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대화가 필요해

관계를 원한다면 대화가 따라와야 한다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갈등이 일어난 사람과 직접 대화하는 것보다는 남에게 상황을 전달하고 내 편이 되어줄 것을 호소하는 게 훨씬 쉽다. (2022.08.05)

언스플래쉬


술자리에서 나온 소소한 연애상담


Q. A와 B는 사귄 지 n년 된 기념일을 맞아 캠핑하러 갔다. A는 물을 받아오기로 하고 B는 텐트를 치기로 했다. A는 캠핑장의 사람들이 너무 많이 기다리는 게 눈치가 보여서 물을 절반만 받아 돌아왔다. B는 한참 기다린 끝에 온 A가 물을 다 받아오지 않았다고 뭐라고 했다. A는 애써서 갔다 온 노력은 무시당한 채 핀잔을 듣자 섭섭했다. B는 분위기가 불편해지자 일단 자리를 피해야겠다고 생각해 나머지 물을 받아오겠다며 일어섰다. A는 B가 화를 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작된 대판 싸움. 여기서 먼저 잘못한 사람은?

1) A
2) B
3) 말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물론 답은 3번이다. 대개는 편들어주기를 요청하는 말이므로, 상황에 따라 적당하게 A가 말하면 B가 잘못했다고 하고, B가 말하면 A가 잘못했다고 역성을 들어주면 된다. 문제는 그 자리에 A와 B 모두 있었고 나는 편을 들 수가 없었다.

연애 상담뿐만 아니라 다른 인간관계 문제에도 마찬가지다. 나는 어떤 관계든 대개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남의 말은 언제까지나 남의 말이다. 말만으로는 누가 잘못했고 어떤 기분을 느꼈을지 온전히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무엇보다 이 모든 과정이 피곤하다. 서로 대화하면 될 일을 넘겨짚고 제삼자에게 잘잘못을 가려달라고 관계를 아웃소싱하는 과정, 저 사람이 잘못했다는 걸 남들에게 확인받고 안심하는 과정, 연애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과정이 모두. 모든 관계의 문제는 처음 갈등이 일어난 이유는 중요해지지 않고 결국 '아니 근데 쟤가 먼저' 상태에서 대화가 단절되어 생긴다. 이 상황에서 붙일 수 있는 말이라고는 '그럴 수도 있지'거나, 더 힘을 내면 '대화를 해 보면 어때?'가 전부다.

내 기조는 이렇다. '쟤는 도대체 왜 저러지'에서 '왜'를 알려면 일단 '쟤'와 대화해 봐야 한다. '왜'를 알고 싶지조차 않다면 그때는 '쟤'와 절연해야 할 때다. 절연하고 싶지 않다면 대화하고, 대화하고 싶지 않다면 절연해야 한다. 둘 다 안 할 순 없다. 관계를 원한다면 대화가 따라와야 한다.

왜 대화하지 않지? 대화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니까 안 하는 거겠지. 넘겨짚는 상황이 쌓이면 점점 더 상대방을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갈등이 일어난 사람과 직접 대화하는 것보다는 남에게 상황을 전달하고 내 편이 되어줄 것을 호소하는 게 훨씬 쉽다. 그렇게 다들 대화하지 않고 고집불통으로 식식대다가 네이트 판 같은 곳에 사연을 올리게 된다. 누가 더 잘못했나요, 하면서. 기왕 연이 다하는 거라면 좋게 헤어지고 싶은데 쉽지 않다.

남의 일이라 쉽게 말했지만 나도 마찬가지다. 이게 다 사람들이 기력이 없어서 그렇다. 에너지가 있어야 싸우지. 나는 이제 정신적 호호할미가 되어 주변 사람들과 싸우지도 않는다.(이것은 적절한 비유가 아니다. 할머니들이 젊은이보다 더 심하게 싸운다) 양방에서 한쪽이 싸울 의지가 없으면 싸움조차 일어나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것에 또 화가 나서 싸우기 시작한다. 너는 왜 아무 말도 안 해! 하면서.

싸우면서 대화의 가장 첫 번째 발걸음을 떼는 사람들이 있다. 적어도 싸우기라도 하면, 뭐라도 대화할 가능성은 있다. 더 나아가 넘겨짚기를 그만두면 인생에서 욱할 일이 줄어든다. 힘들어도 한 번 턴을 넘기고 대화를 시작하면 이해가 넓어진다. 무엇보다 같이 보내는 시간을 좀 보내야 한다. 저 사람은 저런 사람이구나 하고 체득할 시간. 당연하고 모두가 아는 말이다. 우리는 모두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을 배워왔다. 일상생활에 적용이 힘들 뿐.

앞의 이야기에서 흔들리는 동공을 붙잡고 내가 한 마지막 대답은 왜 굳이 기념일에 피곤하게 캠핑하러 가느냐, 였다. 싸움 뒤에도 안 헤어지고 붙어 있던 A와 B는 캠핑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나를 질타했고 나는 아하하 그런가, 나는 잘 몰라서, 하고 넘어갔다. 속으로는 이럴 거면 나한테 말하지 말라고 구시렁대면서. 이래서 나한테 연애 상담을 하는 사람이 없다. 다 내 탓이오.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오늘의 책

전쟁에 관한 여성 17명의 목소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으로 시작된 전쟁은 수많은 사람의 일상을 파괴했다. 난민이 된 전 리듬체조 국가대표, 전장에서 저격수로 활동하는 전직 기자,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반전 시위자 등 여성 17명은 침묵을 거부하고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증언한다.

여름밤의 사랑스러운 괴담

『칵테일, 러브, 좀비』, 『스노볼 드라이브』 작가 조예은의 소설집. 괴물, 유령, 외계 생명과 인간이 함께 살아가는 생동하는 세계, 그곳에는 서늘한 공포 아래 온기가, 절망 곁에 희망이 있다. 곳곳에서 색색의 마음들이 알알이 터지는 무섭고 사랑스러운 이야기

지금 왜 중국이 문제인가

세계패권을 두고 미국과 중국의 긴장이 높다. 미중 패권 경쟁은 우리에게도 큰 영향을 끼칠 텐데 지리적으로 경제적으로 중국과 밀접한 우리는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가? 반중 정서 대신 실리주의를 주장하는 이 책은 중국 정치와 경제의 현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한다.

썬킴이 알려주는 미국과 러시아

세계사를 쉽고 재밌게 알려주는 썬킴이 돌아왔다. 이번 책은 20세기 세계 질서를 이끌었던 미국과 러시아 역사다. 미국의 초강대국 성장기, 유럽 변방이었던 러시아의 흥망성쇠를 알기 쉽게 설명했다. 두 나라의 역사를 읽다 보면 어느새 세계 역사 맥락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

주목! 투데이 포커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