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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의 물건들] 감자칼에 손을 다치지 않으려면

<은희경의 물건들> 3화 - 우직하고 견고한 감자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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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오래되어서 흠집이 많고 날도 반짝거리지 않지만 여전히 안전하고 편리한 나의 감자칼.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변하지 않는 디자인 감각과 견고한 기능의 지속이라는 클래식함은 얼마나 소중한 덕목인지. (2022.08.03)


<채널예스>에서 매주 수요일,
은희경 소설가의 사물에 얽힌 이야기 '은희경의 물건들'을 연재합니다.




불과 칼을 사용하는 부엌. 나에게 그곳은 세상에서 두 번째로 위험한 장소다. 첫 번째는 물론 달리는 차 안의 운전석이다. 두 장소 모두 긴장이 필요하지만, 과정의 즐거움도 있고 보상도 따르니 피할 마음은 전혀 없다. 사실 나는 그 두 장소를 좋아한다. 

내가 처음 부엌일을 한 것은 대학원생 때였다. 대학생인 남동생과 함께 자취를 시작했는데, 나이가 들도록 수험생이라는 이유로 철저히 엄마의 보살핌을 받았고 대학생이 된 뒤로는 기숙사에 입주하거나 하숙을 했으므로 살림이 어설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따금 내가 만든 음식을 먹을 때 남동생은 이렇게 말했다. 

‘‘엄마 음식하고 맛이 똑같다.’’  

그때 생각했다. 내가 참 재능이 많구나. 그리고 그럴수록 겸손해야 했기 때문에 ‘먹어본 대로 짐작해서 만든 것뿐이야. 대물림이란 게 이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건가 봐’라고 애써 팩트 위주로 대답했다.

먹는 것이 요리의 전 단계라는 생각은 요즘도 변함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맛있는 걸 많이 사 먹으며 살아야 한다. 그렇다고 그걸 반드시 구현해낼 의무는 당연히 없다. 미각을 개선시킴으로써 잠재력만 키워도 요리인(요리사는 아닌)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내 친구 중에는 식당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레시피를 알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친구가 있다. 그대로 만들어보는 데에서 성취감을 느끼기도 한다. 얼마 전 그 친구가 무를 썰다가 손가락을 베었다. 나는 곧바로 부엌칼의 세계에 대해 알은 체를 하며 손을 베이는 메커니즘을 주제로 장광설을 펼쳤다.

내가 본격적으로 칼질을 수련한 것은 신혼 시절. 당시에 결혼 선물 인기 품목이었던 모 출판사 요리 백과 전집의 별책 부록 「조리 도구 다루는 법」을 통해서였다. 덕분에 나는 미끄러운 양파를 한 손으로 붙잡고 가로 세로로 슬라이스 해야 하는 네모 썰기도 할 수 있고, 칼날을 위에서 누르지 않고 앞을 향해 밀어내는 요령도 안다. 두부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써는 신공을 과시해서 외국 주부들을 질겁하게 만든 적도 있다.

내 생각에 부엌칼에 손을 베이는 이유는 세 가지다. 

1. 좁아서, 2. 급해서, 3. 하기 싫어서.

칼질을 하려면 먼저 팔을 편히 움직일 만큼의 공간이 확보되어야 하고(옆에 다정한 사람이 붙어 서 있으면 안 된다), 도마 위에 충분한 빈 공간이 있어야 한다.(손이 빠른 걸 자랑하려고 혹은 옮겨 놓는 게 귀찮아서 도마 위에 여러 종류의 재료를 늘어놓은 채 칼질을 해서는 안 된다) 또 급한 마음에 중간 단계를 생략하면, 즉 손에 쥔 것을 내려놓지 않는다거나 도마 주변을 치우지 않으면 칼날이 가까이 올 때에 대처가 느려진다. 마지막으로 하기 싫은 마음. 어쩌면 그것이 가장 위험한 상황일 수 있다. 칼을 쥔 채로 무려 ‘딴생각’을 하기 때문이다.(만약에 내게 칼을 겨누는 살인 청부업자 중에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무자비한 사람보다 잡념 많은 사람을 피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고급 반사 신경을 갖고 있고 또 어느 정도의 악조건은 컨트롤하거나 적응할 수 있는 영리한 존재다. 이중 중 한 가지 정도의 상황은 결정력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두 개 이상이 모이면 반드시 사고가 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어느 평화로운 오후 내가 저녁밥을 짓다가 무용수처럼 엇박자로 펄쩍 뛰어오르며 가운뎃손가락으로 분노를 표현한 것은 2번과 3번 상황이 겹쳤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피가 멈추지 않는 손가락에 거즈 손수건을 둘둘 말아 꾹 누른 채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장소인 운전석에 앉아 응급실로 향해야 했던 것이다.

꿰맸던 상처가 아문 뒤로도 한동안 칼질이 꺼려졌다. 그때 자주 해 먹은 게 감자 요리이다. 내 감자칼만은 나를 다치게 하지 않으리라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손을 다치는 이유 하나가 더 있다. 사용하는 도구에 문제가 있어서. 잘 들지 않거나 손잡이가 미끄럽거나 너무 무겁거나 가벼우면, 즉 내 예상대로 작동되지 않으면 칼날은 짐작과는 다른 곳을 건드린다. 또 우리 앞에 놓인 음식 속 식재료의 다양한 크기와 모양으로 짐작하건대 조리는 무척 세분화된 작업이다. 작업에 알맞는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알게 해준 것이 바로 나의 감자칼이다.

