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망한 곳에서 망하지 않은 척 살기

상상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이 게임을 누가 망쳤나. 이제까지 지구에서 살아온 인간들이 망쳤다. 생각할수록 기후 우울증이 심해진다. (2022.06.24)

언스플래시

이미 진 게임판을 지켜보고 있다. 기후 위기 말이다. 1980년대생으로 2000년대를 보내면서 뭐라도 더 해야 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학교를 그만두고 국회로 몰려가서 에너지 정책을 앞당기라고 소리쳤어야 했나? 하지만 기억을 잃은 채 2000년으로 돌아간다면 지금만큼 기후 위기를 신경 쓸 수 있을까. 10대 때 주로 들었던 환경 보호 방법이라고 해 봤자 '쓰레기 버리지 않기'와 '샴푸 대신 비누 쓰기' 같은 실천이었다. 물론 잘 실천했다면 환경미화원의 노동 환경이 개선되고 수자원을 효율적으로 쓰는 데 도움이 됐었겠지만.

영화 <투모로우>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스펙터클한 장면을 편한 극장 의자에 앉아 팝콘을 씹어먹으면서 봤다. 기후 위기와 직접적으로 연관 지어서 생각하지도 않았고, 2012년이 너무 멀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도 2050년, 60년, 70년에 지구가 어떻게 될 것이라는 보고서를 보면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2022년이고 2070년에 나는 높은 확률로 허약한 노년의 상태로 생존해 있다. 하늘에서 떨어진 우박에 맞으면 크게 다칠 것이다. 

그렇다고 정말 망했나? 망하지는 않았다. 그저 1.5도에서 2도 상승하면 17억 명이 극한 폭염과 이상 열 환경에서 살게 되고, 2도에서 3도로 올라가면 최대 54%의 생물 종이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될 뿐이다. 54% 생물 종 중에 인간은 없겠지. 우리는 아슬아슬하게 자원을 써대면서 안전한 실내에 있을 수 있다. 배달시키고 플라스틱 용기가 너무 많이 나오는 걸 불편해하면서 밥을 먹을 것이다. 

애쓰면 한국은 살아남을 수도 있겠다. '어쩌면 우리가 2070년을 볼 수도 있겠습니다' 라는 패러디 문구가 떠오른다. 어쩌면 볼 수 있다. 어쩌면 못 볼 수도 있고. 지금 열대 지방에서 태어나는 사람들은 50살이 되기 전에 자기 나라를 떠나 사람이 살 수 있는 지역으로 쫓겨난다. 이 게임을 누가 망쳤나. 이제까지 지구에서 살아온 인간들이 망쳤다. 생각할수록 기후 우울증이 심해진다.

지구는 망하지 않을 것이다. 나와 내 친구들은 살아남겠지만 조금 더 불행하게 살아남을 것이다. 다른 지역의 사람들은 훨씬 더 불행하거나 삶을 포기해야 할 것이다. 국민 소득 3만 달러 이상인 나라에서 살면서 에너지를 펑펑 써대서 미안하다고 앞으로 태어날 사람들에게 석고대죄해야 한다. 우울을 넘어 화가 난다. 아니 한국보다 더 선진국이었던 저 나라는? 국회에서 법안 만드는 저 사람은? 나도 문제가 있긴 하지만 왜 안 바꾸는데?



80억 명의 인류 전체가 모든 것을 전기화하고 수소 경제를 당장 현실화해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하는 연료를 전혀 태우지 않는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바로 내일부터 이산화탄소 추가 배출이 0이 된다고 해도, 이미 발생한 기후 변화의 흐름이 갑자기 멈추지는 않는다. (중략) 가능성이 높은 미래가 있고, 그로 인해 사람들의 희생이 늘어날 것이 예측된다면, 대책을 세워서 사람의 목숨을 구하고 피해를 줄일 생각을 해야 한다. 이는 기후 변화를 눈앞에 닥친 현실로 받아들인다면 반드시 같이 고민해야 하는 문제다.  _『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380쪽

