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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가요, 처절한 아픔 한편에 휴머니티가 살아 숨쉬다

이즘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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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폭력과 황폐화에 따른 상처가 전쟁 가요 혹은 진중 가요의 전부일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전쟁은 현상적으로 사람이 사람을 죽이려는 의지의 시공간이지만 바꿔 생각하면 사람이 저마다 끝까지, 악착같이 살아보려는 의지의 표현일지 모른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22.06.21)


전쟁은 가장 참혹하고 야만적이며 극악한 폭력이라는 점에서 비극의 서사로 표현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전쟁의 목적이 평화라고 했지만 우리는 전쟁하면 먼저 평화와는 전혀 다른, 폭력이 난무하는 전장(戰場)의 피비린내를 떠올린다. 전쟁 가요도 비인간성과 고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해연의 '단장의 미아리 고개' 한 곡으로 충분할 것이다. 

'화약 연기 앞을 가려 / 눈 못 뜨고 헤매일 때 / 당신은 철사 줄로 / 두 손 꼭꼭 묶인 채로...' 

1957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한국 전쟁 종전 후 많이 나온, 전쟁의 참상을 전하는 비극적 사실주의를 상징하는 곡이다.

전쟁을 겪은 나라이기에 구슬프고 애절한 정서가 지배적인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전쟁 때 불가피했던 피란 행렬 속에서 불린 노래들도 기조는 비애에 있다. 피난은 가족의 생이별을 낳기 마련이다. 여기서 한국전쟁의 상황과 과정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대중가요로 평가받는 현인의 곡 '굳세어라 금순아'를 빼놓을 수 없다. 노랫말에는 흥남부두, 일사, 국제시장, 영도다리와 같은 6·25전쟁을 축약하는 어휘들이 잇달아 등장해 시대적으로 더 실감 나는 노래는 떠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흥남 철수를 배경으로 하는 2014년 천만 관객의 영화 <국제시장>도 '굳세어라 금순아'를 배경음악으로 쓰고 있다.

철수와 후퇴로 전쟁 중 대규모의 피란민 행렬이 생겨났고 이 노래는 철수 당시 여동생을 잃은 오빠가 홀로 부산으로 피난을 가 국제시장에 정착하는 스토리로 수많은 피란민의 이지러진 삶의 역정을 부각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게다가 부산 피란 시절인 1953년에 발표되어 특히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던가 /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 홀로 왔다!'는 가사는 공감을 자극하며 피란민들의 눈물을 쏟아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과 국군, 그리고 피란민 10만 명이
함경북도 흥남항에서 철수한 장면을 담은 영화 <국제시장>

현인과 더불어 50년대 대표가수로 꼽히는 박재홍의 출세작 '울고 넘는 박달재'는 사실 전쟁과 직접적 관련성은 없다. 연인 이별가라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1950년에 녹음한 이 곡은 대중의 반응을 얻기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그만 6·25 전쟁이 터지면서 완전히 의미가 달라지고 만다. 갑자기 피란을 떠나게 되면서 가족과의 생이별 그리고 두고 온 고향을 생각하며 통한의 심정으로 부르는 노래가 됐기 때문이다. 

'울었소 /소리쳤소 / 이 가슴이 터지도록...' 

지금도 70대 이상의 어르신들은 이 대목을 부를 때는 물론, 듣기만 해도 눈을 적신다.

전쟁의 폭력과 황폐화에 따른 상처가 전쟁 가요 혹은 진중 가요의 전부일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전쟁은 현상적으로 사람이 사람을 죽이려는 의지의 시공간이지만 바꿔 생각하면 사람이 저마다 끝까지, 악착같이 살아보려는 의지의 표현일지 모른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살육의 현장 속에서 더욱 서로 잘 어울리는 미래의 삶을 꿈꾸는 인간애와 가족애가 꿈틀거린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에 발표된 심연옥의 '아내의 노래'는 같은 눈물의 노래일지라도 '고통의 눈물'이 아닌 차라리 '감동의 눈물'이다.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남편을 전쟁터로 떠나보낸 수많은 아내들이 생겨났다. 더욱이 지금보다 결혼이 빨랐던 시대였기에 남자가 군에 간, 애인들 이상으로 결혼한 아내들이 많았다.

'님께서 가신 길은 빛나는 길이 옵기에 / 이 몸은 돌아서서 눈물을 감추었오!'

남편이 싸우러 나가는 것을 빛나는 길, 영광의 길로 여기며 남편더러 걱정하지 마시라고, 여기는 내가 잘 지키리라고 말하는 아내의 결연한 의지에서 전쟁의 아픔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숭고한 커플사랑이 큰 자리를 튼다.


남편을 전쟁터로 떠나보낸 아내의 슬픔을 녹인 '아내의 노래'의 주인공, 심연옥

'아내의 노래'는 전쟁 당시 같은 처지에 놓인 모든 아내들의 위로와 격려를 위한 곡으로 엄청난 사랑을 받으며 곳곳의 피난지에서 엄청나게 불렸다고 한다. 하지만 아내를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군인 신랑 또한 이 곡에 힘을 받으면서도 눈물을 삼키지 않았을까.

전쟁 통에 부부애는 더욱 단단해진다.

라화랑 작곡의 유춘산 노래 '향기 품은 군사우편'은 군(軍)과는 다분히 거리가 있는 향기라는 어휘를 제목으로 내걸어 각별한 노래일 뿐 아니라 '아내의 노래'처럼 부부애와 연인 간 사랑을 확인해주는 또 하나 공감의 전쟁 가요다.