“(그는) 내가 과외 선생과 함께 한국 음식을 만들어보기로 했다고 하자 먼저 계량스푼과 계량컵을 준비하라고 알려주기도 했다. 그곳 사람들은 순서와 분량이 명시돼있는 레시피 없이는 시리얼조차 말지 못한다는 거였다.”

최근 소설에 쓴 이 문장은 나의 경험담이다. 20년 전 가족과 함께 미국의 한 서부 도시에서 2년을 보낸 적이 있다. 그때 나의 아이들에게 영어 회화를 가르치던 백인 대학생이 ‘한국에서는 음식을 만들 때 계량컵을 사용하기를 멈춥니까?’라고 물었던 것이다. 다음날 바로 나는 계량컵과 계량스푼을 사러 주방용품점에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어마어마한 조리도구의 광대한 세계와 마주치고 말았다.

칼 한 가지만 해도 빵칼, 고기칼, 햄 칼, 굴 칼, 커빙 칼, 치즈 칼, 자몽 칼, 채칼, (나에게는 묵 칼로 보이는) 웨이브 칼... 거기에 필러와 가위와 따개 종류까지 합하면 칼날이 있는 조리용품이 대체 몇 가지인지. 치즈를 갈 때도 굵기와 모양별로 그레이터가 따로 있었고, 껍질을 벗기는 제스터 역시 레몬용과 생선용이 따로 있었다. 부엌칼 하나로 고기를 탕탕 두드려 다지고 무 껍질을 종잇장처럼 얇게 벗기고 오징어에 격자무늬 칼집을 내고 당근을 꽃 모양으로 오리기까지 했던 우리 어머니들에 비해 요리에 임하는 태도가 얼마나 나약하고 의존적이며 비효율적인가. 한국의 부엌칼에는 심지어 손잡이 단면에 마늘을 찧을 수 있는 쇠 돌기까지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것은 옥소(OXO) 감자 칼을 써보기 전까지의 생각이었다. 

감자칼이 앞치마와 함께 미국의 어머니날 백화점 진열대에 단골로 등장하는 품목이란 건 나중에 알았다. 아니, 어머니날에 왜 감자칼과 앞치마를 선물하지? 어머니들도 귀고리나 콘서트 티켓을 받을 줄 안다고. 어머니날만이라도 자유롭고 사적인 성격의 물건을 선물해야 하지 않나.(이러한 나의 합당한 문제 제기는 백화점이 아버지날에는 공구 세트를 진열한다고 해서 약간은 진정되었다고 한다) 어쨌든 나는 그 감자칼을 어머니날 할인 혜택을 받아서 사긴 했다. 

옥소 감자칼은 ‘Good Grip’이라는 회사 모토대로 손잡이가 잡기 편했고 고무빗날이 있어서 미끄러지지 않았다. 창업자가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고안했다는데, 아픈 아내에게 왜 계속 감자를 깎게 만들 연구를 했는지는 접어두고 과연 손목에 부담도 덜했다. 그걸 쓴 이후 나는 적어도 감자를 깎을 때는 손을 다치지 않게 되었다. 그 부작용으로 주방용품점에 들어가면 장난감 가게에 들어간 아이처럼 가슴이 두근거리고 시간 개념이 없어지긴 했지만.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올 때 내 이삿짐에는 온갖 조리 도구뿐 아니라 케이크를 나누는 집게, 달걀을 6등분 하는 커터, 아이스크림 스쿱같은 것들이 들어 있었다. 

몇 년 뒤 나는 뉴욕의 현대미술관에 갔다가 유명한 미술품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전시돼 있는 내 감자칼을 보았다. 인류의 삶에 공헌한 아름다운 공산품이라서 영구 전시라는 형태로 ‘추앙’받는 모양이었다.(추앙은 그곳 미술관 기념품점의 판매 형태로도 실현되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부엌에서 뉴욕 현대미술관의 전시품을 자주 사용하는 사람이 됐다. 이제는 오래돼서 흠집이 많고 날도 반짝거리지 않지만 여전히 안전하고 편리한 나의 감자칼.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변하지 않는 디자인 감각과 견고한 기능의 지속이라는 클래식함은 얼마나 소중한 덕목인지.

혹시 이 글이 부엌에서 손을 다치지 않으려면 특정 상표의 감자칼을 사라는 광고로 보이나요? 물론 아니다. 내가 20년 전 이 물건을 발견한 이후 주방 기구는 계속 발전했을 테니까. 그럼 다치지 않기 위해서 용도에 맞는 주방 도구를 갖춰야 한다는 주장일까. 조금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도구를 갖춘 뒤 본격적으로 요리를 하자고 권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도구가 없기 때문에 요리를 못하겠으니 사 먹겠다는 취지로 읽었다면 자의적 독해력 인정. 그러나 무엇보다 복잡다단하고 심오미묘한 부엌의 세계, 그리고 기획에서부터 개발, 조달, 재무, 제작, 관리, 고객 서비스 등 안 하는 게 없는 종합 아티스트인 가사 노동자의 세계를 단순직 혹은 당연직으로 치부하는 선입견에 대해서 나의 특기로 알려져 있는 냉소를 시전해 보겠다는 거 아닐까. 날이 더우니 ‘간단히’ 국수나 해먹자는 ‘해맑은’ 가족이 있다면 그에게 세상 안전한 감자칼과 함께 부엌을 양보하고, 시원한 해먹에 누워 소설을 읽는 여름이었으면 좋겠다는 얘기 말이다. 

다음 이야기는 ‘나의 구둣주걱, 이대로 좋은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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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은희경(소설가)

199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이중주」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타인에게 말 걸기』, 『상속』, 장편소설 『새의 선물』, 『마이너리그』, 『그것은 꿈이었을까』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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