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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훈의 리걸 마인드] 주류란 무엇인가

<월간 채널예스> 2022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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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으로부터 거부당한 지미는 이제 주류 변호사의 세계에서 추방당한 채, 그 자신이 선택한 어둠의 길로 뚜벅뚜벅 걸어 나가게 된다. (2022.03.03)

일러스트_키박

법정 드라마 〈베터 콜 사울(Better Call Saul)〉의 문제적 변호사 사울 굿맨은 변호사에 대한 일반의 편견을 깨는 인물이다(극 중 원래 이름은 ‘제임스 맥길’(이하 ‘지미’)인데, 영업을 위해 자신의 이름으로 사울을 선택한다). 우리는 주인공인 변호사들을 보통 정의감 넘치는 인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사울 굿맨(“It’s all good, man”)은 돈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는, 선악을 판단하지 않고 악착같이 변론하는 변호사이자 범죄자의 친구이다. 지미 맥길은 어떻게 타락한 변호사 사울 굿맨이 되었나? 어릴 때부터 ‘살아가며 불가피한 경우에는 남을 속이는 것이 악은 아니다.’라는 생각을 품고 자랐고, 그 생각이 결국 그를 타락한 변호사인 사울 굿맨으로 이끌었다.

극 중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그가 주류 질서로의 편입을 끝내 거부당하는 장면이었다. 지미는 친형인 척의 로펌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사환으로 근무하던 중 야간 로스쿨인 ‘아메리카 사모아 대학’을 졸업하고 두어 번의 시험 실패 끝에 드디어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다. 지미는 변호사가 된 사실을 자랑스레 형에게 말하며 사환에서 변호사로 전환시켜줄 것을 요구하는데, 척은 이를 교묘하게 거부한다. 사실 척은 지미가 변호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그것이 전혀 자랑스럽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말썽을 부리며 소소한 범죄를 저지르던 지미가 자신과 같은 변호사가 되는 것이 부당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척이 생각하는 변호사라는 업은 신성한 것이어야만 했다. 모범적인 학창 시절을 보내고, 아메리칸 사모아 대학 같은 커뮤니티 대학이 아니라 적어도 (척과 같이) 펜실베이니아 대학을 나오고 조지타운 로스쿨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자들만이 쟁취할 수 있는 직업이어야 했다. 그래서 가족이라 할지라도 지미와 같은 하류 인생이 변호사가 되어 자신과 같은 로펌에서 일하는 것을 용납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형으로부터 거부당한 지미는 이제 주류 변호사의 세계에서 추방당한 채, 그 자신이 선택한 어둠의 길로 뚜벅뚜벅 걸어 나가게 된다.


한국에서도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한때 수많은 척들로부터 하류 변호사 취급을 당한 적이 있다. 한국의 법조 인력 양성 시스템에서 가장 큰 전환은 노무현 정부가 2008년 도입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으로 시작되었다. 이는 ‘시험’을 통한 선발이 아닌 ‘교육’을 통한 양성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데, 과거 사법시험에 합격한 자들에게 국가가 사법연수원에 입소하게 하고 2년간 추가 교육을 통해 법조인 자격을 부여하던 체제에서, 이제 대학 졸업에 준하는 학력을 가진 자들을 대상으로 법학전문대학원 교육을 마친 이들에게만 변호사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하는, 로스쿨 체제로의 대전환이 이뤄진 것이다.

로스쿨은 2009년 첫 개원 이래, 2012년 첫 번째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을 배출하며 역사적인 발걸음을 시작했다(나는 바로 1기 로스쿨 출신 변호사이다). 원래 제도가 처음 설계될 때엔 사법시험을 즉시 없애고 로스쿨 출신만으로 법조인을 양성하고자 하였으나,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에 따른 타협으로 사법시험은 로스쿨 제도와 병존하였으며, 결국 몇 년 동안 사법시험과 로스쿨 출신으로 양분하여 법조인이 배출되었다(사법시험은 2017년 마지막으로 시행된 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바로 거기에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수십 년간 사법시험 출신이라는 단일 종이 지배하던 법조 시장에 갑자기 이종 집단이 출현하여 신성불가침 의 영역에 자신들도 같은 전문 자격을 가진 동일한 변호사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2012년 봄 사법시험과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한정된 로펌 일자리를 두고 격렬하게 경쟁하기 시작했다. 원래 2011년까진 약 1000명의 사법연수원 수료생이 신규 법조 인력 시장에 진입했다면, 갑자기 2012년에 새롭게 로스쿨 출신 변호사 1500명이 더해져 취업 시장 의 경쟁률을 급격히 상승시킨 것이다. 당시의 내가 사법시험 출신 변호사였더라도 내 일자리를 뺏는 로스쿨 출신을 증오했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로스쿨 출신 변호사 개인이나 집단의 잘못은 아니었다. 제도의 잘못된 설계가 우리로 하여금 서로를 증오하게 한 것이다. 