영화 <돈룩업>은 지구에 운석이 떨어진다는 상황을 다룬다. 과학자들은 혜성이 6개월 뒤 지구에 충돌한다는 계산을 도출하고 대통령을 접견하지만, 대통령은 정치 스캔들에만 신경이 곤두서고 있다. 멸망이 예정되어 있는데 정책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생각만큼 빨리 대처하지 않는다. 결정권자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특출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 그들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의 속도로만 생각한다. 내가 '플라스틱 줄여야겠다', '고기 덜 먹어야겠다', '에너지 줄여야겠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으면 국회의원과 CEO와 모든 결정하는 사람도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기후 우울증이 닥칠 때마다 홍수와 한파와 해일 때문에 나를 포함한 친구들이 다치고 죽는 상상을 한다. 누군가 쓸데없는 걱정, 일어나지 않을 일을 걱정할 때 '기우'라는 단어를 쓰는데, 이 단어는 중국의 기나라에서 살던 사람이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던 고사에서 나왔다. 그와 우리가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는 이제 과학을 알게 되었고, 확률과 인과관계에 의해 실제로 일어날 확률이 높은 재앙을 마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간은 상상할 수 있는 생물이고, 가장 나쁜 상상을 앞질러 한 다음 상상이 현실이 되지 않도록 피하는 능력이 있다. 이 기후 위기가 너무 과장이었음을 나중에 알게 된다면, 그래서 기우가 다시 반복되는 것이라면 정말 좋겠다. 그러려면 정부에도 요구해야 하고, 과학 기술 발전에도 관심을 두고, 무엇보다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어야 한다. 할 일이 많다. 망했다고 하기 전에 이 게임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눈을 부릅뜨고 봐야 한다. 팀 게임에서 내가 쓰러지면 우리 팀은 진짜로 망한다. 

그동안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서는 나부터 작은 실천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나는 과연 어떤 실천을 하는 것이 당장 중요한지 알아내기 위해 더 애쓰고, 더 잘 알려주기 위해 노력하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기후 변화로 인한 재난을 생각할 때, 귀여운 북극곰들이 당황하는 모습만을 떠올리기보다는, 급작스러운 집중호우에 배수가 역류하는 도시의 반지하 방에 사는 사람들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 것인지 먼저 따져보아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해볼 수도 있겠다.  _『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439쪽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곽재식 저
어크로스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0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글 | 정의정

uijungchung@yes24.com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곽재식> 저16,920원(10% + 5%)

“북극이 다 녹기 전에 반지하 침수가 먼저 찾아온다” SF 소설가·환경안전공학과 교수 곽재식이 들려주는 세상에서 가장 이해하기 쉬운 21세기 기후 교양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는 어려운 과학에 쉽고 재밌게 접근하는 스토리텔링으로 정평이 난 저자가 들려주는 기후변화 이야기다. 이 책에서 저자는 S..

  • 카트
  • 리스트
  • 바로구매

오늘의 책

스티븐 킹의 누아르 스릴러

은퇴를 앞둔 암살자 빌리 서머스에게 마지막 의뢰가 들어온다. 살인 혐의로 수감되어 재판을 받을 남자를 살해해 달라는 것. 빌리는 대상자를 처리하기 위해 예비 작가로 분해 인근 마을에 자리를 잡고, 위장을 위해 쓰기 시작한 글은 그의 과거를 끌어내는데...

숫자가 뇌에 착!

한 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메시지 설계법을 소개한 비즈니스 3대 필독서 『스틱!』이 이번엔 숫자로 돌아왔다. 데이터를 통한 의사결정과 전략이 필수인 오늘날, 복잡한 숫자 데이터를 기억되고 잊히지 않는 강력한 메시지로 바꾸는 스토리텔링의 기술을 만나보자.

보통 사람의 선한 마음, 그 반짝이는 빛

강경수 작가 신작. 하굣길, 한 아이가 사람들의 머리 위로 동그란 빛을 목격합니다. 소방관과 구급대원, 반 친구들과 엄마까지. 타인을 기꺼이 배려하는 이들에게서 빛이 나요. 평범한 이들의 선한 마음, 이 작지만 위대한 빛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음을 전하는 따스한 동화입니다.

록커와 의사, 마음의 안녕을 묻다

노브레인 곡 「비와 당신」에 '이젠 괜찮은데 (중략) 난 눈물이 날까'라는 가사가 있다. 『답답해서 찾아왔습니다』는 이런 당신에게 위로와 통찰을 건내는 책이다. 노브레인 보컬 이성우와 정신의학 교수 한덕현, 두 사람의 대화가 불안과 우울을 건널 수 있도록 돕는다.

.

주목! 투데이 포커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