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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준의 짧은 소설] 겨울 산

<월간 채널예스> 2022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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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막하고 하염없어도 눈을 미워하는 사람은 되지 말아라. (2022.02.04)


"막막하고 하염없어도 눈을 미워하는 사람은 되지 말아라. 눈과 비는 빛과 함께 하늘에서 내리지. 천국은 이런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 거야. 좋은 곳에 있으니 슬퍼 말고 언젠가 그날이 오면 기쁘게 나를 만나러 오렴."

잠에서 깬 둘째는 조금씩 몸을 움직여 침대에서 일어났다. 몸속의 물이 얼어붙었던 걸까. 뚝뚝 얼음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팔목과 발목, 어깨와 허리에서 느껴지는 통증. 둘째는 신음 같은 숨을 길게 내쉬며 말했다.

"막막하고 하염없다."

꿈속 엄마의 말이 꿈 밖에서도 들리는 걸까. 둘째는 두려운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졸린 눈을 비비며 느리게 걸어 셋째와 첫째의 침대 사이에 섰다. 첫째는 벽을 보고 웅크렸고 셋째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리고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고요하다. 둘째는 첫째의 머리 쪽으로 몸을 숙이고 귀를 기울였다. 기도를 드나드는 투명한 숨. 더운 피가 만드는 작은 열. 둘째는 안도하며 고개를 돌려 다른 침대를 봤다. 기척을 느낀 셋째가 인상을 찌푸리며 이불을 끌어당겼다.

잘게 쪼개진 장작 두 개를 벽난로에 넣고 재가 날리지 않을 정도로 약한 바람을 불어 넣었다. 숯불 속에 숨었던 불이 빛을 내며 나무로 옮겨 갔다. 커튼을 걷었다. 맹렬하게 돌진하는 광선으로 눈 감을 수밖에 없는 아침이다. 둘째는 창가에 기대어 서서 눈을 가늘게 뜨고 어제와 같고 어쩌면 내일과 같을 설경을 봤다. 골짜기 사이 태양이 떴고 구름 한 점 없이 하늘은 열려 있었다. 찬란한 햇빛 사이로 소리도 없이 수수수 내리는 눈. 옥수숫가루처럼 곱고 가벼운 것들. 하얗고 투명하지만, 결국엔 모든 숨을 앗아가는 차가운 칼날과 바늘들.

뜨거운 물에 말린 쑥을 한 스푼 넣었다. 검게 부스러진 가루가 물기와 열기에 몸을 바꾸며 조금씩 펼쳐졌다. 풀색과 흙색이 반반 섞인 투명한 물. 새를 쥐듯 컵을 두 손으로 감싸 안고 호흡했다. 건조한 겨울 공기 속으로 퍼지는 미약한 봄의 냄새. 쑥에서는 예전 같은 강한 냄새는 없다. 하지만 그 냄새에 매달려 과거로 걸어가고 싶다. 엄마가 있고 꽃이 피고 푸른 평원이 있던 봄의 산. 몇 번이나 마실 수 있을까. 그 전에 봄이 올까. 둘째는 의자에 걸터앉아 벽에 걸린 엄마의 털모자를 보며 마지막 봄이 언제였는지 헤아렸다. 달군 철판 위에 쑥을 덖고 바람에 말리고 다시 철판에 올려 덖는 것을 몇 번이고 반복하던 엄마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오래 하는 거야."

"물기가 없어야 해. 그래야 시간을 견딜 수 있단다."

"왜 이렇게 많이 만드는데."

"겨울은 기니까."

엄마는 창고 한 면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통에 말린 차와 꽃을 저장했다. 긴 겨울 동안 평생 마셔도 부족함이 없을 것 같던 쑥과 꽃이 다 사라졌다. 엄마는 알았다. 이토록 겨울이 길 것이라는 것을. 둘째는 몰랐다. 평생보다 긴 시간이 있다는 것을. 둘째는 마지막 통 속에 반쯤 남은 까만 쑥을 보며 시간의 끝을 예감했다. 첫째가 식탁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춥다. 나무를 해야겠어."

셋째가 말했다.

"다 떠났겠지? 사람들 본 적 오래됐네."

첫째가 답하고 잠시 뒤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우리만 남았겠지… 모두 다른 산으로 떠났을 거야. 겨울만 계속되는 곳에 누가 있고 싶겠어. 안 그래?" 

