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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과 이별, 죽음과 애도를 이야기하는 그래픽 노블

『안녕 본본』 정유진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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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을 추스르며 애도하고 추모하는 하나의 의식으로서 이 그림책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채워 나갔다. (2022.11.08)


가족처럼 함께 지내던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많은 사람들이 극심한 슬픔과 우울감에 시달리는 펫로스 증후군을 경험한다. 살아가면서 그토록 나를 반기고, 그리워하고, 오롯이 사랑해 주는 존재는 드물기에, 반려동물과의 이별은 하나의 세상이 무너진 듯 큰 충격을 주기도 한다. 이번에 『안녕 본본』을 쓰고 그린 정유진 작가 역시 인생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함께한 강아지를 떠나보내면서 오랜 시간 상실의 아픔에 시달렸다. 그 아픔을 추스르며 애도하고 추모하는 하나의 의식으로서 이 그림책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채워 나갔다. 이별을 경험한 작가가 직접 쓰고 그린 이 그림책은 반려동물을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를 하는, 또는 이미 떠나보내고 힘겨워하는 모든 이들에게 따듯한 위로가 될 것이다.


  

『안녕 본본』은 작가님의 실제 경험에 기반한 작품이라고 들었습니다. 실제 '본본'은 어떤 강아지였나요? 어느 시기에 함께했고 어떤 추억을 나누었는지, 책에 나오지 않은 이야기를 좀 더 들려주세요.

본본의 진짜 이름은 '봉자'예요. 저희 집에 오기 전부터 불리던 이름을 그대로 쓴 거예요. 개와 오래 살다보면 정말 온갖 이름과 별명으로 부르게 되더라고요. 이름도 부르지만 애칭 같은 것들이 잔뜩 생겨나요. '본본'도 그중 하나입니다. 본본은 책에 나오듯이 처음 왔을 때는 정말 까칠한 강아지였어요. 저희 집에 오기 전에도 계속 여러 곳을 떠돌았기 때문에 더욱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았지요. 만져 주는 것도 싫어하고, 밥도 손으로 퍼서 입에 가져다줘야 먹거나 자기가 먹고 싶을 때만 먹는 까칠한 아이였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결국 가족들에게 마음을 열어 줬어요. 본본은 제가 중학생 때 만나서 제 인생의 절반을 함께했어요. 손도 못 대게 하던 강아지가 어느 순간 제 껌딱지가 됐지요. 같이 자고, 쉴 때도 같이 누워 있고, 심지어 제가 그림을 그릴 때도 자꾸 제 무릎에 앉아 있으려 했어요. 이 아이가 날 정말 사랑하는구나 느껴지는 순간들이 많았어요. 본본은 원래 검은 푸들이에요. 개들도 나이가 들면 까만 털들도 점점 바래지더라고요. 본본은 턱 밑에 있는 털이 점점 하얗게 변했는데, 이 털이 다 하얗게 변할 때까지 함께 있으면 했던 마음을 담아서 하얀 강아지로 그렸어요. 『안녕 본본』을 만들기 전에 일상 만화 같은 걸 그리면서 본본을 등장시킨 적이 있는데, 그때 그런 생각으로 만들었던 캐릭터가 이 책으로 이어지게 됐어요.

『안녕 본본』에서 본본은 주인공인데도 다른 동물과 달리 내내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고 함께 사는 강아지 똘이나 죽음의 입을 빌려 말하는 설정이 무척 독특해요. 그렇게 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본본이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은 실제 강아지 본본의 성격을 반영한 부분이 커요. 평소의 본본은 가족들이 집에 돌아올 때 문 앞에서 반겨주는 것 말고는 거의 짖지 않는 강아지였거든요. 정말 필요할 때만 목소리를 냈기 때문에, 책에서도 본본이 말을 하지 않는 게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이 이야기에는 제 실제 경험이 많이 담겨 있기 때문에, 더더욱 본본의 생각을 제가 다 아는 것처럼 대사를 만들어 쓰는 것이 작위적으로 느껴지기도 했고요. 또, 직접적인 대사를 넣기보다 다른 인물을 통해 본본의 생각과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좀 더 신비롭게 느껴지고, 본본의 감정 변화에 더 주목하게 될 것 같았어요. 같은 강아지들끼리는 소통할 수 있고, 특히 죽음은 본본의 모든 생각을 대변해주고 마지막 순간 꼭 필요할 때는 비로소 본본이 제 목소리를 내게 되는 거죠. 

