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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향모, 전염병, 패싱에 관한 책

책읽아웃 - 황정은의 야심한 책 (225회) 『향모를 땋으며』, 『단절』, 『패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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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사람이 그리고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상생할 수 있는지를 이 책을 통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2022.01.27)


한자(황정은)의 선택

『향모를 땋으며』

로빈 월 키머러 저 / 노승영 역 | 에이도스



지은이 로빈 월 키머러는 아메리카 원주민인 포타와토미족 출신입니다. 식물 생태학자, 작가이고 대학에서 환경생물학 강의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책의 내용은 다섯 개 챕터로 나눠져 있는데요. 향모 심기, 향모 돌보기, 향모 뽑기, 향모 땋기, 향모 태우기, 이렇게 다섯 단계입니다. 심어서 수확 과정까지가 다 나와 있는 건데요. 그렇다고 향모를 재배하는 법이 실려 있는 책은 아니에요. 이 책에 끼워진 ‘책 사용 설명서’라는 걸 보면 향모의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끄트머리로 갈수록 보라색이 도는 매우 윤기 나는 녹색 풀인데, 원주민 언어로 윙가슈크라고 합니다. 학명은 히에로클로에 오도라타(Hierochloe odorata), 향기가 나는 성스러운 풀이라는 뜻입니다. 바닐라 향기가 난다고 해요. 아메리카 원주민 설화에서는 모든 식물 중에서 이 향모가 대지에서 가장 먼저 자란 식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풀을 제의가 있을 때 이 특별한 풀을 따서 사용을 한다고 해요. 

키머러가 학교에서 생태학 수업을 하는 중에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인간과 땅의 긍정적 상호작용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대답은 ‘없음’이었다고 해요. 학생들이 인간하고 나머지 자연의 이로운 관계가 어떤 건지 상상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키머러가 이 질의를 통해서 알게 된 거죠.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그런 생각을 얼른 떠올리지 못하는 게, 물론 우리가 안 해서도 그렇지만 사실은 배운 적도 없고 가르쳐본 적도 없고 해본 적이 없어서 일종의 ‘학습된 무지’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말씀드린 대로 키머러는 생태학자이고 과학자인데요. 키머러의 분야에서 과학은 생태 구성원을 대상으로 두고 과학의 언어로 분해하고 분리하고 또 논리적으로 해석하려는 태도를 요구하는 학문인데, 동시에 키머러라는 사람은 포타와토미족을 비롯해서 아메리카 원주민의 세계관에 대단히 깊은 영향을 받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땅과 사람이 그리고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상생할 수 있는지를 이 책을 통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키머러가 자기 일상하고 또 경험을 통해서 천천히 설명하는 이 세계관을 따라서 읽다 보면 그 모습이 좀 낯설지만 많이 낯설지도 않아요. 사실은 저희가 오래전에 매체를 통해서라도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고, 그런데 또 너무 오래돼서 생활 방식이 이미 사라진 것도 같고, 그렇지만 그런 세계관이 지금도 있고 앞으로도 가능하다 라는 메시지로 저는 이 책을 읽었습니다.



단호박의 선택

『단절』

링 마 저 / 양미래 역 | 황금가지



이 소설은 전염병을 소재로 다루고 있어요. ‘선 열병’이라는 이름의 질병이 전 세계를 강타하게 됩니다. 병에 걸리면 사람들이 이지를 잃어버려요. 자기가 어떤 존재고 뭘 하는지 모르는 상태로, 사실상 뇌는 정지를 했는데 자기가 하던 일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습성을 보입니다. 프롤로그는 이 열병에서 살아남아서 생존자라고 불리는 9명의 사람들을 보여주는 걸로 시작을 해요. 생존자들이 어떻게 열병 이후에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이 열병이 창궐하기 전에 주인공(캔디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었는지를 교차해서 보여주는 식으로 진행이 됩니다. 

주인공은 뉴욕에 살고요. 출판업계에서 일하고 있어요. 출판사랑 인쇄소를 연결 시켜주는 건데, 그중에서도 성경을 만드는 일을 합니다. 늘 거의 판에 박힌 일이었어요. 그리고 블로그에 뉴욕 사진을 올리는 취미가 있었어요. 어느 날 애인이 ‘뉴욕 떠나서 나랑 같이 살지 않을래?’라고 제안을 해요. 하지만 주인공은 뉴욕을 포기하고 싶진 않아요. 한참 애인과 논쟁을 벌이다가 지쳐서 잠들고 늦잠을 자서 허겁지겁 출근을 했는데, 회사에서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선 열병’이라는 정체불명의 병에 대한 어떤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어요. 

어느 날 회사에서는 재택근무 신청자를 받기 시작해요. 그리고 상사가 주인공을 부릅니다. ‘지금 뉴욕 지부를 비울 거고 일부 직원만 남아서 회사를 운영하는 팀을 만들 건데, 그 운영팀에 들어가 달라’라는 요청을 하는 거예요. 계약서에는 캔디스가 이제까지 본 적 없었던 엄청난 금액이 적혀 있어요. 캔디스는 거기에 사인을 합니다. 그리고 회사는 텅 비게 돼요. 

