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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광동에는 스러져가는 우리의 소중한 역사가 있다

『우리가 서로를 잊지 않는다면』 김여정 저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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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로 남아 있는 기록에 적힌 역사가 아니라, 제가 만나고 들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전쟁과 국가의 폭력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 남은 사람들이 어떤 고통 속에서 살아왔는지 그 아픈 목소리를 활자로 남기려 해요. (2022.02.21)

김여정 저자

4·3평화문학상에서 논픽션 부문의 최초 수상작으로 『우리가 서로를 잊지 않는다면』을 선정했다. 김여정 작가는 한국전쟁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보광동 토박이 어르신들의 증언과 용산 미군 기지의 그늘 아래서 살아가야 했던 가난한 이들과 소수자들을 끌어안은 보광동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일제가 용산 일대에 일본군 기지를 짓기 위해 둔지미 마을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는 사건을 시작으로 보광동은 현대사의 비극에 휘말리게 된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무차별 폭격과 좌우익에 의한 민간인 집단학살을 겪어야 했고, 전쟁 후에는 미군기지가 주둔하여 기지촌 여성들이 수난을 당해야 했다. 이후 미군기지 이전이 결정되고 난민과 이주민, 성소수자 등 차별받는 이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었다. 김여정 작가는 이러한 배경을 지닌 보광동 골목길 한편에 작은 카페를 차려 ‘마을 사랑방’을 만들고, 카페를 드나드는 이들의 삶을 기록한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책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우리가 서로를 잊지 않는다면』에서는 한국전쟁으로부터 한남뉴타운 개발이 진행 중인 현재까지, 보광동 주민들이 겪은 아픔과 서로를 보듬는 모습을 세심하게 기록하셨어요. 이 작품을 쓰시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우연한 계기로 2014년 겨울부터 2016년까지 보광동에서 카페를 열게 되었습니다. 제 카페가 있던 골목길은 보광동에서도 오래된 동네였고,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장소였습니다. 요즘은 보기 드물게 이웃을 챙겨주는 정다운 동네여서, 저를 카페 사장보다는 동네 주민으로 친근하게 대해주셨어요. 그중에는 보광동에서 한국전쟁을 겪으셨을 정도로 이곳에 오래 사신 분들도 많았고, 용산 미군 기지와 가까운 동네다 보니 일본군이 용산에 들어오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용산에 쏟아진 폭격에도 간신히 살아남아 미군 기지 앞에서 구두통을 매고 ‘원 달러’를 외치던 소년이, 북에서 내려오거나 남쪽에서 올라와 미군 기지 아래서 간신히 생계를 이어가던 사람들이, 미군을 상대해야 하는 ‘양공주’ 여성도 있었습니다. 몇 편의 글로만 이해하고 있던 한국전쟁과 그 후의 시대를 생생하게 들려주시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우리가 이 분들의 목소리를 경청하지 못해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광동은 한남3구역 뉴타운 재개발 사업으로 2022년 9월부터 이주가 시작된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만난 보광동분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그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저는 여전히 카페를 운영하며 만난 여러 인연 때문에 여전히 용산을 떠나지 못하고 보광동 사람들과 수시로 만나고 있습니다.

보광동에 오래 사신 어르신들께서 비행기 소리와 폭죽 소리를 두려워하시고 음식을 잔뜩 쟁여두시는 모습이 아프고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보광동 어르신들이 겪었던 일들을 짧게 들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한국전쟁 당시, 국군은 서울에서 후퇴하고 한강 다리를 폭파하여 용산 인근 주민들의 피난로가 끊겼습니다. 이후 유엔군은 인민군이 용산 기지를 접수하고 군 시설을 사용할 것이 두려워 그 일대에 무자비한 폭격을 가합니다.  용산 기지 근처의 저유 탱크, 철도 시설, 군사 시설을 폭파하려고요. 보광동은 용산 기지 인근에 위치해 피해가 극심했습니다.

결국 인천상륙작전으로 한강 이남까지 수복한 유엔군은 남산과 보광동 언덕에 자리한 인민군을 향해 집중 포격을 가합니다. 보광동은 다시 재만 남을 정도로 처참하게 불타게 됩니다. 기둥이 제대로 남아 있는 집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어요. 보광동에서 만난 어르신들 중 몇 분은 그 고립된 폭격의 현장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분들이었습니다.

어르신들이 한국전쟁을 경험하고 지금까지 살아오신 생의 여정을 들으시면서 어떤 감정을 느끼셨고 무엇을 배우셨는지 궁금해요.

증언 채록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전쟁의 경험을 얼핏 들었을 때는 누구보다도 힘들게 살아오시며 울분과 한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의 이야기는 달랐어요. 끔찍한 전쟁에서 살아남아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던 것을 감사히 여기고, 죽어간 이들을 추모하며 열심히 삶을 일궈내셨습니다. 트라우마를 겪으면서도 서로를 보듬으며 긍정적으로 살아가려 하셨고요.

어르신들이 살아오신 여정을 들으며 억척같이 살아낸 그들의 용기를 조금 나눠 받을 수 있었습니다. 감히 그분들의 삶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나에게 주어진 불행이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얻고 저에게 주어진 삶의 순간순간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값지게 살아가려고 노력하게 되었지요.

