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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강박증’이 있는 이들이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1』 심순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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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일종의 ‘행복 강박증’이 있는 듯합니다. 행복해야 좋다고 생각하고, 행복해서 다행이라 여기고 행복하기를 간절히 염원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경험해 본 이라면 누구나 행복이라는 목표 그 자체에서 얻는 것보다 그걸 향해 가는 여정에서 얻는 게 훨씬 크다는 걸 알 겁니다." (2021.12.27)

심순 작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1』은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는 완벽한 숫자 1이 겪는 흥미로운 모험담으로, 『비밀의 무게』로 제25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을 수상한 작가 심순의 신작 동화이다. 독특한 소재와 유쾌한 상상력을 인정받으며 동화계에 입문한 작가 심순은 이번 작품에서도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마음껏 상상하고 선명하게 펼쳐 보이며 능란한 이야기 솜씨를 뽐낸다.



제25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작 『비밀의 무게』 발표 이후 두 번째 동화입니다. 오랫동안 어른들을 위한 글을 쓰셨는데, 최근 아동문학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어린 시절 혹은 최근에 인상 깊게 읽은 아동문학도 궁금하고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작가 외에 다른 무언가가 된다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현실을 반영하면서도 현실을 다른 모습으로 볼 수 있게 해 주는 이야기 세계에 흠뻑 빠졌어요. 소설이 이야기인 것처럼 동화도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라는 재료는 같은데 조리법을 달리하면 맛이 확 달라지잖아요. 튀긴 감자와 조린 감자 맛이 다른 것처럼요. 3~4년 전쯤 어떤 이야기들이 떠올랐는데, 그것들은 동화라는 그릇에 담아야 더 멋있고, 더 재밌을 것 같았습니다. 사실 그 무렵 개인적으로 힘든 일도 많았는데, 제가 쓰는 동화로 오히려 제가 위로를 받았습니다.

최근 인상 깊게 읽은 동화는 루이스 새커의 『웨이싸이드 학교』 시리즈(창비)입니다. 지나치게 교훈을 주려는 의도 없이 천연덕스럽게 이야기를 뭉쳐 가는 작가의 솜씨가 마음에 듭니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1』은 주인공이 숫자 1이고, 숫자들이 사는 세상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매우 독특하고 신선합니다. 이번 작품의 소재를 정하신 계기나 이유가 있을까요?

보이지 않는 걸 눈앞에 바로 보이듯 그려 내는 일을 좋아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1』도 숫자 1의 상징성에 주목해서 만든 작품입니다. 자아와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다가 이 동화를 떠올렸어요. 엄밀히 말해 ‘1’이라는 매우 도도하면서도 고독한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요즘은 다들 형제자매가 많지 않지요. ‘나’가 가족의 애정을 듬뿍 받아 스스로를 최고로, 귀하게 여기는 게 더 쉬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 ‘나’는 비슷하게 애정을 듬뿍 받은 또 다른 ‘나’와 만나야 하지요. 학교나 친구들 모임 같은 작은 공간에서만이 아닙니다. 어디서든 ‘나’는 결국 ‘너’가 되기도 하고 ‘우리’가 되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 ‘나’를 버리는 게, 내려놓는 게 필요하지요. 그러나 그 또한 신중해야 합니다. 지나친 건 언제나 모자란 것과 같은 법이니까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1』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맞춤한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동화입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맞춤한 자아’. 이런 어려운 주제를 동화적 상상력으로 풀기는 다소 어려울 것 같은데요. 집필 과정에서 가장 막막했던 설정이나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을까요?

주인공 1이 자신의 겉모습이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닫고 내면의 1을 꺼내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어린이들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도 있을 자립심, 자신감, 자부심, 자존심을 어떻게 쉽게 풀어 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주는 게 가장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령 자립심은 혼자서 목욕도 하고 옷도 입고 밥도 먹을 수 있는 그런 힘으로 그렸어요. 더 구체적인 설명은 독자의 상상력에 맡기기로 했습니다. 흠 하나 없이 완벽하고 아름다운 1의 내면을 상상해 보는 것 또한 독자의 몫이라고 생각했고, 상상력의 자유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딱 떨어지는 답을 제시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게 문학 그 자체의 유연함과 포용력이라고 믿습니다.



숫자 1은 자신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자립심, 자신감, 자부심, 자존심 등을 모두 버리고 길을 떠납니다. 보통 긍정적인 기질은 버리거나 잃어버리지 않아야 마땅할 것 같은데요.

살면서 이런저런 일을 겪어 본 사람들은 대개 생각하거나 행동할 때 과유불급, 적절함, 공자나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중용’이 큰 도움이 된다는 걸 알게 됩니다. 어른들만 깨닫는 건 아닙니다. 가령 아이들도 아이스크림이 아무리 달고 맛있어도 많이 먹으면 좋지 않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닫습니다. 좋은 것, 긍정적인 것, 힘이 되는 것들이 마냥 좋거나 긍정적이거나 힘이 되지만은 않는 건 왜일까요. 우리 인생이 태생적으로 양면성을 띠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있어서 삶이 있는 것처럼, 다시 말해 언젠가는 모두 죽기 때문에 삶이 소중하기도 한 것처럼 상실도 겪고 패배도 해야 인생이 풍요로워집니다. 기본적으로 다소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어린이들도 모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선은 아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1』을 읽고 ‘1은 그 좋은 걸 도대체 왜 버리려는 거야?’ 하고 의문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요.