시간이 흘러서 누구는 (회사를) 떠난다고 해요. 상사한테는 계속 업무 보고를 보내는데 피드백이 없어요. 캔디스는 자신만 남은 회사에서 먹고 자면서 그냥 거기에 있습니다. 그렇게 화려하고 물건이 많고 엄청난 기회로 가득 차 보였던 뉴욕 땅에 아무도 안 남아요. 그래서 캔디스는 사진을 찍어서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댓글이 수만 개가 달려요. 그 중에 어떤 사람이 댓글을 남겨요. ‘당신이 열병에 걸린 게 아니라는 걸 우리가 어떻게 믿죠?’ 열병에 걸린 사람들이 계속해서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너도 그냥 하던 일을 하고 있는 거 아니냐, 라는 거죠. 마지막쯤 가서 캔디스가 거의 하나 남은 굉장히 잘 정돈된 것 같은 건물을 발견합니다. 거기서 누군가가 움직이고 있어요. 가서 보니까 한 점원이 파스텔 색상의 폴로 셔츠를 개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접었다가 개고, 또 개고, 또 개고, 또 개고... 계속 개고 있는 거죠. 

이 소설은 영미권에서 2018년도에 나왔어요. 아직 코로나가 유행하기 전에 이런 소설을 썼던 거고요. 구글에 이 작품을 검색해보면 설명에 ‘풍자 SF 소설’이라고 나와요. 소설을 읽다 보면 풍자하는 대상이 굉장히 명확합니다. 자본주의와 MZ세대를 묘사한 것이 아니겠느냐 라는 생각을 했고요. 한마디로 ‘요즘 세대를 잘 그려낸 요즘 소설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의 선택

『패싱』

넬라 라슨 저 / 서숙 역 | 민음사



15년 전쯤에 우리나라에 출간이 되었다가, 지난해 7월과 8월에 민음사와 문학동네에서 각각 재출간된 소설입니다. 넬라 라슨은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요. 그 경험이 이 작품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일단 ‘패싱’이라는 단어가 어떤 뜻으로 쓰였는지 말씀을 드리면 “백인과 유사한 신체적 특징을 지닌 흑인들이 자신의 흑인 정체성을 숨기고 백인 행세를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소설의 제목에서 나타나 있듯이 ‘패싱’을 하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예요. 실제로 넬라 라슨이 1920년대에 뉴욕에서 살면서 할렘 르네상스의 예술가들과 교류했다고 하는데, 이 작품의 배경도 1920년대의 뉴욕입니다. 또 한 곳은 시카고예요. 

소설의 주인공은 두 명의 여성 ‘아이린’과 ‘클레어’입니다. 아이린이 한 통의 편지를 받는 것으로 시작하는데요. 편지를 받은 아이린은 기분이 좋지 않아요. 발신인 이름은 없었지만 클레어에게 온 편지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2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편지를 받은 적이 있기 때문이에요. 아이린과 클레어는 어린 시절에 한 마을에서 자랐어요. 클레어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클레어가 마을을 떠나서 먼 친척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됩니다. 그러다 발길이 뜸해졌고 아이린은 자신의 아버지를 통해서 클레어가 친척 집에서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클레어를 알고 있던 아이들이 많은 소문을 내기 시작해요. ‘클레어가 백인 남성, 백인 여성과 고급 호텔에 있는 걸 본 사람이 있대’, ‘클레어가 백인 남성과 기사 딸린 리무진을 타고 지나가는 걸 본 사람이 있대’ 이런 무성한 소문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누구도 정확하게 클레어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몰랐어요.

그런데 현재의 시점에서 2년 전에, 아이린이 클레어와 거의 12년 만에 우연히 만난 거예요. 백인들만 출입이 가능한 고급 호텔의 루프탑에서 만났어요. 시카고였습니다. 아이린은 5년 만에 친정을 찾은 참이었고 클레어는 아이린의 옆 테이블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이린은 처음에는 클레어를 알아보지 못했어요. 그런데 옆 테이블에 앉은 여자가 너무 빤히 쳐다보는 거예요. 아이린은 ‘저 여자, 내가 흑인인 걸 아는 거야? 설마’하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아이린은 피부색이 밝아서, 자신이 먼저 밝히지 않으면 백인들은 아이린이 흑인이라고 생각을 안 하거든요. 그런데 클레어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니까 점차 아이린이 두려움을 느낍니다. 여기에서 쫓겨나면 어떡하지, 하고요. 그때 클레어가 다가와서 ‘우리 아는 사이 같은데요’라고 이야기하는 거죠. 아이린은 기억을 더듬어서 클레어를 알아보고 두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사실 아이린은 궁금하죠. 클레어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그 많은 소문들이 사실이었는지. 그런데 상대방이 불쾌하지 않게 물어보기가 쉽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겉도는 이야기들만 하고 있는데 클레어가 먼저 이야기해요. ‘난 항상 궁금했어. 패싱을 할 수 있는 흑인 여성들이 왜 패싱을 안 할까. 생각보다 되게 쉬운 일인데 말이야.’ 그제야 아이린이 물어보죠. 어떻게 백인들 사이에서 출생을 들키지 않을 수 있냐고. 클레어는 생각보다 굉장히 간단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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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임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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