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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의 물건들] 소년과 악역 가면

<은희경의 물건들> 11화 - 악이 패배하는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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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두는 가면을 쓴 채로 일어난 일이었고, 나는 그들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무언극이나 그림자 연극처럼 내 몫의 상상을 보태게 되었다. (2022.09.28)


<채널예스>에서 매주 수요일,
은희경 소설가의 사물에 얽힌 이야기 '은희경의 물건들'을 연재합니다.



십여 년 전, 멕시코의 과달라하라 도서전에 참가하는 내 머릿속은 오직 한국 문학을 해외에 소개하겠다는 사명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고는 할 수 없다. 본고장의 데킬라와 밤의 광장에서 펼쳐지는 마리아치 공연이라는 잿밥 욕심도 조금(?) 있었다. 그런데 나와 함께 그 도서전에 참가한 작가 C에게는 다른 관심사가 있었으니, 바로 프로 레슬링이었다. 그 덕분에 나는 프로 레슬링 경기를 직관했고, 내가 전혀 모르던 세계의 뜨거움을 경험했으며, 또 이따금 가면을 쓰고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는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물론, 나는 '이번 생에 진심이며 평소에 열심히 살아두는 게 나의 취재'라고 말하는 소설가답게 경기만 본 것은 아니었다. 화려한 가면에 망토를 걸친 선수들이 등장할 때 터져나오는 음악과 함성. 그리고 라운드가 끝날 때마다 캣워크 위로 줄 지어 나와 포즈를 취해주는 라운드 걸들의 모습은 저녁밥을 배불리 먹은 귀여운 여동생들 같았고. 

일층과 이층 관람석의 관중들이 교대로 일어나서 일사불란하게 구호를 외치길래 응원인 줄 알았더니 "돈이 없어 이층석을 산 한심한 놈", "엄마 품에서 응석이나 부릴 나약한 놈"이라며 서로를 야유하는 거라고 한다.(통역하는 분도 정확히는 모른다고 했지만) 관중석에는 남녀 불문 레슬링 가면을 쓴 사람이 많았고, 레슬링복에 망토까지 갖춰 입은 꼬마들도 적지 않았다.

목을 조르고 다리를 꺾고 상대의 몸 위로 뛰어내리는 장면이 펼쳐지면 함성은 더욱 커졌다. 그러나 나는 공포 영화를 볼 때처럼 일부러 허공에다 초점을 맞춰 흐린 눈으로 그 장면을 보았음을 고백한다. 많은 부분이 '쇼'일 거라고 짐작하면서도 '저 사람 저러다가 죽는 거 아닐까' 싶은 순간에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야 했다. 그러다가 캣워크 쪽에 붙어 서서 팔을 휘둘러가며 소리를 지르는 꼬마들을 보았다. 모두 자기가 응원하는 선수와 똑같은 가면과 망토 차림이었다. 자기 선수가 상대를 거칠게 다룰수록 그 애들의 앳된 응원의 목소리는 한층 높아졌다.

나는 그 중에 가장 작은 소년만 우두커니 선 채로 시무룩하게 서 있는 걸 발견했다. 왜 그런지 C가 알려주었다. 그 애가 쓰고 있는 가면은 '악역' 선수의 마스크인데, 악역은 언제나 지게 돼 있다는 거였다. 프로 레슬링은 각본에 의해 진행되며, 대치하고 도발하고 기술을 사용하는 순서는 물론이고, 승패도 미리 정해져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선역과 악역으로 나뉘어서 한쪽은 환호와 승리를 얻고, 한쪽은 야유를 받으며 패배하는 드라마. 경기에서 지면 마스크가 벗겨지고 '살인자', '미치광이', '도끼날' 같은 무시무시한 가명 대신 본명과 고향이 호명된다나.(태생의 신분으로 돌아가는 것이 굴욕이 되는 가면 엔터테이너의 세계!) 또, 마스크를 뺏긴 선수는 다음 경기에 맨 얼굴로 출전해야 한다고 한다.

내가 프로레슬링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아주 어릴 때 <소년중앙>의 별책 부록으로 본 '타이거 마스크' 만화, 김일 선수의 영웅담, 영화 <반칙왕>, 그리고 C의 소설 속 인물 정도였다. 그의 설명에 그저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있는 사이 경기가 끝났다. 거친 야유와 욕설 속에 '악역' 선수가 어깨를 움츠린 채 무대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문학이란 성공담이 아닌 실패의 서사'라고 알고 있는 소설가답게, 또 나는 그 예정된 실패의 운명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사라지는 패자의 모습에서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경기장을 나오던 나는 문 밖에서 그 악역 선수의 모습을 한번 더 보게 되었다. 벌거숭이로 온 몸의 근육을 과시하며 괴성을 내지르던 무시무시한 프로 레슬러였던 그는 회사원처럼 평범한 셔츠에 바지 차림이었다. 무대 의상(?)이 들었을 캐리어를 밀며 퇴근하는 중이었다. 나는 그가 조금 전 경기를 치른 선수 중 하나일 거라고만 짐작했다. 눈에 띄는 다부진 체격. 또, 그 장소에서 가면을 쓴 사람은 흔했지만 캐리어를 끄는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그때 뒤쪽에서 망토를 휘날리며 작은 소년이 달려와서 수첩을 내밀지 않았다면 그가 악역 선수라는 것까지는 몰랐을 것이다.

