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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희정의 K열 19번] 그렇게 가족이 되어야 하나 - <브로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브로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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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이지은, 강동원, 송강호, 배두나, 이주영이라는 화려한 라인업에 김선영, 송새벽, 이동휘, 김새벽, 백현진 등이 카메오로 출연하는 영화 <브로커>의 기본 설정이다. (2022.06.09)



손희정의 K열 19번 : 코로나와 OTT의 시대에도 극장에 대한 사랑은 계속된다. 극장에서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즐거움과 시시함이 있다고 믿는다. 'K열 19번'은 우리가 언젠가 한 번 쯤은 앉아보았을 좌석이다. 극장 개봉 영화를 소개하는 지면에 딱 어울리는 제목 아닌가.


비가 장대같이 쏟아지는 어느 여름 밤. 소영(이지은)이 베이비박스 앞에 아이를 내려놓고 서둘러 자리를 떠난다. 다음 날, 마음이 바뀐 소영은 아이를 찾으러 돌아오지만 시설에서는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던 그가 경찰에 신고를 하려는데 한 남자가 다가온다.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이를 중간에서 가로챈 동수(강동원)다. 동수의 동업자 상현(송강호)은 “어차피 버린 아이 아니냐, 사정이 딱한 부부에게 천만원에 넘기기로 했다”“피차 좋은 일”이라고 설득한다. 사실 섬뜩한 제안이지만, 송강호의 몸을 입은 상현은 이 잔혹함을 친근감으로 빠르게 대체한다. 그리하여 아이를 납치한 두 남자와 아이를 팔기로 마음먹은 한 여자, 상품이 된 아이, 그리고 우연한 기회에 합류하게 된 소년의 기묘한 여행이 시작된다.

이것이 이지은, 강동원, 송강호, 배두나, 이주영이라는 화려한 라인업에 김선영, 송새벽, 이동휘, 김새벽, 백현진 등이 카메오로 출연하는 영화 <브로커>의 기본 설정이다.


‘그렇게 가족이 된다’

아이를 파는 건 생각보다 (혹은 당연히) 간단한 일이 아니다. 판매자의 필요와 구매자의 요구를 서로 맞추는 것도 어렵고, 심지어 까다롭기 그지없는 친모까지 동참했으니 거래가 쉽게 성사될 리 없다. 애초의 계획과 달리 판매는 계속 미뤄지고 동행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 시간들 사이로 애틋한 마음이 쌓인다. 처음에는 티격태격 하던 이들이 소영의 아들인 우성을 돌보는 육아 공동체가 되면서 서로를 찬찬히 살펴보게 되고, 모두가 누군가에게 ‘버려진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면서 우성만은 버림받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지켜주고 싶어진다. 그렇게 다섯 사람은 소영의 말처럼 “이상한 가족”이 되어간다.

그들은 거래를 의도적으로 유보하지만, 그렇다고 이별을 영원히 유예할 수는 없다. ‘버려진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쫓기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베이비박스를 이용한 유아 인신매매를 오랫동안 추적해 온 여성청소년계 소속 형사팀장 수진(배두나)과 이형사(이주영)는 잠복근무 중 동수와 상현이 우성을 가로채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리고 현행범으로 체포하기 위해 이들을 미행 중이다. 수진은 동료인 이형사가 보기에도 이해가 잘 가지 않을 정도로 잔뜩 화가 난 상태다. “키울 수 없다면 낳지를 말라고”를 반복해서 말하는 수진은 인신매매범을 잡고 싶은 마음만큼이나 ‘아이를 버린 엄마’에 대한 증오가 커 보인다. 물론 시간은 형사들과 ‘이상한 가족’ 사이에도 흐른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각자의 사정이 있고, 그 사정을 알게 되면 그를 간편 명료하게 극악무도한 악마들로 대상화하기 어려운 법이다. 형사들이 범죄를 계획하는 자들의 마음을 읽게 되면서, 상황은 점점 더 복잡해진다.

<브로커>는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자신의 작품 세계 안에서 탐구해 온 오래된 관심사들을 응축하면서 그 다음으로 시선을 옮긴 작품이다.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이를 잃고 홀로 남겨진 자의 난망함(<환상의 빛>), 저 혼자 살자고 아이들을 버리는 어른들이 만든 디스토피아(<아무도 모른다>), 그 안에서도 ‘함께’를 고민하는 사람들(<진짜로 일어날 지도 몰라 기적>), 피가 아닌 시간의 인연으로 만들어지는 가족(<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이 이야기들을 지나 <브로커>에 이르러 고레에다는 이제 버리려는 사람, 떠나가려는 사람의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영화 후반부, 어머니가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을 극복하지 못한 어른의 몸을 한 소년이자 감독의 영화적 관심사를 인격화한 캐릭터인 동수는 고백한다.

“소영이 너를 보면 내 마음이 조금 편안해져. 우리 엄마도 어쩔 수 없이 나를 버려야 하는 이유가 있었던 거 아닐까 싶어져서. (...) 그래서, 이제 소영이 널 용서할게.”



“버려진 아이가 아니라 지켜진 아이”라는 수사

“너를 용서할게”는 아름다운 말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동수의 입을 빌어 영화가 용서하는 것은 누구일까? 영화는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의 어려움을 세심하게 살피고자 하면서도 결국은 버림받은 소년의 관점을 내면화하고 있기 때문인지 이상하게 뒤틀려 버리고 만다.

영화가 감정적으로 고조되던 어느 즈음, 여전히 소영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증오할 수도 없게 된 수진이 소영에게 묻는다. “키우지도 못할 거면서, 왜 낳았어?” 소영은 이 부당한 질문에 되받아친다. “지웠어야 했다고?” 이 말에 수진은 “아이를 생각했다면”이라고 답한다. 이어서 소영이 급발진한다. “낳고 나서 버리는 것보다, 낳기 전에 죽이는 게 죄가 더 가벼워?!” 이는 수진의 질문만큼이나 적절하지 않은 공격이다.

그리고 이 갈등 국면이 결국 해소되고 영화의 끝에 수진에게 아이를 맡기며 소영은 말한다.

“오늘 만난 부부가 그랬어요. 우성이, 버려진 아이가 아니고 지켜진 아이라고. (...) 우성이는 그런 사람들 밑에서 자랐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나처럼 살지 않아도 되니까.”

‘버려진 게 아니라 지켜진 아이’란 말은 때로 여성의 임신중지에 대한 비난을 암시하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특히 두 여성 사이에 벌어진 뜬금없는 ‘낙태 논쟁’ 이후에 달라붙은 이 대사는 영화의 전체 메시지를 해치고 만다.

고레에다는 여러 사람이 한 아이를 중심으로 만들어가는 친밀성의 네트워크에 대해 말하고 싶었을 터다. 그것이야말로 ‘아이를 지키는 조건’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 조건을 진지하게 사유하는데 실패했고, 고레에다가 포착한 한국 배우들의 특정 이미지에 기대어 구성한 드라마틱한 사건만이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러다보니 다른 무엇보다 ‘지켜라’라는 메시지가 강조되어 버리는 것이다.

<브로커>는 이지은을 비롯하여 감독의 기대에 따라 자신의 몫을 충실히 해낸 배우들의 호연을 빼곤 옹호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고레에다의 영화 세계가 이렇게 낡아버린다는 것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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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손희정(문화평론가,『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 저자)

문화평론가, 경희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학술연구교수, 프로젝트38 연구원. 『당신이 그린 우주를 보았다』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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