속이 텅 빈 1이 외로움, 슬픔, 그리움, 조마조마한 마음 등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면서도 이전에 느끼지 못한 행복감을 느끼는 장면은 인상적입니다. 결핍과 불완전, 부정적인 감정의 순기능을 보여 주려는 의도였을까요?

네, 그렇습니다. 저는 의도적으로 행복에 대해 강박을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마냥 기쁘거나 즐겁거나 신이 나야 살맛 나는 건 아니니까요. 완벽한 비율을 갖춘 아름다운 조각상뿐 아니라 괴이하고 우울하고 더러운 것도 감동적인 예술품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무서운 그림책도 좋아하고, 슬픈 결말의 이야기도 좋아합니다. 물론 부정적인 것들이 더 좋다거나 꼭 필요하다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감정이 가지는 순기능도 분명히 있습니다. 또 우리가 맞닥뜨리는 어떤 상태, 어떤 사건이든 한 가지 면만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무릎의 상처 딱지를 긁었을 때 아프지만 어쩐지 자꾸 긁게 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겁니다. 아픔이 주는 쾌감, 거의 시원하기까지 한 어떤 감각이 분명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슬프다‘고 해도 그 안에 기쁨과 설렘 등이 함께 들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 부정적인 감정에도 위로와 감사, 겸손 같은 성장의 동력이 되는 보석 같은 부분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주인공 1이 겪는 모험담에서 사회적 메시지를 읽는 독자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일등 만능주의, 결과주의, 승자 독식 주의 등에 대한 경계로요. 1등, 최고, 완벽의 압박 속에서 살아가는 어린이들에게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도 들려주세요.

요즘은 자녀 한두 명을 두고 시선이 집중되어 있지요. 1등이나 최고가 되라는 무언의 압력을 아이들이 어떻게 견디는지 모르겠어요. “잘했어.”나 심지어 “사랑해.”라는 말 속에도 어떻게든 경쟁에서 최고가 되라는 압박이 숨어 있곤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요즘의 어린이들에게 어른으로서 얼마간 미안한 마음이고, 빚진 마음입니다. 아이들에게 모두가 1등일 수는 없다, 최고가 되는 게 꼭 좋은 것도 아니다, 세상에 완벽한 건 아무것도 없다, 경쟁에서 이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경쟁의 결 사이사이에 숨어 있는 애타는 마음, 양보하는 마음, 이해하는 마음 등이 훨씬 소중하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조금 더 덧붙이면, 우리에게는 일종의 ‘행복 강박증’이 있는 듯합니다. 행복해야 좋다고 생각하고 행복해서 다행이라 여기고 행복하기를 간절히 염원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경험해 본 이라면 누구나 행복이라는 목표 그 자체에서 얻는 것보다 그걸 향해 가는 여정에서 얻는 게 훨씬 크다는 걸 알 겁니다. 고통을 당하고 배신을 당하고 슬픔을 겪더라도 말이지요. 숫자 1이 바다를 건너면서 물결로부터 짜증스러운 나무람을 듣거나 공벌레의 비웃음을 사지만 1은 그걸로 슬퍼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습니다. 새로워서 오히려 흐뭇하다고 생각하죠. ‘꼿꼿한 1’은 어떨까요. ‘꼿꼿한 1’은 주인공 1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험난하고 고생스러웠을 그 모험에 마음이 끌립니다. 여태 몰랐던 인생의 또 다른 면에 설레하죠. 우리는 달콤한 밀크커피만 좋아하지 않습니다. 쓰디쓴 블랙커피가 맛있다며 즐겨 마시기도 하지요. 만물이 소생하는 찬란한 봄도 아름답지만 만물이 스러지는 음산한 겨울도 매혹적이잖아요.

이 작품을 읽고 난 뒤 어린이들이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질문’ 하나를 주신다면요? 구상하고 계신 작품도 궁금하고요.

내가 어느 분야에서 1등이나 최고가 되기를 원한다면, 왜 그럴까를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엄마나 아빠가 기뻐해서? 친구들한테 뽐낼 수 있어서? 선생님에게 칭찬받을 수 있어서? 수학 문제를 푸는 것 자체로, 춤을 추는 그것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운지 아닌지 곰곰이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질문을 해 보는 것도 좋지만, 어린이들 스스로 이야기를 지어 보면 좋겠습니다. 숫자 2의 삶은 어떨까, 3이나 4의 모험은 또 어떤 게 있을까 상상하면 어떨까요? 어느 날 더는 5로 살기 싫어진 5가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혹은 문자도 좋습니다. ‘가’라는 글자의 반란은 어떨까요? ‘흙’이라는 글자가 어느 날 ‘흘’이나 ‘흑’으로 살고 싶어졌다면요? 

최근에는 특이한 배경을 가진 한 아이가 ‘우리’의 반감을 사다가 점차 ‘우리’와 함께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2022년 봄에는 '행복한 먼지'라는 제목으로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1』과 비슷한 형태의 동화책이 나올 예정이고요, 가을쯤에는 단편 대여섯 작품을 묶은 고학년 동화집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심순 

1999년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본명 ‘심아진’으로 『무관심 연습』, 『어쩌면, 진심입니다』 등의 소설을 발표했습니다. 202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에 당선되었고, 이후 독특한 소재와 유쾌한 상상력을 인정받은 『비밀의 무게』로 제25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대상을 받았습니다. 마음속에 감추어진 이야기, 미처 발견하지 못한 멋진 이야기를 발굴해 어린이들과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는 동화를 쓰고 있습니다. 『행복한 먼지』 등 여러 작품의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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