첫째가 둘째를 봤지만 둘째는 말없이 음식만 만들었다. 감자를 삶고 씨앗에서 짜낸 기름을 두른 냄비에 말린 고기를 넣어 볶았다. 오래 끓여 끈적한 옥수수죽은 그릇에 옮겨 담았다. 셋은 조용히 식사했다. 그동안 누누누 새가 울고 큰바람에 문이 덜컹거렸다. 셋째가 감자 껍질을 까다 말고 말했다.

"이야기 노인. 그 사람도 떠났을까?"

둘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언덕 세 개를 넘어야 만날 수 있던 노인. 세상의 모든 장소와 모든 날씨, 모든 사람과 동물과 나무와 새의 이름을 알던 이야기의 마법사.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몇 번이고 달이 차고 기울어도 졸리지 않았다. 신기하게 배도 고프지 않았다.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엄마는 계곡과 골짜기, 동굴과 무덤을 찾고 다녔다. 그때는 엄마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가 궁금했는데 생각해보면 엄마는 무엇을 찾았던 것이 아니라 여기 아닌 어딘가를 찾고 있었던 것 같다. 거기가 어디인지 알 수 없지만, 엄마는 분명히 거기에 있을 거다. 엄마만 아는 거기에 혼자. 앞으로도 혼자. 영원히. 첫째가 말했다.

"아니. 그 노인 지금도 돌멩이 무덤 옆 그 의자에 앉아 있을 거야. 하지만 죽었겠지. 어깨와 머리에 눈이 쌓이고 또 쌓여 무덤인지 바위인지 구분이나 할 수 있을까? 나 거기 가고 싶어."

셋째의 말에 첫째는 쓸쓸하게 웃었다.

"그 노인보다 우리가 더 노인이 됐어.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가겠다는 거야."

첫째는 그렇게 말한 것을 후회했다. 셋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렇지 않아도 자꾸 엄마를 찾으러 가겠다, 엄마의 소리를 들었다, 계속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굶주린 동물의 먹이가 되고 싶다, 입만 열면 슬프고 힘든 말만 했다. 그 말을 듣고 있으면 첫째의 마음도 슬퍼졌고 그만큼 힘들어졌다. 긴 겨울 동안 셋째의 마음은 갈라지고 부서졌다. 이마에 주름이 잡히듯 마음과 감정에도 주름이 생겼다. 책상에 단정하게 앉아 해가 뜨고 별이 질 때까지 글을 썼던 셋째. 이야기 노인과 엄마의 말을 한 문장도 놓치지 않고 종이에 옮겨 적어 평생 읽어도 다 읽어낼 수 없는 책을 만들어내던 영민한 셋째는 이제 아무것도 적지 않는다. 책상 위엔 추상적인 낙서가 가득한 노트만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셋째가 어두운 마음을 표정과 말로 내비칠 때마다 첫째와 둘째는 어찌할 방법을 찾지 못해 먼 곳만 바라봤다.

"나무 해올게."

첫째는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걸쳤다.


"얼마 전 곰을 봤어. 저기 저 언덕."

첫째가 손으로 가리킨 곳엔 새까만 바위와 북쪽을 향해 몸통이 구부러진 침엽수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눈 쌓인 언덕 꼭대기에 한 부분만 눈이 없었다. 무엇인가가 오랫동안 눈을 맞고 서 있다가 어디론가 사라진 그림자 같은 자리.

"크고 늙은 곰이었지. 온몸이 먹처럼 검은데 등만 하얗더라고. 저기에 서서 나를 이렇게 보고 있었어."

첫째는 굽은 허리를 쭉 편 뒤 고개를 숙이고 발등을 바라봤다. 물속에 고기가 있나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이의 눈처럼 깊고 집요한 눈동자.

"겨울잠에서 깼나 보다."

"힘들었겠지. 이렇게 긴 겨울 동안 잠든다는 것. 죽는 것과 다르지 않을 테니까."

"내려오지는 않았어?"

"마음만 먹으면 그랬겠지만 오지 않았어. 나를 먹고 싶어 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이상하게도 알겠더라고. 곰의 마음이랄까. 곰도 내 마음을 아는 것 같았고."

첫째는 해가 지는 서산을 보며 중얼거렸다.