사법시험 출신들은 로스쿨 출신을 흔히 ‘로퀴’(로스쿨 바퀴벌레)나‘ 변호 조무사’라는 멸칭으로 불렀다. 같은 자격증을 가진 동료로 이들을 인정하기조차 어려웠던 것이다. 매년 2만명 정도가 1차 시험에 응시하여 단 1000명만 붙는 시험. 한국에서 가장 합격하기 어려운 시험 중 하나였던 사법시험은 합격 자체로 그들에게 어떤 명예를 부여해줬다. 그들이 보기에, 로스쿨 출신 변호사는 시험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아류 변호사에 불과한 자들이었다(현재 변호사시험 합격률은 50% 정도다).

사법시험 출신들은 로스쿨 출신들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공개적으로 경멸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 일터에서 집단적인 따돌림을 가하기도 했다. 그들은 얌전히 공부하여 사회의 주류 질서를 신봉하던 척들이었고, 우리는 어느 곳에서 뭘 하며 굴러먹다가 뒤늦게 이상한 시험을 치르고 같은 법조인 행세를 하려는 지미들이었다.


나는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첫 직장으로 변호사 20여명 정도가 일하는 중소형 법무법인에 취업을 했는데, 당시 같은 해에 입사한 나보다 대여섯살 나이 어린 사법시험 출신 K변호사가 일하고 있었다. 

이미 회사 생활을 5년이나 하다가 변호사가 되어 들어간 로펌에서 나는, 충분히 ‘회사 가면’을 쓰고 적당한 거리에서 우호적인 조직 생활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를테면 입사 초기에는 더 쾌활한 척하고 외향적이며 언제든 선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후배 변호사로 ‘보이려고’ 노력했다. 동시에 동기 변호사인 K에게도 나는 친절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맥주를 마시며 선배 변호사들의 뒷담화를 함께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K는 아예 나를 상대하려 하지 않았다. 함께 일하는 공간에서 뿜어져 나오는 호의와 악의는 절대로 숨길수 없다. 특히 아무런 이유 없이 인종주의적인 편견에 기반하고 있는 증오와 적의는 그것을 내뿜는 자뿐만 아니라 그 대상이 되는 피혐오자가 먼저 냄새를 맡을 수밖에 없다. 

K는 입사 직후부터 나와 말을 섞으려고 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겸상을 하려 하지도 않았다. 여러 명의 변호사가 함께하는 점심 식사 자리에서는 애써 내가 그와 친해지기 위해 같은 테이블로 들어서면, 눈에 띌 정도로 어색하게 다른 테이블로 옮기는 행태까지 보였다(내가 진짜 식당 바퀴벌레처럼 보인 건가?!).

처음 입사한 변호사는 혼자 독자적으로 일하기보단 사수인 선배 변호사 와 도제식 교육을 받으며 일하기 마련이다. 말하자면 회사 조직에서처럼 팀원끼리 협업할 일이 거의 없고, 각자 알아서 교육을 받는 수습생의 신분을 일정 기간 유지한다. 나와 K는 사수 변호사가 달랐으므로 일을 함께 하거나 공적으로 이해관계가 겹치는 부분도 없었다. 그저 가끔 점심 식사나 저녁 맥주 자리에 스치는 사이일 뿐이었지만, 그는 철저하게 나를 무시하고 없는 존재로 취급했다. 

나는 첫 회사에서 6년 정도 일을 하다 다른 로펌으로 옮겼고, K도 이직했다. 퇴사 후 서초동 거리를 지나며 K를 한 번 마주쳤지만 우리는 서로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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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양지훈(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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