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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은의 엉뚱한 장면] 다시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 <오마주>

영화 <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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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을 초월해, 각자의 상실감과 외로움을 넘어서 두 영화인이 연출한 우연의 찰나가 그 스크린 위로 스쳐 지나간 것 같다면 과장일까. (2022.06.02)


남다은의 엉뚱한 장면 : 작품의 완성도 혹은 작품 전체에 대한 감상과는 무관하게 특정 장면이 엉뚱하게 말을 걸어올 때가 있다. 그 순간은 대개 영화의 큰 줄기에서 벗어난 지엽적인 장면이 관람자의 사적인 경험을 건드릴 때 일어나는 것 같다. 영화의 맥락에 구애받지 않은 채, 한 장면에서 시작된 단상을 자유롭게 뻗어가 보려고 한다.


감독 지완(이정은)의 소망은 자신의 영화가 관객 20만 명을 동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소망이 민망하게도 극장 안, 지완과 프로듀서를 제외한 관객은 다섯 명이 채 되지 않는다. 집에서도 그의 처지는 초라하기만 하다. 지완의 아들은 엄마의 영화가 재미없다고 내뱉고 남편은 이제 돈이나 좀 벌어오라고 힐난한다. 다음 시나리오가 잘 써질 리 없다. 위로받을 데도, 다시 힘을 낼 계기도 보이지 않는 막막한 상황에서 지안은 때마침 제안 하나를 받는다. 한국의 두 번째 여성 감독인 홍은원의 <여판사>에서 유실된 사운드 일부를 복원해달라는 요청이다. 아르바이트 삼아 수락한 일이지만, 어느덧 지완은 무언가에 홀리듯 홍은원의 지난 궤적과 <여판사>의 사라진 장면을 쫓는다. 세 번째 영화인 <여판사>를 끝으로 더 이상 영화를 찍지 못한 홍은원의 집에서 지완은 오래전, 그가 남긴 글귀를 마주한다. “넌 언젠가 지워질 거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공교롭게도 극장에서 금세 사라진 지원의 세 번째 영화 제목은 <유령인간>이다. 

다시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오마주>가 그 간절함에 답하는 방식은 당장 지완이 다음 영화를 만들 길을 서사적으로 터주는 대신, 그를 둘러싼 현실 곳곳을, 과거의 잔상과 현재의 순간을 또 다른 무정형의 스크린 위에서 기이하게 살아난 활동처럼 경험하게 하는 것이다. 두 감독의 행로가 공명하며 불러낸 스크린들은 극장 안 사각의 틀에서 자유로운 상태로 지완 곁을 맴돌며 물질화된다. 

스크린 하나. 지완은 홍은원의 딸이 전해준 사진 속 세 사람 중 한 명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홍은원과 절친했던 편집 기사 이옥희(이주실)로 홍은원의 영화 <홀어머니> 작업을 함께 한 사람이다. 지금 그는 ‘영화’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데 어려움을 겪을 만큼 노쇠하지만, 홍은원과의 과거만큼은 또렷이 기억한다. 그의 집을 찾은 지완이 다리가 불편한 그를 도와 빨래를 걷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빨랫줄에 걸린 커다란 이불 뒤에서 움직이는 둘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빛 가득한 날, 하얀 천 위에서 운동하는 둘의 그림자는 이불 스크린에 잠시 살아난 ‘영화’처럼 보인다. 50여 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을 초월해, 각자의 상실감과 외로움을 넘어서 두 영화인이 연출한 우연의 찰나가 그 스크린 위로 스쳐 지나간 것 같다면 과장일까.

스크린 둘. 지완이 홍은원의 집에서 영화에 소품으로 사용된 트렌치코트와 모자를 마주한 이후, 지완의 눈앞에는 종종 같은 의상을 걸친 미지의 여인이 보인다. 여인은 벽과 땅을 스크린 삼아 지완을 따라다니는 유령처럼 그림자로 출현하곤 한다. 그 그림자는 영화의 도입부, 지완의 아파트 앞 먼지 쌓인 차에서 발견된 신원불명의 여자 시신을 상기하며 얼마간 섬뜩하고 음울한 기운을 풍긴다. 영화에 대한 미련으로 이승을 떠나지 못한 어느 감독의 그림자일까. 원한을 풀지 못하고 세상을 부유하는 어느 여인의 그림자일까. 지완은 별다른 두려움 없이 어둠 속 얕은 빛에 되살아난 이 그림자를 스크린에 맺힌 자신의 형상처럼 물끄러미 바라본다.



스크린 셋. <여판사> 프린트를 찾아 헤매던 지완은 마침내 사라진 필름을 발견한다. 며칠 뒤에 철거될 오래된 극장의 영사실에서다. 무너지기 직전인 극장 천장에는 구멍이 뚫려 빛이 그대로 내부로 들어오지만, 여전히 이곳으로 에로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들이 있다. 지완이 그 극장 내부 한가운데로 성큼성큼 걸어가 천장의 구멍으로 쏟아지는 빛을 받으며 필름을 하나하나 비춰본다. 영사기의 빛이 아니라, 어둠 속에 새어든 자연의 빛줄기로 지완은 자신만의 스크린을 만들어 과거의 환영을 투사한다. 너무도 낡은 극장 한가운데서, 버려졌던 필름을 들고 빛을 향해 손을 뻗고 서 있는 지완의 그 무모한 제스처는 아름답다. 긴 시간 영화의 사랑을 갈구했을 한 영화인이 여기서 비로소 ‘영화’와 한 몸이 된 것만 같은 인상 때문일 것이다.

스크린 넷. 마지막 장면에서 영화는 지완 없이 그 극장으로 다시 돌아온다. 이제 극장 안에는 아무도 없고, 스크린을 달궜던 조악한 화질 속 몸의 향연도 없는데, 이곳은 아직 죽지 않았다. 활짝 열린 극장 문밖에서 일어나는 세상의 움직임들이 극장 안 스크린에 스며들어 물결처럼 일렁인다. 부서져 소멸할 때까지 어둠 속 빛의 운동을 끝내 흡수하며 소임을 다하는 스크린의 운명. <오마주>는 결국 그 스크린을 향한 감독 홍은원, 김지완, 그리고 신수원의 포기할 수 없는 애정과 고마움의 고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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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남다은(영화평론가, 매거진 필로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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