어르신들을 만나 증언을 채록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힘들었던 순간도, 보람을 느꼈던 순간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셨던 어르신이 요양원으로 떠나거나 돌아가실 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여전히 시간이 날 때마다 보광동 어르신들을 찾아뵙는데, 안 좋은 소식을 듣게 되는 날은 정말 견디기 힘들어요. 어르신들과 헤어질 때마다 다음에 또 뵙자고 매번 손을 잡고 인사하는데, 그것이 마지막 인사처럼 여겨지면 또 가슴이 미어지고요.

증언을 들려주셨던 어르신 중에는 수십 년 동안 한국전쟁 이야기를 가슴에 묻고 살아오신 분도 계세요. 가슴속에 트라우마를 안고 수십 년을 살아오신 거지요. 원 없이 그 이야기를 하고 나서 가슴이 후련해졌다는 분들도 계시고, 수십 년을 참아온 눈물을 흘리시기도 합니다. 증언을 하시면서 가슴에 맺힌 응어리가 조금이라도 풀어지고 상처가 아물기를 바랄 뿐입니다.

지금도 용산에서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채록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독자분들께 전해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실까요?

용산 일대는 한국전쟁 당시 집중 폭격을 당했지만 제가 알기로는 누구도 그 일대에 살았던 이들의 증언을 채록한 바가 없습니다. 민간인이 살던 지역에도 폭격기 쏟아졌고요. 저는 그 폭격을 겪고 살아남은 분들의 증언을 지금까지도 채록하고 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 근방에 살고 계신 할머님은 1935년생이신데, 서울 수복 당시 미군의 폭격 때문에 머리와 엉덩이에 포탄이 박힌 채로 수십 년을 살아오셨어요. 마찬가지로 다른 할아버지께서는 폭격으로 동생을 넷이나 잃었고, 그 일을 여전히 사무치게 슬퍼하고 계십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다고 하지만, 그분들의 상처와 전쟁은 계속되고 있음을 우리가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하신 이전 작품에서도 제노사이드의 현장을 찾아가 폭력의 역사를 기록하고 피해자들을 기억하는 글을 쓰셨습니다. 부당한 폭력을 고발하고 희생자들을 기리는 이야기에 집중하시는 이유가 있으실까요?

시작은 제 개인적인 기억들이었어요. 외할머니께서 농민운동을 하던 오빠의 이야기를 들려주신 것이 첫 번째였지요. 그분은 농문운동을 하다가 1950년 7월, 목포형무소에서 해양경비대에 끌려가 목포 앞 바다에 수장되었습니다. 할머니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오빠 이야기를 하셨고요.

또한 제가 어릴 때 저를 돌봐주셨던 이웃 아주머니가 계신데, 나가사키 원자폭탄에 피폭되셨던 분이었어요. 그 후유증으로 일찍 돌아가셨는데, 저에게 그날 집이 부서질 듯 흔들리고 사람들이 불에 그슬려 죽었다며 자장가를 불러주듯 나긋하게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그때는 그 말의 의미를 몰랐죠.

그래서 문서로 남아 있는 기록에 적힌 역사가 아니라, 제가 만나고 들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전쟁과 국가의 폭력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 남은 사람들이 어떤 고통 속에서 살아왔는지 그 아픈 목소리를 활자로 남기려 해요. 할머니가 아랫목에 밥그릇을 묻고 오빠를 평생 기다린 이야기나 비행기 소리를 무서워하셨던 아주머님의 이야기처럼요.

“이곳 보광동에서는 어르신 한 분이, 꽃언니 한 명이 세상을 떠나면 그해 여름을 기억하는 박물관이 하나 사라지게 된다”는 표현이 오래 기억에 남았어요. 독자들이 이 책에 담긴 소중한 기억들을 어떤 마음으로 읽어주시길 바라시나요?

저의 할머니께서 살아계실 때, 저는 할머니가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졌더라면 할머니가 겪었던 이야기를 듣고 이야길 나누며 그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드릴 수 있었겠지요. 할머니의 귀중한 삶을 제 안에 남길 수도 있었을 테고요.

제가 만났던 어르신들은 대부분 구순을 넘기셨거나 구순을 바라보고 계세요. 책에 나오셨던 꽃언니 세 분 중 두 분은 요양원으로 떠나셨고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처럼 역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남아 있는 글로만 읽어서는 그 온전한 이야기를 알 수 없다고 생각해요. 특히 그 시대를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그 아픔의 역사를요. 혹시나 한국전쟁을 겪으신 조부모님, 부모님이 아직 살아 계신다면 그때의 이야기를 한번 여쭤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우리가 같이 기억해야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을 거예요.




*김여정

대학을 졸업하고 오랫동안 국제관계 전문가로 국내외 시민단체 등에서 일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 보광동에 카페를 열었다. 카페 손님들로부터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보광동 이야기를 전해 듣고, 지금까지도 용산 사람들의 한국전쟁 경험을 채록 중이다. 보광동 이야기를 담은 『우리가 서로를 잊지 않는다면』으로 제8회 제주4·3평화문학상 논픽션 부문을 수상했다. 아시아 지역의 학살 사건과 그 유족들의 이야기를 함께 기억하고자 기록한 『다크 투어, 슬픔의 지도를 따라 걷다』로 2020년 제28회 전태일문학상 르포 부문을 수상했다.



우리가 서로를 잊지 않는다면
우리가 서로를 잊지 않는다면
김여정 저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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