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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의 물건들] 목걸이의 캐릭터

<은희경의 물건들> 10화 - 단 하나뿐인 물건의 아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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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 역시 복잡한 존재이므로, 틀 안에서 함부로 해석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단 하나의 물건을 만드는 작가는 아니지만, 문학이 인간이 가진 단 하나의 고유성을 지켜주도록 돕는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고 싶다. (2022.09.21)


<채널예스>에서 매주 수요일,

은희경 소설가의 사물에 얽힌 이야기 '은희경의 물건들'을 연재합니다.



지난 연휴에 나의 9년된 노트북이 갑자기 먹통이 되었다. 아무리 자판을 두드려도 모니터에 글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마감이 바로 다음날인데 원고를 쓰던 파일조차 열 수가 없는 상황. 그것도 서비스 센터가 문을 닫은 휴일에 말이다. 하는 수 없이 K의 컴퓨터 앞에 앉아서 드롭박스를 열어 파일을 불러온 뒤 원고를 이어서 썼다. 자판과 모니터가 다 낯선 탓에 문장이 잘 떠오르지 않았지만, 짧은 글이라서 가까스로 마감은 할 수 있었다.

그나마도 예전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일이다. 애써 써놓은 글이(확인할 수 없으니 더욱 걸작이 분명해 보이는!) 날아가버린 걸 알고 외마디 비명과 함께 패닉에 빠졌던 순간이 얼마나 많았던가. 한 가닥 희망을 품은 채 좀비 상태로 용산의 전자상가를 헤맸던 적도 여러 번. 그때는 '천재지변이 일어났을 때 제일 먼저 무엇을 챙겨 나오겠습니까?'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대답은 당연히 노트북이었다.(남의 도구로 작업을 해본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없지만)

그런데 화가들의 경우 그런 일이 닥치면 어떻게 할까. 그림을 '피신'시키기는 쉽지 않은 일인 데다가, 그림이란 소실되면 그동안의 작업이 영원히 사라져버리는 단 한개의 물건이 아닌가. 완성품도 마찬가지이다. 몇천 부, 몇 만 부씩 찍어서 대체가 가능한 책과는 다르다.(게다가 e북은 잃어버리기도 쉽지 않다)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놓았다 해도 자료에 지나지 않고, 보험 역시 극히 부분적인 위로만 될 것 같다.

미술 평론가 박영택의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숨어사는 예술가들의 작업실 기행'이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미술 작가들의 작업 모습을 담고 있다. 나는 특히 김명숙 화가의 표지 그림에 매료됐는데, 그가 시골 초등학교의 빈 교실로 출퇴근하며 그리는 그림은 "두려움에 시달리며 제 몸과 정신을 갉아대며 그린 그림이라, 그 정신과 노동과 결사적인 몸부림을 받아내야만 하는 종이는 자신의 속살을 드러내 보이며 작가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있었다"고 묘사되어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낡아가고 또 언젠가는 소멸될 수도 있는 종이 한 장에 세계를 옮겨 놓는다는 것. 어떤 위태롭고 아름다운 경지를 본 느낌이었다. 

한 화가의 산문에서 아끼던 작품이 내심 팔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대해 읽은 적이 있다. 다시는 그 그림을 볼 수 없어서라고 한다. 그래서 기관에서 구입해 공공장소에 걸리게 되기를 바란다는 거였다. 내가 내 작품을 영영 볼 수가 없다... 집안 곳곳에 내가 쓴 책이 굴러다니는 나같은 작가는 그 심정을 상상만 해볼 수 있을 뿐이다.

가까스로 원고를 보낸 뒤 콧노래를 부르며 외출 준비를 하던 내가 목걸이를 걸면서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그 목걸이를 내게 주었던 화가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작업실에 큰 불이 났던 일이... 딱 한 번 만났고 가까운 사이는 아니라서 얼마나 피해를 입었는지 자세히 모르지만 소식을 전해듣고 나까지 눈앞이 캄캄해졌었다.

그 화가가 내게 목걸이를 주었던 것은 십여 년 전 일이다. 친구의 차를 타고 어느 작가의 시골 작업실에 나들이 삼아 놀러갔다가, 여러 사람이 모인 술자리에 끼게 되었는데 바로 그 자리에서였다. 그날 나는 모처럼의 나들이에 맞춰 꽤 멋을 부렸고, 목에는 기내 면세점에서 산 스와로브스키의 붉은색 하트가 달린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그 젊은 여성 화가는 수수하지만 멋스러웠다. 그와 내가 초면인데도 농담을 주고받으며 술잔을 부딪칠 수 있었던 건, 취기와 그리고 인사치레 따위 가볍게 무시하는 그의 '돌직구' 화법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는 내 목걸이에 대해서도 직설법으로 말했다. 