수첩과 펜을 받아든 선수는 잠시 소년과 눈을 마주치더니 이름을 묻는 듯했다. 그리고 팔꿈치를 움직이며 천천히 사인을 했다. 그동안 소년은 두 발을 모으고 정중한 자세로 선수 앞에 서 있었다. 선수가 수첩을 돌려준 뒤 소년에게 악수를 청하는 장면, 다시 캐리어를 밀고 떠나며 한 손을 들어 보이는 장면, 떠나가는 선수의 뒷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다시 망토를 날리며 문을 향해 뛰어가는 소년의 뒷모습. 이 모두는 가면을 쓴 채로 일어난 일이었고, 나는 그들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무언극이나 그림자 연극처럼 내 몫의 상상을 보태게 되었다.

아, 저 소년은 어쩌다 악의 선수를 흠모하게 되었을까. 그것은 악이 아니라 패배를 흠모하는 걸 수도 있는데. 언제나 악이 패배하는 세계라. 현실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 어쩌면 프로 레슬링이란 현실에서 실패한 선한 약자들이, 악을 물리치는 극본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얻는 시뮬레이션의 세계가 아닐까. 하지만 그 세계를 움직이는 돈의 규모를 생각하면, 그런 생각은 순진한 잡념일지도 모른다. 결국, 강한 것이 선이 되어 버리는 도착(倒錯)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그런 진지한 사색과는 별개로 경기장 근처의 상점에 들어서자 나는 즉시 쇼핑에 마음을 빼앗겼다. 선물로 주면 재미있어 할 사람들이 떠올라 화려한 레슬러 가면도 여러 장 샀고, 가면 문양이 새겨진 귀걸이를 색깔별로 사기도 했다. 그 선물은 그다지 인기가 없었는데, 나 역시도 레슬러 가면을 서랍 깊이 넣어둘 수밖에 없었다. 나는 친구들과의 연말 모임 같은 데서 수염을 달고 사진을 찍는다거나 함께 여행할 때 똑같은 머리띠를 하고 다니는 등 은근히 이벤트를 좋아하는 타입이다. 어느 송년회 단상에서 빨간 뿔이 달린 붉은악마 머리띠를 한 채로 건배 제의를 한 적도 있다. 그래도 집 밖으로 가면을 쓰고 나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 행위는 6세까지만 허용된다는 법이 찾아보면 있을지도 모른다. 친구들과의 특별한 모임 자리에서 써보고 싶었지만, 가면에 입이 뚫려 있지 않아 그걸 쓴 채로는 술을 마실 수가 없으니 그 또한 곤란했다. 코스프레할 일도 없고. 그래도 버릴 수는 없었다. 그 가면과 망토를 입은 소년과 캐리어를 세워놓고 수첩에 사인을 하고 있는 회사원 같은 남자의 모습이 여전히 내 마음에 남아 있기때문이다.

나는 종종 원고 마감을 하고 난 뒤 편의점에 간다. 몸에 기력은 남아 있지 않고 머리는 더이상 생각하기를 거부하고 그럼에도 기분만은 높이 떠올라 있는 상태. 그땐 무조건 컵라면과 캔맥주인 거다.(컵라면은 일년에 한두 번뿐인 나의 길티 플레저) 그리고 OTT 서비스에 접속한다. 예술 작품, 다큐멘터리, 액션물은 다 사양한다. 무조건 쉽고 따뜻하고, 예쁘거나 재미있는 배우가 나오는 이야기. 얼마 전에는 잭 블랙의 <나초 리브레>를 보았다. 부엌 담당 세르지오 신부가 보육원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 가면으로 신분을 숨기고 레슬링 경기에 나가서 사람들을 때려눕히는 이야기이다. 영화를 다 본 뒤, 나는 서랍장에서 나의 가면을 꺼내...(길티 플레저가 아니므로 여기까지)

당연한 말이지만 과달라하라 도서전이 내게 남긴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멕시코 도서전에 축사를 하러 온 스페인 여성 문화 장관, 단상을 지키던 정복 차림의 여성 경호원들, 이래서 이 나라의 벽화가 그렇게 멋지구나, 하고 깨닫게 했던 밝고 뜨거운 햇빛 아래의 긴 벽들, 도서전 내내 참가자들에게 무료로 개방되었던 클럽의 음악과 취기, 내 강연을 들은 공립 고등학교 학생들이 긴 줄을 서서 한 사람씩 다가와 건네주었던 감동적인 뺨인사. 그리고 이런 문장.

"잔디밭에 떨어진 커다란 삼나무 그림자가 마치 검은색 레이스 탁자보를 펼친 것처럼 섬세하고 화려했다. 오후가 되면서 그림자는 모양과 색깔이 조금씩 변해갔으며,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 때마다 순차적으로 부드럽게 물결쳤다. 잔디밭에 빛이 사선으로 들기 시작했다. 한때의 찬란함은 조금씩 기울어가고 있었다."

이것은 몇 시간째 창가에 앉아 잔디밭을 내다보며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장면이다. 소설 속 장소는 미국의 서쪽 도시이지만, 나는 저 장면을 멕시코 데킬라 농장의 커다란 나무 그늘을 떠올리며 썼다. 허연의 시 '일요일'에서처럼 이제부터는 쓸쓸할 줄 뻔히 알고 살아야 하는 삶과, 그리고 남의 나라에서 태어난 포로처럼 현실에 묵묵히 부역하지만 실패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사람들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다음 이야기는 '솥밥주의자의 다이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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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은희경(소설가)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이중주」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상속』, 장편소설 『새의 선물』, 『마이너리그』, 『그것은 꿈이었을까』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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