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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애의 그림책 읽는 시간] 『괜찮을 거야』

<월간 채널예스> 2022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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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백 년 전 전염병 앞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아이를 돌보던 조선 시대 엄마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2022.09.05)


결국 가족 모두가 코로나19에 걸리고 말았다. 이렇게 되리라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막상 닥쳐온 코로나19는 공포스러웠다. 정보는 충분했다. 이미 많은 이들이 코로나19의 증상과 전개 과정, 후유증에 대해 증언해 줬고 관련된 뉴스도 충분히 접한 상태였다. 우리 가족은 혹시나 있을지 모를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상황별 시나리오를 마련해 두었다. 아이가 걸렸을 때는 어떻게 격리를 할지, 엄마·아빠가 모두 걸렸을 때는 어찌할지 등 머릿속으로 짐작해 볼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대비했었다. 그러나 계획은 계획일 뿐, 집 안으로 진격해 온 코로나19 앞에서 우리 가족은 모두 속수무책이었다.

새로운 우세종이 되었다는 BA.5의 전파력은 엄청났다. 남편으로부터 시작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꽁꽁 닫은 문틈 사이로 퍼져 나갔다. 위생 장갑과 마스크의 효력을 비웃듯 코로나19는 너무나 쉽게 온 집 안을 장악해 갔다. 남편이 확진 판정을 받은 이틀 뒤 내가 확진됐고 그리고 이틀 뒤 친정 엄마가 확진됐으며, 끝내 여섯 살 아이에게까지 손길을 뻗었다. 그 어떤 신보다 자기 자신을 믿는 '나신교 신자' 남편은 웬만큼 아프지 않고서는 병원을 찾지 않는 사람이었다. 밥이 보약이고 잠이 비타민이라 믿는 사람이었는데, 그런 남편이 죽겠다며 끙끙 앓았고 병원에 갈 방법이 없는지를 알아봤다. 영상 통화를 통해 본 남편의 얼굴은 이미 반쪽이 돼 있었고 몸을 쉽게 일으키기도 어려워했다. 체온이 39도를 넘어가자 남편은 기진맥진했다. 2022년 유난했던 한여름 무더위와 코로나19가 우리 가족과 함께였다.

나에게도 싸한 느낌이 찾아왔다. 묵직한 느낌. 보통의 감기와는 달랐다. 눈을 뜨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갔고 예상대로 확진을 받았다. 나는 남편이 격리 생활을 하던 방으로 들어갔다. 어제까지 남편이 앓던 침대에 누워 이제는 내가 앓기 시작했다. 증상은 비슷했다. 체온은 39도를 훌쩍 넘었고 호흡기에 얕은 통증이 느껴졌다. 그나마 몸이 좀 나아진 남편이 이제 막 코로나19의 세계로 들어온 나를 간호해 줬다. 종일 침대에 누워 코로나19 관련 증상들을 확인하는 데 시간들을 보냈다.

코로나19는 내 몸을 장악해 갔고 내 신경은 점점 더 예민해졌다. 격리를 위해 꼭꼭 닫아놓은 방문이 어느 순간 극도의 답답함으로 다가왔고 방 안의 공기에 숨이 막혔다. 코로나19가 내 정신까지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호흡이 가빠지고 손발에 쥐가 오르면서 생전 느껴보지 못한 공포가 순식간에 나를 삼켰다. 결국 호흡 곤란으로 119를 불렀고 방호복을 입은 구급대원이 방으로 들어와 산소 포화도와 심전도 검사를 진행했다. 구급대원은 내가 긴장성 과호흡증을 겪고 있다며 마음을 편히 가져야 한다고 조언해 줬다. 하지만 마음은 쉽게 편해지지 않았다. 코로나19에 확진된 성인 남녀 두 명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나는 과호흡증을 겪을 때 할 수 있는 호흡법을 배웠다. 다섯을 세며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일곱을 세며 입으로 천천히 호흡을 내뱉었다. 뉴스에서만 접하던 코로나19의 세상에 나는 온전히 잠식돼 있었다.

마침내 코로나19는 친정 엄마와 아이에게까지 손길을 뻗었다. 아이의 체온은 39도를 훌쩍 넘어버렸고 고열에 신음하는 아이를 보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가족 모두가 코로나19에 걸린 집 안. 더 이상 마스크도 격리도 필요치 않았다. 전멸. 우리는 코로나19에 완패했다. 아픈 아이를 돌보는 일은 내가 아픈 것보다 힘든 일이었다. 심한 고열에 시달리던 아이는 "엄마, 여기는 어디야? 집이 아닌 것 같아"라는 이상한 말들을 내뱉었고, 아직 채 회복하지 못한 나는 아픈 몸을 이끌고 아이의 열을 내리기 위한 결사항전에 들어갔다. 잠에 빠져드는 아이를 보는 게 불안해 "범민아, 범민아"를 외치며 아직 괜찮은 건지를 끊임없이 확인했다. 혹시나 이 코로나19가 내 아이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 불안감 속에서 현대 의학의 진보는 전혀 믿음직스럽지 않았다. 나는 그저 혼자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옆에 있어.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나는 수백 년 전 전염병 앞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아이를 돌보던 조선 시대 엄마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평생 기억에 남을 고된 밤을 며칠 보내고 그림책 한 권을 펼쳤다. 코로나19를 겪는 동안 가장 많이 했던 말 『괜찮을 거야』라는 제목의 그림책이었다. 책 속 주인공 아이는 도시에서 사는 게 편치가 않다. 도시는 낯설고 불친절하고 폭력적이다. 그럼에도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 아이는 도심 속 모험을 떠난다. 낯선 곳에서 고통스러워할 고양이를 떠올리며 아이는 반복적으로 생각한다.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작가는 이를 통해 힘없고 약한 이들이 갖는 연대의 마음을 이야기한다. 서로를 위하는 작은 마음이 모여 그래도 힘든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도와준다고 말이다. 밤새 간호하며 중얼거린 "괜찮을 거야"의 힘이었을까. 아이도 다행히 회복해 가기 시작했고 일주일 넘게 우리 집을 덮친 코로나19의 악몽은 그렇게 끝을 향하고 있었다.

간신히 코로나19에서 회복돼 가고 있을 즈음 수도권 전역에 물난리가 났다. 서울 강남 일대가 침수됐고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가 침수됐으며 반지하 건물에서 탈출하지 못해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과학 기술이 인간을 자유롭게 해주리라 믿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전염병과 자연재해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작고 연약한 인간에 불과하구나. 2022년 여름을 나는 이렇게 기억할 것만 같다. 그리고 세상 모든 이들이 물난리에서 안전하기를 바라며 나는 속으로 되뇌었고 빌었다.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시드니 스미스 글그림 | 김지은 역
책읽는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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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문지애(작가, 방송인)

방송을 하고 글을 쓰며 애TV그림책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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