1876-1946)와 시인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Federico Garcia Lorca, 1898-1936)가 그라나다에서 <칸테혼도 콩구르>를 개최했다. 이 행사로 플라멩코는 공식적으로 스페인 문화의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또, 그동안의 노력과 발전 덕분으로 지난해 2022년 아스투리아스 공주상(Premio Princesa de Asturias)의 예술 부문이 플라멩코에 헌정되었다. 아스투리아스 공주상은 1981년부터 시작된 스페인의 권위 있는 상으로 스페인의 차기 왕위 계승자가 문학, 예술, 사회 과학, 과학 기술, 스포츠 등 8개 부문에 대해 상을 수여한다. 칸타오르(플라멩코 가수)인 카르멘 리나레스(Carmen Linares)와 바일라오르(플라멩코 무희)인 마리아 파헤스(María Pagés)에게 수상의 영예가 돌아간 것이다.

플라멩코가 진정한 예술 장르의 하나로 인정을 받게 된 이유로 플랑멩코가 지닌 다른 음악 장르와 비교할 수 없는 독특한 특징을 꼽을 수 있다. 플라멩코는 인간의 원초적인 고독과 아픔을 가장 깊이 있게 표현하고 있는 음악이다.



말라가에서 지내면서 몇 차례 플라멩코 공연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우선 말라가 중심지에 위치한 켈리페 플라멩코 센터(Kelipe Centro de Arte Flamenco)에서의 공연이 인상적이다. 관광객들이 주로 많이 오는 곳이지만, 플라멩코라는 예술에 대한 대화의 공간으로 부족함이 없었다. 기타 연주와 노래, 손뼉, 춤으로 구성된 플라멩코의 진수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공연으로, 노래와 함께 춤을 담당했던 칸타오르는 집시들의 슬픈 역사에 대한 이야기로 공연을 이어갔다. 오랜 시간 어떻게 박해를 받아왔는지, 또한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 어떻게 민족의 동질성을 간직하고 살아왔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단순한 노래와 춤이라고 말할 수 없는 온 영혼을 담아낸 외침과 울부짖음으로 들렸다. 그녀의 가사 한 구절이 머릿속에 박혀 맴돈다.

"서서 죽을지라도 결코 굴복하지 않으리라. 무릎 꿇지 않으리라."


말라가 대성당 성탄 음악회

안달루시아 지방의 플라멩코의 영향은 가톨릭교회의 미사 전례곡 안에서도 만나볼 수 있었다. 어느 날 저녁 평일 미사가 시작되는데 갑자기 플라멩코 노래 소리가 들려서 깜짝 놀랐다. 플라멩코 음악으로 미사 전례를 노래하는 악단을 초청한 것이다. 주요 미사곡이 플라멩코 음악으로 연주되었고 신자들은 무척 좋아했다. 또 한 번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말라가 대성당에서 두 차례 성탄 음악회가 있었는데, 그중 한번이 플라멩코 미사곡 연주였다. 일찍 준비하고 갔는데, 뜻밖에 끝도 없이 길게 늘어선 줄에 깜짝 놀랐다. 다른 때는 전혀 볼 수 없었던 풍경이었다. 아기 예수의 탄생 이야기를 플라멩코 곡으로 만들어 연주했다. 다른 연주회 때와 달리 대성당을 꽉 채운 뜨거운 열기를 느낄 수 있었고, 플라멩코가 안달루시아 인들의 삶 속에 얼마나 깊이 스며들어 있는지 실감할 수 있는 기회였다.



또, 플라멩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말라가에는 <페냐 환 브레바(Peña Juan Breva)>라는 단체가 있다. 말라가 출신의 저명한 플랑멩코 가수였던(스페인어로 플라멩코 가수를 '칸타오르'라고 한다. 가수는 칸타오르(cantaor), 연주자는 토케오르(toqueor), 무희는 바일라오르(bailaor)다. 환 브레바(Juan Breva, 말라가 출생, 1844-1918)를 기리는 동호회로, 플랑멩코를 즐기고 전파하는 중요한 단체이며 기관이다. 파블로 프랑코 세하스(Pablo Franco Cejas)회장이 이끄는 이 단체는 1958년에 설립되었다. 현재 200여명의 동호인들로 구성되어 매주 저명한 플라멩코 공연자를 초청하여 연주회를 열고, 플랑멩코에 대한 현안을 논의하고, 플랑멩코 국제 학술 대회도 개최하면서, 플라멩코를 향유하고 연구하며 전파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플라멩코 박물관도 운영하고 있다. 진정으로 플라멩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국제 플라멩코 학술 대회