"작가가 목걸이가 그게 뭐예요."

"네?"

"그런 건 갖다 버려요."

"아, 네." 

고지식한 나는 얼떨결에 목걸이를 뺐고, 다음 순간 그는 자신이 걸고 있던 목걸이를 풀더니 내 목에 걸어주었다. '훨씬 낫네'라고 한 다음 이렇게 덧붙였다.

"그거 내가 만든 거예요."

"네에? 아니, 이러시면..."

그러면서 취한 척 친한 척 그 귀한 창작물을 내가 탈취해 왔다는 얘기이다.(스와로브스키 목걸이도 잘 챙겨와서 계속 걸고 다녔고...)

그 목걸이는 내가 좋아하는 밝은 빨강이고 수작업의 섬세함이 느껴진다. 작고 둥근 돌에 그어진 검은 선들은 화가의 짧은 붓터치처럼 독특함을 품고 있다. 흰 옷에는 포인트를 주고 무늬 옷에 걸면 약간 캐주얼해 보인다. 그 목걸이를 걸면서 나는 이따금 화가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그리고 생각한다. '작가가 목걸이가 그게 뭐예요' 그 말은 무슨 뜻이었을까. '작가라면 유리 말고 보석을 걸어야죠'의 뜻은 물론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가 취향이 형편없군요'였을까. 혹시 수명의 한계를 갖고 있는 실물 종이 한 장에 '정신과 노동과 결사적인 몸부림을 담는' 화가로서, 소비자 대중으로서 나의 상투적인 선택이 거슬렸던 것은 아닐까. 알 수 없다. 다만 세상에 하나뿐인 물건의 아우라라고나 할까, 목걸이가 목에 닿을 때 불현듯 진품(?)의 진심을 느끼게 되는 건 사실이다. 

또 하나 내가 즐겨 목에 거는 액세서리가 있는데 그건 사실 목걸이가 아니다. 색실에 비즈를 섞어 엮은 끈 팔찌이다. 손목에 여러 겹으로 감게 돼 있는 긴 끈을 목에 묶어서 목걸이인 척 하는 것이다. 페루 쿠스코의 상점에서 산 기념품이다. 마추픽추로 향하는 잉카 트레일에 가기 위해 출발 지점인 쿠스코에 묵을 때였다. 그때 나는 한국과 시차가 12시간이 나는 해발 3,300미터의 고대 도시 숙소에서 친구 어머니의 부음을 들었고, 아이의 등록금 납부 기한이 닥쳤다는 통보를 받았었다. 그곳 골목을 혼자 걷다가 (내 눈에) 가장 예쁜 물건을 파는 상점이 일본 가게라는 것, 길가의 라마를 만지려면 돈을 내야 한다는 것(당연한 일이다)도 알게 되었다.

목걸이를 걸 때마다 그때의 일을 떠올리는 건 물론 아니다. 하지만 어떤 물건과 만나게 된 사연은 그 물건에 일종의 캐릭터를 부여한다. 그 목걸이는 오십대의 내가 혼자서 외국 여행사의 패키지 여행에 끼어 캠핑을 하며 잉카의 길을 걸어서 마침내 마추픽추에 도착해 요가 동작으로 장난스러운 사진을 찍고, 작별을 아쉬워하며 일행에게 명함을 건넸지만, 막상 그들에게서 이메일이 왔을 때 영작에 자신이 없어 답장을 하지 않았다는 기억을 총 집합시킨 그런 어떤 캐릭터를 갖고 있다.(하아...) 

나의 물건이지만 모든 사물들을 대하는 나의 마음이 다 똑같지는 않다. 실수로 물건을 떨어뜨렸을 때 아끼는 물건일수록 자기도 모르게 소리가 더 크게 나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 마음을 일일이 의식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대하는 것뿐, 머리와 가슴 속에는 사물 각자의 캐릭터가 입력되어 있어, 사물에 따라 미세하게 다르게 반응하는 것이다. 인간은 단순하지 않다. 복잡한 존재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 스스로 그것을 의식하는 한 '섬세함'이라는 상식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타인 역시 복잡한 존재이므로, 틀 안에서 함부로 해석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는 단 하나의 물건을 만드는 작가는 아니지만, 문학이 인간이 가진 단 하나의 고유성을 지켜주도록 돕는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고 싶다.

다음 이야기는 '소년과 악역 가면'이다.



예술가로 산다는 것
예술가로 산다는 것
박영택 저
마음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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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은희경(소설가)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이중주」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상속』, 장편소설 『새의 선물』, 『마이너리그』, 『그것은 꿈이었을까』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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