"한 줌 남은 힘을 다 걸고 사냥을 할지, 남은 힘을 아껴 다시 동굴로 들어갈지. 고민이 됐을 거야."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

"글쎄, 모르겠네. 그런데 곰 걱정할 때가 아니야. 창고가 비었어. 장작도 없고. 우리는 늙었고."

"곰은 한참 동안 나와 이 집을 바라보다 사라졌어. 그때부터 지금까지 걱정으로 잠이 안 와. 곰이 여길 습격할까 봐 걱정이고 곰이 굶어 죽을까 봐 걱정이고."

"잘 자던데."

"곰이 오면 물리칠 수 있을까?"

첫째의 질문에 둘째는 말없이 무릎을 매만졌다. 첫째가 말했다.

"지쳤어. 죽겠다고 하는 셋째를 더는 못 막겠어. 마음은 여전히 막고 있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아. 더 살 이유를 알려달라는데 이유는 모르겠고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데 그것도 맞는 말이라 할 말이 없어. 하지만 얼어 죽을 수는 없으니까 뭐든 해야지."

첫째는 지게를 졌다. 오른손엔 손도끼를 왼손엔 지팡이를 짚었다. 느리게 산길을 향해 걷는 구부정한 노인을 둘째는 물끄러미 바라봤다. 말리고 싶었지만 말릴 수 없었다. 불이 필요했다. 사는 게 뭐라고, 하루라도 더 살려면 잿더미 속에 던질 무엇인가 필요한 법이다. 둘째는 나무토막처럼 딱딱하고 건조한 자신의 왼팔을 오른팔로 똑 부러뜨려 벽난로에 넣고 싶었다. 둘째는 작아지는 뒷모습을 향해 말했다.

"조심하고."

이제 해는 질 것이다. 지는 해는 노랗고 그 빛은 따뜻하고 예뻐 보인다. 둘째는 셋째의 신발 위에 동그랗게 고여 있는 햇빛을 봤다. 수저로 뜨면 떠질 것 같고 손가락을 대면 손끝에 묻을 것 같다. 빛을 마실 수 있다면, 빛을 옮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걸 두 손에 가득 담아 슬픈 셋째의 입술에 흘려 넣어주고 아픈 첫째의 허리에 더운 열기를 전하고 싶다. 하지만 가증한 저 빛. 겨울의 차가운 눈과 얼음을 조금도 녹이지 못한다. 해가 졌다. 산과 하늘과 마당과 지붕과 창문과 언덕과 나무와 바위. 순식간에 잿빛으로 변했다.


책상에 앉은 셋째는 눈을 감았다. 아무도 없는데 엄마의 말이 들린다. 옆방에 있는 것 같다. 식탁 의자에 앉아 있는 것 같다. 가사 없이 흥얼거리는 허밍 소리가 얼음 밑을 녹이고 흐르는 물소리처럼 들린다. 셋째는 그것이 힘들다. 들리지 않아야 할 것이 들리고 보이지 않아야 할 것이 보이고 생각하면 안 되는 것만 생각나고 원치 않은 예감과 예상으로 눈앞은 캄캄하다. 헛되이 결심하고 그 결심을 포기하는 무수한 날들. 잠들고 깨는 것 사이에 그 어떤 차이도 없다. 과거는 기억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고 시간은 기분에 따라 한없이 늘어나거나 얼음처럼 결빙된다. 더 쓸 것이 없다. 새롭게 생각나는 것도 기억나는 것도 없다. 읽고 또 읽어 구멍 난 종이처럼 변한 옛날. 기어서라도 저 언덕과 언덕을 넘어 이야기 노인을 만나고 싶다. 그는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자신보다 더 늙어버린, 한때는 아이였던 나를. 엄마의 말. 우리의 시간. 내 마음. 겪은 것들. 비밀과 사실과 거짓들. 들었던 이야기. 이야기의 시작과 끝. 전후에 남은 부스러기 같은 이야기의 얼룩들. 다 썼고 다 말해버렸다. 이제 쓸 수 있는 건 ‘쓸 것이 없다’라는 문장뿐이다. 하지만 다시 써보는 이야기 하나. 셋째는 어지러운 노트를 덮고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새 노트를 꺼내 첫 장을 펼쳤다.