스포일러가 되겠습니다만, 마지막 장면에서 인사를 나누러 달려오는 것이 본본의 주인이었던 '내'가 아닌 다른 등장인물인 점도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작가님의 생각이 듣고 싶어요.

본본이 노견이 됐을 무렵 제가 유학을 가게 됐어요. 부디 조금만 더 기다려주길 바랐는데, 결국 돌아오기 전에 세상을 떠났죠. 그때는 슬픔이 너무나도 커서 감당하기 힘들었어요. 더구나 저는 아직 유학 중이었고, 본본이 떠난 소식도 전화로 들었거든요. 떠나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지도 못했죠. 작별 인사를 나눌 시간도 없었어요. 힘든 시간을 보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는 함께하는 동안 서로의 눈만 보고도 '아, 이 아이가 나를 많이 사랑하는구나'라고 항상 느꼈어요. 

내가 본본의 사랑을 알고, 본본도 내 사랑을 안다고 느꼈죠. 그러니까 작별 인사를 직접 하지는 못했어도 어떻게든 본본에게 제 마음이 가닿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슬픔과 미안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저 나름의 합리화였는지도 몰라요. 아무튼 직접 말하지 못했지만 정말 사랑했다는 것을 기억해 주길 바라면서 마지막 장면을 그렇게 표현했어요. 또, 한편으론 책의 마지막인 4부 「떠나는 이야기」는 죽음을 향해 떠나는 동물들의 조금 다른 세계가 그려지므로, 마지막에 다시 사람이 끼어들기보다 그 세계 속의 이야기로 고요히 마무리하고 싶었습니다.

죽음 뒤에 가는 최종 목적지는 "네가 뭘 믿느냐에 따라 다르지"라는 대사가 나오죠. 사후 세계에 대해 '까마득히 먼 우주'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쓰셨는데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죽음 뒤의 세계에 대해 좀 더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어렸을 때부터 우주를 많이 좋아했어요. 어두운 하늘에 밝게 빛나는 별 같은 것들을요. 제가 어렸을 때 삼촌이 돌아가셨어요. 너무 어릴 때라 깊은 슬픔 같은 감정은 잘 느끼지 못했고, 그냥 엄마를 따라서 병원을 갔던 것만 기억이 나요. 그래도 저는 삼촌을 꽤 좋아했었고, 언젠가부터 하늘에 뜬 별을 볼 때마다 삼촌 생각을 했어요. 삼촌은 저 별 어딘가에 계실 거라고, 그래서 별을 볼 때마다 삼촌을 볼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는 죽으면 먼 우주 어딘가로 떠나게 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여행을 가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게 우주를 돌고 돌아 다시 우리에게 돌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도 종종 했고요.


『안녕 본본』 본문 중

오랫동안 함께 지내던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사람들은 '펫로스 증후군'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겪곤 하지요. 『안녕 본본』도 작가님이 강아지를 떠나보낸 아픔을 달래는 애도의 의식처럼 만들어 낸 작품인데요. 이 작품이 아픔을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되었나요?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 다른 분들에게 조언해 주신다면요?