'페냐 환 브레바'의 회원인 말라가 대학교 역사학과 페르난도 불프(Fernando Wulff) 교수에게 플라멩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뜻밖의 긴 답을 받았다. 고심해서 쓴 흔적이 역력하다. 페르난도 교수의 글을 읽으면서 얼마나 플라멩코를 사랑하고 플라멩코에 심취해 있는지 마치 공연을 보는 듯 강렬한 느낌을 전달받았다. 나의 짧은 경험과 지식으로 플라멩코의 느낌을 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에 페르난도 교수의 글로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한국 친구가 플라멩코에 대한 글을 쓴다고 한다. 간단하게 나에게 플라멩코가 의미하는 바를 말해달라고 한다. 쉽지 않다. 생각을 먼저 해야겠다. 계속 생각을 해 본다. '페냐 환 브레바'에 가서 공연을 보면서 답을 끄집어내기로 한다. 이제 '페냐'에 왔다. 나는 친구를 위해 사진을 찍는다. 지금 부르는 '솔레아(플라멩코에는 여러 장르가 있다. 솔레아(Solea)는 그중 하나다)'의 가사 한 구절을 생각해본다.
침대에는 너의 몸의 흔적이 / 너의 머리핀이 / 네가 머리를 빗던 빗만이 남아 있네
이 가사의 의미에 대해 써볼 수 있을 것 같다. 간결하지만 심오한 가사다. 이토록 강렬한 가사가 솔레아의 구조, 그리고 칸타오르의 노래와 함께 결합되면 그 느낌은 대단해진다.
나는 계속 사진을 찍으면서 생각한다. 뛰어난 칸타오르다. 우리 모두 열광한다. 마지막 부분에 다른 칸타오르가 함께 흥을 돋우어 완벽한 마무리를 해 준다.
잠시 쉬고 난 후에 마지막 2부 공연이 시작된다. 플라멩코의 핵심은 '바일라오르'다. 무척 어린 그녀의 아들이 기타 연주를 한다. 특별한 감동의 순간이다. 몇 장의 사진을 더 찍는다. 바일라오르는 점점 더 몰입한다. 그녀의 춤 동작에 우리도 열광한다. 기술적으로 뛰어나며 리듬도 대단하다. 게다가 무척 창의적이며 기쁨의 순간에 완벽하게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계속 춤을 춘다. 어느 순간 그녀는 이 세상의 경계를 넘어선다. 플라멩코에서 '두엔데(duende)'라고 부르는 상태다. 이제 나는 그녀를 바라보는 것 말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우리 모두를 휘감은 느낌 속에 나를 맡기는 수밖에.
그리고 생각한다. 나에게 플라멩코는 생각하고 사진을 찍는 것과 같은 모든 일을 멈추고 아름다운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장소이며 그러한 경지로 나를 데려가 주는 유일한 예술이다."


*플라멩코 입문자를 위한 페르난도 교수의 추천곡

Pericón de Cádiz, Alegrías


Tia Anica la Piriñaca, Soleares


Tomas Torre, Seguirillas


Camarón de la Isla, Bulerías


Guitarra : Paco de Lucia, Entre dos agu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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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김정하(번역가)

번역가. 어렸을 때부터 동화 속 인물들과 세계를 좋아했다. 스페인 문학을 공부하고 스페인어로 된 어린이책을 읽고 감상하고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고 있다. 틈이 나면 동네를 산책하거나 오르간 연주를 한다. 옮긴 책으로 『도서관을 훔친 아이』, 『난민 소년과 수상한 이웃』, 『유령 요리사』, 『빵을 굽고 싶었던 토끼』, 『나에게 초능력이 있다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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