겨울 나라 어느 작은 마을에 영원이라는 이름의 새가 살았습니다. 영원은 겨울바람을 타고 이 바다와 저 바다를 건너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무를 오르는 자유로운 새였죠. 그러던 어느 날 영원은 세 아이를 낳게 됩니다. 아픔이라는 것을 몰랐던 영원은 자신을 꼭 닮은 세 아이를 낳는 동안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바닥에 놓인 세 개의 물방울. 영원은 그것들을 돌멩이처럼 버리고 떠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고 해요. 거품처럼 작고 얼음처럼 반짝이며 물처럼 투명한 아이들이 너무 아름다웠던 거예요. 이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서 내리는 나의 눈송이들. 영원은 아이들과 함께 살기로 결심했어요.


셋은 각자의 침대에 누웠다. 벽난로의 불은 평소보다 크고 뜨겁게 타올랐다. 오랜만에 감도는 훈기 속에서 셋째가 말했다. 

"언제였더라. 골짜기 어디에서 들려오던 나팔 소리 기억나?"

"기억나지. 엄마가 그 소리 좋아했지. 엄마가 좋으면 우리도 좋았고."

"그 멜로디 생각나?"

둘째가 허밍을 하기 시작했다. 높은음은 올라가지 않아 몇 마디는 멜로디 없이 숨소리만 들렸다.

첫째와 셋째가 눈을 감고 둘째의 연주를 들었다. 첫째가 말했다.

"우리 이제 몇 살일까?"

"글쎄, 모르겠네. 봄 없이 겨울만 계속되는 세계에서는 나이도 멈추는 거 아닐까?"

"그런데 우리는 계속 늙고 있잖아."

"모르겠다. 자자."

"문단속은 했어?"

둘째가 말했고 첫째가 답했다.

"걱정 마. 아까 곰 만났는데 우릴 먹을 생각이 없대."

"그렇게 말했어?"

"응. 그냥 떠나겠대."

"다른 산으로?"

"아니. 겨울 산 가장 깊은 곳으로."

첫째의 말에 둘째와 셋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장 깊은 곳. 들어갈 수는 있지만 되돌아올 수는 없는. 환하게 빛나는 겨울의 동굴. 긴 침묵을 깨고 셋째가 말했다.

"나는 엄마가 돌아올 거라고 생각해. 죽지 않았을 거야. 엄마는 얼음이 됐어. 우리는 그걸 봤고 그 얼음 위에 눈이 쌓이는 것도 봤지. 나중에는 숲속의 나무 중 하나가 되어 구분할 수도 없었잖아. 그걸 죽음이라고 할 수 있어?"

첫째와 둘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밤새가 우는 소리. 차고 단단한 별이 부서져 내리는 소리. 들리고 들렸다. 셋째가 말했다.

"나 요즘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

첫째가 말했다. 

"나는 종종 엄마를 만나.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봤다고 말은 안 했지만 본 것은 본 거니까."

둘째가 물었다.

"어땠어?"

"뭐가 어때. 똑같지."

"그래? 어떡하지. 우리가 엄마보다 훨씬 늙었겠다."

"누가 보면 엄마가 우리 딸인 줄 알겠네."

"끔찍한 소리 그만하고 이제 진짜 자자."

첫째의 말에 둘째와 셋째 입을 다물고 호흡을 골랐다.

첫째가 말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인사할게. 고마웠어."

셋 중 하나가 말했다.

"시끄러워. 청승맞게 밤마다 이게 뭐야… 미안했어."

둘째가 말했다.

"엄마가 들려줬던 말 들려줄까? 눈을 미워하는 사람은 되지 말아라. 막막하고 하염없어도 슬퍼 말고."

둘 중 하나가 말했다.

"묘하게 다른데. 그 말 우리 다 들었잖아. 어딘지 모르게 달라. 기쁘게 만나자는 말도 있었던 것 같아."

다른 하나가 말했다.

"아무튼 나중에 반드시 만나자는 말이었어."

잠들기 직전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말했다.

"내일 이야기 노인 만나러 갈까?"

잠꼬대 같은 대답들.

"가볼까?"

"가보자."




*정용준

소설가. 소설집 『선릉 산책』, 『가나』, 장편 소설 『내가 말하고 있잖아』, 『프롬 토니오』, 『바벨』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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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용준(소설가)

소설집 『선릉 산책』, 『가나』, 장편소설 『내가 말하고 있잖아』, 『프롬 토니오』, 『바벨』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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