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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엽의 창작과 독서] 얼렁뚱땅 논픽션 쓰기 (2)

<김초엽의 창작과 독서> 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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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무척이나 다행스럽게도, 당시 장애와 소외된 몸에 관한 현대적 논의와 사유를 다룬 여러 책이 한국어로 많이 번역되어 있던 시기였다. 국내 저자들이 쓴 좋은 책들이 몇 년 사이 쏟아져 나왔다. (2022.06.02)


고민이 너무 많았다. 놓칠 수 없는 제안이라고 생각해 곧바로 받아들였지만, ‘내가 정말 이 글을 써도 될까’, ‘이 책을 쓸 수 있을까’ 같은 고민을 한 해 내내 한 것 같다.

좋아하는 저자와 함께 글을 쓰는 건 기쁘기만 한 일은 아니다. 기쁨은 잠시, 공저자의 글을 ‘감당’할 실력을 갖추지 않으면 큰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온다. 여러 명의 저자가 글을 나누어 싣는 앤솔로지와도 조금 다르다. 앤솔로지는 보통 기획자가 있고, 기획에 맞추어 각자 쓴 글을 모아 책으로 묶는다. 개별 글의 편차가 있어도 기획이 뛰어나면 괜찮은 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단 둘이서, 정확히 절반의 분량을 책임지며 문제의식을 깊이 공유하고 서로의 글을 완전히 이해하면서 써야 하는 책이다. 내가 얹혀갈 수 없는 작업이라는 뜻이었다. 이미 좋은 논픽션을 써본 저자인 김원영 작가와 달리, 나는 뜬금없는 기회 앞에 던져진 초보 작가였다. 그렇지만 그것이 나의 부족함을 덮어주지는 않을 터였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이 작업물에 내 몫의 기여를 해야 했다. 하지만 이렇게 아는 게 없는데, 과연 할 수 있을까?

걱정에 빠져 있을 틈도 없이 주간지 연재가 먼저 시작됐다. 「사이보그가 되다」라는 프로젝트 제목도 일사천리로 정해졌다. 대부분의 연재라는 게 이렇다. 도저히 못 쓰겠다고 약한 소리 하는 작가들을 일단 착즙기에 넣어서 원고를 쥐어짜내는 것이다. 나 역시 평소에 ‘마감이 있으면 일단 쓰게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일단 기운차게 시작했지만, 그 이후 몇 달간 슬픈 진실 하나를 마주해야 했다. 그게 뭐였냐면, 마감이 있으면 어떻게든 쓰게 되는 건 맞지만, 그 글의 퀄리티를 보장할 수는 없다는 점이었다.

바쁜 시기였다.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출간을 준비하고, 책이 나온 후에는 여러 인터뷰와 행사에 불려 다니느라 눈코 뜰 새 없는 때였다. 그래서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다. 서울과 울산을 오가는 KTX 안에서, 행사를 앞두고 잠깐 들른 카페에서 틈틈이 글을 써야 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나에게 당시 ‘장애와 과학기술’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문제의식이 부재했다는 점일 것이다. 나는 아직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지 몰랐다. 남들이 다 가지고 있는 질문 정도밖에 없었다. 그래서 자료조사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몰랐다. 한 편 한 편, 어떻게든 이 주제에 대한 나의 미천한 경험과 얼마 없는 지식을 바닥까지 긁어봤지만, 글이 공개될 때마다 이런 생각이 밀려왔다. ‘안 돼, 이렇게 책을 낼 순 없어!’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그동안 첫 소설집이 예상치 못하게 주목받고, 거의 한 달에 한 편 꼴로 단편 마감을 하느라 정신이 혼미해진 사이 나는 첫 논픽션에 대한 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냥 까맣게 잊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하필이면 주간지 연재로 동네방네 떠들어버린 탓에 모른 척할 수도 없어졌다. 일은 벌어졌고, 나 혼자만의 일도 아니었고, 이제 와서 발을 내빼기엔 너무 늦었다. 주위 지인들이 ‘잘 읽었다, 책으로는 언제 나오냐’라는 선량한 안부 인사로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해 연말, 그러니까 이 프로젝트를 해보자고 의기투합한 지 정확히 일 년쯤 지난 때에, 김원영 작가로부터 연락이 왔다.

“초엽 작가님, 우리 이제 정말 책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상하게도 김원영 작가와 이 프로젝트에 대한 부담감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다시 작업을 시작할 힘이 되었던 것 같다. 이 주제는 원래 어렵다는 것, 나에게만 어려운 게 아니라는 것, 그 사실을 새삼스레 되새기자 용기가 생겼다. 나 역시 한 해 내내 못 쓰겠다고 한숨 쉬면서도 한편으로는 약간이라도 써먹을 만한 자료가 보일 때마다 강박적으로 모으고 있었다. 뇌의 해석틀을 이 프로젝트의 주제와 동기화하고 있었던 셈이다. 어쩐지 언젠가부터는 세상이 다 ‘장애와 과학기술’ 이야기만 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이제는 정말, 더는 미룰 수 없는 순간이었다.