'행주치마 씻은 손에 받은 님 소식은 / 능선의 향기 품고 그대의 향기 품어 / 군사우편 적혀 있는 전선 편지에 / 전해주는 배달부가 싸리문도 못가서/ 복받치는 기쁨에 나는 울었소..'

전쟁을 '살아내려는' 인간의 의지가 부부애를 더 강하게 만들어준다. 그 축약된 감정이 '기쁨에 우는 것'으로 나타난다.

부부 아닌 연인도 다를 게 없다. 지금도 제주의 송가로 통하는 황금심의 '삼다도 소식'은 얼핏 전쟁과 무관한 노래로 보인다. 1950년 전쟁이 터지고 국군은 패전과 후퇴를 거듭하며 낙동강 전선까지 밀리게 되면서 제주 서귀포로 옮겨 과거 일본군이 사용하던 모슬포 훈련소를 개조한 새로운 신병 훈련소를 창설한다.

아들을 군대 보낸 전국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연인의 시선이 제주로 몰렸지만, 여기에는 전쟁의 공포 아닌 사랑이 스민 제주의 특징적 풍치(風致)만이 있다.

'삼다도라 제주에는 돌맹이도 많은데 / 발 뿌리에 걷어채는 사랑은 없다느냐 / 달빛에 지새드는 연자방앗간 / 밤새워 들려오는 콧노래가 구성지다..'

어쩌면 이 노래를 듣고 전쟁의 한복판에 군에 입대한 아들의 하루하루에 노심초사하던 부모가 한숨을 돌리고 애인은 심적 여유를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길게 늘어선 피란 행렬.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가족과 고향을 잃었다 

때문에 누군가는 “전쟁은 고통 속에 오히려 연대(連帶)가 강화되고 한편으로 증오의 부재를 가져오면서 정반대의 합(合)으로 향하는 호흡”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생사의 분기점이요, 흥망의 경계선이라는 전쟁이 곁가지로 빚어내는 사랑의 하모니라고 할까. 그래서 가끔은 전쟁 가요가 연가 혹은 인류애의 찬가가 되기도 한다. 당장 전우애가 그렇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 낙동강아 잘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 꽃잎처럼 떨어져 간 전우야 잘 자라'(현인 '전우야 잘 자라') '생사를 같이했던 전우야 / 정말 그립구나 그리워..'  _허성희 '전우가 남긴 한마디'

전쟁 가요라 할지라도 연인의 사랑, 부부애, 형제애 그리고 전우애를 포함하게 되면 막연할 수 있는 조국애보다 대중적 애창의 가능성은 높다. 이 대목의 정점은 고향과 부모에 대한 그리움의 정서다. 1950년대와 1960년대 한국 전쟁과 전후 급격한 도시화와 공업화를 겪으며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등졌다. 이산과 이주 바람 속에 어쩔 수 없이 타향살이를 한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속에 고향에 대한 진한 그리움을 품고 살아야 했고, 특히 전쟁 통에 헤어져 북녘에 가족을 두고 온 실향민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박두환 작사 김기태 작곡, 한정무 노래 '꿈에 본 내 고향'은 이러한 이북 실향민의 애환과 고통을 관통한 곡으로 휴전 직후 발표한 해 1954년에도 사랑받았지만 6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애청 애창된다. 첫 마디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 대목에서 이미 꿈에서라도 고향을 보고 싶어 하는 절절한 망향의 정서가 두드러진다. 노래를 부른 한정무도 전쟁 중에 월남한 인물이었지만 끝내 고향에 가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공감을 부르는 고향, 그에 대한 그리움이 갖는 보편성의 힘이 지금도 TV 프로그램 <가요무대>의 방송 횟수 1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에 출연해 ‘잃어버린 30년’을 열창하는 설운도.
훗날 제작된 기념 앨범에 '단장의 미아리고개', '굳세어라 금순아'를 비롯한 많은 전쟁 가요가 실렸다

전쟁 통에 헤어진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을 어찌 따르겠는가. 고향에 대한 그리움도 여기에는 미치지 못한다. 기성세대는 1983년 6월 30일부터 11월 14일까지 무려 138일에 걸친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잊지 못한다.

전국을 눈물바다로 만든 이 기획 방송을 통해 나온 설운도의 '잃어버린 30년'은 종전 30년이 됐어도 여전한 부모에 대한 그리움을 국민적 한(恨)으로 승화해 국민 일체감 형성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코러스 대목인 '어머님 아버님 그 어디에 계십니까 / 목 메이게 불러봅니다...' 부분은 압권이다. KBS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2년 후 북한 대표단이 KBS 방송국을 찾았다. '인도적인 프로그램'이라는 세계 각국의 찬사가 이어졌다.

전쟁은 참혹함으로 그치지 않고 처절한 아픔 한편에 휴머니티가 숨 쉰다. 그리움과 가족 그리고 사랑이 곁에 산다. 그래서 전쟁 때 만들어지고 전쟁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비정함이 널리 불리고 듣는 대중가요의 본질인 친밀함과 상쇄된다. 세계적으로 전쟁 가요, 진중 가요가 오래도록 사랑받고 기억되는 것은 어쩌면 일체를 인간 본연으로 환원시키는 전쟁 그 자체의 성격 때문 아닐까.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은 “온 세상의 이곳저곳에서 아침저녁으로 전쟁의 위협이 우리들 머리 위에 떠돌고 있다”고 했지만, 진정으로 우리들 머리 위에 떠돌고 있는 것은 전쟁의 저 밝은 저편, 바로 사랑이다.


글 임진모(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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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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