본본을 떠나보내고 오랫동안 너무 많이 슬퍼했어요. 이렇게 계속 슬퍼해도 괜찮나 싶을 만큼요. 평소엔 괜찮다가도 눕기만 하면 그 감정이 쓸려 나오고 눈물이 나는 거예요. 그때 졸업 전시를 준비해야 했는데, 본본 이야기를 그려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머릿속에 떠오른 수많은 생각들을 이 작업에 쏟아낸 거죠. 제 슬픔도 본본의 무한한 하늘 어딘가에 넣어 뒀어요. 그리고 본본이 보고 싶을 때마다 어딘가에 보고 싶다고 글을 적었어요. 혼자 떠드는 공간처럼 하고 싶은 말을 계속 적었는데, 슬픔도 쏟아내고 나면 조금은 가벼워지나 봐요. 머릿속으로만 아픈 생각을 하는 것보다 좀 더 도움이 됐던 거 같아요.

그리고 결국은 시간이 흐르니 슬픔도 점점 줄어들었어요. 여전히 떠난 아이들을 생각하면 슬퍼지지만, 이제는 그때만큼은 아니에요. 본본이 떠났을 땐 정말 아무 일도 하기 힘들 만큼, 다른 강아지 이야기는 보지도 못할 만큼 슬펐거든요. 이젠 그렇지 않아요. 독자분들도 이렇게 슬픈 상태가 괜찮아질까? 하는 걱정을 많이 하신다면, 분명 괜찮아질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슬픈 추억보다 기쁜 추억들을 더 많이 떠올리며 우리 반려견들을 그리워할 수 있을 거예요.

이제 작업 이야기로 넘어가 봐요. 『안녕 본본』은 그래픽노블 형식의 그림책이고, 파란색과 빨간색으로만 이루어진 그림이 멀리서 봐도 작가님의 그림임을 금세 알아볼 수 있을 만큼 개성이 뚜렷해요. 이런 이미지 형식을 구현하게 된 과정에 대해 이야기 들려주세요.

원래 이 작업은 레트로한 느낌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리소그래피(risography) 인쇄를 시도해 보려고 했어요. 리소그래피는 잉크의 색이 정해져 있어서 한정된 색깔로 색을 겹쳐서 프린트할 수 있는데, 그러려면 색깔을 몇 가지만 정해두고 시작을 해야 했죠. 그래서 최종적으로 두 가지 색을 정했는데 그게 빨간색과 파란색이었어요. 제일 잘 어울리고 제가 좋아하기도 하는 두 가지 색으로 정해서 그리게 된 거예요. 그런데 시험 인쇄를 하면서 일반프린트로도 리소그래피의 느낌을 살릴 수 있다는 걸 깨닫고 결국 기본 CMYK 작업으로 전환했어요. 그래도 이 두 가지 색으로 더 많은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 여러 작업에 적용하고 있어요.

그림책 외에 문구 디자인이나 독립 출판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으시다고요. 지금 준비하고 있는 작품에 대해 살짝 귀띔해 주신다면요?

신인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저를 알리는 동시에 제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해 볼 통로로서 서울일러스트페어 같은 행사에 자주 참여하고 있어요. 마스킹 테이프나 엽서, 스티커 같은 아기자기한 문구를 만들어 보면서 제 이미지의 확장 가능성을 시도해 보는 기쁨도 크고요. 얼마 전에는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라는 주제로 작은 전시회를 열기도 했지요. 

또, 최근에는 동료 작가분과 팀 '까막북'이라는 이름으로 독립 출판 만화를 준비 중인데, 제목은 <터무니 없는 이야기> 시리즈랍니다. 둘이서 마구 떠오르는 대로 아무렇게나 내놓은 터무니없는 제목들을 이어 붙여서 이야기를 만드는 프로젝트예요. 이 시리즈는 텀블벅으로 판매할 예정이고, 또 연말에 있을 행사에도 차례로 시리즈 책을 보여드릴 예정이에요. 진행이 조금은 더디지만 엄마와 함께한 유럽 여행을 기록한 여행기도 언젠가는 독립 출판으로 선보이려고 합니다.



*정유진 (글·그림)

영국 킹스턴 대학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습니다.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만화 그리기를 좋아하고 그림으로 마음속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합니다.



안녕 본본
안녕 본본
정유진 글그림
노란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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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본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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