안개가 모두 걷힌 지도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소설과 논픽션은 어떻게 다를까? 나에게는 둘의 차이가 ‘세계의 안개(Fog of World)’가 있냐 없냐의 차이 같다. 전략전술 게임에서는 보통 ‘전장의 안개(Fog of War)’라는 것이 등장하는데(스타크래프트 맵을 가리는 그 안개가 맞다) 적대 진영이나 중요 자원의 위치 등이 지도상에서 검은 안개로 가려져 있어서 직접 탐색하기 전에는 드러나지 않는 장치다. 나는 전략전술 게임보다는 넓은 세계를 직접 탐사하고 퀘스트를 수행하는 오픈월드 게임을 좋아하는데, 이런 게임들도 처음 지도를 열면 플레이어가 아직 가보지 않은 대부분의 장소들이 안개나 그림자로 가려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게임에서는 세계의 안개라고 부르면 더 적절할 듯하다. 가려진 곳을 플레이어가 탐사하면 안개가 걷히면서 숲과 바위, 호수 같은 지형이나 퀘스트, 대장간과 보관함 따위가 드러난다. 계속해서 게임을 진행하다보면 안개 대부분은 걷힌다.

그런데 모든 안개를 걷어낼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떤 지역들은 끝까지 안개 너머에 있다. 그건 원래부터 볼 수 없지만 여전히 그곳에 무언가 존재한다는 착각을 주기 위한 장치다. 나는 소설의 특징이, 특히 SF의 특징이 이 세계의 안개로 뒤덮인 지도와 비슷하다고 본다. 독자의 관점에서도, 작가의 관점에서도 그렇다.

SF를 읽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이게 도대체 다 무슨 말이야?’ 싶은 부분들을 일단 무시하고 넘기며 쭉쭉 읽는 것이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알 수 없는 단어와 상황을 도입부에 배치하고, 독자를 대뜸 사건 속으로 끌어들인 다음에야 이게 무슨 상황인지를 조금씩 알려준다. 그래서 SF를 읽는 경험은 세계의 안개로 뒤덮인 지도 위를 탐사하는 일과 비슷한데, 당장은 뭐가 있는지 몰라도 일단 앞으로 걷다보면 가려진 세계의 구석구석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점. 이 SF의 지도에는 끝까지 읽어도 걷히지 않는 안개의 영역이 반드시 남아 있다.

소설은 주로 제한된 시점, 특정한 인물을 따라 전개되기에, 이 세계의 어떤 부분을 보여주고 어떤 부분을 안개 속에 남겨둘 것인지를 작가가 선별한다. 특히 어린아이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소설에서 그 효과가 극대화되는데, 이를테면 『클라라와 태양』은 아이들의 친구 로봇 클라라의 일인칭시점에서 진행되는데, 클라라가 경험하는 세계는 자신이 진열되어 있던 로봇 매장과 동반자 소녀 조시의 가정집에 한정되어 있으므로, 독자들은 이 집 바깥의 근미래 미국 사회가 어딘가 이상하고 뒤틀려 있다는 단서만을 일부 얻을 수 있을 뿐이다. 물론 아이들뿐만 아니라 이십 대의 신출내기 경찰도, 사십 대의 유능한 과학 연구원도 결국은 각자의 관점으로만 세상을 경험한다.

이런 제한 시점을 따라간다는 특성 때문에 소설은 독자의 의심에서 조금은 자유롭다. 논리적 짜임새와 매끈한 세계 구성은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때로는 개연성을 압도하는 다른 요소들이 있다. SF를 쓰는 작가들 역시 SF를 구상하다보면 매력적이지만 개연성이 부족한 이야기, 매력적이지만 구조적 결함이 있는 세계를 종종 떠올리게 되는데, 때로는 아무리 애써도 이 개연성 구멍을 쉽게 채울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면 굳이 논리적 결함을 채우기 위해 덕지덕지 온갖 이유를 가져다 붙이기보다는, 아예 독자가 ‘모르고 넘어가도록’ 이야기를 설계하는 것이 낫다. 주인공이나 주요 인물들의 시선에 사각지대를 만든 다음 허점을 그 사각지대에 숨긴다든지. 확인해본 적은 없지만, 아마 SF 작가들 대부분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이런 기술을 쓰고 있지 않을까?

나 역시 출간 이후 독자들의 개연성 지적은 내가 쓰면서 우려했던 부분보다 미리 생각지 못한, 놓쳐버린 부분에서 주로 나온다. 그러니까 SF를 쓸 때는 지도를 가린 안개의 범위를 설정하는 게 중요한 일이다. 어차피 논리적으로 완벽한 세계를 만들 수 없다면, 적당히 가려서 진짜처럼 믿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물론 단련된 독자들은 안개 너머 세계를 능숙하게 추론해서 세계의 결점을 마구 드러내기도 하는데, 다행히 이런 무서운 독자들의 수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 작가들에게 위안이 된다고 해야 할지.

반면 논픽션의 세계는 안개가 없는 지도다. 작가의 의도에 따라 길을 따라가며 탐색하는 건 소설과 비슷하지만, 소설과는 달리 이곳 현실이 논픽션의 무대다. 처음부터 지도는 안개가 걷힌 채로 여기 투명하게 드러나있다. 세계의 안개로 독자들의 눈을 가리기란 불가능하다. 물론 개별 독자들이 이 세계 전체에 대해서 알지는 못한다. 누구나 그렇듯 우리 모두 각자의 관점으로 세계의 일부만을 경험한다. 하지만 작가는 개별적 독자가 아닌 ‘전체 독자’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개별 독자들은 부분적인 지도만을 갖지만 이 책을 읽을 잠정적 독자들의 부분적 지도를 다 합쳐보면 그건 거의 세계 전체에 근접할지도 모른다. 현실에 대해 틀리게 쓰면, 어떤 부분이 왜곡되어 있거나 구멍이 나 있으면, 반드시 누군가는 그 사실을 알아차린다. 이 책을 읽은 수천 수만 명의 사람 중 단 한 명에 불과하더라도.

대상 독자에 따라 약간 달라질 수는 있어도, 기본적으로 논픽션을 쓸 때는 이 분야를 통달한 최고의 전문가들도 내 책을 읽을 거라고 가정하고 쓰는 편이 낫다. 작가가 어디까지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가 낱낱이 드러나고, 오류를 발견하는 것도 이미 그 분야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쉽다. 실제로 많은 교양서가 출간 이후 전문가들 혹은 독자들로부터 여러 오류 지적을 받는데, 논픽션의 세계에서는 그저 당연히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해야 마음 편하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해, 논픽션은 ‘모르는 걸 얼버무리기’가 통하지 않는 영역이었다. 세계의 안개를 남겨둘 수 없는 글쓰기라는 점에서 평소보다 훨씬 깊이 있는 자료조사와 그에 대한 충실한 이해가 필요했다. 처음에는 그 사실 때문에 무언가에 발목을 잡힌 듯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했다. 정말 내 밑천이 드러날 텐데, 이 글을 썼다간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이 투명하게 보일 텐데 하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그 두려움에 맞서게 한 건 물론 글 외적인 여러 이유, 출판사와의 계약과 탁월한 파트너의 존재, 독자들의 기대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프로젝트의 주제 자체가 지닌 매력이 컸다. 출발 지점에서는 분명하게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장애와 과학기술, 그리고 소외된 몸의 미래라는 주제가 정말이지 흥미로운 주제라고 생각했다. 장애라는 정체성 혹은 상태는 우리 사회의 가장 차별받는, 배제되고 억압된 위치에도 있지만 동시에 인간 신체와 정신, 능력주의에 대한 가장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며 온몸으로 저항하는, 전복적인 위치에도 놓여 있다. 나는 그 정체성 혹은 상태가 ‘미래’라는, 장애와는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단어와 결합되었을 때 발생할 질문들이 궁금했다. 그 복잡한 질문을 엮어서 독자들에게 낯선 풍경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에게는 무척이나 다행스럽게도, 당시 장애와 소외된 몸에 관한 현대적 논의와 사유를 다룬 여러 책이 한국어로 많이 번역되어 있던 시기였다. 국내 저자들이 쓴 좋은 책들이 몇 년 사이 쏟아져 나왔다. 관련 키워드로 잡히는 책들을 모두 사서 읽어보았다. 특히 『망명과 자긍심』이나 『거부당한 몸』『장애학의 도전』과 같은 책들이 처음에 장애학에 기반한 전체 글의 방향을 잡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한편 포스트휴머니즘과 인간 신체-결합기술을 다루는 진지한 학술서도 국내에 여럿 나와 있었다. 만약 내가 유려한 한국어로 쓰이거나 번역된 그 책들을 출발 지점으로 삼지 않았다면, 영문 자료의 망망대해에서 분명 길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다음에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두 영역을 잇는 자료들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장애학 기반으로 포스트휴먼을 이야기하거나 보철기술, 보조공학 등을 이야기하는 한국어 자료는 아직 몇 없었고 찾기도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필요한 건 기존 현상에 대한 비판에 그치지 않고 유의미한 대안을 제시하는 일이었다. 비판을 하라면 할 수 있을 텐데, 그 이후에 나아갈 방향은 어디서 찾아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막막했던 그때도 어쩐지, 마음속에 희미한 확신은 있었던 것 같다. 세상 어딘가에는, 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분명 꽤 많을 거라고.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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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초엽

소설가. 1993년생. 포스텍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생화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2017년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쓴 책으로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원통 안의 소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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